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록으로 다정함이라는 죄

4화

정령석 이야기는 다음 날 아침상에서 자연스럽게 나왔다. "연구용으로 가져온 거예요." 서하은이 웃으며 말했다. "청하촌 근처에 정령 서식지가 있다고 들어서, 겸사겸사 채집도 하려고요." 나는 그 말을 별다른 의심 없이 받아들였다. 명예 교수쯤 되면 그런 일을 하러 다니는 게 당연했으니까. 국경을 넘나들며 채집 허가를 받아내는 것도, 위험 서식지에 홀로 들어가는 것도, 그녀에게는 이미 익숙한 일일 터였다. 다만 그녀가 그 병을 손에서 놓지 않는다는 점이 조금 신경 쓰였다. 밥을 먹는 중에도, 국을 뜨는 중에도, 병은 늘 그녀의 무릎 위나 팔꿈치 옆에 있었다. 마치 그것이 사라지면 큰일이라도 나는 것처럼. '귀한 연구 재료니까 그럴 수도 있지.' 나는 그렇게 스스로를 다독였다. 학자들이 자기 표본에 유난스러운 건 흔한 일이었다. 나 역시 예전엔 실험용 마정석 하나를 잃어버릴까 봐 하루 종일 주머니에 넣고 다닌 적이 있었으니까. 식사가 끝나고 소이가 마당으로 나가자, 나는 서하은에게 뒤뜰의 작업실을 보여주겠다고 했다. 예전 학술원에서 쓰던 실험 도구 몇 개를 옮겨와 소소하게 연구를 이어가던 공간이었다. 작업실 문을 열자 익숙한 냄새가 났다. 마른 약초와 쇳가루, 오래된 종이 냄새가 뒤섞인, 나만의 냄새였다. "여기서 계속 연구를 하시는군요." 서하은이 도구들을 둘러보며 말했다. 선반 위에 놓인 증류 장치와 눈금이 다 지워진 유리병들, 손잡이가 낡은 저울까지 하나하나 눈으로 훑는 게 보였다. "학술원에서 나오신 게 아깝지 않으세요?" "아깝지 않다." 나는 짧게 대답했다. "여기가 더 마음에 든다." "그래도… 학술원이었으면 지금보다 훨씬 큰 예산으로, 훨씬 좋은 장비로 하실 수 있었을 텐데요." "장비가 좋으면 결과가 좋아지는 게 아니라, 손이 좋으면 결과가 좋아지는 거다." 서하은이 그 말에 작게 웃었다. 예전에 내가 그녀에게 자주 해줬던 말이라는 걸, 그녀도 기억하는 눈치였다. 그녀는 잠시 말없이 서 있다가,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선생님. 그때, 정령을… 제가 그렇게 만든 거, 정말로 제 잘못이 아니었을까요?" 오래 묵혀둔 질문이었다. 목소리에 물기가 살짝 섞여 있었다. 나는 그 질문을 정면으로 받아들였다. "네 잘못이 아니었다." 나는 그녀의 눈을 보며 말했다. "실험은 원래 예측 불가능한 변수를 안고 있는 거고, 너는 그 변수 안에서 최선을 다했어. 그 뒤로 칠 년, 너는 그 실수를 발판으로 세상에서 가장 큰 성취를 이뤘다. 나는 그걸로 됐다고 생각한다." 말을 끝내고 나서, 나는 그녀가 안도할 거라고 생각했다. 칠 년 전 사고 이후로 그녀가 몇 번이나 편지에 같은 질문을 써 보냈는지 나는 알고 있었다. 이제라도 그 질문에 제대로 답을 해줬으니, 마음의 짐 하나가 내려갈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녀의 표정은 반대였다. 눈에 눈물이 차올랐다가, 이내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선생님이… 그렇게 말씀해주시니까." 목소리가 심하게 흔들렸다. "제가 지금까지 버틴 이유가, 그거였어요. 언젠가 선생님이 그렇게 말씀해주실 날을요." 나는 순간 뭔가 잘못 짚었다는 느낌을 받았다. '위로를 하려던 것뿐인데.' 그런데 그 위로가 그녀에게는 다른 무게로 얹힌 모양이었다. 마치 칠 년을 버텨온 무언가가 그 한마디로 완결된 것처럼, 그녀의 어깨가 무너지듯 떨렸다. '그렇게까지 무겁게 들을 말이었나.' 나는 그 순간을 깊이 생각하지 않고 넘겼다. 위로의 말이 크게 문제 될 리는 없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사람마다 마음의 짐을 내려놓는 방식이 다른 거라고, 그 정도로만 정리했다. 그날 오후, 나는 서하은과 함께 마을 뒷산의 정령 서식지로 향했다. 산길은 좁고 습했고, 발밑에서 이끼 냄새가 올라왔다. 그녀가 정령석 채집을 하는 동안, 나는 근처에서 지형을 살펴봤다. 예전 논문에서 읽었던 서식지 조건과 실제 지형이 얼마나 맞아떨어지는지 확인하는 건, 오랜 습관이었다. 채집 도중, 서하은이 갑자기 손을 떨었다. 정령석을 담은 병을 놓칠 뻔했고, 그녀는 황급히 두 손으로 그것을 감싸 안았다. 병이 바닥에 닿기 직전, 그녀의 손끝이 아슬아슬하게 그것을 받아냈다. "괜찮으냐?" "괜찮아요. 그냥, 손이 좀…" 그녀는 말을 흐리며 손을 뒤로 숨겼다. 나는 그 손이 잠깐이지만 심하게 떨리고 있었다는 걸 봤다. 손가락 마디마디가 하얗게 질려 있었다. '단순한 긴장은 아니었다.' 그건 몸 전체가 떠는 것에 가까웠다. 어깨부터 손끝까지, 마치 오한이 들었을 때처럼. 나는 그것을 오랜만의 야외 활동 탓이라고 생각하려 했지만, 어딘가 마음에 걸렸다. 명예 교수라는 자가, 채집 몇 번에 저렇게 손을 떨릴 리는 없었다. "쉬었다 가자." "아니에요, 얼마 안 남았어요." 그녀는 오히려 걸음을 서둘렀다. 병을 품에 안은 채, 나를 앞질러 걸어갔다. 그 등을 보며 나는 잠깐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무언가를 서둘러 끝내려는 사람의 등이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서하은은 유난히 내 옆에 붙어 걸으며 계속 말을 걸었다. 학술원 이야기, 앞으로의 계획, 그리고 다시 한 번 그날의 위로에 대한 감사. "저 요즘 학회에서 발표를 준비하고 있는데, 선생님 이름을 꼭 넣고 싶어요. 선생님 덕분에 여기까지 왔다고, 사람들 앞에서 말하고 싶어요." "그럴 필요 없다." "아니요, 저는 그러고 싶어요." 그녀는 단호하게 말을 잘랐다. 평소의 조심스러운 말투와는 다른, 어딘가 절박한 어조였다. "선생님 덕분에 저는 앞으로 나갈 수 있을 것 같아요." 그 말이 오히려 불안하게 들렸다. 앞으로 나간다는 말이 아니라, 그 말을 하는 그녀의 눈빛 때문이었다. 무언가에 매달리는 듯한, 놓치지 않으려는 눈빛. 나는 그 눈빛을 어디서 본 적이 있다는 느낌이 들었지만, 정확히 어디였는지는 떠오르지 않았다. 다만 한 가지는 분명했다. 저 병 안에 담긴 게, 정말로 그녀가 말한 '정령석'뿐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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