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쇠사슬이 살을 파고드는 소리는 익숙해지지 않는다.
철컹.
왼쪽 어깨에서부터 아무것도 없는 허공까지 이어진 사슬이 흔들렸다. 무게 중심이 무너질 때마다 어깨뼈가 뻐근하게 당겨졌다. 팔은 없다. 잘려나간 지 오래다. 정확히 언제였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셈을 세다가 관뒀다. 세는 게 의미가 없었으니까.
양발도 마찬가지였다. 무릎 아래로는 텅 빈 공기뿐이었다. 가끔 그 텅 빈 자리가 가렵다는 착각이 들 때가 있다. 없는 발가락이 저릿하다는 느낌, 그거 진짜 지랄 맞다.
【재생 완료. 상처 없음.】
또 뜨는구나, 이 알림.
몸은 멀쩡하다는 소리다. 겉만 보면 그렇다는 뜻이다. 뼈가 붙었고 피부가 돋았고 감염도 없다는 뜻이지, 팔다리가 돌아왔다는 뜻이 아니다.
실제로는 팔다리가 통째로 사라진 상태로 '완료'라고 뜨는 게 우습지 않나. 이거 만든 놈이 있다면 한번 물어보고 싶다. 이게 완료의 기준이냐고. 팔 없이 사는 인생도 완료냐고.
전생에 경찰이었을 때는 이런 알림 같은 거 없었다. 무전기에서 나오는 건 지령이었지, 회복 완료 같은 헛소리가 아니었다. 순찰 나가서 사고 접수받고, 과속 차량 잡고, 술 취한 아저씨 파출소까지 부축해서 데려다주던 게 내 일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다르다. 눈을 뜬 순간부터 시야 한쪽이 아예 캄캄했다.
오른쪽 눈이었다. 실명이다.
그마저도 회복 마법이 손을 대지 못하는 부위였다. 신기하지, 팔다리는 새로 자라난 것처럼 재생시켜주는 마법이 눈 하나는 죽어도 못 고친다.
왜? 그 여자가 매번 정확히 같은 자리를 뭉개놨기 때문이다. 처음엔 우연이라고 생각했다. 두 번째부터는 확신했다. 세 번째부터는 그냥 익숙해졌다. 익숙해지면 안 되는 걸 익숙해하는 거, 그게 여기서 제일 무서운 부분이었다.
발걸음 소리가 들렸다.
또각, 또각.
돌바닥을 밟는 그 소리만으로도 위장이 뒤틀렸다. 침샘이 바짝 마르고 명치 아래가 조여왔다. 신체가 먼저 반응한다. 머리로 생각하기 전에 몸이 먼저 안다.
【대상 접근 중. 심박수 상승.】
"이제 그런 것도 알려주냐."
혼잣말이 갈라져 나왔다. 목이 오래 말라 있었다. 물 마신 게 언제였는지도 가늠이 안 됐다. 이 방에서는 시간이 흐르지 않는 것 같기도 하고, 너무 빠르게 흐르는 것 같기도 했다.
발걸음은 규칙적이었다. 조급함도, 망설임도 없었다. 마치 출근하는 사람의 걸음걸이 같았다. 아, 이 여자한테 이게 출근인가. 그럼 나는 뭐냐, 근무 대상이냐.
딸깍, 하고 문고리가 돌았다.
경첩이 낮게 삐걱거렸다. 문이 반쯤 열렸다가 완전히 열렸다.
[그 여자]가 들어왔다.
얼굴은 항상 어둠에 가려 보이지 않았다. 후드 때문인지, 아니면 마법 때문인지 알 수 없었다. 몇 번을 다시 보려고 눈을 부릅떠봐도 그 자리엔 그늘만 있었다. 얼굴이 없는 게 아니라, 얼굴을 보는 게 허락되지 않는 느낌이었다.
"오늘도 회복이 다 됐구나."
목소리는 다정했다. 정말로 다정했다.
그게 제일 소름 끼쳤다.
이런 목소리로 사람을 안심시키고, 그다음에 팔을 자르는 거다. 다정함과 폭력이 같은 성대에서 나온다는 게, 나는 아직도 적응이 안 됐다.
"실험은 끝나지 않았어."
손에 들린 건 얇고 긴 도구였다. 뭔지는 안다. 매번 쓰던 그거다. 은빛으로 번쩍이는 얇은 침 같은 것, 그게 몸에 박히면 통증이 뇌를 그대로 관통하는 것 같았다. 소리를 지르는 것도 지쳐서 이제는 그냥 이를 악물기만 했다.
심장이 미친 듯이 뛰었다.
도망칠 수도 없었다. 다리가 없으니까.
【전투 불가. 이동 불가.】
"당연히 알지, 그것도."
비꼬았지만 목소리에 힘이 없었다. 힘이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그런 게 남아있질 않았다. 이 방에 들어온 뒤로 내가 가진 거라곤 사슬에 매달린 몸뚱이와 아직 죽지 않은 정신뿐이었다.
그 여자가 다가왔다. 도구가 빛을 반사했다.
한 걸음, 한 걸음, 그 거리가 좁아질 때마다 숨이 얕아졌다. 뇌가 미리 통증을 예상하고 근육을 긴장시키는 게 느껴졌다. 실제로 아무것도 닿지 않았는데도 벌써 아픈 것 같았다.
그 순간이었다.
콰앙!
위쪽에서 굉음이 터졌다.
먼지가 쏟아지고 천장 일부가 무너졌다. 돌가루가 눈앞을 뒤덮었다. 파편이 바닥에 튕겨 나가는 소리가 귓속을 때렸다.
"뭐, 뭐야."
그 여자가 처음으로 멈췄다. 목소리에 균열이 생겼다.
처음이었다. 몇 번인지 셀 수도 없이 이 방에 들어왔던 그 여자가, 처음으로 당황한 목소리를 낸 게.
계단 쪽에서 발소리가 쏟아졌다. 하나가 아니었다. 여럿이었다. 갑옷 부딪는 소리, 무기가 벽에 부딪히는 소리, 다급한 숨소리가 뒤섞여 밀려왔다.
"찾았습니다! 이쪽입니다!"
낯선 목소리였다. 다급하고, 동시에 어딘가 익숙했다.
【구조 대상 확인. 이도윤.】
뭐?
구조라고? 지금까지 여기서 누가 나를 찾은 적이 있었나? 얼마나 오래 갇혀 있었는지도 모르는데, 갑자기 저 계단 위에서 나를 부르는 사람들이 나타났다는 게 실감이 안 났다.
그 여자가 몸을 돌렸다. 후드 아래에서 처음으로 표정 비슷한 게 움직였다.
"···벌써 여기까지 왔구나."
낮게 중얼거린 그 말이, 지하실 전체를 채운 냉기보다 더 차가웠다.
그 한 마디에 담긴 게 뭔지는 모르겠다. 짜증인지, 실망인지, 아니면 다른 뭔가인지. 어쨌든 좋은 신호는 아니었다.
문 쪽에서 갑옷 부딪는 소리가 났다.
짧은 정적이 흘렀다.
이 정적이 이상하게 길게 느껴졌다. 먼지가 서서히 가라앉는 시간, 등불이 흔들리며 그림자가 벽을 타고 넘어가는 시간. 그 짧은 몇 초 사이에 심장이 몇 번이나 뛰었는지 셀 수 없었다.
그리고 누군가가 문턱을 넘어섰다.
실루엣이 등불에 비쳐 흔들렸다. 갑옷을 입은 체격, 손에 쥔 검, 그리고 그 뒤로 몇 명이 더 있었다.
"도련님···?"
숨이 턱 막혔다.
목소리가 떨렸다. 울먹이는 게 분명했다.
그런데 나는, 저 목소리가 누구인지 알 수 없었다.
분명 안다는 느낌은 있는데, 이름이 떠오르지 않았다. 얼굴을 보면 뭔가 익숙한 실루엣인데, 그게 누구인지 연결이 안 됐다. 마치 서랍은 있는데 안에 든 게 텅 비어버린 느낌이었다.
【기억 손상 감지.】
또 새로운 알림이었다.
이건 또 뭔데.
이제는 몸에서 알림이 나오는 게 놀랍지도 않았다. 팔 없음, 다리 없음, 눈 없음, 이제는 기억도 없음. 이러다 아예 사람이 아니라 알림 덩어리가 되는 거 아닌가.
그 여자가 도구를 다시 치켜들었다.
"아직 안 끝났는데."
웃음기가 사라진 목소리였다.
뒤에서 누군가 검을 뽑는 소리가 울렸다.
챙, 하는 쇳소리가 지하실 벽에 부딪혀 여러 번 울렸다. 발소리가 뒤섞이고, 짧은 신음 같은 것이 새어 나왔다. 누군가 "물러서지 마!"라고 외치는 소리도 들렸다.
쇠가 부딪히는 소리, 발소리, 비명 비슷한 것들이 뒤섞였다.
나는 그 자리에서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그저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팔도 없고 다리도 없는 몸으로 뭘 어떻게 하겠나. 사슬에 매달린 채로 응원이라도 해줘야 하나. 그것마저도 지금 이 상황에서는 사치스러운 생각이었다.
그 여자와 침입자 사이에 처음으로 정면 충돌이 벌어졌다.
등불이 흔들리며 벽에 부딪힌 그림자들이 커졌다 작아졌다 했다. 그 여자의 후드 자락이 바람에 날리듯 펄럭였고, 검광이 어둠 속을 갈랐다.
그리고 그 한복판에서, 나는 문득 깨달았다.
이 순간, 뭔가가 시작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