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
‹ ›학과실 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부터 나는 이미 뭔가 잘못되어 가고 있다는 걸 직감했던 것 같다. 조별 과제 발표 순서를 정한다며 다들 삼삼오오 모여 앉아 태블릿과 노트북 화면을 넘기고 있었고, 나는 창가 쪽 자리에 앉아 발표 자료를 훑어보는 척하며 애써 시선을 아래로 고정했다. 조명 아래 놓인 노트북 화면의 빛이 눈에 아릿하게 박혀오는 걸 느끼면서도, 나는 그 순간 이 공간에서 최대한 존재감을 지우고 싶다는 생각뿐이었다.
오하늘이 내 대각선 자리에 앉아 태블릿 화면을 손끝으로 넘기고 있었다. 그녀는 발표 자료를 정리하다 말고 문득 무언가를 떠올린 듯 픽 웃으며 중얼거렸다.
"아, 배고파. 어제 야식주방 결 방송에서 계란말이 하는 거 보고 진짜 침 흘렸는데."
그 순간 심장이 쿵 하고 아래로 떨어지는 걸 느꼈다. 마치 계단을 헛디딘 것처럼, 발밑이 순간적으로 사라졌다가 다시 나타나는 그 감각이었다. 나는 애써 표정을 관리하며 노트북 화면으로 시선을 더 깊이 파묻었지만, 손끝이 자판 위에서 미세하게 떨리는 걸 스스로도 느낄 수 있었다.
강의실 안 몇몇이 그 말에 반응하며 웃음을 터뜨렸다.
"야식주방 결? 그거 나도 봐. 목소리 진짜 좋음."
누군가의 말에 오하늘이 신나서 맞장구쳤다.
"맞아, 그리고 그날 파 써는 소리가 완전 리듬 타는 것처럼 들리더라. 나 그거 듣다가 완전 힐링됐잖아."
옆에서 또 다른 목소리가 끼어들었다. "그 방송 목소리 진짜 궁금해. 얼굴 공개 안 하는 거 아까워." 다들 그렇게 한마디씩 던지며 웃는 사이, 나는 그 자리에서 숨을 죽인 채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손끝이 차갑게 식어가는 걸 느끼며 시선을 태블릿 화면 모서리에 고정한 채, 제발 이 대화가 여기서 끝나기를, 그저 지나가는 잡담으로 마무리되기를 속으로 빌었다.
도대체 왜 하필 지금.
"근데 진짜 궁금한 게." 오하늘이 문득 나를 돌아보며 말했다. 그녀의 눈빛에는 별다른 의도 없이 그저 재미있다는 듯한 호기심만이 담겨 있었지만, 나에게는 그 시선 하나하나가 날카롭게 박혀왔다. "도현이 너, 예전에 나한테 계란말이 레시피 알려줬을 때 말투가 딱 그 방송이랑 비슷했잖아. 신기하지 않아?"
순간 강의실 안 시선이 일제히 나에게로 쏠리는 게 느껴졌다. 몇 명이 고개를 갸웃하며 나를 쳐다봤다. 노트북 자판을 두드리던 소리도, 종이 넘기는 소리도 잠시 멈춘 듯한 그 짧은 정적 속에서, 나는 내 심장 소리가 남들에게도 들릴 것 같다는 착각마저 들었다.
"뭐야, 진짜?" "설마 도현이가 결이야?"
누군가 장난처럼 웃으며 던진 말에 나는 심장이 목까지 차오르는 걸 느꼈다. 목이 타는 것처럼 마르고, 혀가 입천장에 붙어버린 것 같은 감각. 뭐라도 말해야 하는데, 아무 말도 떠오르지 않았다.
"에이, 아니겠지. 우리 도현이가 그럴 리가 있냐." 다른 누군가가 웃으며 넘겼지만, 그 짧은 순간의 침묵이 나에게는 영원처럼 길게 느껴졌다. 나는 애써 표정을 관리하며 고개를 저었다.
"…그럴 리가요." 목소리가 미묘하게 갈라졌지만, 다행히 아무도 그걸 눈치채지 못한 듯 대화는 곧 다른 주제로 넘어갔다. 발표 순서 이야기로, 자료 조사 분담 이야기로 화제가 흘러가는 걸 들으면서도 나는 한동안 손끝의 떨림이 가시지 않아 애꿏은 자판만 만지작거렸다.
하지만 서은채는 나를 보고 있었다.
그녀는 조원들 사이에서 조용히 노트북을 들여다보고 있었지만, 그 시선이 어느 순간부터 화면이 아니라 나에게로 옮겨져 있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그녀의 시선이 내 손끝에, 내 굳은 표정에 머무는 걸 느끼며 나는 등줄기로 식은땀이 흐르는 걸 참았다. 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그 침묵 속엔 이미 모든 걸 알고 있다는 무게가 담겨 있는 것 같아서, 나는 그 시선을 마주할 자신이 없어 고개를 돌려버렸다.
설마 은채도 눈치챈 걸까.
아니야, 그럴 리가.
애써 그렇게 되뇌었지만 마음 한구석은 좀처럼 진정되지 않았다.
조별 모임이 끝나고 다들 자료를 챙겨 자리를 뜨는 사이, 나도 서둘러 가방을 챙겨 복도로 나섰다. 발걸음을 빨리해서 이 공간에서 최대한 멀어지고 싶었던 것 같다. 그런데 몇 걸음 걷지 않아 등 뒤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나를 불러 세웠다.
"저기, 도현아."
오하늘이 뒤따라와 내 팔을 살짝 붙잡았다. 그녀의 손이 팔에 닿는 순간 나는 반사적으로 멈춰 섰고, 그녀를 돌아보는 짧은 순간 동안에도 심장이 계속해서 불규칙하게 뛰는 걸 느꼈다.
"나 진짜 궁금해서 그러는데." 그녀의 눈빛이 아까 강의실에서와는 다르게 진지해져 있었다. 장난스러운 기색은 어느새 사라지고, 오히려 조심스러운 무언가가 그 안에 담겨 있는 것 같았다. "너 진짜 그 방송 하는 거 아니야?"
나는 순간 대답을 하지 못했다. 부정도, 인정도 하지 못한 채 그녀를 바라보는 그 짧은 시간 동안, 오하늘의 표정이 미묘하게 변하는 걸 봤다. 흥미로움에서, 뭔가 다른 감정으로. 입가에 걸려 있던 웃음기가 서서히 걷히고, 대신 그 눈빛에 알 수 없는 무언가가 스며드는 걸 나는 분명히 목격했다. 그것이 무엇인지 그때는 정확히 알 수 없었지만, 어쩐지 이 상황이 단순한 호기심으로 끝나지 않을 거라는 불길한 예감이 등줄기를 타고 흘렀다.
"…아니야." 나는 결국 그렇게 대답했다. 목소리가 스스로 듣기에도 너무 낮고 흔들려서, 오히려 그 말이 거짓임을 증명하는 것 같았다. 아니라고 말하면서도 손끝은 여전히 떨리고 있었고, 시선은 그녀의 눈을 오래 마주하지 못한 채 자꾸만 옆으로 미끄러졌다.
오하늘은 더 캐묻지 않고 팔을 놓았다. "그래, 알겠어." 그렇게 짧게 말하며 돌아섰지만, 나는 그녀가 나를 바라보는 눈빛이 이전과는 완전히 달라졌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마치 무언가를 확인하려는 듯한, 혹은 이미 어느 정도 확신을 품은 듯한 그런 눈빛이었다.
복도를 걸어 나가는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나는 한동안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창밖으로 스며드는 오후의 햇살이 복도 바닥에 길게 그림자를 늘어뜨리고 있었고, 그 그림자 위로 몇몇 학생들이 지나가는 소리가 멀게 들려왔다. 나는 그 모든 소음 속에서도 오직 내 심장 소리만이 유난히 크게 울리는 걸 느끼며, 천천히 숨을 골랐다.
들켜버린 걸까.
아니, 아직은 확신이 아닐 거야.
그렇게 스스로를 다독이려 했지만, 마음 한구석에 자리 잡은 불안은 쉽게 가시지 않았다.
그날 밤, 방송을 시작하기 전 나는 평소보다 오래 카메라 앞에서 숨을 골랐다. 방 안의 조명을 조정하고, 마이크 위치를 몇 번이나 다시 매만지면서도 좀처럼 손이 제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접속자 수가 하나둘 늘어나는 화면을 보면서도 좀처럼 마음이 놓이지 않았고, 채팅창에 익숙한 닉네임들이 올라오는 걸 보면서도 그 반가움조차 온전히 느껴지지 않았다.
강의실이라는 세계와 이 화면 속 세계 사이의 경계가, 이제 걷힐 대로 걷혀버린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만약 오하늘이 진짜로 확신을 품게 된다면.
만약 그녀가 그 확신을 다른 누군가에게 흘리게 된다면.
카메라의 빨간 불빛이 켜지는 순간까지도, 나는 그 생각을 완전히 떨쳐내지 못한 채 애써 미소를 지어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