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
‹ ›던전 초입부터 몬스터가 몰려들었다.
검은 이리 떼처럼 생긴 것들이 어둠 속에서 우르르 쏟아졌다.
으르렁!
숫자가 어림잡아도 스무 마리는 넘어 보였다.
이쯤 되면 무슨 던전이 아니라 유기견 보호소 탈출 사건이라고 해도 믿을 판이었다.
물론 저것들 눈빛을 보면 절대 유기견 감성은 아니지만.
“전열 유지!”
강도현 형이 앞으로 뛰어나가며 검을 휘둘렀다.
서걱!
한 마리가 그대로 두 조각이 났다.
피가 사방으로 튀었고, 절단면에서 검은 연기 같은 게 스멀스멀 올라왔다.
저게 무슨 CG냐, 실사인데.
하지만 뒤에서 계속 몰려드는 통에 대열이 조금씩 밀리고 있었다.
숫자에는 장사가 없다는 말, 그거 던전에서도 똑같이 적용되는 진리였다.
“서준아, 미끼 유인 좀 해!”
리더님이 다급하게 외쳤다.
미끼라니, 무섭긴 했지만 나는 곧바로 뛰어나갔다.
왜냐고?
1년 동안 이런 역할은 늘 내 담당이었으니까.
익숙한 일이었다.
심지어 이제는 어느 방향으로 뛰어야 시선을 가장 많이 끄는지도 알 정도였다.
전문직이 다 됐다, 미끼 전문직.
“여기다, 이 새끼들아!”
나는 팔을 크게 휘저으며 소리를 질렀다.
순식간에 대여섯 마리가 방향을 틀어 나를 향해 달려들었다.
심장이 미친 듯이 뛰었다.
하지만 도망칠 곳은 정해져 있었다.
미리 봐둔 좁은 협곡 틈, 거기로 몰아넣으면 파티가 한 번에 처리할 수 있을 터였다.
발밑의 자갈들이 요란하게 튀어 올랐다.
숨이 턱까지 차올랐지만, 다리는 멈추지 않았다.
1년 동안 몸으로 배운 게 있다면, 뒤를 돌아보는 순간 진짜로 죽는다는 사실이었다.
촤악!
발밑에서 뭔가 뾰족한 게 발목을 스쳤다.
피가 튀었지만 멈출 수 없었다.
계속 달렸다.
등 뒤로 짐승들의 이빨 부딪는 소리가 가까워졌다.
저 소리, 매번 들어도 정말 정 붙지가 않는다.
누가 저 소리에 정 붙이면 그건 사람이 아니라 다른 무언가일 거다.
[욥기 41:1, 네가 낚시로 리워야단을 낚을 수 있겠느냐]
낚을 수 없다, 지금은 낚이는 쪽이 나니까.
낚싯대 대신 내 목숨을 던진 셈이니, 이건 뭐 미끼 낚시가 아니라 인신공양에 가깝지 않나.
하지만 물러설 수 없었다.
협곡 입구가 눈앞에 보였다.
저 좁은 틈, 딱 봐도 편의점 창고만한 크기다.
사람 하나 겨우 통과할 폭, 그 안에 이리 떼를 몰아넣는다는 게 말이 되는 계획인가 싶었지만, 지금까지 늘 통했으니 믿어야 했다.
“지금이야!”
리더님의 목소리가 울렸다.
나는 순간 몸을 옆으로 굴렸다.
쾅!
뒤따라오던 짐승들이 좁은 협곡에 그대로 갇혔고, 정민호 현자님의 광역 마법이 그 위로 떨어졌다.
번쩍!
눈이 부실 정도의 빛이 협곡을 뒤덮었다.
마치 편의점 심야 할인 알림처럼 갑작스럽고 강렬한 빛이었다.
비유가 그것밖에 안 떠오르냐 싶지만, 실제로 그 정도 밝기였다.
비명 같은 울음소리가 몇 번 들리더니 곧 조용해졌다.
전투가 끝났다.
나는 바닥에 널브러진 채 숨을 몰아쉬었다.
온몸이 상처투성이였지만, 살았다는 사실에 안도했다.
살아있다는 감각, 이게 이렇게 소중한 건지 매번 새삼 느낀다.
그리고 매번 잊는다.
“서준이 아니었으면 큰일 날 뻔했다.”
리더님이 다가와 나를 일으켜 세웠다.
“정말 대단했어. 위험한 순간에도 흔들리지 않고, 역시 우리 서준이야.”
다른 파티원들도 짝짝짝 손을 부딪쳐 주었다.
파티원 중 한 명은 심지어 “서준 만세!” 비슷한 소리까지 냈다.
저건 좀 오버 아닌가 싶었지만, 오랜만에 받는 관심이라 딱히 말리진 않았다.
물론 강도현 형은 팔짱을 낀 채 시선을 피했고, 윤서아 성녀님은 지팡이를 정리하며 관심 없다는 듯 굴었지만, 그 정도쯤은 신경 쓰지 않았다.
1년을 이 파티에서 지내다 보면 저 두 사람 반응은 그냥 날씨 같은 거다.
맑을 때도 있고, 흐릴 때도 있고, 오늘은 흐린 날이었을 뿐.
[전도서 3:1, 범사에 기한이 있고 천하만사가 다 때가 있나니]
지금은 인정받는 때, 그거면 충분했다.
성경에도 나온 걸 보니 이건 그냥 하나님도 인정한 타이밍이라는 뜻 아닐까.
아니, 이런 식으로 갖다 붙이는 거 신성모독 아닌가 싶긴 한데, 뭐 어때.
리더님이 나를 칭찬해줄 때마다 나는 뭔가 마음이 놓였다.
1년 동안 쌓아온 신뢰가 헛되지 않았다는 증거처럼 느껴졌다.
누군가에게 필요한 사람이라는 감각, 그게 이렇게 사람을 붙잡아둘 줄은 예전엔 몰랐다.
하지만 정작 상처는 그대로였다.
발목의 상처는 깊었고, 피가 계속 흘러나왔다.
“괜찮냐? 피가 많이 나는데.”
리더님이 걱정스러운 얼굴로 물었다.
“괜찮습니다, 이 정도는 금방 나아요.”
나는 애써 웃으며 대답했다.
실제로 그랬다.
【무한재생】덕분에 이런 상처는 몇 시간이면 저절로 아무니까.
사실 이 스킬, 알고 보면 꽤 사기적인 물건인데 정작 본인은 그 가치를 잘 모른다는 게 함정이다.
윤서아 성녀님이 치유 마법을 써줄 법도 한데, 그녀는 그저 힐끗 보고는 다른 곳으로 걸어갔다.
뭐지, 나 좀 서운한데.
같은 파티인데 이 정도 무시는 좀 심하지 않나 싶었지만, 하지만 성녀님의 마력도 소중한 자원이니 아껴야 한다고, 나는 또 그렇게 스스로 이해해버렸다.
1년째 이런 식으로 셀프 위로를 하고 있는데, 이쯤 되면 그냥 특기라고 해도 되지 않을까.
파티는 잠시 휴식을 취했다.
나는 바위에 걸터앉아 상처를 살펴봤다.
피는 이미 멈춰 있었고, 상처 가장자리가 조금씩 아물어가는 게 보였다.
살갗이 스멀스멀 붙는 그 감각, 처음엔 소름 돋았는데 이제는 그냥 일상이 됐다.
인간의 적응력이란 참 무섭다.
[시편 30:5, 저녁에는 근심이 있어도 아침에는 기쁨이 오리로다]
저녁에 다친 상처가 몇 시간 만에 아물면, 그게 아침의 기쁨인지 그냥 튼튼한 몸뚱이 덕분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성경 말씀치고는 타이밍이 기가 막히게 맞아떨어진다는 것만은 인정하겠다.
강도현 형이 물통을 건네며 나를 쳐다봤다.
“너 상처, 진짜 빠르다.”
“하하, 원래 좀 튼튼해요.”
나는 별거 아니라는 듯 웃어넘겼다.
강도현 형은 뭔가 미묘한 표정을 짓더니 곧 다른 곳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 표정, 왜 그렇게 신경 쓰였을까.
마치 편의점 알바가 손님 카드 승인 거절됐을 때 짓는 표정 같았다.
뭔가 말하고 싶은데 말 못하는, 딱 그런 얼굴.
나는 물통을 받아 한 모금 들이켰다.
차가운 물이 목을 타고 넘어가면서 그제야 정신이 좀 드는 것 같았다.
“형, 왜 그런 표정이에요?”
슬쩍 물어봤지만 강도현 형은 대답 대신 어깨만 한 번 두드려주고 자리를 떴다.
저것도 나름의 애정 표현이라고 믿고 싶다.
아니면 그냥 할 말이 없어서 도망친 걸지도 모르지만.
리더님이 다시 대열을 정비하라고 지시했다.
“조금만 더 깊이 들어가면 중간 지점이다. 다들 힘내자.”
모두가 다시 일어섰다.
나는 상처가 다 나은 발목을 확인하고는 짐을 챙겼다.
짐이라고 해봤자 대부분 남들이 안 드는 것들, 물이니 비상식량이니 응급용품이니 하는 것들이었지만 그것도 이제는 익숙한 무게였다.
1년 동안 짐꾼으로만 지내던 내가 파티의 승리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는 사실이, 뭔가 뿌듯했다.
오늘이야말로 진짜 새벽 수호대의 일원이 된 기분이었다.
어깨에 짐을 짊어졌는데도 발걸음이 가벼운 건, 아마 이 기분 때문일 거다.
누군가는 이걸 자존감 회복이라고 부르겠지.
그런데 앞서 걷던 정민호 현자님이 걸음을 멈추고 나를 슬쩍 돌아봤다.
그 시선에는 뭔가 계산하는 듯한 빛이 스쳐 지나갔다.
뭐지, 저 눈빛은.
마치 마트에서 원플러스원 상품 앞에서 저울질하는 눈빛 같았다.
사람을 앞에 두고 저런 눈빛을 하는 게 정상인가 싶었지만, 나는 그저 어깨를 한 번 으쓱하고는 다시 걸음을 옮겼다.
정민호 현자님은 원래도 좀 그런 사람이었으니까, 오늘도 그런가보다 하고 넘겼다.
협곡을 지나 다시 걷기 시작한 지 얼마 안 되어, 통로가 점점 좁아지는 게 느껴졌다.
벽에 새겨진 이끼 같은 무늬가 희미하게 빛을 내고 있었는데, 그게 마치 지하철 막차 시간 안내판처럼 깜빡이는 게 은근히 불안했다.
“이 던전, 원래 이런 조명이었나요?”
누군가에게 물었지만 딱히 대답은 없었다.
다들 각자 숨 고르기에 여념이 없었다.
나는 뒤를 슬쩍 돌아봤다.
정민호 현자님은 여전히 나를 힐끗거리고 있었다.
저 사람, 오늘 유독 신경 쓰는데.
설마 오늘 미끼 활약이 너무 마음에 들었나?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는 건가.
어느 쪽이든 지금은 알 방법이 없었다.
일단은 앞으로 나아가는 게 우선이었다.
중간 지점까지 남은 거리를 가늠하며, 나는 다시 걸음을 재촉했다.
발목의 상처는 이미 흔적도 없이 사라졌지만, 등줄기에는 여전히 서늘한 기운이 남아 있었다.
그 기운의 정체가 던전의 냉기인지, 아니면 방금 그 눈빛의 잔상인지, 나로서는 판단이 서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