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
‹ ›그로부터 며칠 후, 노진우는 학원에 나오지 않았다. 처음 하루는 그럴 수도 있다고 넘겼다. 이틀째부터는 슬슬 신경이 쓰이기 시작했고, 사흘째가 되던 날에는 결국 강사가 출석부를 보며 혀를 차는 소리까지 들었다. "이 녀석, 요즘 왜 이렇게 빠지나" 하는 그 무심한 한마디가 오히려 내 속을 더 헤집어놓았는데, 그 이유는 단순히 그가 아버지 문제로 힘들 거라는 짐작 때문만이 아니었다. 그날 밤 골목에서 스쳤던 그 이상한 마력 반응, 피부에 소름이 돋을 정도로 낮게 깔려있던 그 기운이 자꾸 마음에 걸렸기 때문이었다.
나는 쉬는 시간마다 창밖을 흘겨보는 버릇이 생겼다. 혹시나 저 멀리서 그 특유의 어정쩡한 걸음으로 뛰어오는 실루엣이 보이지 않을까 하는 기대였는데, 그런 기대는 매번 헛물만 켰다. 물론 나도 안다. 이런 세상에서 누군가의 안부를 걱정한다는 게 얼마나 사치스러운 일인지. 나 자신의 잔여 시간도 다 못 세는 처지에 남 걱정할 여력이 어디 있냐는 자조가 스멀스멀 올라왔지만, 그럼에도 노진우라는 녀석이 갑자기 사라진 것처럼 안 보이는 이 상황이, 이상하게도 계속 신경의 한쪽 끝을 잡아당기고 있었다.
한편 같은 시각, 치안부 청사에서는 노진우의 아버지에 대한 심문이 계속되고 있었다. 박도현은 이 사건을 직접 담당하지는 않았지만, 노형규 백작 저택에서 도난당한 물건이 단순한 귀중품이 아니라는 소문을 듣고 관심을 갖게 되었는데, 그 물건이 다름 아닌 금서로 지정된 고대 마법서라는 사실이 뒤늦게 그의 귀에 들어갔다.
"금서라고? 그런 물건이 왜 백작 저택에 있었던 거지" 하고 박도현이 담당 조사관에게 물었지만, 상대는 곤란한 표정으로 말을 아꼈다. "그건 저희 소관 밖의 일입니다, 백작님께서 개인적으로 소장하고 계셨던 것 같습니다만" 이라는 대답이었는데, 그 애매한 답변이 오히려 박도현의 의심을 키웠다.
"소장품이라니, 그럼 등록은 되어 있나" 하고 그가 다시 물었다. "금서라는 게 원래 등록 절차부터 까다로운 물건 아닌가, 백작가라고 해서 그게 면제될 리는 없을 텐데" 라는 지적에 조사관은 곤란한 얼굴로 시선을 피했다. "그 부분은... 저도 확인이 어렵습니다, 백작님 쪽에서 자료 제출을 미루고 계셔서" 라는 말이 돌아왔는데, 박도현은 그 대답을 들으며 속으로 이미 결론을 반쯤 내려버렸다. 등록되지 않은 금서를 개인이 저택에 숨겨두고 있었다는 것 자체가, 이미 이 사건의 성격을 결정짓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정원사가 그 물건을 훔쳤다는 증거는 있나" 하고 그가 재차 물었지만, 이번에도 명확한 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정황상 유력하다는 게 백작님 측의 주장입니다" 라는 말뿐이었는데, 박도현은 그 대답을 들으며 속으로 씁쓸한 결론을 내렸다. 요컨대 이 사건은 애초에 진범을 찾겠다는 목적보다, 누군가에게 죄를 뒤집어씌우고 그 소란을 조용히 덮으려는 목적이 더 강하다는 결론이었다. 그것이 아니라면 이렇게 증거도 절차도 없이 사람 하나를 잡아놓고 심문만 반복할 이유가 없었다.
"정원사 본인은 뭐라고 하던가" 하고 그가 물었다. "혐의를 계속 부인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하고 조사관이 말을 흐렸는데, 박도현이 눈짓으로 뒤를 재촉하자 마지못해 덧붙였다. "몸 상태가 그다지 좋지 않습니다. 심문 과정에서 좀..." 이라는 말에 박도현의 표정이 순식간에 굳었다. "심문 과정에서 좀, 이라니, 그게 무슨 뜻인가" 하고 그가 낮은 목소리로 되물었지만, 조사관은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정원사의 아들은 어떻게 되었나" 하고 그가 물었을 때, 부하 조사관은 잠시 머뭇거리다가 대답했다. "아직 조사 대상은 아니지만, 백작님 측에서 그 아이도 뭔가 알고 있을 거라며 별도로 사람을 붙여둔 모양입니다" 라는 말이었는데, 그 말을 들은 박도현의 표정이 순식간에 어두워졌다. "백작님 측에서 붙였다는 그 사람이 정확히 누구인가" 하고 그가 다급히 물었지만, 부하는 고개를 저으며 모른다고 답했다. "저희 쪽 인력이 아닙니다, 그건 확실합니다" 라는 말뿐이었는데, 그 말이 오히려 박도현을 더 불안하게 만들었다. 치안부 소속도 아니고 백작가 사병도 아니라면, 대체 누가 그 아이를 감시하고 있다는 건가. 이것이 이 사건을 둘러싼 이들의 정보 격차였고, 박도현은 그 격차 속에서 자신이 뭔가를 놓치고 있다는 불안감을 떨치지 못했다.
그 무렵 나는 여전히 아무것도 모른 채로, 밤마다 그릇을 조금씩 여는 훈련을 계속하고 있었다. 물류창고에서 몸을 갈아 넣고 돌아온 날에도, 몸이 부서질 것 같아도 하루도 거르지 않았는데, 그 이유는 단순했다. 이 훈련을 멈추는 순간, 내가 가진 유일한 무기가 녹슬어버릴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감각창에 뜬 숫자는 이제 [잔여 내구도: 85.2%]까지 줄어 있었다. 처음 그 숫자를 봤을 때는 등골이 서늘했었는데, 지금은 그냥 습관처럼 확인하고 넘기는 지표가 되어 있었다. 대신 나는 손끝에서 만들어내는 불씨의 크기가 처음보다 두 배 가까이 커졌다는 걸 확인할 수 있었다. 처음엔 성냥불만 하던 게 이제는 손바닥만한 크기로 타올랐고, 그 열기도 눈에 띄게 뜨거워져서 손끝이 아릴 정도였다. 요컨대 이 그릇은 쓰면 쓸수록 대가를 요구하지만, 그 대가만큼 확실하게 성장을 돌려준다는 것이 이제는 거의 확신에 가까운 사실이 되어 있었다.
'85.2퍼센트라... 이 속도면 앞으로 몇 번이나 더 쓸 수 있을까.' 나는 그런 계산을 하며 손을 쥐었다 폈다 했다. 단순한 계산으로는 답이 안 나왔다. 소모되는 비율이 매번 일정하지 않았기 때문인데, 그것도 어쩌면 내가 그릇을 여는 정도에 비례해서 달라지는 게 아닐까, 하는 추측만 할 수 있을 뿐이었다. 확실한 건 이 숫자가 0에 가까워질수록 뭔가 좋지 않은 일이 벌어질 거라는 예감이었다. 그게 정확히 뭔지는 알 수 없었지만.
그날 밤도 물류창고 일을 마치고 집으로 향하던 길이었다. 등짐에 짓눌린 어깨는 이미 감각이 없었고, 발바닥은 매일 밤 걷는 이 골목길의 지도를 통째로 외운 것처럼 저절로 움직이고 있었다. 그런데 골목 어귀에 들어서는 순간, 익숙한 그림자 하나가 다급하게 나를 향해 달려오는 게 보였다. 노진우였다.
"태준아!" 하고 그가 숨을 몰아쉬며 내 이름을 불렀는데, 그 목소리가 너무나 다급해서 나는 순간 몸이 굳었다. 며칠 동안 학원에 안 나오던 녀석이 이 시간에 이런 몰골로 나타난다는 것 자체가 정상적인 상황이 아니었다. 그의 옷은 여기저기 찢겨 있었고, 팔에는 붉은 자국이 선명하게 남아 있었는데, 그것이 단순한 상처가 아니라는 걸 나는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마치 뭔가에 그어진 것처럼 일직선으로 찢어진 상처였는데, 그 주변 피부가 이상하게 검게 죽어 있었다.
"무슨 일이야, 이 상처는 뭐야" 하고 다급히 물었지만, 노진우는 대답할 여유도 없이 품속에서 작은 천 보따리를 꺼내 내 손에 억지로 쥐여주었다. 보따리는 생각보다 무거웠고, 그 안에서 뭔가 딱딱한 것이 만져졌는데, 손에 닿는 순간 이상하게 서늘한 기운이 느껴졌다.
"이거, 잠깐만 맡아줘, 제발" 하고 그가 말했는데, 그 목소리가 심하게 떨리고 있었다. 평소의 그와는 완전히 다른 얼굴이었다. 늘 헤실헤실 웃던 그 낙천적인 표정은 어디에도 없었고, 눈동자에는 겁에 질린 짐승 같은 초조함만 남아 있었다.
"이게 뭔데, 왜 이렇게 다급해" 하고 물었지만, 그는 뒤를 돌아보며 겁에 질린 표정으로 대답을 미뤘다. "나중에, 나중에 다 설명할게, 지금은 시간이 없어" 라는 말뿐이었다. 그의 시선은 계속 골목 저편을 향해 있었는데, 나도 모르게 그 시선을 따라갔다가 순간 숨이 턱 막혔다.
그 순간 골목 저편에서 검은 로브를 두른 형체가 천천히 걸어 나오는 게 보였는데, 그 형체가 딱히 서두르지도 않는데도 이상하게 그 발걸음 하나하나가 소름 끼치도록 무겁게 느껴졌다. 걸음걸이는 분명 느긋했는데, 그 느긋함이 오히려 더 소름끼쳤다. 마치 도망칠 곳이 없다는 걸 이미 알고 있는 사람의 걸음처럼.
스으윽...
로브 자락이 바닥을 스치는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는데, 나는 그 순간 감각창에 뜬 문구를 보고 등골이 서늘해졌다.
[경고: 고위 사령계 마력 감지. 즉시 도주를 권장합니다.]
'고위... 사령계? 이게 뭔 소리야, 지금까지 뜬 경고 중에 제일 강한 단어잖아.' 나는 그 문구를 읽으며 손끝이 저절로 떨리는 걸 느꼈다. 지금까지 훈련하면서 이런 등급의 경고는 본 적이 없었다. 그것 하나만으로도 지금 이 상황이 내가 감당할 수 있는 범위를 한참 넘어섰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저게 뭐야" 하고 내가 물었지만, 노진우는 이미 대답할 정신이 아니었다. 그는 내 손을 붙잡고 반대 방향으로 밀치듯 하며 소리쳤다. "뛰어, 그냥 뛰어! 그 보따리 절대 열어보지 말고, 아무한테도 보이지 마!" 라는 말과 함께, 그는 오히려 그 검은 형체를 향해 몸을 돌렸다.
"진우야!" 하고 내가 소리쳤지만, 그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그 형체 쪽으로 달려갔는데, 마치 나를 도망치게 하려고 스스로 유인책이 되려는 것처럼 보였다. 그 뒷모습이 어찌나 작아 보였는지, 평소엔 나보다 덩치가 큰 녀석인데도 그 순간만큼은 겁먹은 어린애처럼 보였다.
"...이 미친놈이" 하는 말이 저절로 나왔다. 나는 그 자리에 얼어붙은 채로, 손에 쥔 천 보따리와 점점 가까워지는 검은 형체를 번갈아 바라보았는데, 도망치라는 말을 들었으면서도 다리가 떼어지지 않았다. 저 녀석을 저기 혼자 두고 도망가면 대체 무슨 얼굴로 다음에 마주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머릿속을 어지럽혔다. 그 순간 감각창에 새로운 문구가 떠올랐다.
[경고: 대상이 사용자의 위치를 특정했습니다.]
검은 로브 속에서 붉게 빛나는 두 눈이 정확히 나를 향해 고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