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
‹ ›아침 햇살이 커튼 사이로 비스듬히 들어왔다. 나는 눈을 뜬 채로 천장을 한참 바라봤다. 벽지 무늬가 오래된 자국처럼 얼룩져 있었다. 어릴 때부터 봐온 무늬였는데, 오늘은 그마저도 낯설게 느껴졌다. 어젯밤 몇 번이나 울렸던 휴대폰은 결국 배터리가 다 닳아 저 혼자 꺼져 있었다. 협탁 위에 죽은 듯 놓인 검은 화면을 봤다. 확인하지 않았다. 확인할 자신이 없었다.
부엌에서 그릇 부딪는 소리가 들렸다. 어머니가 아침을 차리는 소리였다. 도마 소리, 냄비 뚜껑이 달그락거리는 소리, 물이 끓어오르는 소리가 차례로 벽을 넘어왔다. 나는 몸을 일으켜 거울 앞에 섰다. 190에 가까운 키에 늘어진 뱃살, 두툼한 턱선. 익숙한 몸이었는데 오늘은 낯설게 느껴졌다. 손으로 옆구리를 한 번 잡았다. 살이 손가락 사이로 밀려 나왔다. 이 몸으로 서아 옆에 서 있었구나. 그 생각이 들자 속이 뒤틀렸다.
식탁에 앉았지만 숟가락을 들지 못했다. 국그릇에서 올라오는 김이 안경알을 뿌옇게 만들었다. 어머니가 국을 뜨다 말고 나를 흘겨봤다. 왜, 입맛 없어. 나는 대답 대신 물컵을 만졌다. 컵 표면에 맺힌 물기가 손끝에 묻었다. 어머니는 더 캐묻지 않고 다시 국을 떴다. 대신 젓가락으로 반찬을 밀어주며 짧게 말했다. 뭐든 좀 먹어. 얼굴이 반쪽이야. 나는 밥알을 몇 개 씹다가 도로 내려놨다. 씹을수록 목구멍이 좁아지는 느낌이었다. 어머니는 내 눈치를 살피면서도 더는 캐묻지 않았다. 그게 더 마음에 걸렸다.
방으로 돌아와 침대에 걸터앉았다. 매트리스가 삐걱거리는 소리마저 신경에 거슬렸다. 그러고 보니 서아를 처음 본 게 언제였더라. 중학교 2학년, 옆 반이었다. 그때 서아는 통통했다. 볼살이 도톰했고 교복 치마가 허벅지에 끼어 걸을 때마다 부스럭거렸다. 급식실에서 마주치면 서로 반찬을 나눠 먹던 사이였다. 소시지를 좋아하던 서아는 늘 내 식판에서 콩나물을 가져갔고, 나는 그 대신 계란말이를 받았다. 그런 하찮은 거래가 몇 년을 이어졌다. 나는 뚱뚱한 애였고 서아도 뚱뚱한 애였다. 그래서 편했다. 서로에게 겉모습을 신경 쓰지 않아도 되는 유일한 상대였으니까.
고등학교에 올라오면서 서아가 변했다. 겨울방학 두 달 사이에 살이 쭉 빠졌다. 처음엔 못 알아볼 정도였다. 볼살이 사라지고 턱선이 드러났다. 왼쪽 볼에 있던 보조개가 그제야 보이기 시작했다. 애들이 다 서아를 다시 봤다. 나도 그랬다. 복도에서 서아가 지나갈 때마다 남자애들이 고개를 돌렸다. 그런데 서아는 나한테 예전처럼 다가왔다. 오빠, 나 좀 변했지. 그렇게 물으며 웃었다. 그 웃음이 예전과 똑같아서, 나는 서아가 변한 게 아니라 원래 모습을 찾은 거라고 생각했다. 그게 착각이었다는 걸 그때는 몰랐다.
1학년 봄에 정식으로 사귀기 시작했다. 1년 3개월. 손끝으로 세어봤다. 짧지 않은 시간이었다. 그 시간 동안 나는 늘 서아 곁에 서 있었다. 뚱뚱한 채로. 서아만 점점 예뻐졌다. 옷도 슬림한 핏으로 바뀌었고, 화장법도 조금씩 세련돼졌다. 남들이 우리를 볼 때 어떤 표정을 짓는지 알고 있었다. 언젠가 카페에서 서아 친구가 나를 슬쩍 훑어보고는 서아 귀에 뭐라 속삭였던 것도 기억한다. 신경 쓰지 않으려 했다. 서아가 신경 쓰지 않으니까, 나도 신경 쓰지 않아야 한다고 스스로를 다잡았다. 그게 얼마나 헛된 다짐이었는지, 이제는 안다.
그런데 어제, 영화관 앞 소파에서 서아는 다른 남자의 팔에 몸을 기대고 있었다. 웃고 있었다. 그 남자는 마른 체형이었다. 어깨가 좁고 팔뚝도 얇았다. 서아가 그 팔에 머리를 기울이는 모습이, 예전에 내 팔에 그러던 모습과 겹쳐졌다. 그 웃음이 나한테 보여주던 웃음과 똑같았다. 그 사실이 제일 견디기 힘들었다. 나는 그 자리에서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뒤돌아 걸었다. 걸으면서도 몇 번이나 돌아봤는지 모른다.
손끝이 시려왔다. 긴장하면 늘 그랬다. 나는 손을 몇 번 쥐었다 펴며 숨을 골랐다. 손바닥에 땀이 배어 있었다. 서아는 변한 게 아니었다. 원래 자기 자리를 찾아간 거였다. 그리고 나는, 여전히 원래 자리에 남아 있었다. 그 자리가 이렇게 초라했던가. 예전엔 몰랐던 사실이었다.
화장실로 가서 다시 거울을 봤다. 이번엔 좀 더 오래 봤다. 두꺼운 손목, 늘어진 뱃살, 두 겹으로 접힌 턱. 옆으로 서서 실루엣도 살펴봤다. 등이 굽고 배가 앞으로 나온 모양이 그대로 드러났다. 나는 손바닥으로 배를 한 번 쳤다. 둔한 소리가 났다. 다시 한 번, 또 한 번. 이걸 바꿀 수 있을까. 한 달 안에. 웃긴 생각이었다. 그런데 그 웃긴 생각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오히려 시간이 지날수록 더 또렷해졌다.
할아버지 산이 떠올랐다. 100km쯤 떨어진 곳, 할아버지가 혼자 농사를 지으며 사는 산. 어릴 때 여름마다 놀러 갔던 곳이었다. 마당에 감나무가 있고, 뒤편으로 산길이 이어졌다. 사람도 없고, 핸드폰도 잘 안 터지고, 산길만 이어지는 곳. 거기라면 아무도 나를 보지 않을 것이다. 아무도 내 몸을 비교하지 않을 것이다. 거기서라면, 서아의 웃음도, 그 남자의 어깨도 떠올리지 않을 수 있을까. 그런 기대까지 함께 떠올랐다.
나는 방으로 돌아와 충전기를 꽂았다. 화면이 켜지자 부재중 전화와 메시지가 쏟아졌다. 숫자가 두 자릿수로 찍혀 있었다. 전부 확인하지 않고 통화 목록을 뒤졌다. 손가락이 미끄러질 정도로 빠르게 넘겼다. 할아버지 번호를 눌렀다. 신호가 세 번 울리고 걸걸한 목소리가 들렸다. 여, 누구여. 나예요, 도현이. 할아버지 잠깐 침묵이 흘렀다. 웬일이여, 니가 전화를 다 하고. 나는 숨을 한 번 삼키고 말했다. 할아버지, 저 거기 좀 가서 있어도 돼요. 한 달만. 할아버지는 별로 놀라지도 않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뭔 일 있구나. 와서 말해. 방은 있으니께.
전화를 끊고 나서 나는 한참 휴대폰을 쥐고 있었다. 결심이 섰다는 게 이상하게 후련했다. 짐을 어떻게 챙길지, 어머니한테는 뭐라고 말할지 머릿속으로 대략 그려봤다. 오래는 아니어도 된다. 한 달이면 충분하다. 그렇게 생각하는 순간, 그때 화면이 다시 밝아졌다. 발신자 이름이 떴다. 윤서아.
나는 그 이름을 오래 바라봤다. 손끝이 다시 차가워졌다. 화면 속 진동이 손바닥을 타고 올라오는 것 같았다. 받을까, 말까. 화면은 계속 울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