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록으로 심야방송, 정체 들켰다

2화

다음 날, 강의실 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 나는 뭔가 이상한 기류를 느꼈다. 평소와 다른 공기, 라고 해야 할까. 늘 그렇듯 뒷줄 창가 자리로 향하며 가방을 내려놓으려던 나는 걸음을 멈추고 옆자리를 다시 한번 확인했다. 평소라면 내 자리 근처엔 아무도 앉지 않았다. 다들 은근히 나를 피한다는 걸 알고 있었고, 나 역시 그게 편했으니까. 그런데 그날은 바로 옆자리에 누군가 앉아 있었다. 서은채였다. 같은 학과이긴 했지만 대화를 나눈 적은 거의 없었다. 늘 첫 줄 가운데 자리에 앉아 바른 자세로 필기를 하고, 교수의 질문에 정확한 답을 내놓는, 흔히 말하는 '완벽한 학생' 축에 속하는 사람. 그런 그녀가 굳이 자리를 옮겨 내 옆에 앉을 이유는 없었다. 나는 애써 아무렇지 않은 척 자리에 앉으며 가방을 뒤적였지만, 손끝은 이미 미묘하게 굳어 있었다. 왜 하필, 오늘. 그 의문이 머릿속을 스치는 사이, 그녀가 고개를 살짝 내 쪽으로 돌리며 입을 열었다. "저기, 이도현 씨." 낮고 조심스러운 목소리였는데, 그 순간 나는 등줄기가 서늘해지는 걸 느꼈다. 왜 갑자기, 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차올랐지만 나는 애써 태연한 척 그녀를 바라봤다. "네?" "혹시… 어제, 늦은 시간에 뭐 하셨어요?" 질문 자체는 평범했는데, 그녀의 눈빛이 이상하게 집요했다. 마치 이미 답을 알고 묻는 사람의 눈빛. 확인 사살이라도 하려는 듯한 그 시선을 마주하는 순간, 손끝이 조금씩 떨려오는 걸 느꼈다. 설마. 아니야, 그럴 리 없어. 나는 애써 시선을 피하며 대답을 흐렸다. "그냥… 집에 있었는데요." "그렇구나." 그녀가 짧게 대답하고는 다시 정면을 바라봤다. 표정에 별다른 변화도 없었고, 목소리에도 특별한 억양이 실려 있지 않았다. 그런데 그 무심한 반응이 오히려 더 불안했다. 뭔가를 확인하려는 것처럼 던진 질문 뒤에 아무렇지 않게 시선을 돌리는 그 태도가, 나로 하여금 온갖 최악의 상상을 하게 만들었다. 교수가 강의실에 들어서고 수업이 시작됐지만, 나는 제대로 필기를 이어갈 수 없었다. 볼펜을 쥔 손이 자꾸만 허공에서 멈췄고, 옆자리에서 사각거리는 그녀의 필기 소리만이 유독 크게 들렸다. 시계 초침 소리가 이렇게 선명하게 들린 적이 있었던가. 나는 몇 번이나 곁눈질로 그녀를 살폈지만, 그녀는 여전히 정면을 향한 채 흐트러짐 없는 필기를 이어가고 있었다. 그 침묵이 무거워서, 나는 수업 내용이 하나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수업이 끝나고 강의실을 나서는데 그녀가 다시 내 옆으로 다가왔다. 이번엔 아무도 없는 복도 구석이었다. 그녀는 주변을 한 번 살피더니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결님, 맞죠?" 심장이 그대로 바닥으로 떨어지는 것 같았다. 숨이 순간적으로 멈췄고,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그녀를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도대체 어떻게, 라는 물음이 머릿속을 가득 채웠지만 입 밖으로는 아무것도 나오지 않았다. 복도의 서늘한 공기가 유독 차갑게 느껴졌고, 형광등 불빛이 그녀의 얼굴 위로 무심하게 떨어지고 있었다. "목소리가… 똑같아요." 그녀의 목소리는 흔들림이 없었다. 오히려 나보다 더 확신에 차 있었다. "어제 방송에서 파채 볶음면 하시던 거, 그거 딱 도현 씨 톤이었어요." 그럴 리가. 방송할 때는 톤을 조금 낮추고, 말투도 평소와 다르게 조절했는데. "그리고… 계란말이 만드실 때 팬 두드리는 습관도, 강의 시간에 볼펜 두드리는 것과 똑같더라고요." 순간 온몸의 피가 다 빠져나가는 기분이었다. 그 버릇은 나조차도 인지하지 못하고 있던 습관이었다. 무의식적으로, 긴장할 때마다 손끝이 리듬을 타듯 두드려대는 그 버릇을, 이 사람은 지켜보고 있었던 걸까. "그, 그건…" 말을 이으려 했지만 목이 바짝 말라 아무 소리도 나오지 않았다. 손끝이 차갑게 식어가는 걸 느끼며 나는 벽에 등을 살짝 기댔다. 다리에 힘이 빠지는 것 같았고, 머릿속은 하얗게 지워지는 느낌이었다. 이대로 무너지면 안 된다는 생각과, 이미 다 들켜버렸다는 절망이 동시에 밀려왔다. 몇 초였을까, 아니 몇십 초였을까. 그 짧은 시간이 나에게는 영원처럼 길게 느껴졌다. 그녀는 내 반응을 살피더니 뜻밖에도 표정을 조금 풀며 말했다. "걱정 안 해도 돼요. 아무한테도 말 안 할 거니까." 그 말이 위로가 되어야 했는데, 오히려 나는 더 큰 불안에 휩싸였다. 그녀가 왜 이렇게까지 확신을 가지고 접근하는지, 그리고 왜 비밀을 지켜주겠다는 말을 아무렇지 않게 내뱉는지, 그 이유를 알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사람 좋은 얼굴로 웃으며 다가와 놓고, 뒤에서 다른 속셈을 품는 경우를 나는 이미 몇 번이나 겪어봤다. 그런데 그녀의 얼굴에서는 그런 계산적인 낌새가 느껴지지 않았다. 오히려 지나치게 담담해서 더 이상했다. "어떻게… 확신하셨어요?" 겨우 목소리를 짜냈다. 손끝이 여전히 떨리고 있었고, 나는 그 떨림을 감추려 주먹을 슬며시 말아쥐었다. 그녀는 잠시 나를 응시하다가, 시선을 살짝 내리며 말했다. "그건… 나중에 말할게요." 그 말끝이 이상하게 흔들리는 걸 느끼며, 나는 그녀에게도 뭔가 숨기고 있는 게 있다는 걸 직감했다. 단순히 우연히 목소리와 습관을 눈치챈 정도가 아니라, 처음부터 나를 유심히 관찰하고 있었다는 듯한 태도였다. 그리고 그 직감은, 어쩐지 오래전 어딘가에서 이미 그녀를 본 적이 있는 것 같은 기묘한 기시감으로 이어졌다. 어디였을까. 분명 처음 마주한 얼굴인데, 왜 이렇게 낯설지 않은 걸까. 그녀는 더 이상 말을 잇지 않고 가볍게 목례를 하더니, 뒤돌아 복도를 걸어갔다. 그 뒷모습을 멍하니 바라보며, 나는 그 자리에 못 박힌 듯 서 있었다. 심장은 여전히 어지럽게 뛰고 있었고, 방금 나눈 짧은 대화가 머릿속에서 몇 번이나 되풀이되어 울렸다. 결님, 맞죠. 그 한마디가, 앞으로 내 일상을 완전히 뒤흔들어놓을 신호탄이라는 걸, 그때는 아직 알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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