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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화

[이수아 시점] 저녁 식사는 정원이 보이는 넓은 홀에서 준비되었다. 촬영팀이 세팅한 테이블 위에는 화려한 코스 요리가 차려져 있었다. 하얀 테이블보 위로 은식기가 조명을 받아 반짝였고, 정원 쪽으로 난 커다란 창문 밖에서는 조경용 조명이 나무들을 은은하게 비추고 있었다. 시청자들에게 보여줄 화목한 그림을 만들기 위한 무대였다. 카메라 세 대가 각도를 바꿔가며 테이블을 노렸고, 조연출이 마이크 위치를 조정하느라 바쁘게 움직였다. 나는 어젯밤 사건 이후로 계속 예민해져 있었다. 신경이 팽팽하게 당겨진 밧줄 같았다. 언제 끊어질지 모르는. 포크를 쥔 손끝이 자꾸만 미세하게 떨렸고, 나는 그것을 숨기려 손을 무릎 위에 내려놓았다가 다시 테이블 위로 올렸다가를 반복했다. "이거, 오늘 셰프님이 특별히 준비하신 코스예요." 정다은 언니가 카메라를 향해 웃으며 말했다. 그 웃음 뒤로 나에게만 보이는 피로가 어려 있었다. 눈 밑의 그림자가 어젯밤보다 더 짙어져 있었다. "메인 요리는 트러플 리조또와 버섯 스테이크입니다. 여기 계신 멤버분들, 다들 좋아하시죠?" 멤버들이 어색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카메라를 향해 미소를 지어 보였지만, 입꼬리가 제대로 올라가는지 확신이 서지 않았다. 하늘이는 내 옆자리에 앉았다. 그녀의 웃음은 여전히 부드러웠다. "수아 언니, 이거 먹어봐. 진짜 맛있어." 하늘이가 자기 접시에서 버섯 요리를 조금 덜어 내 앞으로 밀었다. 포크 끝에 걸린 버섯 조각이 소스에 반들거렸다. 나는 그것을 받아들이며 웃었지만, 속으로는 여전히 경계를 놓지 않고 있었다. 접시 위의 모든 음식이 의심스러웠고, 테이블에 앉은 모든 사람의 표정이 수상해 보였다. 이런 식으로 생각하는 것 자체가 지치는 일이었지만, 멈출 수가 없었다. "언니, 안 먹어?" 하늘이가 고개를 살짝 기울이며 물었다. "먹어, 먹을 거야." 나는 포크로 버섯을 찍어 입에 넣었다. 부드럽고 짭짤한 맛이 혀에 감겼다. 별다른 이상은 없었다. 식사가 반쯤 진행됐을 때, 하늘이의 얼굴색이 조금씩 변하기 시작했다. 처음엔 그저 조명 탓인가 싶었다. 홀의 조명이 노란빛이었으니까. 처음엔 알아채지 못했다. 하주가 먼저 그 변화를 발견했다. "하늘아, 얼굴이 왜 그래?" 하주의 목소리가 날카로워졌다. 그 말에 나도 하늘이를 돌아보았다. 그녀의 얼굴은 조명 탓이 아니었다. 뺨과 목 부분이 붉게 부풀어 오르고 있었고, 이마에는 식은땀이 배어 있었다. 하늘이는 목을 만지며 힘겹게 숨을 몰아쉬었다. "목이... 좀 이상해." 순간, 하늘이의 목이 부어오르기 시작했다. 입술이 창백해지고, 숨소리가 거칠어졌다. 그녀의 손이 자신의 목을 긁듯이 매만졌고, 눈동자에는 당황과 공포가 스쳤다. "하늘아?" 소한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의자가 뒤로 넘어가며 큰 소리를 냈다. 세상이 빙글빙글 돌았다. 나는 몸이 먼저 움직였다. 생각보다 반응이 앞섰다. 나는 하늘이의 어깨를 붙잡고 바닥에 눕혔다. 대리석 바닥이 차가웠다. 기도를 확보하기 위해 턱을 젖히고, 목의 부종을 손끝으로 빠르게 확인했다. 손가락 아래로 팽창된 조직이 느껴졌다. 숨소리는 이제 그르렁거리는 쇳소리로 변해 있었다. "알레르기 반응이에요!" 나는 소리쳤다. 목소리가 평소와 완전히 다르게 나왔다. 낮고, 단호하고, 명령조였다. "에피펜 있는 사람 없어요? 없으면 목 부위 압박 준비하세요, 지금!" 카메라맨 하나가 렌즈를 든 채 얼어붙어 있었다. 나는 그를 향해 소리쳤다. "찍지 말고 구급차 불러요!" 그가 화들짝 정신을 차리고 뛰어나갔다. 소한이 놀란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다가, 곧 자기 가방을 뒤졌다. 손이 너무 떨려서 지퍼가 제대로 열리지 않았다. "저, 저 있어요! 하늘이 예전에 갑각류 알레르기 있어서 항상 챙겨 다니라고 해서..." "빨리요!" 나는 손을 뻗었다. 소한이 손을 떨며 주사기를 건넸다. 나는 그것을 받아 뚜껑을 벗기고, 하늘이의 허벅지에 정확히 찔러 넣었다. 망설임 없는 동작이었다. 손가락이 근육의 위치를 정확히 짚어내고, 압력을 얼마나 줘야 하는지, 몇 초를 기다려야 하는지 몸이 이미 알고 있는 것 같았다. 마치 이런 순간을 수백 번 겪어본 사람처럼. 정다은 언니가 전화기를 붙잡고 소리쳤다. "네, 여기 알레르기 쇼크 환자예요. 빨리 와주세요, 주소는..." 십 초, 이십 초. 시간이 끝없이 늘어지는 것 같았다. 홀 안의 모든 사람이 숨을 죽이고 하늘이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미소는 두 손으로 입을 가리고 있었고, 하주는 무릎을 꿇은 채 하늘이의 손을 붙잡고 있었다. "하늘아, 정신 차려. 나 봐봐." 하주가 낮게 속삭였다. 목소리가 갈라져 있었다. 하늘이의 숨소리가 조금씩 안정되기 시작했다. 부종도 서서히 가라앉았다. 붉었던 얼굴이 조금씩 원래의 색으로 돌아왔다. "괜찮아... 괜찮아, 하늘아." 나는 하늘이의 머리를 무릎에 눕히고 이마의 땀을 닦아주었다. 손끝이 여전히 떨리고 있었다. 손이 떨리면서도 움직임 하나하나는 정확했다는 것이, 나 자신도 이상하게 느껴졌다. "언니..." 하늘이가 힘겹게 입을 열었다. 목소리가 부어오른 목 때문에 쇳소리처럼 나왔다. "말하지 마. 숨만 쉬어." 나는 그녀의 손을 꼭 잡았다. 구급차가 도착하기까지 오 분이 걸렸다. 그 오 분이 마치 한 시간처럼 길었다. 구급대원들이 홀 안으로 들어와 하늘이를 들것에 옮기는 동안, 나는 그 옆에서 손을 놓지 않았다. "보호자분, 어떤 처치를 하셨나요?" 구급대원 하나가 나에게 물었다. "에피펜 투여했어요. 대퇴부 외측에요. 투여 시각은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십 분 전쯤이요." 구급대원이 나를 잠깐 쳐다보았다. 그 눈빛에 순간적인 의아함이 스쳤다. 일반인이 이렇게 정확하게 설명할 리가 없다는 표정이었다. 나는 그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하늘이가 실려 나간 후, 저택 안에는 정적만이 남았다. 테이블 위의 요리들은 반쯤 먹다 만 채로 그대로 남아 있었고, 뒤집힌 의자는 아무도 다시 세우지 않았다. 촬영팀도 카메라를 내린 채 멀뚱히 서 있었다. 미소가 먼저 입을 열었다. "수아, 너... 어떻게 그렇게 빨리 알았어? 에피펜 위치도, 그렇게 정확하게..." 나는 대답할 말을 찾지 못했다. 그저 손을 내려다봤다. 여전히 하늘이의 체온이 남아 있는 것 같은 손. 손바닥에 소한이 건넨 주사기의 플라스틱 감촉이 아직 남아 있는 것 같았다. "수아 언니, 의학 지식 있었어?" 미소가 다시 물었다. 이번에는 장난기 없이, 진지하게. 그녀의 눈에는 순수한 궁금증과 함께, 약간의 경계심이 섞여 있었다. "조금." 나는 짧게 대답했다. 거짓말이었다. 하지만 그 순간엔 그렇게 말할 수밖에 없었다. 조금이라는 말로 뭉개버릴 수 없는 것들이, 내 몸 안 깊숙이 새겨져 있었다. 그것을 설명할 방법이 없었다. "그래도 대단하다. 나였으면 그냥 얼어붙어서 아무것도 못했을 텐데." 미소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정다은 언니가 요리사와 재료를 확인하러 간 사이, 하주가 나에게 다가왔다. 그녀의 표정은 어느 때보다 진지했다. "버섯 요리에 뭐가 들어갔는지, 셰프한테 확인해봤어. 갑각류 성분이 어쩌다 섞였다고 하는데." 하주의 목소리가 낮았다. "근데 하늘이 알레르기 있는 거, 회사 사람들 다 알고 있었잖아. 이렇게 실수가 날 수 있나?" 나는 그 말에 등줄기가 서늘해졌다. "어떤 실수야?" 내가 물었다. "구체적으로." "셰프 말로는, 새우 육수를 베이스로 쓴 다른 요리랑 도구를 같이 썼다는 거야. 그런데 그 셰프, 이 바닥에서 십오 년 넘게 일한 사람이야. 그런 기본적인 교차 오염을 실수로 낼 사람이 아니라고." "우연이 아닐 수도 있다는 거야?" 내가 물었다. 하주가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친 않아. 근데 뭔가... 이상해." 그녀는 목소리를 낮추고 주변을 살폈다. "그리고 하나 더. 셰프 말로는, 오늘 저녁 요리 준비 중에 누가 주방에 잠깐 들어왔다 나갔대. 촬영팀도 아니고, 스태프도 아닌 사람이." "누군지는 못 봤대?" "등만 봤대. 모자를 눌러쓰고 있었다고." 소한이 우리 대화에 조용히 끼어들었다. 그녀의 얼굴은 여전히 창백했다. "어젯밤 그 시험도 그렇고, 오늘 이 사고도 그렇고. 우연이 겹치기엔 너무 많아." "어젯밤 일이랑 관계가 있을까?" 내가 물었다. "모르겠어." 소한이 고개를 저었다. "근데 이런 게 계속되면 누구도 이 프로그램에서 안전하다고 못 느낄 거야." 미소가 팔짱을 끼며 말했다. "누가 우리를 노리는 거 아니야?" 그 말에 아무도 대답하지 못했다. 홀 안에는 무거운 침묵이 내려앉았다. 촬영팀 스태프들도 서로 눈치를 보며 조용히 자리를 정리하기 시작했다. 나는 창밖을 바라보았다. 정원의 어둠 속에서, 어젯밤 그림자가 서 있던 자리가 여전히 눈에 밟혔다. 나뭇가지 사이로 스며드는 조경등의 불빛이 그 자리를 비추고 있었지만, 지금은 아무도 없었다. 당연했다. 하지만 나는 그 자리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그날 밤, 병원에서 돌아온 하늘이는 안정을 취한 채 침대에 누워 있었다. 목에는 아직 붕대 같은 압박대가 감겨 있었고, 팔에는 링거 줄이 꽂혀 있었다. 나는 그 옆을 지켰다. 병실 창문 밖으로 병원 주차장의 가로등 불빛이 흐릿하게 번져 들어왔다. "언니." 하늘이가 낮게 나를 불렀다. "고마워. 아까, 나 살려준 거." 나는 그녀의 손을 잡았다. 손가락이 아직 차가웠다. "당연한 거야." "당연한 게 아니야." 하늘이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다른 사람들은 다 얼어붙어 있었어. 언니만 움직였어." "근데..." 하늘이가 나를 올려다보았다. 그 눈빛에는 두려움과 함께 다른 감정이 섞여 있었다. 의심이라고 부르기엔 부드러웠고, 호기심이라고 부르기엔 무거운 그런 눈빛이었다. "언니, 진짜 누구야?" 나는 그 질문에 대답하지 못했다. 심장이 갈비뼈를 두드렸다. "의사 같았어, 아까. 아니, 그보다 더... 훈련받은 사람 같았어." 하늘이가 말을 이었다. "주사 놓는 것도, 각도도, 그런 거. 그냥 어디서 배운 정도가 아니었어." 그녀는 잠깐 숨을 고르고 다시 말했다. "무서웠던 게 아니야. 오히려... 안심이 됐어. 언니가 옆에 있어서." 나는 그녀의 손을 더 꼭 쥐었다. 대답 대신. 목구멍이 사포처럼 껄끄러웠다. 하고 싶은 말이 너무 많았지만, 어떤 말도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괜찮아, 대답 안 해도 돼." 하늘이가 작게 웃었다. 그 웃음에는 서운함과 이해가 뒤섞여 있었다. "언니가 뭘 숨기고 있어도, 그게 나쁜 건 아닐 거라고 믿어." 그 말이 오히려 더 무겁게 느껴졌다. 문밖에서 발소리가 들렸다. 나는 반사적으로 몸을 돌렸다. 하주였다. 그녀의 얼굴에는 병실 조명 아래에서도 뚜렷하게 보이는 긴장이 어려 있었다. "수아야, 잠깐 얘기할 수 있어?" 하주의 표정이 심각했다. 나는 하늘이의 손을 조심스럽게 이불 속에 넣어주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하주를 따라 병실 밖 복도로 나왔다. 복도는 조용했고, 저 멀리서 간호사들의 발소리만 간간이 들렸다. "정다은 매니저님이 방금, 이상한 걸 발견했대." 하주가 목소리를 낮췄다. "저택 후문 쪽에서 CCTV 사각지대에 발자국이 있었다고. 오늘 오후, 우리가 저녁 준비하고 있을 시간대에." "발자국이 어떤 모양이었대?" "운동화 자국. 크기는 남성용 같대. 근데 그 근처에 카메라가 원래 있었는데, 오늘 아침부터 렌즈가 살짝 틀어져 있었다는 거야. 누가 일부러 방향을 바꿔놓은 것처럼."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니, 이미 서 있었다. 하지만 온몸이 다시 한번 곧게 서는 느낌이었다. 어젯밤의 그림자, 오늘의 사고. 이 모든 것들이 하나의 실로 이어지고 있다는 확신이 들었다. 우연이라는 단어로는 더 이상 설명할 수 없는 지점에 우리는 서 있었다. "하주야." 내가 낮게 말했다. "이거, 누구한테 얘기했어?" "아직 아무한테도. 너한테 먼저 말하고 싶었어." 하주가 나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너, 뭔가 알고 있는 거지? 어젯밤부터, 아니 그전부터. 너만 이상하게 냉정해." 그 말에 심장이 다시 갈비뼈를 두드렸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누군가가 이 저택을 노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 대상은, 아직 끝나지 않은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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