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청하촌의 아침은 늘 비슷했다.
눈을 뜨면 해가 반쯤 떠 있고, 주점 뒷마당에 쌓인 장작을 패고, 의뢰판에 붙은 종이 몇 장을 뜯어 확인하고, 그중 가장 값이 나가는 걸 골라 챙기는 것.
삼 년째 반복하고 있는 하루였다.
장작 패는 손놀림도 이제 익숙했다. 도끼를 내리칠 때 손목을 살짝 트는 것도, 나무결을 봐가면서 힘을 조절하는 것도.
'검 쓰던 손으로 장작이나 패고 있으니, 참 팔자 좋다.'
오늘은 산짐승 퇴치 의뢰였다.
의뢰판에 붙은 종이 중에 가장 삯이 많았지만, 그래도 짜긴 짰다.
'삯이 짜긴 한데, 뭐 어쩌겠어. 이거라도 해야 밥 먹지.'
검을 허리에 걸고 나서려는데, 주점 문이 벌컥 열렸다.
낯선 여자가 서 있었다.
금발을 단정하게 묶고, 백색 갑주 위에 대현국 문양이 박힌 겉옷을 걸친 채였다.
갑주는 반짝거리는 게 아니라 손질이 잘 된 무광이었다. 실전용이란 얘기다.
키는 나보다 반 뼘쯤 크고, 눈매는 순해 보이는데 자세는 흐트러짐이 없었다.
서 있는 자세만 봐도 알 수 있었다. 검을 배운 사람이 서는 방식이었다.
'저건 딱 봐도 기사단 정복인데.'
청하촌 같은 촌구석에 기사단 인물이 발을 들일 일은 거의 없었다. 아니, 거의가 아니라 아예 없었다. 여기까지 오는 데만 마차로 사흘은 걸리는 곳이다. 대체 뭘 하러.
"이서하 님?"
그녀가 물었다. 존댓말이었다. 말끝이 살짝 올라갔다.
목소리는 낮았고, 발음은 또박또박했다. 훈련받은 말투다.
"누구시죠."
나는 대답 대신 되물었다. 검 손잡이를 슬쩍 만졌다. 습관이다.
"한도희입니다. 대현국 제3기사단 소속입니다."
'기사단이 나한테 뭔 볼일이야.'
등에서 식은땀이 한 줄 흘렀다.
추방된 지 삼 년이 지났는데, 이제 와서.
그때 일을 다시 들쑤시러 온 건 아니겠지. 설마.
머릿속으로 삼 년 전 일을 빠르게 되짚었다. 딱히 걸리는 게 없어도 불안한 건 어쩔 수 없었다.
"용병 이서하 님과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 왔습니다."
"할 얘기 없는데요."
나는 검을 다시 고쳐 메고 문밖으로 나갔다. 이런 건 빨리 끊는 게 낫다.
그녀가 따라붙었다. 걸음이 가볍고 조용했다. 발소리가 거의 안 났다.
'저거 훈련 잘 받은 발놀림이네.'
괜히 감탄이 나왔다. 감탄할 상황은 아니었지만.
기사단에서 저 정도 보행법을 가르치는 건 정식 기사단원한테나 하는 거였다. 나는 배우다 말고 쫓겨나서 몰랐다.
"'준기사' 제도에 대해 들어보셨습니까?"
"몰라요. 관심 없고."
"기사단 인력이 부족해 신설된 제도입니다. 정식 기사가 되지 않고도 기사단의 임무를 함께 수행할 수 있죠."
"그래서요."
"이서하 님을 추천하고 싶습니다."
걸음을 멈췄다.
산짐승 의뢰 따위는 이미 머릿속에서 사라졌다.
'추천? 나를? 검녀라고 손가락질하면서 쫓아낸 게 누군데.'
3년 전 그 얼굴들이 스쳐 지나갔다. 등 돌리던 동료들, 소행 불량이라는 딱지, 짐 챙겨 나가라는 통보.
그런 걸 겪고도 다시 그쪽에서 뭘 원한다고?
"저 기사단에서 쫓겨난 사람인데요."
"알고 있습니다."
"소행 불량으로."
"그것도 알고 있습니다."
그녀는 흔들림 없이 나를 바라봤다.
눈빛이 이상했다. 조사하러 온 사람의 눈빛이 아니었다.
뭔가를 확인하러 온 것 같은, 아니 확신을 갖고 온 것 같은 눈빛.
'뭐야, 저 표정.'
사람을 저런 눈으로 보는 건 두 가지 경우다. 뭔가 알고 있거나, 뭔가 노리고 있거나.
둘 다 나한테는 별로 좋은 상황이 아니었다.
"관심 없어요. 돌아가세요."
나는 그대로 걸어갔다. 등 뒤로 시선이 느껴졌다. 계속 나를 보고 있는 게 뻔했다.
등 뒤에서 그녀의 목소리가 따라왔다.
"다시 찾아오겠습니다."
"오지 마세요."
"이서하 님이 필요합니다."
그 한마디가 이상하게 등골을 긁었다.
필요하다는 말을 들은 게 언제였는지 기억도 안 났다.
쫓겨날 때 들은 말은 필요 없다는 말이었지, 필요하다는 말이 아니었다.
'필요는 얼어죽을. 그냥 갈 길 가.'
산짐승 의뢰지로 향하는 발걸음이 자꾸 늦어졌다.
뒤를 돌아보고 싶었는데 참았다. 돌아보면 뭔가 지는 것 같았다.
산은 조용했다.
가을이라 낙엽이 발밑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다.
짐승 발자국을 따라 걷는 동안에도 머릿속에는 그 여자의 얼굴이 계속 어른거렸다.
금발, 순한 눈매, 그러나 흔들리지 않는 목소리.
'저런 사람이 왜 나를.'
발자국은 오래된 것도 있고 새것도 있었다. 냄새로 대충 방향을 잡았다.
칼자국이 난 나무를 발견했을 때쯤엔 이미 해가 중천이었다.
'여기서 좀 크게 놀았나 보네.'
바위 뒤에서 낮게 울리는 숨소리가 들렸다.
멧돼지였다. 생각보다 몸집이 크지 않아서 다행이었다. 이런 놈이면 칼질 세 번이면 끝난다.
검을 뽑는 순간에도 그 여자 목소리가 귓가에 남아 있었다.
'필요합니다.'
'집중해, 이서하. 지금 딴생각할 때 아니잖아.'
몸을 낮추고 숨을 죽였다. 바람의 방향을 먼저 확인했다. 냄새로 위치를 들키면 안 되니까.
멧돼지가 코를 킁킁대며 방향을 틀었다. 지금이다.
의뢰는 순조롭게 끝났다. 짐승은 생각보다 크지 않았고, 칼질 세 번으로 끝이 났다.
첫 번째는 목덜미를 얕게 그어 균형을 무너뜨리고, 두 번째는 다리를 베어 움직임을 막고, 세 번째로 마무리했다.
피 묻은 검을 닦으며 나는 잠깐 숨을 골랐다.
삼 년 만에 처음으로, 몸이 아니라 머리가 복잡했다.
칼질은 몸이 기억하고 있어서 저절로 나가는데, 머릿속은 그 여자가 한 말을 계속 곱씹고 있었다.
'준기사라니. 그런 제도가 언제 생겼대.'
'추천이라니. 나같은 걸 왜.'
멧돼지 사체를 대충 처리하고, 증표로 삼을 이빨만 챙겨서 내려왔다. 어깨가 뻐근했다.
마을로 돌아오는 길, 주점 앞에 그녀가 다시 서 있었다.
같은 자세, 같은 표정으로.
마치 내가 돌아올 걸 알고 있었다는 듯이.
해는 벌써 저물어가고 있었는데, 그 자리에서 얼마나 서 있던 건지 짐작도 안 됐다.
'……아까 분명히 오지 말라고 했는데.'
"또 오셨네요."
"네."
"말했잖아요, 관심 없다고."
"압니다."
"그런데요."
그녀가 살짝 웃었다. 처음 보는 표정이었다.
아침에 봤던 그 딱딱한 얼굴이랑은 완전히 달랐다.
'저 여자도 웃을 줄 아네.'
"내일 다시 오겠습니다. 조건을 하나 더 준비해서요."
조건이라는 말에 순간 목덜미가 서늘해졌다.
'무슨 조건인데. 뭔데 저 표정으로 말하는 건데.'
물어보고 싶었지만, 자존심이 발을 붙잡았다.
저 여자가 뭘 알고 저러는 건지, 아니면 그냥 밑도 끝도 없이 나를 찾아온 건지 감이 안 잡혔다.
이럴 땐 먼저 물어보는 쪽이 지는 거였다.
"필요 없어요."
"들어보시면 생각이 달라지실 겁니다."
말투는 여전히 딱딱했는데, 눈빛은 아까보다 조금 더 부드러워져 있었다.
사람을 이렇게 빤히 보는 여자는 처음이었다. 뭘 그렇게 확신하는 건지.
그녀는 그렇게 말하고 돌아섰다.
갑주 위로 떨어지는 저녁 햇빛이 유난히 눈부셨다.
등에 진 검집이 걸을 때마다 조금씩 흔들렸다. 저 검, 실제로 써본 검이라는 걸 그 흔들림만 봐도 알 수 있었다.
나는 그 뒷모습을 한참 바라보다가, 검을 고쳐 메고 주점 안으로 들어갔다.
'내일 또 온다고?'
주점 안은 평소처럼 술 냄새가 진하게 배어 있었다. 자리에 앉아 술잔을 시켰다.
주인장이 흘깃 나를 보더니 말을 걸었다.
"밖에 있던 그 갑옷 입은 여자, 아는 사람이야?"
"아뇨."
"그런데 왜 저렇게 오래 서 있었대."
"그건 저도 몰라요."
거짓말은 아니었다. 진짜로 몰랐으니까.
술잔을 들며 나는 생각했다.
저 여자, 보통내기가 아니다.
조건을 준비하겠다는 말이 계속 머릿속을 맴돌았다. 대체 뭘 준비한다는 건지.
기사단에서 쫓겨난 나한테 다시 손을 내밀 만한 조건이 뭐가 있을까.
'설마 그때 그 일이랑 관련된 건가.'
떠올리고 싶지 않은 기억이 슬쩍 스쳐 지나갔다. 나는 술잔을 비우며 그 생각을 억지로 밀어냈다.
그리고 나는, 아직 그 이유를 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