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새벽 수호대 숙소 창고, 3층 구석방.
오늘도 나는 감자 자루 위에서 눈을 떴다.
허리가 끊어질 듯 아팠지만 이 정도면 성공한 하루의 시작이다.
왜냐고?
어제는 여기서 자다가 쥐한테 발가락을 물렸으니까.
발가락은 벌써 다 나았다.
새살이 뽀얗게 돋아있는 걸 보니 신기하긴 했다.
【무한재생】스킬 덕분이다.
이름값은 확실히 못하지만, 최소한 밴드 살 돈은 아껴주는 착한 스킬이었다.
창밖을 보니 아직 해도 안 떴다.
새벽 수호대라는 이름값답게, 이 숙소는 진짜로 새벽부터 사람을 굴린다.
나만 그런 건 아니겠지만, 유독 나만 그런 것 같은 이 느낌은 뭘까.
[일일 퀘스트: 무기고 정비, 마정석 세공, 회복 포션 500병 제조]
시스템 창에 오늘의 할 일이 주르륵 떠올랐다.
마치 배달앱 리뷰창처럼 친절하게, 그리고 잔인하게.
별점은 항상 만점을 줘야 할 것 같은 압박감까지 느껴졌다.
나는 【무한재생】이라는 스킬을 가지고 있다.
이름은 거창한데 실제로는 상처가 좀 빨리 낫는 정도, 그게 전부였다.
감기 하루 빨리 낫는 거랑 뭐가 다른가 싶을 정도로.
동네 편의점에서 파는 종합감기약 정도의 효능이라고 보면 대충 맞았다.
그럴 리가, 이게 진짜 내 각성 스킬 전부라고?
처음 각성했을 때는 나도 기대했다.
드래곤을 때려잡거나, 시공간을 접거나, 뭐 그런 거창한 스킬을 상상했다.
현실은 시궁창이라는 말을 이렇게 몸으로 체감할 줄이야.
1년 전 마을이 통째로 사라진 그날, 나는 유일하게 살아남았다.
각성했다는 사실 하나로 새벽 수호대에 겨우 들어왔다.
그리고 1년째, 나는 파티원이라는 명찰을 달고 사실상 잡부로 살고 있다.
명찰만 보면 대단해 보이는데, 실상은 이름표 도용 수준이었다.
무기고로 향하는 길에 복도에서 마주친 신입 견습생이 나를 보고 고개를 꾸벅 숙였다.
“선배님, 오늘도 일찍 나오시네요.”
“어, 그래. 너도 열심히 해.”
나도 누군가에게는 선배라는 게 아직도 어색하다.
1년차 잡부가 선배라니, 이 세계 서열 체계는 좀 이상하게 굴러가는 게 분명하다.
무기고 문을 열자 녹슨 검들이 나를 반겼다.
정비할 게 산더미였다.
검날에 낀 몬스터 핏자국을 닦아내며 나는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이 일도 이제 익숙해지니 나름 힐링 타임처럼 느껴지기까지 했다.
정신승리라고 해도 상관없다, 어차피 할 일이니까.
“한서준, 마정석 세공 다 됐냐?”
강도현 형이 문을 벌컥 열고 들어왔다.
전사답게 팔뚝이 내 허벅지보다 두 배는 두꺼운 사람이다.
“네, 형님! 방금 막—”
“됐고 빨리 갖고 와.”
말이 끝나기도 전에 문이 다시 쾅 닫혔다.
쾅!
서비스 정신이 훌륭한 프랜차이즈 매장 같은 응대였다, 물론 반대 의미로.
손님이 말을 끝내기도 전에 “네 다음 손님” 하는 그런 느낌.
나는 아직 손도 못 댄 마정석을 황급히 챙겼다.
세공이라는 게 그렇게 5분 만에 되는 게 아닌데, 강도현 형은 늘 그런 걸 잘 모른다.
아니, 알아도 모른 척하는 것 같기도 하고.
어쨌든 나는 부랴부랴 작업대에 앉아 손을 놀렸다.
촤르르르륵!
마정석 표면을 다듬는 소리가 방 안에 울렸다.
1년 동안 이 짓만 했더니 이제 눈 감고도 할 수 있을 정도가 됐다.
쓸데없는 곳에서 장인정신이 늘어난 셈이다.
그래도 나는 웃었다.
왜냐하면 이 사람들이 아니었으면 나는 지금 살아있지도 못했을 테니까.
마을이 사라진 날, 이강호 리더님이 직접 폐허 속에서 나를 끌어냈다고 했다.
직접 봤냐고?
아니, 그건 아니다.
정신을 잃었다가 깨어났을 때 이미 리더님 품에 안겨 있었을 뿐이다.
하지만 은혜는 은혜다.
의심할 이유가 없지 않은가.
[시편 23:1,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부족함이 없다는 건 좀 오버고, 쥐한테 발가락 물리는 건 확실히 부족하다.
하지만 이 정도 불편함쯤이야 감내할 수 있었다.
리더님이 나를 거둬주신 것만으로도 나는 이미 과분한 삶을 살고 있으니까.
세공을 마치고 회복 포션 재료도 챙겨야 했다.
약초를 다듬는 손이 벌써 익숙하게 움직였다.
칼로 껍질을 벗기고, 절구에 넣고 빻고, 물에 넣고 끓이고.
500병이라니, 이건 거의 공장 라인이지 파티원 업무가 아니다.
그래도 불평 한마디 없이 나는 계속 손을 움직였다.
포션 재료를 다 챙기고 나서야 마정석을 들고 회의실로 뛰어갔다.
숨이 턱까지 차올랐다.
계단을 두 칸씩 뛰어 올라가느라 다리가 후들거렸다.
문을 여는 순간, 분위기가 이상했다.
윤서아 성녀님과 정민호 현자님, 그리고 리더님까지 모두 심각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숨을 고를 새도 없이 나는 그 자리에 얼어붙었다.
회의실 특유의 서늘한 공기가 있다.
평소엔 잡담도 섞이고 웃음소리도 나는 곳인데, 오늘은 마치 장례식장 같았다.
설마 또 무슨 일이 터진 건가.
“서준아, 마침 잘 왔다.”
리더님이 나를 보고 웃었다.
저 웃음, 봄날 햇살 같은 그 웃음을 보면 나는 늘 마음이 놓였다.
심각한 분위기 속에서도 리더님만은 여전히 온화했다.
이 사람이야말로 진짜 리더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새로운 던전이 발견됐다.”
“던전이요?”
“【칠흑 심연】이라는 곳인데, 아직 아무도 완전히 공략하지 못한 미개척지야.”
뭐지, 갑자기 심장이 두근거리는 이유는?
새 던전 소식이 왜 이렇게 크게 다가오는 걸까.
평소라면 “아, 또 던전이구나” 하고 넘겼을 텐데, 오늘은 뭔가 달랐다.
직감이라는 게 있다면, 지금 이 순간 온몸으로 뭔가를 느끼고 있었던 걸지도 모른다.
“이번엔 우리 새벽 수호대가 최초 공략을 노린다.”
정민호 현자님이 안경을 고쳐 쓰며 말을 이었다.
“규모가 상당해. 준비를 철저히 해야 할 거야.”
목소리는 평소와 다름없이 차분했지만, 그 안에 뭔가 긴장이 섞여 있었다.
윤서아 성녀님은 팔짱을 낀 채 창밖만 보고 있었다.
표정이 뭔가 싸늘했는데, 그냥 원래 성격이 그런 분이라 넘겼다.
우아하신 분들은 다 이런 느낌인가 보다, 하고.
그녀의 옆얼굴은 마치 조각상처럼 흠 하나 없었지만, 오늘은 유난히 굳어 있었다.
뭔가 마음에 걸리는 게 있는 걸까, 잠깐 그런 생각도 들었지만 이내 지워버렸다.
내가 신경 쓸 처지는 아니니까.
“마정석 여기 있습니다.”
나는 조심스레 탁자에 올려놓았다.
리더님이 그걸 확인하고는 다시 나를 봤다.
탁자 위에서 마정석이 은은한 푸른빛을 뿜었다.
세공이 잘 됐는지 확인하는 리더님의 눈빛이 진지했다.
“서준아.”
“네, 리더님.”
“이번 원정에 너도 함께 간다.”
촤악!
순간 뭔가 등줄기를 타고 흐르는 느낌이 들었다.
소름인지 감동인지 구분이 안 됐다.
1년 동안 나는 늘 후방 지원, 잡무 담당이었다.
실전에 데려간 적은 손에 꼽을 정도였다.
그것도 다 근처 소형 던전, 위험도 최하급짜리들이었다.
그런데 이번에, 최초 공략을 노리는 대형 던전에, 나를 데려간다고?
내 귀를 의심했다.
잘못 들은 거 아닌가 싶어서 리더님 얼굴을 다시 쳐다봤다.
리더님은 여전히 그 봄날 햇살 같은 웃음을 짓고 있었다.
잘못 들은 게 아니었다.
“정말요?”
목소리가 떨렸다.
부끄럽지만 눈물이 살짝 나올 뻔했다.
“당연하지. 너만큼 성실한 파티원이 어디 있겠냐.”
리더님의 그 한마디에 나는 완전히 무너졌다.
감동적으로, 좋은 의미로.
강도현 형은 못 들은 척 팔짱을 끼고 있었고, 정민호 현자님은 나를 힐끗 보고는 다시 서류로 눈을 돌렸다.
윤서아 성녀님은 여전히 창밖만.
누구 하나 축하한다는 말 한마디 없었다.
하지만 나는 그런 미묘한 공기 따위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1년 만에 처음으로 인정받는 기분이 너무 크게 다가왔으니까.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나는 고개를 몇 번이나 숙였다.
인생 최초로 인정받는 기분이었다.
1년의 짐꾼 생활, 쥐에게 물린 발가락, 감자 자루 침대까지.
전부 이 순간을 위한 것이었다고, 나는 그렇게 믿어버렸다.
머리를 숙이고 있는 동안에도 눈물이 핑 돌았다.
누가 보면 오버한다고 할지도 모르지만, 나에게는 정말 큰 사건이었다.
1년 동안 마정석이나 세공하고 포션이나 만들던 놈이, 대형 던전 원정에 낀다니.
이건 마치 편의점 알바생이 하루아침에 본사 임원 회의에 초대받은 느낌이었다.
[마태복음 5:5,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
온유함의 대가로 땅 대신 던전 원정 티켓을 받은 셈이니, 이 정도면 나름 선방이지 않나.
땅 대신 몬스터 소굴을 받은 거 아니냐고 누가 물으면, 나는 그래도 좋다고 답할 것이다.
회의가 끝나고 나오는 길, 강도현 형이 내 어깨를 툭 치고 지나갔다.
“너무 좋아하지 마라.”
그 한마디가 좀 걸리긴 했지만, 그냥 형 특유의 무뚝뚝한 격려겠지 하고 넘겼다.
윤서아 성녀님은 나를 스쳐 지나가면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 서늘한 눈빛이 잠깐 나를 향했다가 금세 다른 곳으로 돌아갔다.
그것마저도 나는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그날 밤, 나는 삽질에 필요한 도구부터 회복 포션 재료까지 하나하나 정성껏 챙겼다.
혹시라도 실수해서 리더님께 실망을 드릴까 봐, 눈을 감아도 도무지 잠이 오지 않았다.
가방을 쌌다가 풀었다가, 다시 싸는 걸 몇 번이나 반복했다.
로프는 몇 미터를 챙겨야 할지, 포션은 몇 병이나 들고 가야 할지, 이런 사소한 고민들이 밤새 머릿속을 맴돌았다.
창밖으로 달이 유난히 밝았다.
감자 자루 위에 누워서 천장을 바라보며 나는 몇 번이나 실실 웃었다.
1년 동안의 고생이 드디어 빛을 보는구나, 하는 생각이 가슴 벅차게 밀려왔다.
내일이면 새로운 시작이라고, 나는 그렇게 믿고 있었다.
이 순간을 위해서 쥐한테 발가락도 물리고, 마정석도 밤새 세공하고, 감자 자루 위에서도 잘 참았던 거라고.
이제야 그 모든 고생이 보상받는 기분이었다.
어쩌면 리더님은 처음부터 나를 눈여겨보고 있었던 게 아닐까,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그런 상상만으로도 잠이 오지 않을 만큼 가슴이 벅찼다.
그럴 리가.
뭔가 잘못됐다는 걸 알았어야 했는데.
강도현 형의 그 한마디, 윤서아 성녀님의 그 서늘한 눈빛, 회의실을 가득 채웠던 그 무거운 공기.
지금 생각해보면 전부 신호였는데, 그때는 하나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하지만 그때의 나는, 그저 감격에 젖어 있을 뿐이었다.
내일이 되면, 나는 그 신호들의 의미를 아주 뼈저리게 깨닫게 될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