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
‹ ›[이수아 시점]
남자의 몸이 바닥에 떨어지는 소리는 생각보다 크지 않았다.
둔탁한 충격음, 그리고 신음. 나는 숨을 고르며 그를 내려다보았다. 손끝이 떨리고 있었다. 흥분 때문이 아니었다. 억눌러온 것을 풀어놓았을 때의 그 해방감, 그리고 곧 뒤따르는 두려움 때문이었다.
이러면 안 되는데.
머릿속에서 어머니의 목소리가 울렸다. 언제나 그랬다. 몸이 먼저 움직이고, 이성이 뒤늦게 경보를 울렸다. 그 순서를 바꾸는 법을 나는 배운 적이 없었다. 다른 삶에서도, 지금 이 삶에서도.
몸이 기억하는 감각이 있었다. 팔을 붙잡는 손의 각도, 체중이 쏠리는 방향, 관절이 꺾이기 직전의 그 미세한 저항. 그런 것들을 계산하는 데는 생각이 필요하지 않았다. 생각은 늘 그다음에, 이미 벌어진 일을 수습하려 들 때에야 도착했다.
"수아야, 뭘 하는 거야?!" 하늘의 목소리가 떨렸다.
나는 대답할 틈이 없었다. 남은 두 남자가 각기 다른 방향에서 달려들었다. 하나는 정하주를 향해, 하나는 윤소한을 향해. 두 사람 모두 무대 위에서 얼어붙어 있었다. 배우로서, 아이돌로서 훈련된 몸이었지만 이런 상황을 대비한 훈련은 없었을 것이다. 나는 알았다. 저 두 사람의 눈에 스치는 감정을. 혼란, 그다음엔 공포, 그리고 뒤늦게 밀려오는 무력감.
나는 몸을 낮췄다. 발끝으로 무대 바닥을 밀며 방향을 틀었다. 관절의 각도, 무게의 이동, 모두 계산이었다. 숨을 들이마시는 타이밍조차 계산 안에 있었다. 첫 번째 남자의 팔을 붙잡아 그대로 어깨 너머로 넘겼다. 무게가 손끝을 타고 흘러가는 감각, 그리고 그 무게가 사라지는 순간의 허탈함. 두 번째 남자는 스스로 넘어지는 것을 도왔을 뿐이었다. 발을 걸었을 뿐인데, 그는 마치 자기 발에 걸려 넘어진 것처럼 요란하게 무대 바닥을 굴렀다.
그 짧은 순간, 세상이 느리게 흘러갔다. 마치 필름이 한 프레임씩 넘어가는 것처럼. 남자의 손이 허공을 움켜쥐다가, 다시 바닥을 향해 떨어지고, 조명이 그 위로 하얗게 부서지고.
정신을 차렸을 때는 이미 끝나 있었다.
"뭐, 뭐야 저거..." 관객석 어딘가에서 누군가 중얼거렸다.
환호는 순식간에 사라졌다. 대신 낮은 웅성거림이 들불처럼 번지기 시작했다. 처음엔 속삭임이었다가, 곧 서로 묻고 답하는 목소리들이 겹쳐지며 하나의 거대한 소음으로 자라났다. 나는 그 소음의 방향을 읽으려 했다. 어느 쪽이 우호적이고 어느 쪽이 적대적인지, 표정만으로는 알 수 없었다.
나는 그제야 주변을 둘러보았다.
수십 개의 스마트폰이 나를 향해 있었다. 무대 조명 아래, 렌즈들이 정확히 나를 조준하고 있었다. 마치 사냥감을 겨눈 총구처럼. 그 순간 나는 내가 무엇을 저질렀는지보다, 저 렌즈들이 무엇을 담아갈지가 더 두려웠다. 진실은 언제나 편집을 견디지 못했다. 나는 그 사실을 지나치게 잘 알고 있었다.
"수아 언니." 김미소가 겁먹은 목소리로 내 팔을 잡았다. "괜찮아? 다친 데 없어?"
미소의 손끝이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나보다 더 겁을 먹은 얼굴이었다. 나는 그 손을 가볍게 쥐어주었다. 안심시키려는 것이었는지, 나 자신을 안심시키려는 것이었는지는 알 수 없었다.
"나는 괜찮아." 나는 말했다. 목소리가 예상보다 차분하게 나와서 오히려 내가 놀랐다.
나는 다치지 않았다. 다친 사람은 저기 바닥에 쓰러져 신음하는 세 남자였다. 그 사실이 안도가 되어야 했는데, 이상하게도 가슴 한구석이 서늘해졌다. 다치지 않았다는 것이, 지금 이 순간에는 오히려 불리한 증거가 될 수도 있다는 걸 나는 이미 알고 있었으니까.
"경호팀 어디 있어!" 정다은이 무대 옆에서 소리쳤다. 늦었다. 이미 모든 게 벌어진 뒤였다.
경호팀 몇 명이 무대 위로 뛰어 올라왔을 때는 세 남자가 이미 바닥에서 뒹굴고 있었고, 관객석은 술렁임을 넘어 절반쯤 자리에서 일어난 상태였다. 누군가는 사진을 찍었고, 누군가는 영상을 찍었고, 또 누군가는 그저 입을 벌린 채 이 상황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그 얼굴들을 하나씩 훑었다. 놀람, 의심, 그리고 그 사이 어딘가에서 반짝이는 흥미. 사람들은 재난을 목격할 때조차 그것을 즐긴다는 걸, 나는 그때 다시 한번 깨달았다.
경찰이 도착했을 때, 나는 이미 팬사인회 테이블 앞에 다시 앉아 있었다.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웃는 얼굴로. 그러나 손은 여전히 떨리고 있었다. 테이블 위에 놓인 펜을 쥐는 것조차 힘겨웠다. 손가락 마디마디에 남아 있는 그 무게, 남자의 팔을 붙잡았던 감각이 아직도 피부에 새겨진 듯했다.
"이수아 씨, 진술 부탁드립니다." 경찰관이 다가와 말했다.
"저희 애가 팬들을 보호하려던 겁니다." 정다은이 재빨리 끼어들었다. "저기 저 사람들이 먼저 김하늘을 붙잡았어요."
경찰관은 고개를 끄덕이며 수첩에 뭔가를 적었다. 나는 그 수첩을 바라보며 이상한 기시감을 느꼈다. 오래전, 다른 삶에서, 나는 저런 수첩 앞에서 침묵하는 법을 배웠다. 말을 하면 할수록 상황이 나빠지던 그 시절. 진술이 곧 죄가 되던 시절. 그때는 아무리 사실을 말해도 아무도 믿어주지 않았다. 오히려 사실을 말할수록 의심이 짙어졌다. 그래서 나는 입을 다물었다. 그것이 유일한 생존법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지금은 증명해야 하는 쪽이었다. 침묵은 이제 무기가 아니라 함정이었다.
"저 사람이 먼저 하늘 팔을 잡았어요." 나는 또박또박 말했다. "보셨을 거예요, 영상에."
경찰관은 대답 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그 무표정한 얼굴에서 나는 아무런 확신도 읽을 수 없었다. 그는 믿는 걸까, 아니면 그저 절차를 밟고 있을 뿐인 걸까. 나는 그의 얼굴을 조금 더 오래 바라보았지만, 답은 나오지 않았다.
"세 분은 병원으로 이송됐습니다." 경찰관이 말을 이었다. "골절이 의심된다고 하더군요."
정다은의 얼굴이 살짝 굳었다. "골절이요?"
"어깨 쪽입니다. 정확한 건 검사 결과가 나와야 알 것 같습니다."
나는 그 말을 들으며 속으로 숫자를 셌다. 세 명, 골절 하나, 그리고 아직 세어보지 않은 여론이라는 거대한 짐승. 이 세 가지가 앞으로 어떤 방식으로 나를 물어뜯을지, 나는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
숙소로 돌아가는 차 안, 정다은의 휴대전화가 끊임없이 울렸다.
"뭐야, 벌써?" 정하주가 창밖을 보다가 중얼거렸다.
정다은이 화면을 확인하고는 얼굴이 하얗게 굳었다. 그녀의 손가락이 화면 위에서 몇 번이나 미끄러졌다가 겨우 멈췄다.
"무슨 일이야." 나는 물었다.
정다은은 대답 대신 휴대전화를 내밀었다. 화면에는 짧게 편집된 영상이 재생되고 있었다.
영상 속에서, 내가 남자를 던지는 장면이 클로즈업되어 있었다. 그런데 이상했다. 그 남자가 먼저 김하늘의 팔을 잡는 장면은 편집되어 사라져 있었다. 영상은 내가 갑자기 달려가 남자를 붙잡고 던지는 것으로 시작되었다.
몇 초 되지 않는 짧은 클립이었다. 그러나 그 몇 초 안에서, 나는 이유 없이 폭력을 휘두르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조명, 각도, 편집점 하나까지도 지나치게 정교했다. 이건 그냥 급하게 잘라낸 영상이 아니었다. 처음부터 이렇게 보이도록 만들어진 영상이었다.
댓글창은 이미 지옥이었다.
[아이돌이 팬한테 이렇게 폭력을 써도 되는 거야?]
[저건 그냥 팬미팅 온 팬 아니야?]
[역시 무서운 애였네]
[예전부터 뭔가 이상했음. 눈빛 봐라]
[저 정도면 무술 유단자 아니냐? 일반인 상대로 저게 가능함?]
나는 숨을 삼켰다. 위장이 바닥으로 떨어지는 느낌이었다. 댓글이 하나씩 늘어날 때마다 숨이 조금씩 가빠졌다. 사람들은 진실을 궁금해하지 않았다. 그들은 그저 이미 정해진 이야기에 살을 붙이고 있을 뿐이었다. 그리고 그 이야기의 주인공은, 처음부터 악역으로 정해져 있었다.
"이거..." 내 목소리가 갈라졌다. "이거 누가 이렇게 만든 거야."
정다은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녀의 얼굴에는 이미 답이 없는 질문에 대한 두려움만 가득했다. 정하주가 내 옆에서 휴대전화를 낚아채듣이 가져가 화면을 몇 번 넘겼다. 그의 손이 멈춘 곳은 원본으로 추정되는 다른 영상이었다. 하지만 그 영상은 이미 조회수가 편집본의 십분의 일도 되지 않았다.
"이거 봐, 여기 원본도 있어." 정하주가 다급하게 말했다. "이거 올리면..."
"이미 늦었어." 나는 낮게 말했다.
내 목소리에 담긴 확신에, 정하주가 나를 돌아보았다. 나는 창밖을 바라보았다. 이미 알고리즘은 편집본을 선택했다. 사람들은 진실보다 자극적인 것을 먼저 클릭한다는 걸, 나는 알고 있었다. 원본이 올라온다고 해도, 그것이 편집본만큼의 속도로 퍼질 리 없었다.
차창 밖으로, 이미 몇 대의 기자 차량이 우리를 뒤쫓기 시작하고 있었다.
헤드라이트 불빛이 백미러에 어른거렸다. 하나, 둘, 셋. 세어보던 나는 곧 세는 것을 포기했다. 숫자는 계속 늘어나고 있었다. 마치 어둠 속에서 헤드라이트를 켜고 몰려드는 짐승의 무리처럼.
정다은의 휴대전화가 다시 울렸다. 이번에는 통화였다. 그녀가 전화를 받는 순간, 나는 그녀의 표정이 무너지는 것을 보았다.
"네, 대표님. 네... 네." 그녀의 목소리가 점점 작아졌다. "지금요? 지금 이 시간에요?"
전화를 끊은 정다은이 우리를 돌아보았다. 그녀의 얼굴은 종이처럼 하얬다.
"회사로 오라고 하셔." 그녀가 말했다. "지금 당장."
차 안의 공기가 순식간에 얼어붙었다. 아무도 말을 하지 못했다. 나는 창문에 이마를 기댔다. 차가운 유리가 피부에 닿는 감각조차 낯설게 느껴졌다.
이제부터가 진짜 시작이라는 걸, 나는 그 순간 직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