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
‹ ›말발굽 소리가 가까워질수록, 나는 설아의 손을 조금 더 세게 붙잡았다. 흙바닥을 두드리는 그 소리는 처음엔 먼 곳에서 울리는 잔잔한 진동 같았는데, 시간이 갈수록 점점 또렷해지면서 마치 심장이 귓가에 옮겨 붙은 것처럼 쿵쿵거리기 시작했고, 그 리듬에 맞춰 마을 사람들의 표정도 하나둘 굳어갔다. 설아 역시 그 소리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고 있는 듯, 몸을 파르르 떨며 내 뒤로 숨으려 했는데, 그녀의 손끝이 내 옷자락을 움켜쥐는 힘이 생각보다 강해서 나는 그녀가 이 순간을 얼마나 두려워하고 있는지 새삼 깨달았다.
"조태민 님이 보낸 용병단이에요..." 하고 그녀가 작게 중얼거렸는데, 그 목소리가 미세하게 갈라지는 걸 보며 나는 그녀가 이런 상황을 여러 번, 아니 셀 수 없이 겪어봤다는 걸 짐작할 수 있었다. 눈동자에 서린 익숙한 공포, 도망칠 곳을 찾듯 주변을 살피는 시선, 그 모든 게 반복된 학습의 결과처럼 보였고, 나는 그것이 못내 마음에 걸렸다.
곧 마을 광장으로 십여 명의 용병들이 말을 타고 들어섰다. 말발굽이 흙을 파헤치는 소리와 함께 뽀얀 먼지구름이 광장 전체를 뒤덮었는데, 그 먼지 사이로 앞장선 사내의 형체가 서서히 드러났다. 험상궂은 인상에 어깨가 유독 넓었고, 갑옷 위에 걸친 검은 망토가 바람에 펄럭이는 모습이 나름 위압적이었다. 그가 바로 흑랑단을 이끄는 두목, 곽거한이라는 이름을 가진 자였다는 걸, 나는 나중에서야 알게 되었다.
마을 사람들은 그 등장만으로도 익숙한 공포에 사로잡힌 듯, 각자의 집 문틈 사이로 슬쩍 몸을 숨기거나 시선을 바닥으로 떨궜는데, 그 모습이 마치 이런 광경을 처음 보는 게 아니라는 걸 증명하는 것 같았다. 누군가는 아이의 입을 손으로 틀어막았고, 누군가는 그저 조용히 뒷걸음질만 쳤다. 요컨대, 이 마을에서 흑랑단의 존재는 이미 하나의 재난처럼 각인되어 있었다는 뜻이었다.
"들었다. 촌놈 하나가 우리 애들을 두들겨 패고 물건을 훔쳤다고?" 하고 곽거한이 말에서 내리며 소리쳤는데, 그 목소리에는 상대를 짓누르려는 특유의 위압감이 배어 있었다. 마을 사람들은 그 말에 슬금슬금 뒷걸음질 치며 거리를 벌렸고, 그 간격이 벌어질수록 나와 설아 두 사람만 광장 한복판에 남겨지는 그림이 완성되고 있었다.
"저 애는 물건이 아니라 사람입니다." 라고 내가 대답했더니, 곽거한이 잠시 멈칫하며 나를 위아래로 훑어봤다. 그 시선에는 명백한 비웃음이 담겨 있었는데, 마치 '이 애송이가 뭘 안다고 나서나' 하는 조롱이 그대로 얼굴에 드러나는 것 같았다.
"물건이든 사람이든 그건 조태민 님이 정하는 거지, 니가 정할 일이 아니야." 하고 그가 말하며 허리춤의 대검을 뽑아 들었는데, 그 칼날이 오후의 햇빛을 받아 서늘하게 빛났다. 나는 그 칼날의 길이와 무게를 눈으로 가늠하며, 저 정도 부피의 강철이라면 한 번 크게 휘두를 때 상당한 반동이 뒤따를 거라는 계산을 무의식적으로 하고 있었다.
"돌려주지 않으면, 이 마을 전체가 곤란해질 텐데." 라는 협박이 곧바로 뒤따라왔고, 나는 그 말에서 이 남자가 마을 사람들을 인질처럼 이용하려 한다는 걸 읽어냈다. 그 순간 마을 사람들 사이에서 낮은 신음이 흘러나왔다. 그들의 눈빛에는 두려움과, 동시에 나를 향한 원망 같은 것도 살짝 섞여 있었다. '왜 괜히 일을 크게 만드냐'는 무언의 질책이었을 텐데, 나는 그 시선을 무시하기로 했다. 어차피 이 자리에서 물러선다고 상황이 좋아질 리도 없었고, 설아를 다시 저들 손에 넘기는 일 같은 건 처음부터 선택지에 없었으니까.
"이 마을에 해를 끼치겠다는 거면, 먼저 나부터 상대해야 할 겁니다." 라고 말하며 앞으로 나섰다. 곽거한이 대검을 고쳐 쥐며 코웃음을 쳤다.
"애들 팔 하나 부러뜨렸다고 기고만장해진 모양인데, 니가 상대할 건 걸음마 배운 애송이들이 아니야." 라고 말했고, 그 말이 끝나기도 전에 그가 땅을 박차며 달려들었다. 그 스타트가 예상보다 빨라서, 순간적으로 등줄기가 서늘해졌던 것도 사실이었다.
부우욱!
대검이 허공을 가르는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는데, 나는 그 궤적을 이미 계산하고 있었다. '지식의 서고'가 실전 데이터를 학습한다는 시스템 문구가 떠올랐던 게 방금 전이었으니, 이번엔 그 학습된 정보가 더 정교하게 작동할 거라는 예감이 있었다. 곽거한의 어깨 각도, 팔꿈치의 꺾임, 심지어 발끝이 지면을 파고드는 순서까지도 마치 미리 재생해둔 영상처럼 눈앞에 그려졌는데, 이게 스킬 덕분인지 아니면 그냥 내가 죽기 직전까지 몰려서 감각이 극한으로 곤두선 건지는 나조차 알 수 없었다.
[스킬 '지식의 서고'가 상위 개체의 전투 데이터를 수집합니다. 대응 정밀도가 상승합니다.]
'...이게, 되네...?'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나는 대검의 궤적을 아슬아슬하게 피하며 곽거한의 옆구리로 파고들었다. 그리고 팔꿈치로 그의 갈비뼈 부근을 정확히 가격했다.
퍼억!
곽거한이 헉, 하는 소리를 내며 뒤로 밀려났다. 그의 표정에서 처음으로 당혹감이 스쳤는데, 그 짧은 순간의 균열이 나에게는 확신을 주는 신호였다. '이 사람도 결국 사람이구나' 하는, 지극히 당연하면서도 방금 전까지는 확신할 수 없었던 사실이 눈앞에서 증명되고 있었다.
"...뭐야, 이 새끼." 하고 그가 중얼거리며 다시 자세를 잡았는데, 나는 이번에도 상대의 다음 동작이 눈에 훤히 보였다. 팔의 미세한 근육 움직임, 발의 무게중심 이동, 그 모든 게 슬로모션처럼 읽혔다. 곽거한이 이번엔 대검을 짧게 끊어 치는 방식으로 바꿔 들어왔는데, 그 변화조차도 이미 예상 범주 안에 있었다는 게 스스로도 좀 어이가 없었다. 상대는 나름 실전을 오래 겪어본 자였을 텐데, 그 경험치가 오히려 데이터로 환산되어 내게 그대로 흡수되고 있었으니, 이건 그야말로 웃기지도 않는 상성이었다.
곽거한이 대검을 크게 휘두르며 달려들자, 나는 그 칼날의 궤적 아래로 몸을 낮춰 파고든 뒤 그의 손목을 붙잡았다. 그리고 관절의 약한 방향으로 힘을 실었다. 손목의 각도, 인대가 버틸 수 있는 한계치, 그 모든 게 계산되어 있던 것처럼 딱 맞아 들어갔는데, 실제로 계산했다기보다는 몸이 먼저 반응해버린 쪽에 가까웠다.
콰드득!
대검이 손에서 떨어져 나갔고, 곽거한은 비명을 삼키며 무릎을 꿇었다. 그 순간 눈앞에 새로운 알림이 떠올랐다.
[알림: '무명의 탑' 위상 감지 - 등록되지 않은 강자와의 실전 전투가 확인되었습니다.]
[특이 사항: 해당 전투의 결과가 세계 기록에 반영됩니다.]
[기록: '비각성자 상태에서의 강자 제압' - 세계 최초 기록으로 등록됩니다.]
나는 그 문구를 보며 얼떨떨한 기분에 빠졌다. '세계 최초라니, 이게 뭔 소리야.'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지금은 그 알림을 곱씹을 여유가 없었다. 무명의 탑이라는 게 대체 어떤 존재인지, 왜 이런 사소한 촌구석 싸움까지 감지하고 기록으로 남기는지, 그런 의문들은 일단 뒤로 미뤄야 했다. 지금 중요한 건 눈앞에서 무릎 꿇은 사내와 그 뒤에 늘어선 부하들이었으니까.
곽거한이 부하들을 향해 소리쳤다.
"뭐 하냐, 다 덤벼!" 라고 외쳤지만, 부하들은 오히려 서로 눈치만 보며 뒷걸음질 쳤다. 방금 목격한 광경이 그들에게도 충격이었던 모양이었다. 누군가는 창을 고쳐 쥐다가 슬그머니 내려놓았고, 누군가는 아예 시선을 돌려 다른 곳을 쳐다봤는데, 그 미묘한 동요가 오히려 곽거한의 얼굴을 더 붉게 만들었다.
결국 곽거한은 부러진 손목을 부여잡고 부하들과 함께 말에 올라 도망치듯 마을을 떠났다. "이 일, 조태민 님께 반드시 보고할 거다!" 라는 마지막 협박을 남기며, 그는 흙먼지를 일으키며 광장을 벗어났고, 그 뒷모습이 완전히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아무도 쉽사리 입을 열지 못했다.
마을 사람들 사이에서 낮은 함성과 웅성거림이 터져 나왔다. 누군가는 나를 신기하게 쳐다봤고, 누군가는 여전히 불안한 눈빛으로 이 일이 앞으로 어떤 파장을 불러올지 걱정하는 눈치였다. 한 노인이 조심스럽게 다가와 "젊은이, 자네 대체 뭐하는 사람인가..." 하고 물었지만, 나는 그 질문에 뭐라 답해야 할지 몰라 그냥 어색하게 웃어넘겼다. 사실 나조차도 내가 뭐하는 사람인지 정확히 설명할 수 없었으니까.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방금 내가 이긴 상대는 그저 지역 용병단의 두목 하나일 뿐이었지만, 그 뒤에는 조태민이라는, 이 지역 노예상 조합을 쥐고 있는 훨씬 더 거대한 세력이 있다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곽거한 하나를 눕혔다고 해서 문제가 끝난 게 아니라, 오히려 지금부터가 진짜 시작이라는 불길한 감이 뇌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설아가 조심스럽게 내 옷자락을 다시 잡아왔다. 그녀의 손끝은 여전히 떨리고 있었는데, 방금까지의 긴장이 채 가시지 않은 탓인지,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는 건지 나로서는 알 수 없었다.
"주인님, 저 때문에..." 하고 그녀가 작게 말했는데, 나는 그 말을 자르며 고개를 저었다.
"네 잘못이 아니야." 라고 말했지만, 그녀는 여전히 시선을 바닥에 고정한 채 입술을 살짝 깨물고 있었다. 아마도 자신 때문에 마을 전체가, 그리고 나까지 위험에 처했다는 죄책감을 떨쳐내지 못하는 모양이었는데, 나는 그런 그녀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려주는 것 말고는 달리 해줄 말이 없었다.
마을 사람들의 웅성거림 속에서, 나는 방금 벌어진 일의 무게를 다시금 되짚어봤다. 흑랑단의 두목을 맨손으로 제압했다는 사실, 그리고 그 결과가 '무명의 탑'이라는 알 수 없는 존재에 의해 세계 기록으로 남았다는 사실. 이 두 가지만으로도 충분히 머리가 복잡했는데, 거기에 더해 조태민이라는 이름이 던지는 무게감까지 생각하면, 오늘의 승리가 그다지 홀가분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마음 한구석에서는 이 일이 절대 여기서 끝나지 않을 거라는 불길한 예감이 스쳐 지나갔고, 그 예감은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더 짙어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