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
‹ ›저녁 여섯 시, 흑하 백작가의 대문 앞에 황실 문양이 새겨진 마차가 도착했을 때, 저택 안팎은 팽팽한 긴장으로 가득했다는 것을. 하인들은 이미 오전부터 응접실의 은식기를 새로 닦고, 정원의 마른 잎을 하나하나 걸러내며, 마치 이 하루가 백작가의 존폐를 가르는 시험대인 것처럼 움직였다. 서준은 응접실 중앙에 서서 한지아가 서둘러 매어 준 예복의 매듭을 만지작거리며, 이 모든 격식이 자신을 위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자신을 옭아매기 위한 것처럼 느껴졌다는 것을. 창밖으로 가스등이 하나씩 켜지는 것이 보였고, 그 불빛이 유리창에 어른거릴 때마다 서준은 자신도 모르게 옷깃을 다시 매만졌다.
"긴장하지 마세요, 도련님." 한지아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저 인사를 나누는 자리일 뿐입니다."
"그렇게 말하는 당신 손이 떨리고 있는데요." 서준이 짧게 대꾸했다.
한지아는 그 말에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저 손끝으로 서준의 옷깃을 한 번 더 정리해 주었을 뿐이었는데, 그 손길에서 서준은 그녀 역시 이 자리를 편하게 여기고 있지 않다는 걸 느꼈다는 것을.
정하은 황녀가 응접실로 들어섰을 때, 서준은 잠시 숨을 삼켰다. 그녀는 화려한 예복보다 그 안에 담긴 태연한 여유가 먼저 눈에 들어오는 인물이었는데, 걸음걸이 하나에도 권력의 무게가 배어 있어서, 방 안의 모든 시선이 자연스럽게 그녀에게 쏠렸다는 것을. 시종들이 그녀의 뒤를 따르며 문을 여닫는 소리조차 조심스러웠고, 그 소리 하나하나가 이 저택이 얼마나 낮은 곳에 서 있는지를 새삼 일러주는 듯했다.
"이서준 도련님을 직접 뵈니 소문보다 더 앳되시군요." 정하은이 부드럽게 웃으며 말했다. 존댓말은 완벽했으나, 그 완벽함이 오히려 서준에게 거리감을 주었다는 것을.
"과찬이십니다." 서준은 짧게 답했다. 어떤 말투를 써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았고, 그저 최대한 짧게 응대하는 것이 안전하다는 생각뿐이었다. 소문. 그 단어가 귀에 걸렸다. 대체 어떤 소문이 황궁까지 흘러갔을까, 그는 잠시 생각했으나 곧 그 생각을 접었다. 지금 중요한 건 이 여자가 이 자리에 온 이유였다.
정하은은 소파에 앉으며 찻잔을 받아들었다. 시종이 따르는 차의 향이 방 안에 퍼지는 짧은 순간에도 그녀는 서준과 한지아를 번갈아 살폈는데, 그 시선의 움직임이 마치 이 저택의 구조를 눈으로 재는 듯 정밀했다. "인구부흥원의 명단을 보았습니다. 규수반 서른 명이라니, 참으로 흥미로운 숫자예요." 그녀는 찻잔을 내려다보며 말을 이었다. "하지만 그 명단 어디에도 황실의 이름은 없더군요."
그 말이 방 안의 공기를 순식간에 얼어붙게 만들었다. 서준은 그녀가 무엇을 말하고 싶어 하는지 정확히 짐작할 수 있었는데, 그것이 단순한 불만이 아니라 명백한 요구라는 걸 느꼈다는 것을. 명단. 서른 명. 그 안에 황실의 이름이 없다는 것이 이렇게까지 문제가 될 일인가, 서준은 속으로 되물었다.
"도련님도 아시겠지만, 황실의 여인들은 혼인할 상대를 찾기가 더더욱 어렵습니다." 정하은이 이어갔다. "신분이 높을수록 오히려 선택의 폭이 좁아지는 법이니까요. 그러니 도련님께서 조금 더…… 넓은 마음을 가져 주셨으면 합니다."
넓은 마음. 그 표현이 서준의 속을 다시 뒤틀었다. 넓은 마음이라니, 그것이 정확히 무엇을 뜻하는지는 굳이 묻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그는 애써 표정을 관리하며 대답을 고르는 사이, 옆에 서 있던 한지아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황녀 전하, 도련님께서는 아직 규수반과의 결합조차 확정되지 않으셨습니다." 그녀가 존댓말을 쓰면서도 어딘가 방어적인 어조로 말했다. "황실의 뜻을 논하기엔 시기가 이른 듯합니다."
정하은의 시선이 그제야 한지아에게로 옮겨갔다. 그녀는 잠시 한지아를 위아래로 훑어보더니, 흥미롭다는 듯 옅게 웃었다. "이분이 그 유명한 후견인이시군요. 한지아 비서." 그녀가 이름을 정확히 불렀다는 사실에 한지아의 표정이 살짝 흔들렸다는 것을. "이 년 전, 지방으로 발령받으셨다가 다시 이곳으로 돌아오셨다지요. 도련님을 위해서라면 뭐든 하실 분이라는 소문이 있던데요."
그 말이 단순한 인사치레가 아니라는 걸, 서준은 물론 한지아 본인도 즉시 알아차렸다. 이 년 전이라는 숫자가 다시 한번 언급되며, 한지아의 과거가 이 자리에 소환되고 있었다는 것을. 서준은 그녀의 얼굴에서 아주 잠깐, 창백해지는 순간을 목격했는데, 그것은 지금까지 그녀가 보인 어떤 동요보다도 깊은 것이었다는 것을. 그녀의 손끝이 찻잔의 손잡이를 짚었다가 다시 떼는 그 짧은 움직임까지도, 서준은 놓치지 않았다.
"소문은 소문일 뿐입니다." 한지아가 겨우 대답했다. 목소리가 평소보다 낮았다.
"그렇겠지요." 정하은이 짧게 받았다. 그 짧음이 오히려 더 많은 것을 알고 있다는 뜻처럼 들렸다.
정하은은 더 이상 캐묻지 않았지만, 그 여유로운 미소 속에는 이미 원하는 것을 확인했다는 듯한 만족이 스쳐 지나갔다는 것을.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찻잔을 내려놓았다. 그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는데, 마치 이 응접실 안의 모든 것이 그녀의 손짓 하나에 좌우된다는 걸 보여주는 것 같았다. "오늘은 인사만 나누러 온 것이니, 부담은 갖지 마세요. 다만 도련님." 그녀가 문가에서 돌아보며 말을 이었다. "규수반의 결합이 성사되기 전에, 황실이 먼저 도련님을 뵈었다는 사실만은 기억해 두시길 바랍니다."
그 말을 남기고 정하은이 응접실을 나서자, 저택 안은 순식간에 무거운 침묵으로 가득 찼다. 시종들의 발소리가 멀어지고, 마차가 다시 대문을 빠져나가는 바퀴 소리가 들릴 때까지, 아무도 입을 열지 않았다. 서준은 한지아를 돌아보았다. 그녀는 여전히 문 쪽을 바라보고 있었는데, 그 옆얼굴에서 서준은 처음 보는 표정을 읽었다는 것을 — 두려움과 닮았지만, 그보다 더 오래된, 훨씬 깊은 곳에서 올라오는 감정이었다는 것을.
"한지아 씨." 서준이 조심스레 그녀를 불렀다. "이 년 전, 지방으로 발령받으셨다는 게…… 정말 발령이었습니까?"
한지아는 그 질문에 곧바로 답하지 않았다. 그녀는 천천히 서준을 돌아보았고, 그 눈빛 속에는 무언가를 말하려다 삼키는 듯한 갈등이 스쳐 지나갔다는 것을. 그녀의 입술이 몇 번 열렸다가 다시 닫혔다. 서준은 그 모습을 지켜보며, 자신이 지금 무언가 건드리지 말아야 할 것을 건드린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는 것을.
"도련님." 한지아가 마침내 입을 열었다. 그 목소리에는 이전까지와는 다른 결의가 담겨 있었다. "그건……"
그녀가 마침내 입을 열려는 순간, 저택 밖에서 다급한 말발굽 소리와 함께 누군가의 비명 같은 외침이 들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