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
‹ ›그녀가 안내한 곳은 마을 뒤편의 폐허가 된 사당이었다.
가는 길부터 이상했다. 큰길에서 벗어나 좁은 산길로 접어들더니, 인적이 완전히 끊긴 곳까지 데려갔다.
'설마 여기서 나 죽이려는 거 아니지.'
말도 안 되는 생각이었지만, 어쩐지 완전히 부정하기도 힘들었다.
사당은 오래전에 버려진 듯했다. 지붕 반쪽이 허물어져 있어서 대낮인데도 그늘이 짙었고, 바닥에는 마른 낙엽이 켜켜이 쌓여 걸을 때마다 바스락 소리가 났다.
공기 중에는 곰팡이 냄새와 흙냄새가 뒤섞여 있었다.
'하필 이런 데를 골랐어.'
왠지 좋은 이야기는 안 나올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그리고 그 예감은, 곧 정확했다는 게 밝혀졌다.
"말씀하세요."
나는 팔짱을 낀 채 벽에 등을 기댔다. 벽에서 서늘한 냉기가 등을 타고 올라왔다.
한도희는 잠시 나를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
한도희. 명문 기사단 소속의 정식 기사이자, 이 지역 준기사 심사를 담당하는 인물이었다. 서류상으로는 냉정하고 원칙적인 사람으로 알려져 있었다. 그래서 지금 이 상황이 더 이해가 안 됐다.
"준기사 제도에 참여하시면, 정식 기사에 준하는 임무를 수행하시게 됩니다. 급여, 숙소, 장비는 모두 기사단에서 지급됩니다."
"그런 건 이미 아는 얘기고요."
나는 손가락으로 팔뚝을 톡톡 두드렸다. 빨리 본론으로 들어가라는 무언의 압박이었다.
"조건이 하나 더 있습니다."
그녀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왔다.'
드디어 진짜 얘기가 나오는구나 싶었다. 처음부터 이상하다 싶었다. 이렇게 인적 없는 곳까지 데려와서 할 얘기가 그냥 급여, 숙소 얘기일 리가.
"저와의 계약을 통해서만 준기사 등록이 가능합니다."
"계약이라는 게 뭔데요."
그녀는 잠깐 눈을 내리깔았다가, 다시 나를 정면으로 봤다. 그 짧은 순간의 침묵이 유독 길게 느껴졌다.
"제 개인적인 후원 아래에서만 등록이 승인됩니다. 그리고 그 후원의 조건은,"
말이 잠깐 끊겼다.
나는 마른침을 삼켰다.
'뭔데. 왜 말을 끊어.'
사당 안이 갑자기 더 어두워진 것 같았다. 실제로는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을 텐데.
"저와 육체적인 관계를 맺는 것입니다."
순간 공기가 멈춘 것 같았다.
귀를 의심했다.
'……뭐라고?'
잘못 들은 게 아닌가 싶어서, 머릿속으로 방금 그 문장을 몇 번이나 다시 재생했다. 아무리 돌려봐도 같은 문장이었다.
"지금 뭐라고 하셨어요."
"들으신 대로입니다."
"장난치는 거예요?"
"아닙니다."
그녀의 표정은 여전히 담담했다. 눈썹 하나 움직이지 않았고, 입꼬리도 그대로였다.
오히려 그 담담함이 더 소름 끼쳤다.
'저 여자, 진심으로 하는 말이잖아.'
장난이나 시험 같은 거였으면 차라리 마음이 편했을 텐데. 저 눈빛은 그런 종류가 아니었다.
"미친 거 아니에요?"
"제 입장에서 드리는 정직한 제안입니다."
"정직한 제안이라니, 사람을 뭐로 보고."
목소리가 커졌다.
낡은 사당 안에 내 목소리가 울렸다. 허물어진 지붕 틈으로 새들이 놀라 날아오르는 소리가 들렸다.
한도희는 흔들리지 않았다.
오히려 한 발 다가섰다.
거리가 가까워지자 그녀의 체향이 느껴졌다. 은은한 비누 냄새 같은 거였는데, 지금 이 상황에서는 전혀 반갑지 않은 감각이었다.
"저는 이서하 님의 실력을 존경합니다. 국경 전투에서의 활약도, 이후 부당하게 추방당한 사정도 모두 알고 있습니다."
"그게 이거랑 무슨 상관인데요."
"상관없습니다. 별개의 문제입니다."
'별개면 왜 이런 걸 조건으로 걸어.'
등에 식은땀이 흘렀다.
화가 나는 건지, 당황스러운 건지, 아니면 다른 뭔가인지 구분이 안 됐다.
그냥 이 자리를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과, 이 여자가 대체 무슨 생각으로 이런 말을 하는 건지 끝까지 들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동시에 들었다.
'와, 나 진짜 이상한 애다.'
"제가 여자를 좋아한다는 것도 알고 그러시는 거예요?"
나는 일부러 뾰족하게 물었다.
찔러보려는 심산이었다.
놀라서 물러나면, 이 어이없는 제안도 끝날 거라고 생각했다. 보통 사람이라면 여기서 흔들려야 했다.
하지만 그녀는 눈도 깜빡이지 않았다.
"알고 있습니다. 그것도 조사했습니다."
'조사까지 했다고?'
어이가 없어서 헛웃음이 나올 뻔했다. 이 여자, 이 제안을 하기 전에 나에 대해서 얼마나 파헤친 거야.
사생활 침해로 신고라도 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저도 여자를 좋아합니다."
그 한마디에, 나는 순간 말을 잃었다.
예상 밖의 대답이었다.
협박이나 강요를 예상했는데, 저 말투는 오히려 너무 솔직했다.
당황해서 물러나기를 기대했던 내 계획이 완전히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그러니까, 이건 강요가 아니라 서로에게 필요한 거래라고 생각합니다."
"거래요."
"이서하 님은 준기사 자리와 명예 회복의 기회를 얻고, 저는."
그녀가 말을 멈추고 나를 똑바로 봤다.
눈빛이 흔들리는 게, 처음으로 보였다. 지금까지의 담담함과는 확실히 다른 결이었다.
"저는 이서하 님을 원합니다."
짧고 단호한 말이었다.
순간 목덜미가 뜨거워졌다.
'뭐야, 이거. 이 상황에서 왜 이렇게 정직해.'
차라리 애매하게 돌려 말했으면 화만 내고 끝났을 텐데, 저렇게 직진으로 나오니 뭐라고 반박해야 할지 감이 안 잡혔다.
나는 팔짱을 풀지 않은 채 그녀를 노려봤다.
마음속으로는 이미 백 가지 욕이 지나갔지만, 입 밖으로는 한마디도 나오지 않았다.
'이 미친 여자야. 사람을 뭐로 보고. 아니, 근데 왜 얼굴은 저렇게 진지해.'
욕과 당황스러움이 뒤섞여서 어느 것도 제대로 말로 튀어나오지 못했다.
"생각할 시간을 드리겠습니다."
한도희가 한 발 물러났다. 마치 지금까지 한 말이 아무렇지도 않은 일상적인 업무 보고였던 것처럼, 표정이 다시 원래대로 돌아왔다.
"사흘 후 다시 오겠습니다. 그때 답을 주시면 됩니다."
그녀는 그렇게 말하고 사당을 나갔다.
발소리가 낙엽을 밟으며 점점 멀어지다가, 이내 완전히 사라졌다.
나는 한참을 그 자리에 서 있었다.
'말도 안 되는 소리야. 절대 안 해.'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머릿속에서는 자꾸 다른 목소리가 끼어들었다.
명예 회복.
다시 기사가 될 기회.
그리고 그 여자의 눈빛.
솔직히 말하면, 지금 내 상황에서 준기사 자리는 목숨줄이나 다름없었다. 추방당한 이후로 제대로 된 일자리 하나 구하기도 힘들었고, 수중의 돈은 이미 바닥을 보이고 있었다.
그런데 그 조건이라니.
'차라리 돈으로 받았으면 고민도 안 했지.'
사당 지붕 틈으로 저녁 햇살이 스며들었다. 붉은빛이 먼지 낀 공기 사이로 비스듬히 떨어졌다.
나는 그 빛을 바라보며 오래도록 움직이지 않았다.
발밑의 낙엽 위로 그림자가 길게 늘어졌다가, 해가 기울면서 서서히 짙어졌다.
'사흘이라니. 그 사이에 뭘 어떻게 생각하라고.'
답은 이미 정해져 있는 것 같았는데, 왜 이렇게 마음이 복잡한지 알 수가 없었다.
아까 그녀가 나를 똑바로 보며 했던 말, "저는 이서하 님을 원합니다"라는 그 목소리가 자꾸 귓가에 남았다.
그리고 그게 자꾸 남는다는 사실이, 무엇보다 나를 가장 불편하게 만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