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
‹ ›정신이 돌아왔을 때, 제일 먼저 느낀 건 냄새였다.
소독약 냄새. 그리고 익숙한 향냄새.
성림교단 특유의 냄새였다.
솔직히 말하자면 이 냄새 조합, 나름 정겹기까지 했다. 병원 냄새랑 성당 냄새가 섞이면 이런 느낌이구나. 죽다 살아난 놈이 이런 한가한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게 스스로도 어이없었지만, 뭐 어떡하나. 산 사람은 살아야지.
"눈 떴네."
낮고 담담한 목소리가 들렸다. 혜정 수녀였다.
노년의 나이답지 않게 손끝이 야무진, 성림교단 최고의 치료사. 표정 변화가 거의 없는 게 흠이자 특징인 사람이었다. 사람이 반쯤 죽었다 살아 돌아왔는데도 저 무표정은 흔들리지 않는다. 대단한 프로 정신이라고 해야 할지, 아니면 그냥 감정이 마모된 거라고 해야 할지.
"...얼마나 지났어요?"
목소리가 갈라져 나왔다. 성대까지 말라비틀어진 느낌이었다.
"이틀."
짧은 대답이었다. 부연 설명 따위는 없었다. 딱 필요한 정보만.
일어나려다 균형을 잃었다. 오른쪽 시야가 여전히 새까맸다. 마치 커튼을 반쪽만 쳐놓은 것처럼, 세상의 절반이 그냥 사라져 있었다.
그리고 왼쪽 다리 아래쯤에서, 있어야 할 것이 없다는 이질감이 느껴졌다.
이불을 걷어봤다.
없었다. 진짜로, 없었다.
머릿속으로는 알고 있었다. 예상도 했었다. 그런데 눈으로 직접 보는 건 또 다른 얘기였다.
[이사야 53:5,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받았도다]
채찍 맞고 나음 받는 게 원래 컨셉인데, 나는 눈이랑 다리를 맞고 못 받는 상황이었다. 성경 말씀이 이렇게 배신감 느껴지는 순간이 또 있을까. 신학생 시절엔 이 구절을 읽으면서 은혜롭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보니까 그냥 사기 광고 카피 같다.
"의사 선생님, 이거..."
"재생 안 돼."
혜정 수녀가 담담하게 말을 잘랐다. 마치 배달 온 음식이 잘못 왔을 때 "이거 환불 안 돼요"라고 말하는 것 같은 톤이었다.
"성림교단의 신성 치유로도 절단된 신체는 원상 복구가 안 돼. 오른쪽 눈도, 왼쪽 다리도 마찬가지야."
예상은 했지만, 직접 들으니 다른 느낌이었다.
등줄기가 서늘한 게 아니라, 뭔가 배 속이 훅 꺼지는 기분이었다.
살아있다는 것에 감사해야 하는 걸까, 아니면 이 상태로 살아야 한다는 것에 화를 내야 하는 걸까. 두 감정이 동시에 밀려와서 뭘 먼저 처리해야 할지 감도 안 잡혔다.
"의족은 만들어 줄 수 있어. 안구도 마법 안구로 대체 가능하고. 하지만 진짜 눈이랑 다리는 이제 못 써."
담백한 통보였다.
혜정 수녀 특유의 스타일이었다. 위로 한마디 없이 사실만 던지고, 그 대신 행동으로 신경을 써주는 타입. 실제로 붕대를 다시 감으면서 손길만큼은 처음부터 끝까지 조심스러웠다. 말은 칼같이 하는데 손은 솜사탕처럼 다룬다. 이 부조화가 나름 신뢰감을 준다는 게 웃긴 부분이었다.
"...알겠습니다."
담담하게 답했다.
스스로도 놀랄 만큼 담담했다.
원작 지식으로 이런 대가가 있을 거라는 걸 미리 짐작했기 때문일 수도 있고, 그냥 아직 현실감이 없는 것일 수도 있었다. 아니면 셋 다 조금씩 맞는 걸지도. 사람 마음이라는 게 원래 딱 한 가지 이유로 설명 안 되니까.
혜정 수녀는 그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방을 나갈 준비를 했다. 문 앞에서 잠깐 멈춰서더니, 뒤도 안 돌아보고 한마디 던졌다.
"살아있는 걸 다행으로 여겨. 잔영 유적에서 살아 나온 사람 자체가 드물어."
그러고는 정말로 나갔다. 위로인지 팩트 폭행인지 헷갈리는 마지막 말이었다.
밖에서 소란스러운 소리가 났다.
"잠깐만요, 저 좀 봐야 되는데!"
차설아의 목소리였다. 평소보다 한 톤 높고, 급했다.
"안정 취해야 해. 아직 들어오면 안 돼."
윤소아가 차분하게 말리는 소리도 들렸다. 저 목소리는 항상 온도가 일정하다. 상황이 어떻든.
그때 문이 벌컥 열렸다.
"이도훈!"
차설아가 뛰어들어왔다. 눈이 새빨갰다. 밤새 울었는지 아니면 지금 막 울려는 건지 구분이 안 될 정도였다.
"괜찮아? 아니, 안 괜찮은 거 아는데, 그러니까..."
말을 제대로 못 이었다. 뭐라도 말하려고 입을 뗐다가, 시선이 이불 아래 사라진 왼쪽 다리 쪽으로 슬쩍 갔다가, 다시 황급히 눈을 돌렸다.
"괜찮아요. 살아 있잖아요."
가볍게 던진 말이었다. 진심이기도 했다. 실제로 이 정도면 이 세계 기준으로는 로또 맞은 거니까.
그 말에 차설아의 표정이 이상하게 굳었다.
뭔가 더 깊은 죄책감이 스치는 게 보였다. 하지만 그 순간엔 그게 뭔지 정확히 알아채지 못했다. 그냥 '아, 뭔가 있구나' 정도로만 넘겼다. 나도 지금 내 몸 하나 챙기기 바쁜 상황이라, 남의 표정 분석까지 할 여력이 없었다.
뒤이어 다인과 윤소아도 들어왔다.
다인은 붕대를 여러 겹 감은 상태로, 걸음걸이가 조심스러웠다. 절뚝거리는 건 아니었지만, 발을 딛는 순서 하나하나가 신중해 보였다.
"...몸 좀 어떠냐."
"살 만해요."
거짓말은 아니었다. 정말 살 만했다. 죽는 것보단.
윤소아는 아무 말 없이 그냥 침대 옆에 앉았다.
그 조용함이 오히려 더 신경 쓰였다. 원래 이 사람은 필요한 말만 정확하게 골라서 하는 스타일이라, 아무 말도 안 한다는 건 뭔가 생각을 정리하고 있다는 뜻이었다. 그리고 그 생각의 결과물이 대체로 나한테 별로 좋지 않았다는 경험이 있어서, 등 뒤가 살짝 근질거렸다.
병실 안엔 잠깐 정적이 흘렀다. 다들 뭐라도 말을 하고 싶어하는데, 정작 입을 여는 사람은 없는 그런 정적이었다. 나는 그 침묵이 고마우면서도 불편했다. 뭐라도 물어보면 대답해야 하고, 대답을 하다 보면 뭔가 술술 나올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때, 병실 창문 밖에서 뭔가 큰 소리가 났다.
쾅!
"뭐야, 저 소리?"
다인이 창밖을 내다봤다.
창밖에는 헝클어진 은발에, 피와 흙으로 범벅된 갑옷을 입은 남자가 서 있었다.
눈에 초점이 없었다. 마치 뭔가에 미쳐 있는 것처럼. 걸음걸이는 정상인데, 표정만 보면 방금 지옥에서 산책하고 온 사람 같았다.
"강철..."
나도 모르게 이름이 흘러나왔다.
원작 진짜 주인공, 강철이었다.
이 세계관에서 제일 강한 인간이자, 동시에 대화 스킬이 가장 낮은 인간. 힘은 재난급인데 소통 능력은 거의 멸종 위기종 수준이라는 게 원작 팬들 사이에서 항상 개그 포인트였다.
"어, 저 사람 알아?"
윤소아가 물었다. 눈빛이 순간 날카로워졌다.
대답할 시간도 없이, 강철이 창문을 그대로 부수고 들어왔다.
촤르르르륵!
유리 파편이 사방으로 흩어졌다. 마치 문 열기가 귀찮았다는 듯한 태도였다. 저 사람 사전에는 '노크'라는 단어가 없나 싶었다.
"으악!"
다들 반사적으로 물러섰다. 다인은 붕대 감은 몸으로도 재빠르게 뒤로 빠졌고, 차설아는 아예 침대 반대쪽으로 넘어갈 뻔했다.
강철은 아무 말 없이 나를 바라봤다.
그 시선에는 관심 같은 게 거의 없었다. 그냥 확인하는 눈빛이었다. 마치 재고 조사하듯, '저거 아직 살아있나' 체크하는 눈빛.
"...너, 잔영 유적에서 봤던 놈이지."
낮고 무심한 목소리였다.
"어떻게 살아있냐. 적명자 상대로."
그 한마디에 병실 온도가 순식간에 달라진 걸 느꼈다. 차설아, 다인, 윤소아 세 사람 모두 표정이 바뀌었다. 특히 윤소아의 눈빛이 조금 전과는 완전히 다른 종류의 날카로움으로 변했다.
답하기도 전에, 강철이 손을 내밀었다.
손바닥 위에 작은 빛나는 구슬 같은 게 있었다. 은은하게 빛나는데, 만지면 뭔가 뜨거울 것 같은 느낌이었다.
"이거, 재생 촉진제. 완전 회복은 안 되지만, 통증은 줄여줄 거다."
"...왜 저한테 주는 거예요?"
솔직히 궁금했다. 원작 진짜 주인공이 조연1 같은 나한테 이런 걸 챙겨줄 이유가 없는데.
"몰라. 그냥 줘야 할 것 같아서."
역시, 대화 스킬 멸종 위기종 그 자체였다. 저 무심함과 저 챙김이 동시에 존재하는 게 강철이라는 인간의 매력이자 답답함이었다.
강철은 그 말을 끝으로 몸을 돌렸다.
"강, 강철 씨?"
차설아가 당황해서 불렀다.
"난 마물 지배할 게 더 급해서."
짧게 대답하고, 강철은 부서진 창문으로 다시 뛰어나갔다.
순식간에 사라졌다. 진짜 순식간이었다. 방금까지 있던 자리에 유리 파편만 남았다.
병실 안에는 어색한 침묵만 남았다.
깨진 창문 사이로 바람이 들어와 커튼을 흔들었다. 그 소리마저 유독 크게 들리는 정적이었다.
[전도서 9:11, 빠른 경주자라고 선착하지 못하며 유력자라고 전쟁에 승리하지 못하며]
딱 저 사람 얘기다. 힘은 원작 최강인데, 인간관계는 완전 낙제. 저 정도면 인간관계 자격증 시험이 있다면 응시조차 못 할 수준이었다.
"저 사람 누구야? 갑자기 나타나서 뭐라 뭐라 하고 사라지고."
다인이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붕대 감은 팔로 유리 파편 쪽을 가리키며.
"...유명한 사람이에요."
대충 답했다. 더 자세히 설명하고 싶지 않았고, 설명할 여력도 없었다.
하지만 그 순간, 윤소아가 나를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이도훈. 저 사람이 너 알아본 것 같던데."
등줄기가 서늘했다.
"...그럴 리가요."
반사적으로 부정했지만, 목소리가 미묘하게 떨렸다. 이럴 때 목소리가 안 떨려야 하는데, 몸이 정신보다 먼저 반응하는 게 문제였다.
"'잔영 유적에서 봤던 놈'이라고 했잖아. 그리고 '적명자'라는 이름도 알고 있었어."
윤소아가 조용히 말을 이었다. 목소리에는 흥분도 분노도 없었다. 그냥 사실을 정리하는 듯한 차분함이었는데, 그게 더 무서웠다.
"우리는 그 몬스터 이름, 죽고 나서야 알았거든. 넌 그전부터 알고 있었지?"
병실 안의 온도가 갑자기 몇 도쯤 떨어진 것 같았다.
차설아와 다인의 시선도 동시에 나를 향했다.
말할 수 없는 무게가 방 안을 가득 채웠다. 아무도 입을 열지 않았지만, 그 침묵 자체가 나한테 질문을 던지고 있었다.
"이도훈."
차설아가 낮게 불렀다.
목소리에서 방금 전의 안도감은 이미 사라져 있었다. 대신 그 자리엔 뭔가 확인하고 싶으면서도 확인하고 싶지 않은, 애매한 긴장감이 남아 있었다.
"너, 처음부터 다 알고 있었지?"
병실 안의 세 사람이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깨진 창문으로 바람이 계속 들어오고 있었고, 커튼은 여전히 흔들리고 있었다.
대답을 미룰 수 있는 시간이, 이제 거의 남아 있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