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
‹ ›빛의 기둥은 밤새 사라지지 않았다.
청림마을 사람들은 잠도 못 자고 하늘만 쳐다봤다. 아이 하나가 울음을 터뜨렸다. 어머니가 등을 다독이면서도 눈은 하늘에 박혀 있었다.
기사 견습생은 상급자에게 보고를 넣으러 말을 달렸다.
말발굽 소리가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선우결은 마차에 실려 저택으로 돌아가는 내내 창밖의 빛을 보고 있었다.
밤이 지나도 사라지지 않는다.
저 정도 규모면 영지 밖에서도 보일 텐데.
계산이 자동으로 굴러갔다. 이 몸의 원래 주인이었던 청년의 기억이 아니라, 대학생 시절 굴리던 습관이었다.
에너지량, 지속시간, 확산 반경.
숫자로 쪼개면 덜 무서워지는 게 있었다. 저것도 그런 종류였다.
마부가 채찍을 몇 번 더 휘둘렀다. 말이 힝힝거리며 속도를 올렸다.
선우결은 눈을 감았다 떴다.
잠은 안 왔다.
다음 날 아침, 저택 앞뜰은 이미 소란스러웠다.
하인들이 마당을 뛰어다니고 있었다. 문지기는 문 앞에서 계속 누군가를 돌려보내고 있었다. 영지민들이 무슨 소식이라도 들으러 온 모양이었다.
마차가 멈췄다.
덜컹—
최인덕 집사가 마차 문을 열며 말했다.
영지 전역에서 목격했다는 보고가 올라왔습니다. 남쪽 국경 근처에서도 봤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남쪽 국경까지요?
선우결이 되물었다.
그 정도면 그냥 마을 사건이 아니잖아.
최인덕이 고개를 저었다.
원인 불명입니다. 백작님께서 도련님을 기다리고 계십니다.
표정이 딱딱했다. 평소 같으면 도련님 잘 다녀오셨습니까, 하고 웃음이라도 붙였을 텐데 오늘은 그런 여유가 없었다.
선우결은 마차에서 내리며 저택을 올려다봤다.
창문마다 불이 켜져 있었다.
새벽부터 이 난리면 밤새 한 번도 안 잔 사람이 있을 거란 소린데.
응접실 문이 열렸다.
덜컹—
선우태호가 서 있었다. 팔짱을 낀 채 창밖을 보고 있다가 아들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눈 밑이 검었다. 옷도 갈아입지 않은 것 같았다.
무사히 왔구나.
네.
선우결이 짧게 답했다. 아버지라는 사람 앞에서 아직도 어색했다. 이 몸의 진짜 아들은 이미 죽었고, 그 자리를 대신 채우고 있다는 죄책감이 목 안쪽에 걸렸다.
앉아라.
선우태호가 소파를 가리켰다.
선우결이 자리에 앉는 사이, 이수아가 뒤이어 들어왔다. 에메랄드빛 머리가 촛불 아래 은은하게 빛났다.
옷도 제대로 못 갈아입었는지 겉옷만 대충 걸친 차림이었다.
다친 곳은 없니.
없어요.
괜찮다는 대답에 이수아의 표정이 조금 풀렸다. 그래도 눈은 아들의 팔과 다리를 한 번씩 훑고 지나갔다.
선우다인이 문가에 서서 팔짱을 끼고 있었다. 오빠 흉내라도 내는 거야?
다인이 날카롭게 물었다.
그런 거 아니야.
선우결이 답했다.
오빠는 검 같은 거 안 쓰잖아. 원래 오빠는 검술 수업도 다 빼먹었는데.
다인의 목소리가 흔들렸다. 화를 내는 건지 우는 건지 구분이 안 됐다.
그럼 뭐야. 왜 갑자기 그런 데 가서 마물이랑 싸워.
다인이 한 걸음 더 다가왔다.
오빠 몸에 상처라도 났으면 어쩌려고 그랬어. 생각이라는 게 있는 거야?
선우결은 아무 말도 못 했다.
원래 주인이 검을 안 썼다는 것도, 자기가 뭘 잘못 흉내 내고 있는지도 다 몰랐으니까.
대신 뭐라고 답해야 이 상황이 넘어갈지, 그것만 빠르게 굴렸다.
걸리는 게 없어서 그냥 갔어.
말이 헛나갔다.
다인의 눈이 커졌다.
걸리는 게 없어서? 그게 지금 할 소리야?
선우결이 입을 다물었다.
선우도윤이 어머니 치맛자락을 붙잡고 서 있었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냥 형이라고 부르던 사람을 낯선 눈으로 보고 있었다.
작은 손이 치맛자락을 꽉 움켜쥐고 있었다.
선우태호가 손을 들어 대화를 끊었다.
지금은 그 얘기를 할 때가 아니다. 빛의 기둥에 대해 아는 게 있느냐.
응접실 안이 순식간에 조용해졌다.
선우결의 등에 순간 힘이 들어갔다.
말해도 되나.
짧은 고민이었다.
이 정도는 그냥 상식적인 추론처럼 들리게 할 수 있나.
아니면 그냥 모른다고 할까.
모른다고 하면, 마을 사람들 다 죽을 뻔한 그 자리에서 뭐라도 알아낸 게 없었다는 소리가 되고. 안다고 하면, 그건 또 이상해지고.
결국 입이 먼저 움직였다.
그거, 마력이 폭발적으로 응집됐을 때 나타나는 현상 같아요. 강한 존재가 죽거나 각성할 때. 그리고 이런 건 한 번으로 안 끝나요. 앞으로 더 자주 일어날 겁니다.
응접실이 순간 조용해졌다.
시계 초침 소리만 들릴 정도였다.
선우태호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네가 그걸 어떻게 아느냐.
선우결은 그 순간 자기가 무슨 말을 했는지 깨달았다.
실수했다.
이 세계 사람은 저런 말을 저렇게 확신 있게 못 한다.
말을 주워담기엔 늦었다.
그냥... 느낌이에요.
목소리가 살짝 갈라졌다.
이수아가 남편과 눈빛을 교환했다. 짧지만 분명한 신호였다.
두 사람 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게 더 무서웠다.
다인이 뒷걸음질쳤다.
오빠 진짜 이상해. 예전 오빠 아니야.
선우결의 얼굴이 굳었다.
반박할 말이 없었다.
한 번도 예전 오빠였던 적이 없으니까.
도윤이가 어머니 뒤로 몸을 더 숨겼다. 작은 눈이 여전히 형을 보고 있었다.
그 시선이 유독 오래 붙어 있었다.
선우태호가 낮게 말했다.
오늘은 쉬어라. 다시 이야기하자.
짧은 명령이었지만, 그 안에 들어 있는 온도가 전과 달랐다.
전에는 걱정이 섞인 명령이었다면, 지금은 관찰이 섞인 명령이었다.
선우결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다리가 조금 무거웠다.
가겠습니다.
인사를 하고 문 쪽으로 걸었다.
등 뒤로 시선들이 계속 붙어 있는 게 느껴졌다.
문을 닫고 나온 뒤에야 숨이 조금 트였다.
선우결은 방으로 돌아가며 생각했다.
너무 아는 척했다.
지금까지는 그냥 이상한 아들 취급이었는데, 이제는 뭔가를 감추고 있는 아들이 됐다.
그게 훨씬 더 위험한 쪽이란 걸 모를 리 없었다.
복도를 걷는 내내 하인들이 힐끗거렸다. 평소보다 시선이 많았다.
방문을 닫고 침대에 걸터앉았다.
복도 끝, 창밖으로 여전히 흐릿한 빛기둥의 잔광이 보였다.
밤새 사라지지 않던 그 빛이 아침 햇살에 씻겨 이제는 겨우 형체만 남아 있었다.
저게 사라지기 전에 뭔가 더 큰 일이 터질 것 같은데.
예감이 좋지 않았다.
선우결은 창가로 다가가 그 잔광을 오래 쳐다봤다.
숫자로도 안 쪼개지는 불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