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록으로 가짜 난민, 진짜 용신사제

4화

그의 이름은 신도현이라고 했다. 나중에 병사 중 하나가 겁에 질린 목소리로 슬그머니 알려줬다. 목소리가 떨리는 게 신기할 정도였다. 마치 이름을 잘못 발음하면 벌이라도 받는 것처럼. "호위군 통령 신강호 님의 둘째 아드님이십니다." 통령이라는 직함이 정확히 어떤 위치인지는 몰랐다. 그래도 그 이름을 듣는 순간 병사들 표정이 일제히 굳는 걸 보니 대충 감이 왔다. 왕도 아니고 귀족도 아닌데, 병사들이 저렇게 벌벌 떨 직함이면 뭐, 대충 나 같은 놈 목 하나 날리는 데 서류조차 필요 없는 자리라는 뜻이겠지. 등줄기가 서늘했다. "이 손 놔라, 이 새끼야!" 신도현이 소리를 질렀다. 붙잡힌 손목을 빼내려고 몸을 뒤틀었지만 소용없었다. 검을 뽑으려던 다른 손도 재빨리 붙잡아 눌렀다. 그의 몸이 부들부들 떨렸다. 분노 때문인지, 아니면 힘으로는 이미 상대가 안 된다는 걸 본능적으로 느껴서인지는 알 수 없었다. 아마 둘 다였겠지. '그만해라. 이 정도면 충분하다.' 혈염의 목소리가 머릿속에서 울렸다. 평소라면 한마디 더 얄궂게 붙였을 텐데, 이번엔 웬일로 담백했다. 그만큼 상황이 심상치 않다는 뜻이었다. 손을 놓았다. 신도현은 뒤로 몇 걸음 물러나며 손목을 부여잡았다. 붉게 부어오른 자국이 선명했다. 저 정도면 하루 이틀은 검을 못 쥘 텐데, 지금 그런 걸 걱정할 상황이 아니었다. "이 자식···. 감히 나를···!" 그가 다시 검을 뽑았다. 이번엔 진심이었다. 손끝이 떨리는 게 눈에 보일 정도였는데도 굳이 뽑았다. 칼날이 빛을 받아 번쩍였다. 자존심이라는 게 사람을 저렇게 미련하게도 만드는구나 싶었다. 주변 병사들이 소리쳤다. "도련님, 멈추십시오!" "공무 중에 이러시면 안 됩니다!" 말려도 소용없었다. 다들 알고 있었다. 저 젊은 도련님이 이미 이성을 놓아버렸다는 걸. 눈빛부터 정상이 아니었다. 화가 나서 눈이 뒤집힌 게 아니라, 자기가 이 상황에서 창피를 당했다는 사실 자체를 견디지 못하는 눈빛이었다. 검이 허공을 갈랐다. 반사적으로 팔을 들어 막았다. 생각할 시간 같은 건 없었다. 그냥 몸이 먼저 움직였다. 쩌엉! 굉음이 울렸다. 검날이 내 팔뚝에 닿는 순간 부러졌다. 정확히는 검이 부러졌다. 부러진 조각이 허공으로 튀어 오르며 반짝였다. 내 팔은 상처 하나 없었다. 긁힌 흔적조차 없었다. 주변이 순식간에 고요해졌다.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는 정적이었다. 다들 방금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이해하지 못하는 눈치였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신도현이 부러진 검을 손에 든 채 얼어붙었다. 그 얼굴에서 오만함이 사라지고, 대신 공포가 자리 잡았다. 검자루를 쥔 손가락이 하얗게 질려 있었다. "이, 이게···." '마법에 면역인 데다 신체 강도도 일반 검으로는 흠집도 못 낸다. 저 검, 마법 강화가 걸려 있었던 모양인데 그것마저 부러졌군.' 혈염의 설명이 뒤늦게 들렸다. 목소리에 살짝 감탄이 섞여 있었다. 마법 강화가 걸린 검이 부러질 정도라니. 이 몸 참 대단하게 만들어놨구나 싶었다. 누가 만들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청구서를 보낼 수 있다면 꼭 한마디 하고 싶었다. 좀 적당히 튼튼하게 만들어달라고. 신도현은 부러진 검을 내던지고 뒷걸음질쳤다. 그 검이 바닥에 떨어지며 챙, 소리를 냈다. 아무도 그걸 주우려 하지 않았다. "경비병들! 이놈을 잡아라! 감히 나를 공격했다!" 입장을 완전히 뒤바꾼 소리였다. 먼저 검을 휘두른 건 그쪽이었는데, 이제 와서 내가 공격한 것처럼 몰아가고 있었다. 이런 뻔뻔함은 어디서 배우는 걸까. 통령 자제로 태어나면 자동으로 습득되는 스킬인가. 억울했지만 억울함을 따질 여유는 없었다. 주변 병사들이 창을 들고 다가오기 시작했다. 그들의 눈에도 곤란함이 스쳤다. 누구 말이 맞는지는 자기들도 알고 있을 텐데, 알아도 어쩔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밥줄이 걸린 문제니까. 어깨 속에서 아자가 갑자기 튀어나왔다. 짧은 순간, 아자의 눈동자가 완전히 붉게 타올랐다. 불씨가 아니라 화염 그 자체였다. 평소 어깨 위에서 잠만 자던 그 눈빛이 아니었다. "아자?" 놀라서 이름을 불렀는데, 아자는 나를 쳐다보며 이상한 소리를 냈다. 짹짹거리는 소리가 아니라, 뭔가 시험하는 듯한 낮은 울음이었다. 목구멍 깊은 곳에서 끌어올리는 듣기 거북한 저음이었다. '···이상하다. 이 짐승, 지금 저 애를 시험하려는 것 같다.' 혈염의 목소리에 처음으로 긴장이 섞였다. 저놈이 저렇게 진지하게 말하는 걸 들으니 오히려 더 불안해졌다. 아자가 몸을 부풀렸다. 원래 쥐만 하던 크기가 순식간에 개만 한 크기로 커졌다. 붉은 털이 곤두서며 열기가 사방으로 퍼졌다. 공기가 일그러지는 게 눈에 보일 정도였다. 주변 사람들이 놀라 물러났다. "이건 대체···!" 신도현이 뒷걸음질치며 소리쳤다. 방금까지 나를 잡으라고 소리치던 목소리가 이번엔 완전히 겁에 질려 있었다. 병사들도 창을 들고 있었지만 다가오지 못했다. 다가오면 창끝부터 녹아내릴 것 같은 열기였다. 아자는 나를 향해 이빨을 드러냈다. 방금까지 어깨 위에서 애정 표현을 하던 그 짐승이 지금은 완전히 다른 존재처럼 보였다. 눈동자 속 불꽃이 일렁일 때마다 뭔가 계산하는 듯한 기색이 스쳤다. '저놈이 지금 너를 저울질하는 거다. 이 상황에서 네가 어떻게 행동하는지 보는 것이다.' "뭘 저울질하는데?" '주인으로 삼을 가치가 있는지, 아니면 그냥 먹이로 삼을지.' 간단하게 말해서, 나는 지금 내 새로운 동료에게 시험당하고 있었다. 그것도 시기가 참 절묘했다. 신도현한테 검까지 부러뜨린 판에 짐승 하나가 또 나를 뜯어먹을지 고민 중이라니. 이 상황에서도 새치기가 이루어지고 있었다. 이 와중에도 병사들은 다가오고 있었고, 신도현은 소리를 지르며 지원을 요청하고 있었다. 강제로 결단을 내려야 하는 상황이었다. 선택지는 두 가지였다. 아자를 상대로 힘을 쓸지, 아니면 이 짐승을 믿고 다른 방식으로 상황을 돌파할지. 힘으로 누르는 건 쉬울 것 같았지만, 그다음에 벌어질 일이 문제였다. 저 화염이 통제를 벗어나면 여기 있는 병사들 전부가 숯덩이가 될지도 몰랐다. '서둘러라. 저놈의 화염이 곧 터질 것이다.' 혈염의 경고가 다급해졌다. 아자의 몸에서 열기가 더욱 강하게 뿜어져 나왔다. 주변 흙바닥이 갈라질 듯 뜨거워졌다. 이대로 두면 주변 사람들까지 위험해질 것 같았다. 나는 손을 뻗었다. 아자의 목덜미를 향해서였다. 망설이면 늦을 것 같았다. 손끝이 뜨거운 털에 닿는 순간, 시간이 느리게 흘러가는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손등을 타고 열기가 스며드는 게 느껴졌다. 데일 것 같으면서도 묘하게 낯설지 않은 온도였다. 그런데 손이 닿기도 전에, 하늘에서 무언가가 내려왔다. 빛이었다. 은은한 청백색 빛이 성문 위에서 쏟아지며 아자의 화염을 그대로 짓눌러 버렸다. 마치 뜨거운 물에 얼음을 붓듯, 화염이 순식간에 잦아들었다. "멈춰라." 낮고 무게감 있는 목소리였다. 그 목소리가 울리자 병사들도, 신도현도, 심지어 화염을 뿜던 아자마저 그 자리에서 굳어버렸다. 목소리 하나에 광장 전체가 정지 화면이 된 것 같았다. 빛이 사라지고 나타난 것은 지팡이를 든 노인이었다. 흰 수염을 길게 기른 채, 눈빛만은 젊은이보다 더 예리했다. 걸음걸이는 느릿했지만 그 느림 속에 조급함이라곤 전혀 없었다. 이미 상황을 다 파악했다는 태도였다. 그 노인이 나를 똑바로 쳐다봤다. 마치 내 몸속을 꿰뚫어 보는 듯한 시선이었다. 그 시선 앞에서는 등줄기가 아니라 뼛속까지 서늘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저 노인···, 심상치 않다. 상당한 마력을 지녔다.' 혈염의 목소리에 경계심이 가득했다. 늘 여유롭던 그 말투가 지금은 조금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노인은 천천히 다가오며 나를 향해 손을 뻗었다. 병사들도, 신도현도 감히 그 앞을 막지 못했다. 그 손끝에서 옅은 빛이 흘러나와 내 가슴 근처로 스며들었다. 따뜻하지도 차갑지도 않은, 뭐라 표현하기 힘든 감각이었다. 노인의 표정이 순식간에 변했다. 놀라움, 그리고 뒤이어 경이가 뒤섞인 표정이었다. 저 나이대 노인이 저런 표정을 짓는 걸 보는 게 오히려 더 불안했다. 살면서 웬만한 건 다 봤을 사람이 저런 눈을 한다는 건, 지금 이 상황이 그만큼 정상이 아니라는 뜻이었으니까. "이럴 수가." 주변 모두가 숨을 멈춘 것 같은 정적 속에서, 노인의 다음 말이 이어졌다. "이 아이의 몸에서 용족의 마력이 느껴진다. 그것도 하나가 아니라 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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