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교무실 문을 열기 전, 나는 넥타이를 한 번 더 고쳐 맸다.
손끝이 미세하게 떨렸다.
거울도 없는 복도 유리창에 내 모습을 비춰보았다.
각진 뿔테 안경, 단정하게 넘긴 머리, 어제 새로 산 셔츠.
누가 봐도 신입 교사였다.
스물다섯. 첫 발령. 임용고시를 통과하고 받은 첫 근무지가 하필 이 학교였다.
발령 통지서를 받은 날, 나는 그 종이를 몇 번이나 다시 읽었다.
혹시 오타가 아닐까 싶어서.
선배 교사들 사이에서 이 학교 1학년 5반은 이미 유명했다.
임용 동기 모임에서 누군가 그 반 이름을 꺼내자, 다들 약속이라도 한 듯 잔을 내려놓았다.
“5반? 거기 걸리면 진짜 각오해야 돼.”
그 말을 들었을 때는 그냥 우스갯소리로 넘겼다.
전임 담임이 두 달 만에 병가를 냈다는 얘기를 들은 게 발령 통지서를 받은 날 밤이었다.
동기가 술자리에서 지나가듯 흘린 말이었는데, 이상하게 그 말만 머릿속에 오래 남았다.
나는 그 말을 애써 무시했다.
어린 시절, 나는 늘 무시당하는 쪽이었다.
목소리가 작았고, 발표를 하면 웃음거리가 됐고, 선생님들도 나를 있는 듯 없는 듯 대했다.
초등학교 3학년 때, 선생님이 출석을 부르다 내 이름을 빠뜨린 적도 있었다.
손을 들었지만 아무도 알아채지 못했다.
그날 이후로 나는 손을 드는 대신 조용히 지나가는 법을 배웠다.
그래서 교사가 되고 싶었다.
학생들을 대등하게 봐주는 어른이 되고 싶었다.
투명한 존재가 되지 않게, 누구든 이름을 불러주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 마음 하나로 여기까지 왔다.
“이도윤 선생님?”
뒤에서 부르는 소리에 몸을 돌렸다.
검은 테 안경을 쓴 통통한 체구의 남자가 나를 보며 웃었다.
“박정수입니다. 수학 담당. 옆 반이에요.”
“아, 네. 잘 부탁드립니다.”
나는 허리를 굽혔다.
그가 내 어깨를 툭 치며 말했다.
“1학년 5반 맡으셨죠.”
그 말투에 걱정이 섞여 있었다.
“각오는 하고 오신 거죠?”
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각오라는 게 뭔지도 모른 채 온 참이었으니까.
박정수가 내 표정을 살피더니, 살짝 웃음을 지웠다.
“그냥, 첫날이니까 너무 세게 나가지 마세요. 살살, 아주 살살.”
그러고는 자기 자리로 돌아가며 손을 흔들었다.
살살, 이라는 말이 유난히 마음에 걸렸다.
무언가를 조심스럽게 다루라는 뜻이었을까, 아니면 상처받지 말라는 뜻이었을까.
나는 그 말의 의미를 되새길 시간도 없이, 담임 배정표와 출석부를 챙겨 들었다.
교무실을 나서기 전, 창밖으로 운동장이 보였다.
아이들 몇 명이 삼삼오오 모여 웃고 있었다.
멀리서 보면 그저 평범한 등굣길 풍경이었다.
-
조회 시간, 나는 5반 앞에 섰다.
문을 열기 전, 심장이 목까지 차올랐다.
교실 문에 붙은 명찰을 다시 확인했다.
1학년 5반, 이도윤.
내 이름이 적힌 자리표를 보는 것도 처음이었다.
문을 열자 시끌벅적한 소음이 순간 멎었다.
그리고 다시, 더 크게 웅성거렸다.
서른 명 남짓한 여학생들의 시선이 일제히 나를 향했다.
그 눈빛들 속에서 나는 이미 무언가를 읽었다.
호기심도 아니고 기대도 아닌, 그저 재미있는 구경거리를 발견한 눈빛.
나는 교탁으로 걸어가며 발걸음 수를 세었다.
하나, 둘, 셋.
괜히 그런 걸 세면 긴장이 풀릴까 싶었지만, 소용없었다.
“안녕하세요. 국어 담당이고, 이번에 담임을 맡게 된 이도윤입니다.”
목소리가 생각보다 작게 나왔다.
맨 뒷줄에서 누군가 웃음을 터뜨렸다.
“저 안경 봐. 완전 오타쿠 같아.”
작은 체구에 쌍둥이 테일을 한 여학생이 손으로 입을 가리며 웃고 있었다.
갈색으로 태닝된 피부, 날티가 흐르는 눈매.
출석부를 펼쳐보니 30번, 윤서아였다.
그 옆자리에 앉은 다른 학생도 덩달아 키득거렸다.
교실 공기가 서서히 나를 향한 웃음으로 물들어갔다.
“저... 조용히 해줄래요?”
말이 끝나기도 전에 다른 목소리가 끼어들었다.
“쌤, 그 안경 어디서 샀어요? 문구점?”
숏컷을 한 여학생이 낄낄거렸다.
출석번호 19번, 최다인이었다.
책상에 팔을 걸치고 턱을 괸 자세가 이미 나를 별 볼 일 없는 상대로 취급하고 있었다.
교실 전체가 웃음바다가 됐다.
나는 그 자리에서 몸이 굳었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떠오르지 않았다.
머릿속이 하얗게 비었다.
어릴 때 느꼈던 그 감정이 그대로 되살아났다.
작아지는 느낌.
존재가 지워지는 느낌.
손에 쥔 출석부가 유난히 무겁게 느껴졌다.
교탁 아래로 내린 손끝이 차갑게 식어갔다.
'괜찮아, 첫날이잖아.'
속으로 되뇌었지만, 그 말이 별로 힘이 되지 못했다.
“자, 자리에 앉아서... 출석 체크부터 하겠습니다.”
나는 애써 목소리를 가라앉히고 출석부를 읽어 내려갔다.
“1번, 강하늬.”
대답이 없었다.
“강하늬 학생?”
교실이 순간 조용해졌다.
그 조용함이 이상하게 무거웠다.
방금까지 웃던 아이들도 그 이름 앞에서는 말을 아꼈다.
무언가 이름 자체에 무게가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앞줄에 앉은 옥수수머리 여학생이 손을 들었다.
“쌤, 하늬 오늘도 안 와요.”
출석번호 3번, 정다은이었다.
무릎양말을 신은 다리를 흔들며 심드렁하게 말했다.
“자주 그래요?”
“매일요.”
윤서아가 끼어들었다.
“신경 안 쓰셔도 돼요. 어차피 오래 못 다닐 걸요.”
그 말투에 뭔가 다른 의미가 섞여 있는 것 같았지만, 나는 그걸 캐물을 용기가 없었다.
정다은은 다시 심드렁한 표정으로 창밖을 바라봤다.
최다인은 그런 정다은을 보며 어깨를 으쓱했다.
마치 이 대화가 자기들끼리는 이미 다 끝난 이야기라는 듯한 태도였다.
나는 그 침묵의 이면에 뭔가가 있다는 걸 어렴풋이 느꼈지만, 지금은 그걸 파고들 처지가 아니었다.
출석부를 넘기는 손끝이 미세하게 떨렸다.
첫날부터 이렇게 무너지는 건가.
'각오는 하고 오신 거죠.'
박정수의 말이 뒤늦게 귓가에 울렸다.
그때는 그 말이 무슨 뜻인지 몰랐는데, 지금은 조금 알 것 같았다.
나는 다음 이름을 부르려 입을 뗐다.
그 순간,
교실 뒤에서 종이비행기 하나가 날아와 내 이마를 맞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