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록으로 어둠 속에서 신을 조립하다

5화

칠흑의 미궁 입구. 강태호는 정신없이 던전을 향해 뛰고 있었다. 갑주 무게가 다리를 짓눌렀다. 숨이 턱까지 차올랐다. 발바닥이 돌바닥을 때릴 때마다 갑주 이음새가 삐걱거렸다. 손에 쥔 검집이 허벅지를 계속 때렸다. 아프다는 감각조차 지금은 사치였다. "강태호." 유하린이 뒤에서 소리쳤다. "속도 좀 줄여요." "줄일 수가 없어." 강태호의 목소리가 갈라져 있었다. "우리가 버린 게 뭔지 이제야 알았는데 어떻게 속도를 줄여." 오정민이 뒤에서 헐떡이며 따라붙었다. 그의 이마에서 땀이 뚝뚝 떨어졌다. "진짜 그 인형사가 만든 거라고?" "영상에 나온 거 봤잖아." 강태호가 소리쳤다. "등에 짐 가방 메고 있던 그 자세, 걸음걸이, 확실해. 그놈이야." "그럼 그놈이 그 괴물 같은 인형을 그 자리에서 만들었다는 거잖아. 우리가 버린 곳에서." "그래." 강태호의 얼굴이 창백했다. "F등급 인형사가 아니었어. 우리가 뭘 버렸는지도 모르고 버린 거야." 유하린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녀의 시선은 앞만 보고 있었다. 하지만 손끝은 검자루를 꽉 움켜쥐고 있었다. 그 손이 하얗게 변해 있었다. 던전 입구에 도착했다. 관리소 앞에 다른 모험가들이 이미 모여 있었다. 영상이 전역에 퍼진 만큼, 소식을 듣고 몰려든 이들이었다. 인파가 생각보다 많았다. 삼십 명은 족히 넘어 보였다. 다들 목을 빼고 관리소 창구 안쪽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몇몇은 휴대용 배송 화면을 손에 쥐고 그 영상을 재생하며 서로 수군거렸다. 강태호는 그 인파를 헤치며 나아갔다. 어깨가 부딪히고 발이 밟혔다.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강태호가 관리소 담당관에게 다가갔다. "10층 진입 허가를 받고 싶습니다." "불가능합니다." 담당관이 딱딱하게 답했다. "방금 중앙 길드에서 지시가 내려왔습니다. 10층 구역은 현재 특별 감시 대상입니다. 일반 파티의 진입은 전면 통제됩니다." "우리 파티원이 안에 있습니다." 강태호가 창구를 손으로 짚었다. 손바닥이 유리에 닿는 소리가 났다. "등록 기록을 확인했습니다." 담당관의 눈빛이 살짝 차가워졌다. "이도현 님은 현재 귀 파티에서 이탈 처리된 것으로 등록되어 있습니다. 강태호 님 파티장 명의로, 전투 불가 인원 자체 이탈 조치." 강태호는 아무 말도 못 했다. 버린 것을 스스로 등록까지 해놓은 것이었다. 그 문장이 귀에 박히는 순간 위장이 뒤틀리는 느낌이 들었다. 자신이 서명했던 종이 한 장이 떠올랐다. 그때는 별생각 없이 도장을 찍었다. 서류 위 이름 세 글자, 이도현. 그 이름 위에 자신의 손이 도장을 눌렀던 감촉이 아직도 손끝에 남아 있는 것 같았다. "그건." 그가 겨우 입을 열었다. "상황이 있었습니다." "저는 사정을 판단할 권한이 없습니다." 담당관이 서류를 넘겼다. "현재 10층에 있는 이도현 님은 독립 활동 인원으로 재분류되었습니다. 중앙 길드 오현석 길드장님 직인 하에 특별 보호 대상으로 지정되었습니다." "보호 대상." 유하린이 놀란 목소리로 물었다. "그게 무슨 뜻이죠." "말 그대로입니다. 이 던전 구역에서 이도현 님과 관련된 어떤 접근도 사전 승인이 필요합니다." "사전 승인이라니, 누구한테 받아야 하는 겁니까." 오정민이 끼어들었다. 그의 목소리도 떨리고 있었다. "중앙 길드 본부입니다. 절차는 별도로 문의하셔야 합니다." "절차, 절차." 오정민이 이를 악물었다. "우리 파티원이 던전 안에서 죽을 뻔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는 아무 절차도 없었는데." 담당관은 그 말에 대답하지 않았다. 서류를 정리하며 시선을 아래로 내렸다. 강태호의 손이 떨렸다. "우리는 파티였습니다." "현재는 아닙니다." 담당관이 단호하게 말을 끊었다. 관리소 앞에 모여 있던 다른 모험가들이 낮은 목소리로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그 파티가 그놈 버렸다는 파티래." "저 인형 만든 사람을 버렸다고?" "눈이 있는 거야 없는 거야." "F등급이라고 무시했다가 저 꼴 났나 보네." "쟤가 파티장이라며. 얼굴 좀 보자." 강태호는 그 시선들을 감당할 수 없었다. 목덜미가 뜨거워지고 등줄기로 식은땀이 흘렀다. 수십 개의 눈이 자신의 뒤통수와 옆얼굴을 훑고 지나가는 것이 느껴졌다. 그는 관리소를 벗어나 광장 한쪽으로 걸어갔다. 유하린과 오정민이 그 뒤를 따랐다. 광장의 돌바닥이 발밑에서 유난히 딱딱하게 느껴졌다. 광장 중앙에는 분수대가 있었고, 물 떨어지는 소리가 계속 들려왔다. 그 소리조차 지금은 신경을 긁는 것 같았다. "어떻게 해야 하지." 오정민이 물었다. "등급 심사원에 항의라도 해봐야 하는 거 아니야?" "우리 잘못이라고 이미 등록됐잖아." 유하린이 낮게 말했다. "강태호 이름으로." 그녀의 목소리에는 원망이 담겨 있지 않았다. 그저 사실을 확인하는 어조였다. 하지만 그 어조가 오히려 강태호를 더 무겁게 눌렀다. "내가." 강태호가 입을 열었다가 다시 닫았다. "내가 서명했어. 이도현이 자기 발로 나갔다고. 아니, 자기 발로 나간 게 아니라 우리가." 말이 이어지지 않았다. 오정민은 주먹을 쥐었다가 풀었다가 했다. 그의 시선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그때는 그게 맞다고 생각했어. F등급이었으니까. 짐이 될 거라고 생각했으니까." "그래서 버렸지." 유하린이 말을 잘랐다. "이제 와서 후회한다고 뭐가 달라져." 강태호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의 시선이 광장 한쪽에 걸린 대형 배송 화면으로 향했다. 방금 재생된 영상이 또 한 번 흘러나오고 있었다. 미노타우로스를 단 한 번의 주먹질로 무너뜨리는 장면. 그리고 그 뒤에 앉은 남자의 뒷모습. 화면 속 인형은 거대했다. 붉은 눈이 이글거리듯 빛났고, 관절 마디마디에서 삐걱거리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미노타우로스의 뿔이 부러지고, 몸통이 벽에 처박히는 순간, 광장에 서 있던 몇몇이 낮게 탄성을 질렀다. 그 뒤에 앉아 있는 남자는 아무 표정도 없었다. 그저 실을 다루듯 손가락을 몇 번 움직였을 뿐이었다. 그 움직임이 전투의 전부였다. 강태호는 그 화면을 오래도록 바라보았다. "저 자식은." 그가 낮게 중얼거렸다. "처음부터." 말을 끝맺지 못했다. 처음부터 뭐였다는 것인지, 자신도 알 수 없었다. 처음부터 이런 힘을 숨기고 있었다는 것인지, 처음부터 자신들이 잘못 봤다는 것인지, 아니면 처음부터 이렇게 될 운명이었다는 것인지. 유하린이 그의 옆에 섰다. 그녀의 눈도 화면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저 소녀는 누구지." 그녀가 물었다. 화면 한 켠에 작게 잡힌 검은 머리 소녀의 얼굴이 보였다. 표정이 없었다. 인형처럼 매끄러운 얼굴이었다. 하지만 그 눈동자만큼은 살아 있는 것처럼 또렷했다. "모르겠어." 강태호가 답했다. "저것도 그놈이 만든 건지, 아니면." 말이 다시 끊겼다. 광장 한쪽에서 낯선 목소리가 들려왔다. "강태호 님이시죠." 돌아보니, 검은 정장을 입은 낯선 남자가 서 있었다. 왕궁 문양이 새겨진 배지를 가슴에 달고 있었다. 남자의 걸음걸이는 조용했다. 인기척을 거의 내지 않고 다가온 것이었다. "누구십니까." 강태호가 경계하며 물었다. "왕실 재무성 소속입니다." 남자가 짧게 답했다. 그의 목소리는 낮고 건조했다. "이도현 님이라는 인형사에 대해 몇 가지 질문을 드리고 싶은데, 잠시 시간 되십니까." 강태호의 얼굴에서 핏기가 완전히 빠져나갔다. 왕궁까지 움직였다는 뜻이었다. 오현석의 길드도, 왕실 재무성도, 그리고 아마 그 밖의 다른 세력들까지. 오정민이 강태호의 옆구리를 슬쩍 찔렀다. "태호야, 저 배지." "봤어." 강태호가 낮게 답했다. "저거 왕실 문장이야. 저 등급 사람들이 여기까지 직접 나온다는 게 무슨 뜻인지 알잖아." 유하린은 남자를 훑어보았다. 정장의 재질, 구두의 광택, 넥타이의 매듭까지. 그녀의 시선이 그런 것들을 하나씩 확인하고 있었다. "질문에 답할 의무는 없는 것 같은데요." 그녀가 먼저 입을 열었다. "의무는 없습니다." 남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다만 협조해 주시면 여러분께도 도움이 될 겁니다. 지금 여러분의 등록 이력이 어떻게 처리될지, 아직 결정되지 않았거든요." 그 말에 오정민의 표정이 굳었다. "그게 무슨 뜻입니까." "말 그대로입니다." 남자는 웃지 않았다. 그저 사무적인 어조로 말을 이었다. "현재 여러분의 파티는 특별 보호 대상 인원을 유기한 혐의로 검토 대상에 올라 있습니다. 다만 자발적 진술과 협조 여부에 따라 처분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강태호의 손끝이 다시 차가워졌다. 모두가 한 사람을 향해 손을 뻗기 시작하고 있었다. 버려진 남자가, 이제는 세상이 가장 주목하는 존재가 되어 있었다. 강태호는 그 자리에서 아무 대답도 하지 못했다. 그의 등 뒤로, 배송 화면 속 검은 머리 소녀의 무표정한 눈동자가 여전히 그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 눈동자는 마치 모든 것을 이미 알고 있다는 듯, 미궁 입구에 선 세 사람을 조용히 지켜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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