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록으로 추방됐더니 만능설계사라니

4화

밤 11시 40분. 마을 사람들이 하나둘 집 밖으로 나왔다. "이거… 벽이 따뜻해요." 한 여자가 벽에 손을 대고 소리쳤다. "우리 집도!" 옆집 남자가 맨발로 뛰쳐나와 흙바닥에 주저앉았다. "이게 뭔 조화야." 그가 자기 집 벽을 몇 번이고 쓰다듬었다. 믿을 수 없다는 얼굴이었다. 순식간에 마을 전체가 소란스러워졌다. 아이들이 울음을 멈췄다. 노인들이 처음으로 웃었다. 어느 할머니는 벽에 이마를 대고 가만히 서 있었다. 눈을 감고 있었다. 울고 있는 건지, 웃고 있는 건지 구분이 안 됐다. "평생 이런 겨울은 처음이야." 할머니가 중얼거렸다. "작년엔 우리 손주가 동상에 걸렸었는데." 그 말에 옆 사람이 고개를 끄덕였다. 누군가는 손을 모으고 하늘을 향해 뭔가를 중얼거렸다. 기도인지 감사인지 알 수 없었다. 나는 창고 밖에 서서 그 모습을 지켜봤다. 손끝이 떨렸다. 추워서가 아니었다. 이게 내가 한 일이라고. 저 사람들의 얼굴이 저렇게 변한 게, 내가 만든 장치 하나 때문이라고. 그 장치에서 흘러나온 열기 하나가, 겨울을 통째로 밀어냈다고. 믿기지 않았다. 그런데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었다. 박요한 신부가 다가왔다. 그의 발걸음은 다른 사람들과 달랐다. 서두르지 않았다. "이걸 정말 당신이 했습니까."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어떻게." "설명하기 어렵습니다." 신부의 눈빛이 복잡해졌다. 의심과 놀라움이 뒤섞여 있었다. 그 눈빛 안에 뭔가 하나 더 있었는데, 그게 뭔지는 그때는 몰랐다. "…감사는 나중에 하겠습니다." 짧은 말이었다. 그래도 처음으로 적대적이지 않은 말이었다. 그가 몸을 돌려 다시 마을 사람들 쪽으로 걸어갔다. 아이 하나를 안아 올리고, 노인 하나의 등을 두드리고. 사제로서 해야 할 일을 하고 있었다. 나는 그 뒷모습을 오래 지켜봤다. 그날 밤, 나는 오래간만에 깊이 잤다. 꿈도 꾸지 않았다. 눈을 뜨니 이미 해가 창고 틈으로 들어와 있었다. 몸이 가벼웠다. 그동안 쌓였던 피로가 하룻밤 사이에 다 빠져나간 것 같았다. 이상한 감각이었다. 좋은 일을 했다는 사실이, 몸에 이렇게 직접적으로 반응한다는 게. 다음 날, 소식은 마을 전체에 퍼졌다. 하루 만에, 옆 마을 사람들까지 소문을 듣고 찾아왔다. 오전 9시. 창고 앞에 낯선 얼굴들이 줄을 섰다. 스무 명은 넘어 보였다. "진짜 그 도련님이 마법을 부린다는 게 사실입니까?" 한 남자가 물었다. 그의 뒤로 아이를 업은 여자, 지팡이를 짚은 노인, 젊은 청년들이 서 있었다. "우리 마을도 벽이 얼어붙어서 밤마다 애들이 웁니다." "저희도 도와주십쇼." "돈은 있는 만큼 드리겠습니다." 말들이 쏟아졌다. 나는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몰랐다. 마을 사람들의 태도가 달라졌다. 어제까지 나를 피하던 사람들이 오늘은 먼저 인사를 건넸다. "도련님, 아침 드셨어요?" 한 아주머니가 김이 나는 감자를 하나 내밀었다. "저희 집도 한번 봐주시면…" 또 다른 남자가 조심스럽게 말을 걸었다. 어제까지만 해도 나를 마을에서 쫓아내려던 사람들이었다. 그런데 오늘은 내 앞에 줄을 서고 있었다. 사람들의 시선이 이렇게 빠르게 뒤집힐 수 있다는 사실이, 오히려 서늘하게 느껴졌다. 그런데 박요한 신부는 오히려 더 굳은 얼굴이었다. 사람들 사이에서 그의 얼굴만이 웃고 있지 않았다. "선우진 님." 그가 나를 창고로 불렀다. 문을 닫고, 목소리를 낮췄다. "이 힘, 대가가 있을 겁니다." "압니다." 사실은 몰랐다. 목소리는 여전히 대가에 대해 아무것도 알려주지 않았다. 질문을 던져도 대답은 언제나 침묵이었다. "세상에 공짜는 없어요." 박요한 신부가 말을 이었다. "특히 이런 종류의 힘은." 그가 창고 안을 한 번 둘러봤다. 목재와 철 조각들, 도면들, 여기저기 흩어진 부품들. "저는 오랫동안 이런 걸 봐왔습니다." "이런 거요?" "기적처럼 보이는 것들. 갑자기 나타난 힘. 갑자기 좋아지는 상황." 그가 나를 똑바로 봤다. "그리고 그 뒤에 반드시 따라오는 것들도요." "그게 뭡니까." "청구서." 짧은 대답이었다. 그런데 그 한 단어가 가슴에 박혔다.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답할 수 없었다. 오후 2시. 나는 마을 자재상을 찾았다. 다음 설계에 필요한 목재와 철을 미리 확인하고 싶었다. 난방 장치 하나로는 부족했다. 마을 전체를 아우르려면 더 큰 규모의 설계가 필요했다. 가게 앞에 도착했을 때, 안에서 상점 주인이 재고를 정리하고 있었다. "어, 도련님." 상점 주인이 나를 보고 놀란 얼굴을 했다. 손에 들고 있던 장부를 급히 내려놓았다. "어제 얘기 듣고 저도 놀랐습니다. 마법이라니, 살면서 그런 걸 보게 될 줄은." "철판이랑 목재 좀 더 필요해서 왔습니다." "아, 그건…" 그가 말을 얼버무렸다. "뭡니까?" "자잿값은 이미 다은 아가씨가 다 치르셨는데요." 나는 순간 멈췄다. "뭐라고요?" "어제 오셔서, 목걸이 하나를 파시고 그 돈으로 자재값을 다 내셨어요." "이 마을에서는 그런 물건 보기 드물던데. 은에 세공이 아주 곱더라고요." 상점 주인이 서랍을 열어 뭔가를 꺼내려는 몸짓을 했다. "영수증도 있는데, 보여드릴까요?" 나는 손을 저었다. 필요 없었다. 확인할 필요도 없었다. 손끝이 차가워졌다. 목걸이. 다은에게 목걸이가 있었나. 기억이 났다. 다은이 항상 옷깃 안에 숨겨 차고 다니던 작은 은 목걸이. 한 번, 그게 뭐냐고 물은 적이 있었다. 빨래를 널던 그녀의 목에서 은빛이 반짝였고, 나는 별 생각 없이 물었다. "그거 뭐야?" "어머니 유품이에요." 그때 그녀는 웃으며 말했다. 빨래집게를 든 손으로 목걸이를 살짝 만졌다. "제가 가진 것 중에 유일하게 값나가는 거예요." 그 말이, 그때는 그냥 흘러갔다. 지금은 목에 걸린 것처럼 걸렸다. 상점 주인의 목소리가 멀게 들렸다. "도련님? 괜찮으세요?" 나는 아무 대답도 못 했다. "목재는 나중에 다시 오겠습니다." 나는 상점을 뛰쳐나왔다. 창고로 돌아가는 길이 유난히 멀게 느껴졌다. 평소라면 오 분이면 걸었을 길이, 그날은 몇 번이나 발이 엉켰다. 머릿속으로 몇 가지 장면이 순서 없이 스쳤다. 다은이 목걸이를 만지던 손, 웃던 얼굴, 그리고 지금 그 목걸이가 없어졌다는 사실. 다은은 창고 앞에서 빨래를 널고 있었다. 평소와 똑같은 얼굴이었다. 바람에 젖은 천이 펄럭였고, 그녀는 콧노래를 흥얼거리고 있었다. "도련님, 벌써 오셨어요?" 나는 그녀의 옷깃을 봤다. 목걸이가 없었다. 목 아래, 늘 은빛이 반짝이던 자리가 비어 있었다. "다은아." "네?" "목걸이." 다은의 손이 잠깐 멈췄다. 빨래집게를 든 채로. 아주 잠깐이었다. 그런데 나는 그걸 봤다. "아, 그거요." 그녀가 웃었다. 평소와 똑같은 미소였다. 그게 오히려 더 이상하게 느껴졌다. "어차피 안 쓰던 거예요." "어머니 유품이라고 했잖아." "…" 다은이 말을 잃었다. 빨래를 든 손이 살짝 떨렸다. 그녀는 시선을 빨래바구니로 돌렸다. "그 돈으로 자재를 샀다고?" "도련님 마법이 필요하잖아요." 그녀의 목소리가 작아졌다. 그런데 시선은 피하지 않았다. "난방 장치, 그거 하나로 마을이 얼마나 달라졌는데요." "할머니가 벽에 이마를 대고 울던 거, 도련님도 보셨잖아요." "그건 상관없어." 내 목소리가 커졌다. 평소라면 나오지 않았을 크기였다. "내가 그걸 알았으면 절대 못 하게 했을 거야." "그러니까 말 안 했죠." 다은이 처음으로 나를 똑바로 봤다. 빨래바구니를 내려놓고, 두 손을 가지런히 모았다. "도련님은 늘 남 걱정만 하시니까요." 숨이 막혔다. 화가 나야 하는데, 그 화가 어디로 향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다은에게? 나 자신에게? 그녀의 얼굴에는 후회가 없었다. 그게 더 이상하게 마음을 눌렀다. 후회라도 있었으면, 화를 낼 수 있었을 텐데. "그건 네 어머니 물건이야." "이제는 마을 사람들의 벽이 됐죠." "다은아." "저는 후회 안 해요." 그녀가 다시 빨래바구니를 들었다. 대화가 끝났다는 몸짓이었다. "밥 차려 놓을게요. 도련님도 오늘 일 많으셨죠." 그녀는 등을 돌려 부엌 쪽으로 걸어갔다. 평소와 똑같은 걸음걸이였다.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나는 그 자리에 한참 서 있었다. 대가. 박요한 신부의 말이 귓가에 맴돌았다. 이 힘에는 대가가 있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고, 그가 그렇게 말했었다. 그런데 그 대가를 다은이 대신 치른 거였다. 내가 모르는 사이에. 내가 잠들어 있는 동안, 내가 마을 사람들의 웃음을 지켜보고 있는 동안. 그녀는 어머니의 마지막 유품을 손에서 놓아버렸다. 목걸이 하나가 자잿값이 됐다. 자재가 난방 장치가 됐다. 난방 장치가 마을 사람들의 웃음이 됐다. 그 계산은 맞았다. 그런데 어딘가 완전히 틀렸다. 나는 창고로 들어가 도면을 펼쳤다. 글자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숫자들이 종이 위에서 그냥 흔들리고 있었다. 박요한 신부가 말한 청구서가, 이런 형태로 오는 거였나. 내가 얻은 힘의 대가를, 내가 아니라 다은이 치르는 거였나. 그렇다면 다음번 청구서는 또 누구에게 갈까. 그 생각이 들자, 손끝이 다시 차가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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