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
‹ ›집으로 가는 길, 노을이 붉게 번졌다.
골목 담벼락 위로 고양이 한 마리가 지나갔다.
길바닥에 그림자가 길게 늘어졌다.
태오는 걸음을 멈추고 하늘을 잠깐 올려다보았다.
오늘도 별일 없이 넘어갔다.
속으로 중얼거리며 다시 걸었다.
운동화 밑창이 아스팔트에 닳아 있었다.
언제 새로 사야 하나, 그런 생각도 잠깐 스쳤다.
현관 앞에 도착했다.
문고리를 잡았다.
차가운 감촉이 손끝에 닿았다.
다녀왔습니다.
태오가 현관문을 열며 말했다.
윤서영이 부엌에서 뛰어나왔다.
얼굴에 걱정이 가득했다.
손에는 아직 물기가 묻어 있었다.
오늘도 무사했니.
윤서영이 태오의 팔을 붙잡았다.
무사하죠. 왜요.
태오가 웃음기 없이 대답했다.
매일 같은 질문, 매일 같은 대답.
태오는 신발을 벗으며 속으로 생각했다.
강민호가 소파에서 몸을 일으켰다.
표정은 무덤덤했다.
텔레비전 리모컨을 옆에 내려놓았다.
뭐 좀 재밌는 일 있었냐.
강민호가 물었다.
별거 없었어요.
태오는 짧게 잘랐다.
강민호는 더 묻지 않았다.
그런 무심함이 오히려 편했다.
강세아가 방문 틈으로 고개를 내밀었다.
오빠, 오늘도 안 다쳤어?
걱정 어린 눈빛이었다.
안 다쳤어.
태오가 여동생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강세아는 그제야 안심한 얼굴로 문을 다시 닫았다.
문틈으로 만화책 넘기는 소리가 들렸다.
윤서영이 식탁 위에 국그릇을 놓았다.
국물에서 김이 올라왔다.
된장 냄새가 좁은 집 안을 채웠다.
앉아서 먹어라.
강민호가 의자를 끌었다.
태오는 자리에 앉았다.
숟가락을 들었다.
국물 한 술을 떴다.
뜨거웠다.
목구멍을 타고 넘어가는 느낌이 나쁘지 않았다.
강세아도 방에서 나와 식탁에 앉았다.
젓가락으로 김치를 집으며 텔레비전을 흘긋 보았다.
너, 요즘 뭔가 달라진 것 같은데.
강민호가 슬쩍 물었다.
뭐가요.
태오가 되물었다.
밤에 자다가 소리 지르는 거.
윤서영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태오의 손이 잠깐 멈췄다.
국그릇 속 김이 흔들렸다.
강세아가 숟가락을 내려놓고 눈을 크게 떴다.
오빠 소리 질러? 나는 못 들었는데.
방 벽이 두꺼운가 보지.
태오가 대충 얼버무리며 다시 숟가락을 움직였다.
악몽 꿔서요.
태오가 짧게 대답했다.
무슨 악몽인데.
강세아가 궁금한 눈으로 물었다.
말해도 안 믿을걸.
태오가 숟가락을 다시 움직였다.
말해봐.
강민호가 팔짱을 꼈다.
궁금하잖아.
강세아도 몸을 앞으로 기울였다.
윤서영은 아무 말 없이 태오의 얼굴만 살폈다.
그 시선이 국그릇보다 더 뜨거웠다.
태오는 잠깐 망설였다.
숟가락을 국그릇 가장자리에 톡톡 두드렸다.
괴물들이랑 싸워요.
그리고 이상한 힘을 받아요.
식탁에 정적이 내려앉았다.
윤서영과 강민호가 서로 눈빛을 주고받았다.
그 눈빛 안에 무언가 복잡한 것이 오갔다.
강세아만 눈을 반짝였다.
그거 완전 만화 같은데.
꿈이 좀 세게 오나 보다.
강민호가 대충 얼버무렸다.
태오는 더 설명하지 않았다.
설명해도 믿지 않을 걸 알고 있었으니까.
말해봤자 입만 아프지.
속으로 그렇게 정리했다.
밥이나 먹자.
윤서영이 화제를 돌렸다.
식사는 조용히 끝났다.
그릇 부딪히는 소리만 간간이 들렸다.
태오는 방으로 들어가 문을 닫았다.
딸깍.
침대에 걸터앉아 천장을 바라보았다.
벽지 무늬가 눈에 익었다.
어릴 때부터 봐온 무늬였다.
어차피 설명 못 해.
각성식 그날이 떠올랐다.
─
십오 세, 각성식 날.
마을 광장에 등급별 심사대가 세워졌다.
또래 아이들이 줄지어 서 있었다.
긴장한 얼굴들이 대부분이었다.
누군가는 손을 떨었고, 누군가는 억지로 웃었다.
태오는 그 줄 맨 끝에 서 있었다.
차례가 오기까지 한참을 기다렸다.
감정관이 손을 뻗어 태오의 어깨를 짚었다.
빛이 잠깐 일었다가 사그라들었다.
기대도 하지 않았다.
그런데 사그라드는 빛을 보는 순간, 뭔가 이상하다는 걸 직감했다.
【목각】.
등급 판정 없음.
감정관이 서류에 도장을 찍었다.
표정에는 관심조차 없었다.
다음.
감정관이 손을 흔들었다.
주변에서 웅성거림이 일었다.
목각이 뭐냐, 처음 들어본다는 말들이 오갔다.
누군가는 손가락으로 태오를 가리켰다.
낮게 웃는 소리도 섞여 있었다.
엘리트 학원 입학 명단이 발표됐다.
태오의 이름은 없었다.
이름이 불릴 때마다 부모들의 얼굴이 밝아졌다.
태오의 차례가 오지 않았다.
대신 다른 종이가 건네졌다.
흑련학원 배정통지서.
그 종이를 받은 아이는 태오 하나였다.
주변 부모들이 흑련학원이라는 이름에 눈살을 찌푸렸다.
거기 가면 죽는다며.
누군가 낮게 속삭였다.
거기서 살아나온 사람이 몇이나 되냐고.
다른 목소리가 그 말을 받았다.
태오는 그 종이를 손에 쥔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손끝이 종이를 살짝 구겼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강민호가 태오의 어깨를 두드렸다.
목각이든 뭐든, 니가 니 아들인 건 안 변해.
강민호가 웃으며 말했다.
그 웃음이 억지로 만든 것이라는 걸, 태오는 그때 이미 알고 있었다.
윤서영은 그 말을 듣고 눈물을 훔쳤다.
말은 하지 못했지만 속으로 걱정이 가득했다.
집에 도착할 때까지 아무도 입을 열지 않았다.
발소리만 골목에 울렸다.
태오는 그날 밤, 처음으로 이상한 꿈을 꾸었다.
어둠 속에서 무언가가 다가오는 꿈이었다.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는 어둠이었다.
그 안에서 뭔가가 천천히, 아주 천천히 다가왔다.
그것이 시작이라는 걸, 그때는 알지 못했다.
─
천장을 바라보던 태오가 눈을 감았다.
방 안 공기가 갑자기 서늘해진 것 같았다.
그날부터였다.
매일 밤 같은 어둠, 같은 걸음.
이제는 익숙해졌다고 생각했는데.
몸을 일으켜 창문 쪽을 바라보았다.
유리창에 비친 자신의 얼굴이 낯설게 느껴졌다.
오늘 밤도 그 꿈을 꿀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아니, 예감이 아니라 확신이었다.
태오는 조용히 눈을 감았다.
어둠이 서서히 방 안으로 스며드는 것 같았다.
숨소리가 낮게 가라앉았다.
그리고 그 순간, 익숙한 감각이 목덜미를 스쳤다.
또 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