4화
‹ ›그렇게 다시 두 달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계절은 어느덧 완연한 봄으로 접어들어 있었다. 청목세가의 후원에 심어진 매화나무들이 꽃잎을 다 떨구고 푸른 잎을 드리우기 시작할 무렵, 청도현의 몸은 눈에 띄게 달라져 있었다. 여전히 남들 앞에서는 병약한 삼공자의 모습을 유지했으나, 걸음걸이의 안정감이나 안색의 생기까지 완전히 숨기기는 어려웠다. 새벽마다 몰래 마당을 가로지르는 걸음에는 예전의 비틀거림이 사라졌고, 얼굴에는 핏기가 돌기 시작했으며, 손끝에서는 미약하게나마 온기가 감돌았다. 세가 안팎에서는 "삼공자의 병이 조금 나아진 모양"이라는 소문이 조심스레 돌기 시작했다. 그 소문은 처음에는 하녀들의 귓속말로, 다음에는 하인들의 술자리 안주로, 마지막에는 방계 어른들의 조심스러운 눈짓으로 번져갔다.
마침 그 무렵, 청목세가에서는 매년 봄에 열리는 자제비무회(子弟比武會)가 코앞으로 다가와 있었다. 세가의 모든 공자와 어린 무인들이 참가하는 이 행사는, 단순한 비무를 넘어 가문 내 서열과 후계 경쟁의 축소판이라 불릴 만큼 중요한 자리였다. 매년 이 자리에서 가장 뛰어난 성적을 거둔 자에게는 가주의 특별한 관심과 지원이 뒤따랐으니, 세가의 공자들 사이에서는 이 비무회를 통해 자신의 존재를 각인시키려는 암투가 매년 벌어지곤 했다. 병든 청도현에게는 관심 밖의 행사였던 것이 지금까지의 관례였다. 지난 몇 년간, 그의 이름은 참가 명단 어디에도 오르지 않았고, 그 사실을 이상하게 여기는 사람도 없었다.
"공자님, 올해도 비무회에 참가하지 않으실 겁니까." 소련이 걱정스러운 얼굴로 물었다. 그녀의 손에는 이번 비무회의 참가 신청서가 들려 있었는데, 매년 그러했듯 삼공자의 이름 칸은 비어 있는 채로 관리인에게 돌려주는 것이 관례였다. 지난 몇 년 동안, 청도현은 병약함을 이유로 참가 명단에서 제외되어 왔으며, 그것을 부당하다 여기는 사람 또한 없었다.
청도현은 잠시 창밖을 바라보다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이번에는 참가하겠다."
소련의 눈이 크게 벌어졌다. 신청서를 든 손이 미세하게 떨렸다. "하지만 공자님... 아직 완전히 회복되지 않으셨습니다. 만약 사람들 앞에서 무너지신다면... 그것을 보고 다시 조롱거리로 삼으려는 자들이 얼마나 많을지 아시지 않습니까."
"괜찮다." 청도현이 그녀의 걱정을 짐짓 잘라내며 말했다. "내가 원하는 건 승리가 아니다. 다만, 세가의 사람들에게 내가 더 이상 예전의 그 병든 삼공자가 아니라는 것을 알릴 필요가 있다."
그의 목소리에는 확신이 담겨 있었다. 소련은 그 눈빛을 마주하고서야, 더 이상 만류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녀는 결국 신청서에 삼공자의 이름을 적어 넣으며, 손끝으로 종이를 몇 번이나 쓸어내렸다.
지난 몇 달간의 은밀한 수련으로, 청도현은 후천 일중(一重)에서 이중(二重)의 경지에 이르렀다. 여전히 미약한 수위였으나, 그것은 전생의 절학과 결합된 미약함이었다. '순수한 내공의 양으로는 세가의 웬만한 방계 공자에게도 밀리겠지.' 청도현은 밤마다 홀로 단전을 다스리며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순수한 내공의 양은 부족할지언정, 독술과 암기를 다루는 기교와 순발력, 급소를 짚어내는 정확함만큼은 세가의 어떤 동년배 공자에도 뒤지지 않는다는 자신이 있었다. 전생에서 그가 익힌 것은 정통의 내공심법이 아니라, 어둠 속에서 살아남기 위한 실전의 기예였다. 관절을 꺾는 각도, 혈도를 짚는 힘의 세기, 상대의 중심을 무너뜨리는 순간의 타이밍—그 모든 것이 몸에 새겨져 있었고, 미약한 내공이라도 그 위에 얹히는 순간 전혀 다른 위력을 발휘한다는 것을, 청도현은 지난 두 달간의 수련을 통해 몸소 확인했다.
강태산 역시 그런 그의 진전을 곁에서 지켜보며 몇 번이나 감탄을 감추지 못했다.
"공자님의 그 손끝 하나가, 정석대로 십 년을 수련한 자의 검보다 무섭습니다." 강태산이 언젠가 그렇게 말한 적이 있었다. 청도현은 그 말에 대답 대신 옅게 웃기만 했다.
비무회 신청을 받으러 온 관리인은 청도현의 이름을 명단에 올리며 놀란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삼공자님께서... 참가하신다고요?" 관리인이 재차 확인하듯 물었다. 그의 손에 든 붓끝이 잠시 멈춰, 먹물이 종이 위로 한 점 떨어졌다. 청도현은 짧게 고개를 끄덕였다.
"틀림없다."
관리인은 몇 번이나 눈을 깜빡이더니, 결국 명단 아래쪽에 삼공자의 이름을 써 넣었다. 그 붓놀림이 유난히 조심스러웠다.
소식은 빠르게 세가 안에 퍼졌다. 저녁 무렵이 되기도 전에, 세가의 모든 처소에 이 소문이 닿지 않은 곳이 없었다. 가장 먼저 그 소식을 접한 것은 청랑이었다.
"병든 놈이 드디어 죽을 자리를 찾아온 모양이구나." 청랑이 낮게 웃으며 하인들에게 말했다. 그는 술잔을 손에 든 채 창밖을 바라보고 있었는데, 그의 곁에 있던 하인 하나가 맞장구치듯 말을 얹었다.
"칠공자님께서 상대로 걸리시면, 삼공자님은 그대로 세가를 떠나셔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 말에 청랑은 더욱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 그의 웃음소리가 처소 밖으로까지 새어나갈 정도로 컸다.
"내가 그 몰골을 지켜본 것이 몇 년인데, 이제 와서 발버둥을 쳐봐야 무엇이 달라지겠느냐." 청랑이 술잔을 비우며 중얼거렸다. "차라리 잘된 일이다. 모두가 보는 앞에서 그 허깨비 같은 몸뚱이가 무너지는 것을, 이번에야말로 똑똑히 보여줄 수 있겠구나."
비무회의 대전 배정은 추첨으로 정해졌기에, 청도현과 청랑이 초반부터 맞붙을 확률은 낮았다. 그러나 소문은 이미 세가 안에서 청도현을 향한 조롱과 기대 없는 시선으로 가득 채워져 있었다. 몇몇 방계 어른들은 오히려 이번 일을 두고 "삼공자가 드디어 정신이 나갔다"는 말을 서슴없이 입에 올렸고, 그 말은 청도현의 처소에까지 은근하게 흘러들었다.
비무회 당일, 청목세가의 넓은 연무장에는 각 공자와 그들을 지지하는 세력들이 자리를 채우고 있었다. 아침 햇살이 연무장 바닥의 흙먼지를 금빛으로 물들였고, 사방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파도처럼 겹쳐 들려왔다. 가주 청현덕도 상석에 앉아 이 광경을 지켜보고 있었으니, 그의 눈길이 명단에 오른 청도현의 이름을 발견했을 때 잠시 미간을 찌푸린 것을 놓친 사람은 소수였다. 그는 곁에 앉은 총관에게 낮은 목소리로 무언가를 묻는 듯했으나, 곧 다시 무표정한 얼굴로 돌아왔다.
청도현의 첫 상대는 세가 방계의 아들로, 후천 이중(二重)의 경지에 오른 평범한 재능의 소년이었다. 연무장에 오른 청도현을 보며, 관중석에서는 낮은 비웃음이 새어나왔다.
"저 몰골로 뭘 하겠다고..." 누군가 속삭이는 소리가 들렸다.
"이거 볼 것도 없이 반각(半刻)도 못 채우고 끝나겠구먼." 다른 목소리가 이어 붙었다.
청도현은 그 시선들을 무시하며, 조용히 상대를 응시했다. 그의 시야에는 관중의 웅성거림도, 조롱의 눈빛도 잡히지 않았다. 오로지 상대의 발끝과 손끝, 어깨의 움직임과 호흡의 흐름만이 선명하게 들어왔다. 전생에서 수도 없이 익혀온 관찰의 습(習)이 몸에 새겨져 있는 탓이었다. 상대는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검을 뽑아 들었다.
"삼공자님, 봐주지 않을 겁니다." 상대가 도발하듯 말했다. 그의 눈빛에는 병약한 상대를 앞에 둔 방심과, 자신의 실력을 뽐내고 싶어하는 젊은 혈기가 뒤섞여 있었다. 청도현은 답 대신 짧게 고개를 끄덕였다.
비무가 시작되자, 상대는 지체 없이 달려들었다. 검격이 매섭게 청도현의 어깨를 노렸다. 관중석에서는 이미 승부가 정해졌다는 듯한 분위기가 흘렀다.
그러나 그 순간, 청도현의 몸이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움직였다. 검격을 최소한의 움직임으로 흘려내며, 상대의 옆으로 미끄러지듯 파고든 것이다. 그 움직임에는 조금의 힘도 낭비되지 않았으니, 마치 물이 바위를 돌아 흐르듯 자연스러웠다. 그의 손끝이 상대의 팔목 관절을 정확히 짚었다.
"어?" 상대가 놀란 소리를 내는 순간, 손목의 힘이 순식간에 풀리며 검이 바닥에 떨어졌다.
쨍-!
검이 땅에 부딪히는 소리가 연무장에 울렸다. 관중석이 순간 조용해졌다. 방금까지 웅성거리던 소리가 마치 누군가 손으로 틀어막은 것처럼 일시에 잦아들었다. 청도현은 그대로 상대의 목 뒤를 손끝으로 가볍게 짚으며, 승부를 마무리 지었다. 후천의 진기를 실은 타격이 아니었다. 오로지 전생에서 익힌 급소술과 순발력만으로 만들어낸 결과였다. 상대는 그대로 무릎을 꿇으며, 자신이 무엇에 당했는지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표정으로 청도현을 올려다보았다.
"승자, 청도현!" 심판을 맡은 무사의 목소리가 연무장에 울려 퍼졌다. 관중석은 한동안 침묵에 잠겼다. 병든 삼공자가 승리했다는 사실을, 누구도 쉽게 받아들이지 못하는 눈치였다. 몇몇은 자신의 눈을 의심하듯 눈을 비볐고, 몇몇은 서로의 얼굴을 마주 보며 낮은 목소리로 무언가를 속삭였다.
상석에 앉은 청현덕의 눈빛이 미묘하게 흔들렸다. 그는 오랫동안 잊고 지냈던 셋째 아들을, 처음으로 다시 눈에 담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그의 시선은 청도현의 발놀림, 손끝의 움직임, 그리고 상대의 관절을 짚어내던 그 정확한 순간을 몇 번이나 되짚었다.
"의외로군." 그가 낮게 중얼거렸다. 그 옆에 앉은 강태산은 표정을 관리하며 조용히 청도현을 바라보았다. 그의 눈빛에는 확신과 자부심이 뒤섞여 있었다. 며칠 전 은밀히 손을 봐준 자세 몇 가지가, 그 짧은 순간에도 정확히 발휘되고 있었다. '이제야 세가의 눈이 조금씩 열리기 시작하는구나.' 강태산은 속으로 그렇게 생각하며, 옆에 앉은 다른 무사들이 웅성거리는 소리를 흘려들었다.
관중석 한쪽에서, 청랑의 표정이 서서히 굳어가고 있었다. 그는 술기운이 채 가시지 않은 얼굴로 이 광경을 지켜보고 있었는데, 방금까지의 여유로운 미소는 어느새 자취를 감춘 뒤였다.
"저것이... 병든 놈이라고?" 청랑이 나직이 이를 갈았다. 그의 손에 들린 부채가 부러질 듯 힘없이 구겨졌다. 그는 청도현이 첫 승을 거두는 것을 두 눈으로 직접 목격했고, 그것이 단순한 요행이 아니라는 것을 직감했다. 방금 그 손끝의 움직임은, 결코 우연히 나올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수년간 수련한 자만이 지닐 수 있는 정확함이었고, 그 정확함이 하필 그 병약하다 여겼던 삼공자에게서 나왔다는 사실이 그의 속을 뒤틀어놓았다.
연무장을 내려온 청도현에게, 소련이 눈물이 그렁그렁한 채로 달려왔다.
"공자님, 정말 대단하셨습니다!" 그녀의 목소리가 떨렸다. 그녀는 몇 번이나 입술을 깨물며 눈물을 참았으나, 결국 그 눈가가 붉게 물들고 말았다. 청도현은 짧게 웃음을 지으며 그녀를 다독였다.
"별일도 아닌 것에 그리 놀랄 것 없다." 청도현이 말하며 이마의 땀을 손등으로 훔쳤다. 짧은 비무였음에도 그의 호흡은 미세하게 흐트러져 있었다. 아직 완전하지 않은 몸이 그것을 여실히 드러내는 증거였다.
"이제 시작일 뿐이다." 청도현이 조용히 말했다. 그의 시선이 관중석 한쪽에서 자신을 노려보고 있는 청랑에게로 향했다. 두 사람의 눈이 마주쳤다.
그 짧은 순간, 연무장의 소음도, 소련의 목소리도, 다른 이들의 시선도 모두 멀어지는 듯했다. 오로지 청랑의 그 이글거리는 눈빛만이, 청도현의 시야 한가운데 또렷하게 박혀 들었다. 청도현은 그 눈빛 속에서 분노를 넘어선 어떤 조바심을 읽어냈다. 지난 몇 년간 병든 삼공자를 조롱거리로 여겨왔던 청랑에게, 오늘의 이 결과는 단순한 패배감이 아니라 자신의 우위가 흔들리기 시작했다는 불안으로 다가온 것이 분명했다.
청도현은 확신했다. 오늘의 이 작은 승리가, 청랑과의 오랜 갈등에 새로운 불씨를 던졌다는 것을. 그리고 그 불씨는, 결코 조용히 사그라들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오히려 그것은 앞으로 벌어질 더 큰 충돌의 서막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청도현은 청랑의 눈빛 속에서 이미 읽어내고 있었다.
연무장 위로 봄바람이 스치며 흙먼지를 흩날렸다. 그 바람 속에서, 청랑의 표정은 여전히 굳어 있었고, 청도현의 눈빛은 그 어느 때보다도 차분하게 가라앉아 있었다. 다음 대전의 순서를 알리는 심판의 목소리가 다시 연무장에 울려 퍼졌으나, 두 사람의 시선은 그 소리가 잦아들 때까지도 서로에게서 떨어지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