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록으로 추방당했더니 다들 반하네요

3화

던전 안쪽 통로는 점점 넓어졌다. 천장이 높아지고 공기가 서늘해졌다. 발밑의 돌바닥에는 물기가 배어 있었다. 벽을 따라 늘어선 이끼는 어둠 속에서도 희미하게 빛을 냈다. 걸음을 옮길 때마다 신발 밑창이 축축한 돌에 달라붙었다가 떨어지는 소리가 났다. 찌걱, 찌걱. 강여진이 앞장서서 걷고 있었다. 그녀의 시선은 벽과 천장, 바닥을 번갈아 훑고 있었다. 던전 특유의 습기와 곰팡이 냄새, 그리고 그 사이로 스며드는 몬스터의 비린내. 익숙한 것들이었다. 하늬가 걸음을 멈추고 코를 킁킁거렸다. 콧등이 살짝 찌푸려졌다. "사람 냄새." 서은하가 지팡이를 고쳐 쥐었다. 손끝에 닿는 지팡이의 서늘한 감촉이 평소보다 더 차가웠다. "다른 파티가 있나 봐요." 김판수는 아무 말 없이 배낭끈을 다시 조였다. 그의 시선이 통로 안쪽, 소리가 들려오는 방향으로 향했다. 모퉁이를 돌자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쪽으로 다시 몰아!" 최강혁의 목소리였다. 김판수는 걸음을 멈췄다. 창천 패왕단이었다. 몬스터 무리를 상대로 어지럽게 흩어진 채였다. 넓은 공간 한가운데, 몬스터 열 마리 남짓이 불규칙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늑대형 몬스터들이었다. 이빨을 드러내며 낮게 울부짖는 소리가 벽을 타고 울렸다. 최강혁이 검으로 마법을 쏘아내고 있었다. 검신에서 뻗어나간 빛의 궤적이 늑대 한 마리의 목을 갈랐다. 소라와 지민, 유나가 그 뒤를 받치며 화염구를 날리고 있었지만, 진형이 무너져 있었다. 원래대로라면 소라가 좌측, 지민이 우측, 유나가 후방에서 마력을 공급하는 형태였을 것이다. 지금은 세 사람이 한곳에 몰려 있었다. 늑대 두 마리가 그 틈을 파고들었다. 서은하가 상황을 살피며 눈을 좁혔다. "저쪽 상태가 좋지 않은데요." 실제로 그랬다. 몬스터의 공격이 거의 그대로 파티원들에게 닿고 있었다. 예전 같으면 있었을 결계가 없었다. 투명한 막. 은은한 빛의 테두리. 파티 전체를 감싸던 그 얇은 보호막이 지금은 흔적조차 없었다. 강여진이 지팡이 끝을 살짝 들어 올렸다. "도와줄까요?" 서은하가 짧게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아직은." 늑대 한 마리가 지민의 다리를 향해 뛰어올랐다. 지민이 뒤로 몸을 던지며 화염구를 쏘았다. 명중했다. 하지만 균형이 무너졌다. 그녀의 등이 돌벽에 부딪혔다. "아!" 작은 신음이 흘러나왔다. 최강혁이 몬스터 하나를 베어내며 뒤를 돌아봤다. 그리고 임시 파티를 발견했다. "어? 판수 씨?" 놀란 목소리였다. 검을 쥔 손이 잠깐 멈췄다. 김판수는 조용히 고개만 숙였다. 최강혁은 곧 표정을 고쳤다. 허세 섞인 웃음이 다시 떠올랐다. "이야, 벌써 새 파티 구했어요? 빠르네." "네." 짧은 대답이었다. 최강혁의 시선이 강여진과 서은하, 그리고 그 뒤에 서 있는 하늬를 훑었다. 뭔가 평가하는 눈빛이었다. 하지만 오래 머물지는 않았다. 늑대 한 마리가 다시 그를 향해 달려들었다. 최강혁이 검을 휘둘러 막아냈다. "우리는 잘 지내고 있습니다. 보다시피." 그가 검을 휘둘러 마지막 몬스터를 쓰러뜨렸다. 그 동작에는 확실히 힘이 있었다. 공격력만큼은 여전했다. 검신이 허공을 가르는 소리가 날카로웠다. 하지만 그의 등 뒤로, 소라가 다리를 절뚝이며 뒤로 물러나는 모습이 보였다. 오른쪽 종아리 부근, 천이 찢어진 자리로 피가 배어 나오고 있었다. 지민의 팔에는 붕대가 감겨 있었다. 붕대 위로 얼룩진 핏자국이 이미 마른 채였다. 최근에 입은 상처가 아니라는 뜻이었다. 유나의 마력이 눈에 띄게 옅어져 있었다. 그녀가 손을 들어 화염구를 만들어낼 때마다, 불꽃의 크기가 조금씩 줄어들고 있었다. 강여진이 그것을 놓치지 않았다. "저기, 다치신 거 아니에요?" 소라가 발끈했다. 턱을 살짝 치켜들었다. "괜찮아요. 이 정도는." 목소리에 날이 서 있었다. 하지만 그녀의 다리는 여전히 조금씩 떨리고 있었다. 최강혁이 손을 저으며 끼어들었다. "별일 아닙니다. 이 던전이 원래 좀 까다로워서요. 판수 씨 없어도 우리끼리 충분히 클리어할 수 있습니다." 말투는 가벼웠다. 하지만 그의 이마에는 땀이 배어 있었다. 검을 쥔 손등에는 힘줄이 도드라져 있었다. 그 말이 끝나자마자, 통로 안쪽에서 다시 낮은 울림이 들려왔다. 웅— 돌바닥이 흔들렸다. 최강혁의 표정이 순간 굳었다. "...또야?" 지민이 지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벽에 등을 기댄 채였다. "강혁아, 이번 웨이브까지 버틸 수 있어?" "당연하지." 최강혁이 대답했지만, 목소리에 확신이 부족했다. 검을 고쳐 쥐는 손가락이 미세하게 떨렸다. 유나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마력이... 얼마 안 남았어요." "조금만 더 버텨." 최강혁이 말했다. 명령이라기보다는 부탁처럼 들렸다. 서은하는 그 짧은 대화를 놓치지 않았다. 그녀의 시선이 최강혁에서 김판수에게로, 다시 최강혁에게로 오갔다. 방금 전 자신들이 마주했던 몬스터 웨이브. 그리고 지금 이 파티가 마주하고 있는 것. 규모가 비슷했다. 숫자도, 개체의 등급도. 그리고 자신들은, 김판수의 결계 덕분에 손쉽게 넘겼다. 지팡이를 들 필요조차 없었다. 화살 하나 날릴 필요조차 없었다. 결계 안에서 몬스터들은 그저 부딪혀 튕겨 나갔을 뿐이었다. 그런데 지금 눈앞의 이 파티는, 같은 규모의 몬스터를 상대로 피를 흘리고 있었다. 마력을 소진하고 있었다. 다리를 절뚝이고 있었다. 서은하의 머릿속에서 뭔가가 조용히 정리되고 있었다. 아직 완전한 형태는 아니었다. 하지만 방향은 분명했다. 최강혁이 헛기침을 하며 말을 돌렸다. "아무튼, 저희는 계속 진행하겠습니다. 판수 씨도 새 파티에서 잘 지내시길." 그가 손을 들어 파티원들을 이끌고 통로 반대편으로 향했다. 소라가 지나가며 강여진과 서은하를 힐끗 보았다. 눈빛에 묘한 감정이 섞여 있었다. 경계인지, 비웃음인지 알 수 없었다. "저 사람 데려가서 뭐 하시려고요? 밥이나 해주는 것 말곤 딱히..." 말을 끝맺지 못했다. 통로 저편에서 다시 울림이 들려왔기 때문이다. 웅— 이번엔 더 컸다. 돌바닥이 눈에 보일 정도로 흔들렸다. 벽에 붙은 이끼 조각이 후드득 떨어졌다. 최강혁이 급하게 파티원들을 몰아붙였다. "빨리 움직여!" 소라가 하려던 말을 삼키고 몸을 돌렸다. 절뚝이는 다리를 끌면서도 걸음은 빨랐다. 창천 패왕단이 서둘러 사라졌다. 그들의 발소리가 통로 저편으로 멀어져 갔다. 급하게 뛰는 발소리, 무기가 갑옷에 부딪히는 쇠 소리, 지친 숨소리. 그 모든 것이 뒤섞여 점점 작아지다가, 마침내 완전히 사라졌다. 하늬가 그 뒷모습을 바라보며 눈을 가늘게 떴다. 코를 한 번 더 킁킁거렸다. "저 사람들, 괜찮은 거예요?" "모르겠어요." 강여진이 짧게 대답했다. 그녀의 시선도 여전히 통로 끝을 향해 있었다. 서은하는 여전히 침묵하고 있었다. 그녀의 시선은 방금 최강혁이 사라진 통로 끝에 고정되어 있었다. 지팡이를 쥔 손끝이 조금씩 힘을 잃어갔다. 김판수는 그저 배낭을 고쳐 메고 있었다. 딱히 걱정하는 기색도, 미련이 남은 기색도 없었다. 그의 손길은 담담했다. 배낭끈을 조이는 동작 하나하나가 평소와 다르지 않았다. "괜찮을 겁니다." 그가 짧게 말했다. "어떻게 알아요?" 서은하가 물었다. 목소리에 뭔가 날이 서 있었다. "그냥, 저 사람들 실력은 원래 좋으니까요." 실력은 좋다. 그 말은 사실이었다. 검을 다루는 최강혁의 손끝은 분명 노련했다. 소라와 지민, 유나의 화염구 역시 정확했다. 다만 그 실력을 받쳐주던 것이 무엇이었는지, 최강혁은 아직 모르고 있었다. 몇 달 동안 그들이 마주한 던전은 늘 수월했다. 몬스터의 공격은 늘 빗나가는 듯했고, 상처는 늘 가벼웠다. 그들은 그것을 자신들의 실력이라 믿었다. 김판수는 그 믿음을 굳이 깨려 하지 않았다. 깨뜨릴 이유도 없었다. 서은하는 그 대답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이유는 알 수 없었다. 그냥,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녀는 잠시 입을 다물고 있다가, 다시 물었다. "저 사람들 마력이 다 떨어지면 어떻게 되는 거죠?" "글쎄요." 김판수가 답했다. 시선은 여전히 배낭끈에 머물러 있었다. "저는 이제 그 파티 사람이 아니라서요." 그 말에는 어떤 감정도 묻어 있지 않았다. 서은하는 그 무심함이 오히려 더 마음에 걸렸다. 하늬가 두 사람 사이의 공기를 눈치채고 슬쩍 끼어들었다. "그만 가죠. 이러다 우리도 다음 웨이브 맞겠어요." 강여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 서두르죠." 네 사람은 다시 걸음을 옮겼다. 던전은 아직 절반도 남아 있지 않았다. 통로는 계속 안쪽으로 이어졌다. 벽을 따라 스며드는 습기, 발밑에서 느껴지는 미세한 진동. 아까보다 공기가 더 무겁게 느껴졌다. 서은하의 지팡이 끝에 남은 마력이, 그녀 스스로도 알아채지 못한 채 조금씩 옅어지고 있었다. 지팡이 끝의 작은 보석이 평소보다 어두운 빛을 내고 있었다. 그녀는 그것을 알지 못했다. 앞을 향한 시선, 앞서 걷는 강여진의 뒷모습, 그리고 저 멀리 사라진 최강혁 일행의 잔상. 그것들이 그녀의 신경을 붙잡고 있었다. 김판수는 조용히 그 뒤를 따라 걸었다. 그의 눈은 통로 벽을 훑고 있었다. 습관처럼, 벽에 새겨진 문양을 찾고 있었다. 점. 선. 물결. 탑. 아직은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알고 있었다. 이 던전 어딘가에, 그 문양이 반드시 새겨져 있을 것이라는 걸. 던전 안쪽에서 또 한 번, 낮은 울림이 들려왔다. 웅— 이번엔 아까보다 훨씬 가까운 곳에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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