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록으로 선배, 제가 지킬게요

2화

그날 이후, 류나겸의 세계는 완전히 뒤바뀌었다. 교문을 들어서는 순간부터 시선이 달라졌다. 어제까지 인사를 건네던 아이들이 오늘은 눈을 마주치지 않았다. 신발장 앞에서 마주친 같은 반 아이는 나겸을 보자마자 휴대폰을 들어 화면에 얼굴을 파묻었다. 우연이라고 하기엔, 너무 정교한 회피였다. 복도를 걸으면 사람들이 슬쩍 몸을 피했다. 어깨가 닿을 듯 스칠 때마다, 마치 오염된 것을 피하듯 몸을 틀었다. 처음엔 착각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하루, 이틀, 사흘이 지나도 그 반응은 변하지 않았다. 급식실에서는 그의 옆자리가 비어 있었다. 아니, 정확히는 그가 앉으면 옆자리가 비었다. 식판을 든 아이들이 자리를 찾다가 나겸을 발견하면, 방향을 틀어 다른 테이블로 갔다. 그 순간의 미세한 발걸음 변화를, 나겸은 이제 눈을 감아도 그릴 수 있을 정도였다. 담임은 형식적으로 물었다. — 정말 그런 일이 있었나? 목소리에는 확인하려는 의지가 없었다. 그저 절차를 밟는 듬성듬성한 말투였다. 나겸은 아니라고 대답했다. 담임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 고개 끄덕임에는 아무런 믿음이 담겨 있지 않았다. 오히려 '역시 그렇게 나올 줄 알았다'는 듣기 좋은 무관심에 가까웠다. 담임은 서류를 정리하듯 상담을 마무리했고, 나겸은 교무실 문을 나서며 뒤통수가 뜨거워지는 걸 느꼈다. 하수아, 이봄, 추가영은 여전히 그를 피해자로 지목하며 다녔다. 셋은 항상 붙어 다녔다. 복도에서 나겸과 마주치면, 세 사람은 약속이라도 한 듯 동시에 시선을 피하며 목소리를 낮췄다. 그 낮춘 목소리가 오히려 더 크게 들렸다. 누군가 들으라고 하는 말처럼. 서준은 그 세 사람을 지켜주는 기사처럼 굴었다. 쉬는 시간마다 그들 곁을 지켰고, 누군가 나겸에 대해 물으면 정색하며 대신 대답했다. "걔 얘기는 하지 마." 그 한마디에 반 아이들은 더 이상 묻지 않았다. 서준의 말은 곧 규칙이 됐다. 우기환은 뒤에서 조용히 웃고 있었다. 겉으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서준의 어깨를 툭 치거나, 하수아 옆에서 고개를 끄덕이는 정도였다. 하지만 나겸이 지나갈 때, 우기환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가는 걸 본 사람은 나겸뿐이었다. 집에 돌아온 나겸은 방문을 닫고 침대에 걸터앉았다. 손끝이 떨리고 있었다. 가방을 내려놓을 힘도 없었다. 신발도 벗지 않은 채로 침대 끝에 앉아, 나겸은 한동안 벽만 바라봤다. '왜 나야.' 의문은 답 없이 맴돌았다. 우기환과는 특별한 접점도 없었다. 원한도, 다툼도 없었다. 지난 학기 내내 대화를 나눈 적도 몇 번 안 됐다. 그런데 왜 자신이 선택되었는지, 나겸은 알 수 없었다. 머릿속으로 몇 번이나 그날을 되짚어 봤다. 체육 시간, 탈의실, 우기환이 다가와 짧게 몇 마디를 건넸던 순간. 그 순간이 어떻게 이런 결과로 이어졌는지, 아무리 되짚어도 논리적인 연결점을 찾을 수 없었다. 거울 속 자신의 눈은 이미 며칠간 잠을 설친 사람처럼 시커멓게 그늘져 있었다. 나겸은 손을 들어 뺨을 만졌다. 차가웠다. '졸업까지... 1년 6개월.' 나겸은 손가락을 접어가며 날짜를 셌다. 삼백 며칠, 아니 더 정확히 세면 5백 몇십 일. 지금 견디면, 그 시간이 지나면 이 학교를 떠날 수 있다. 다시는 이 얼굴들을 안 봐도 된다. 그 계산은 이상하게도 위로가 됐다. 숫자로 환산된 고통은 견딜 만한 것처럼 느껴졌으니까. '그때까지만 버티면 돼.' 결심은 단단했다. 누구에게도 해명하지 않기로 했다. 해명해도 믿어주지 않을 걸 알고 있었으니까. 이미 몇 번 시도했었다. 담임에게, 반장에게, 심지어 하수아 본인에게도. 돌아온 건 냉소와 의심뿐이었다. 그저 조용히, 눈에 띄지 않게, 시간을 견디는 것. 그게 지금 그가 세울 수 있는 유일한 계획이었다. 나겸은 불을 끄고 이불을 뒤집어썼다. 어둠 속에서 숨소리만 남았다. 후우—, 길게 내뱉은 숨이 이불 속에서 흩어졌다. 그 시각, 같은 학교 1학년 교실에서는 다른 풍경이 펼쳐지고 있었다. 윤소은은 창가에 앉아 휴대폰을 만지며 서준의 SNS를 들여다보고 있었다. 밝은 갈색 머리를 한쪽으로 넘긴 사이드테일이 창으로 들어오는 바람에 살짝 흔들렸다. 서준의 게시물에는 벌써 댓글이 수백 개 달려 있었다. 대부분이 그를 응원하는 내용이었다. '역시 서준이는 착해', '수아랑 애들 지켜주는 거 완전 남주 같아', '저런 선배 진짜 몇 없는데'. 소은은 스크롤을 내리며 댓글을 하나씩 읽었다. 손끝이 화면 위에서 멈췄다가, 다시 움직였다. '선배는 착한 사람이니까... 뭔가 오해가 있는 거겠지.' 그렇게 되뇌면서도, 소은은 며칠 전 복도에서 마주쳤던 나겸의 눈을 잊을 수 없었다. 억울함이 아니라, 억울함조차 포기한 듯한 눈이었다. 그 눈은 무언가를 애써 참는 것도 아니었다. 이미 다 포기한 사람의 눈이었다. 그 눈이 자꾸만 마음에 걸렸다. 소은은 휴대폰을 내려놓고 창밖을 바라봤다. 운동장 저편으로 서준이 친구들과 웃으며 걸어가는 모습이 보였다. 우기환도 그 옆에 붙어 있었다. 소은의 시선이 우기환에게 오래 머물렀다. '저 사람... 왠지 표정이 이상해.' 웃고 있는데, 그 웃음 아래에 다른 것이 숨어 있는 것 같았다. 소은은 그 느낌을 정확히 설명할 수 없었지만, 무언가가 그녀의 마음을 계속 긁어댔다. 문득, 지난주 급식실에서 봤던 장면이 떠올랐다. 우기환이 하수아에게 뭔가를 속삭이던 순간. 그 직후 하수아의 표정이 미묘하게 굳었던 것도. 그때는 그냥 지나쳤던 기억인데, 지금 다시 떠올리니 이상하게 걸렸다. 소은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야, 내가 너무 예민한 거야.' 하지만 그렇게 스스로를 다독여도, 마음 한구석에 박힌 의문은 사라지지 않았다. 그날 밤, 소은은 침대에 누워 천장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선배가 진짜 그런 사람일까?' 의심은 아직 작았다. 손톱만큼도 안 되는, 아주 미세한 균열이었다. 하지만 그 작은 의심은, 그녀가 처음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크고 무거운 것으로 자라날 준비를 하고 있었다. 소은은 몸을 뒤척이다가 다시 휴대폰을 들었다. 화면 속 서준의 사진을 한참 바라보다가, 문득 나겸의 이름을 검색창에 입력해봤다. 아무것도 나오지 않았다. 나겸은 SNS도 하지 않는 아이였다. 그 텅 빈 검색 결과가, 이상하게도 소은의 마음을 더 무겁게 만들었다. 아무 목소리도 낼 수 없는 사람. 소문 속에서만 존재하는 사람. 그 침묵이 소은에게는 어떤 대답보다도 크게 들렸다. 소은은 휴대폰을 가슴 위에 내려놓고 눈을 감았다. 잠은 쉽게 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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