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
‹ ›아버지가 내 방에 직접 온 건 그날이 처음이었다.
강대호. 남작가의 당주. 늘 서재에 틀어박혀 있거나 다른 귀족들 만나느라 바빴던 사람이, 갑자기 내 방문을 두드렸다.
처음엔 잘못 들은 줄 알았다. 이 집에서 아버지가 직접 문을 두드리는 일 같은 건 없었으니까. 보통은 하녀를 통해 부르거나, 아니면 그냥 사람을 서재로 오라고 하지. 그런데 문 두드리는 소리가 또 났다.
"도윤아, 들어가도 되겠니."
너무 정중해서 오히려 불안했다.
이 남작가에서 정중함이란 건 위에서 아래로 흐르는 게 아니다. 아버지가 나한테 이렇게 물어볼 이유가 없었다. 뭔가 잘못됐다는 신호였다. 머릿속으로 최근 며칠간 내가 뭘 했는지 빠르게 되짚어봤다. 방 안에서 조용히 부품 몇 개 만진 것뿐인데, 설마 그게 문제가 됐나.
"네, 아버지."
문이 열리고 아버지가 들어왔다. 큰 체구에, 늘 딱딱하게 굳어 있는 얼굴. 나를 볼 때의 눈빛은 평소와 다르지 않았다. 무심함과 실망이 반쯤 섞인, 익숙한 눈빛.
아버지는 방에 들어와서 내가 만든 것들을 하나씩 훑어보았다. 시계, 손잡이가 고쳐진 서랍, 그리고 마차 부속으로 만든 이상한 장난감 같은 물건까지.
책상 위에 늘어놓은 것들을 하나씩 집어 들고, 뒤집어 보고, 다시 내려놓았다. 그 손짓이 어딘지 조심스러워서 이상했다. 원래 아버지는 물건을 그렇게 조심스럽게 다루는 사람이 아니었는데.
"이걸 네가 만들었다고."
"네."
"누가 가르쳐줬나."
"아니요, 그냥... 만지다 보니."
거짓말은 아니었다. 전생의 기억이 가르쳐준 거니까, 정확히는 누가 가르쳐준 게 아니라 원래 알고 있던 거였다. 다만 그걸 곧이곧대로 말할 수는 없는 노릇이지.
아버지는 한참 동안 말이 없었다. 나는 그 침묵이 뭘 의미하는지 짐작이 안 갔다. 화가 난 걸까, 아니면 놀란 걸까.
시계를 들고 귀에 가까이 대보는 아버지의 모습이 낯설었다. 저 사람이 저렇게 뭔가를 유심히 들여다보는 걸 본 적이 있었나. 없었던 것 같다. 적어도 나를 보는 눈빛으로는 절대 아니었으니까.
"마력 재능은 3147이었지."
갑작스러운 말에 나는 잠깐 굳었다. 그 숫자를 아버지 입으로 듣는 게 이상하게 아팠다. 뭐, 사실이니 아플 것도 없는데.
3147. 이 세계 마력 측정 기준으로는 바닥에서 두 번째, 사실상 F등급. 기사단에 들어가기엔 턱없이 부족하고, 마법사 아카데미는 아예 입학 자체가 불가능한 숫자. 남작가의 유일한 아들이 이 숫자를 받았을 때, 저택 전체가 조용히 실망했던 걸 기억한다. 아무도 나서서 말은 안 했지만, 다들 알고 있었다.
"네."
"그 재능으론 기사도 마법사도 힘들다."
"...알아요."
"그런데 이런 건 잘 만드는구나."
아버지의 목소리에는 감정이 실려 있지 않았다. 그냥 사실을 나열하는 투였다. 그게 오히려 더 신경을 긁었다.
차라리 화를 내거나 실망한 티를 냈으면 덜 서운했을지도 모른다. 저렇게 건조하게, 마치 재고 목록을 확인하듯 말하는 게 더 아팠다. 나는 그냥 이 집안에서 하나의 항목으로 존재하는 걸까, 그런 생각이 잠깐 스쳤다.
"자본을 좀 대주겠다."
"네?"
예상 밖의 말이었다.
순간 내가 뭘 잘못 들은 건 아닌지 되짚어봤다. 자본을 대준다는 건, 이 저택에서 흔히 나오는 말이 아니었다. 아버지가 나한테 뭔가를 준다는 것 자체가 이상했으니까.
"부품, 도구, 필요한 재료. 원하는 만큼 청구해라. 대신 성과를 보여야 한다."
"...감사합니다."
형식적으로 답했지만, 속으로는 계산이 빠르게 돌아갔다. 이거 완전 대박인데.
전생에 자기 돈으로 부품 사려면 몇 주씩 알바비를 모아야 했는데, 이제는 그냥 청구만 하면 된다니. 이런 호재가 없었다. 머릿속으로 벌써 뭘 만들지 목록이 줄줄 떠올랐다. 톱니바퀴, 스프링, 유리 렌즈까지. 이 세계에 아직 없는 물건들 중에 뭘 먼저 만들지 순서를 정해야 할 판이었다.
당장이라도 만세를 부르고 싶었는데, 표정을 관리하는 데는 이제 이골이 났다. 겉으로는 그저 예의 바르게, 속으로는 이미 계산기가 돌아가고 있었다.
하지만 아버지의 다음 말이, 그 기쁨을 반쯤 깎아냈다.
"기대는 크게 안 한다. 마력 없는 자식한테 큰 걸 바라진 않으니까."
그 말이 방 안에 쿵 하고 떨어졌다.
"그냥... 시간이나 때우는 거라고 생각해라."
아버지는 그렇게 말하고는 뒤돌아 나갔다.
문이 닫히는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다.
방에 혼자 남아서, 나는 한참 동안 그 자리에 서 있었다.
기분이 이상했다.
분명히 자본을 지원받았으니 좋은 일인데, 그 뒤에 붙은 말이 자꾸 걸렸다. 시간이나 때우는 거. 큰 걸 바라지 않는다.
뭐, 원래 예상했던 반응이긴 했다. F등급 아들한테 큰 기대를 걸 부모가 있을 리 없으니까. 이 세계에서 마력이 없다는 건 그냥 무능력의 증명서 같은 거였다. 검을 못 쓰고, 마법도 못 쓰고, 그렇다고 특별히 학문에 재능이 있는 것도 아닌 걸로 보이는 아들. 그 아들이 손재주 좀 있다고 해서 갑자기 대단해 보일 리 없지.
그래도 좀 씁쓸했다.
책상 위에 늘어놓은 시계와 서랍과 장난감 같은 물건들을 다시 쳐다봤다. 이게 나한테는 그냥 시간 때우기가 아니었는데. 물론 그걸 아버지한테 설명할 방법도, 필요도 없었지만.
"도련님?"
서지아가 문 밖에서 들어왔다. 아버지가 나가는 걸 봤는지, 표정이 조심스러웠다.
"뭐라고 하셨어요?"
"자본을 대주신다고."
"오, 잘된 일이네요."
"근데 큰 기대는 안 한다고 하셨어."
서지아는 잠깐 나를 바라보았다. 뭔가 골똘히 생각하는 얼굴이었다.
"그럼 도련님 마음대로 하시면 되죠."
"...뭐?"
"기대 안 하신다는 건, 실패해도 뭐라 안 하신다는 뜻이잖아요. 성공하면 그냥 좋은 거고."
말이 되는 논리였다. 오히려 마음이 좀 풀렸다.
생각해보니 그랬다. 기대가 낮다는 건, 반대로 말하면 자유롭다는 뜻이기도 했다. 실패해도 딱히 실망할 것도 없는 사람이고, 성공하면 어차피 놀랄 사람이니까. 이만한 조건이면 오히려 감사해야 할 일이었다.
"그렇게 생각하면 되는 거네."
"네. 그러니 걱정 마시고, 만들고 싶은 거 만드세요."
서지아는 방 안을 둘러보다가 시계를 하나 집어 들었다.
"이거, 진짜 잘 만드셨어요. 저희 저택에 있는 시계보다 훨씬 정교한데요."
"그런가."
"네. 이런 걸 만들 수 있는 사람이 이 저택엔 도련님밖에 없잖아요."
그 말이 아까 아버지가 남긴 씁쓸함을 조금 씻어냈다. 어쩌면 서지아 말이 맞을지도 모른다. 마력이 없다고 해서 아무것도 못하는 게 아니니까.
그날 밤, 나는 방에 앉아 아버지가 대준 예산으로 뭘 만들지 고민했다. 머릿속에 이런저런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이 세계엔 아직 없는 물건들, 전생에서는 흔했던 물건들. 자전거, 인쇄기, 심지어 간단한 축음기까지. 뭘 먼저 만드느냐가 관건이었다. 너무 눈에 띄는 걸 만들면 곤란할 테고, 그렇다고 너무 소박한 걸 만들면 성과를 보이란 아버지 말을 채우기 힘들 테니까.
일단은 조용히 하나씩 만들어보자는 결론에 이르렀다.
그런데 며칠 뒤, 예상치 못한 손님이 찾아왔다.
"동생아, 우리도 좀 보자."
방문을 벌컥 열고 들어온 건 쌍둥이 누나들이었다. 강채원과 강라영. 둘 다 나를 노려보는 듯한 표정으로 서 있었다.
평소엔 나한테 관심조차 안 주던 사람들이었다. 그런데 오늘은 뭔가 벼르고 온 얼굴이었다. 둘 다 팔짱을 낀 채, 문턱에 서서 방 안을 훑어봤다.
"뭔데 그러는데, 갑자기?"
"소문 다 났어. 네가 이상한 짓 하고 다닌다고."
뭔가 심상치 않은 분위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