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록으로 맨션아, 오늘도 부탁해

2화

알람이 울리기도 전에 눈이 떠졌다. 몸이 먼저 깨어난 건지, 무언가가 나를 깨운 건지 알 수 없었다. 천장을 잠시 올려다봤다. 창밖은 아직 어스름했고, 방 안 공기는 서늘하게 가라앉아 있었다. 나는 몸을 일으켜 침대 머리맡에 놓아둔 휴대폰을 집어 들었다. 화면을 켜자 눈이 시릴 정도로 밝은 빛이 쏟아졌다. 눈을 몇 번 깜빡이며 화면에 시선을 고정했다. 신호는 다시 잡혀 있었다. 안테나 표시가 정상적으로 서 있는 걸 확인하고 나서야 어깨에서 조금 힘이 빠졌다. 그런데 화면 상단, 알림창 한 줄이 낯설게 걸려 있었다. [일부 지역 긴급 재난 문자 전송 지연] 터치해봤지만 더 이상의 내용은 나오지 않았다. 그저 그 한 줄뿐이었다. (또 뭔 일이야.) 나는 짧게 중얼거리며 휴대폰을 내려놓았다. 요즘 워낙 이상한 일들이 많았어서, 이 정도 알림은 그냥 넘길 수 있는 수준이라고 스스로를 다독였다. 몸을 일으켜 화장실로 향했다. 찬물로 얼굴을 씻어내자 정신이 조금씩 선명해졌다. 거울 속 내 얼굴은 평소와 다르지 않았다. 그저 조금 더 피곤해 보이는 정도였달까. 수건으로 얼굴을 닦으며 거울을 한 번 더 들여다봤다. (별일 없겠지.) 출근 준비를 마치고 현관을 나섰다. 골목은 평소와 다름없이 조용했다. 가로수 잎사귀가 바람에 흔들리는 소리, 저 멀리서 들리는 새소리, 어딘가에서 문 여닫는 소리. 늘 듣던 아침의 소음이었다. 다만 공기 중에 미묘한 냄새가 섞여 있었다. 비 온 뒤 흙냄새 같기도 했고, 어딘가 탄 것 같기도 한 냄새였다. 나는 코를 찡그리며 그 냄새의 근원을 찾아 주위를 둘러봤다. 하지만 어디에도 그럴 만한 흔적은 보이지 않았다. 비가 온 것도 아니었고, 근처에 화재가 난 것도 아니었다. (이상하네.) 나는 애써 신경 쓰지 않기로 하고 골목 어귀를 향해 걸었다. 발걸음이 보도블록 위를 규칙적으로 두드렸다. 탁, 탁, 탁. 익숙한 리듬이었다. 그런데 골목 끝, 가로등 아래에 시선이 멈췄다. 무언가 검은 것이 서 있었다. 처음엔 그저 누군가 내놓은 쓰레기봉투인가 싶었다. 동네에서 종종 보던 풍경이었으니까. 하지만 몇 걸음 더 다가가자, 그 형체가 미묘하게 흔들리고 있다는 걸 알아차렸다. 바람 때문인가, 하고 생각했지만 그날 아침 공기는 거의 정지해 있었다. 나뭇잎도 흔들리지 않았고, 전선도 미동이 없었다. 그런데 저것만 흔들리고 있었다. 스윽. 어깨 같은 부분이 움찔거리는 듯 보였다. 심장이 조금 빨라졌다. 나는 걸음의 속도를 늦췄다. (뭐지, 저거.) 머릿속에서 여러 가지 가능성이 스쳐 지나갔다. 동네 고양이가 봉투를 헤집고 있는 걸까. 아니면 누군가 이불이나 옷가지를 저렇게 버려둔 걸까. 하지만 그 어떤 설명도 지금 눈앞의 광경과 딱 맞아떨어지지 않았다. 나는 걸음을 멈추고 그 자리에 섰다. 검은 형체는 사람보다 조금 더 크고, 윤곽이 뭉개진 듯 흐릿했다. 마치 누군가 검은 물감을 붓으로 대충 칠해놓은 것 같은, 경계가 명확하지 않은 형상이었다. 가로등 불빛이 그 위를 스치고 지나갔지만, 형체는 빛을 반사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 자리의 어둠이 더 짙어지는 느낌이었다. 주변 골목의 다른 곳은 가로등 불빛으로 은은하게 밝았는데, 저 형체가 서 있는 자리만큼은 마치 빛이 빨려 들어가는 듯 보였다. 나는 그 대비가 만들어내는 이질감에 등줄기가 서늘해졌다. (저기만 왜 저렇게 어두운 거지.) 그때였다. 형체가 아주 천천히, 내 쪽으로 고개를 돌리는 듯한 움직임을 보였다. 정확히 고개라고 부를 수 있는 부위가 있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상단 부분이 스르륵 방향을 바꾸는 느낌이었다. 소름이 목덜미를 타고 올라왔다. 숨이 턱 막혔다. 나는 반사적으로 뒷걸음질을 쳤다. 발끝이 보도블록 틈에 걸려 휘청거렸다. 몸이 뒤로 기울어지는 순간, 팔을 허공에 저으며 겨우 균형을 잡았다. 심장이 쿵쿵거리며 귓가에 울렸다. 툭. 돌멩이 하나가 발에 차여 형체 쪽으로 굴러갔다. 돌멩이가 보도블록 위를 구르는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다. 형체는 그 소리에 반응하듯 잠시 멈췄다. 그리고는 이내 골목 옆 담벼락 사이 그림자 속으로 스며들듯 사라졌다. 물처럼 흘러 들어간 건지, 그냥 꺼진 건지 알 수 없었다. 그저 순식간에,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나는 숨을 죽인 채 그 자리를 한동안 바라봤다. 가슴이 여전히 두근거리고 있었다. 주변은 다시 평소와 같은 골목으로 돌아와 있었다. 가로등 불빛도 균일하게 그 자리를 비추고 있었고, 이상한 어둠 같은 것도 보이지 않았다. (꿈이었나…) 아니었다. 분명히 봤다. 그런 게 있을 리 없다는 걸 알면서도, 등줄기에 남은 서늘함은 사라지지 않았다. 나는 손바닥으로 팔을 한 번 쓸어내렸다. 소름이 아직 가시지 않은 채였다. 나는 서둘러 걸음을 옮겨 큰길로 나섰다. 걸음이 평소보다 조금 빨라졌다는 걸 스스로도 느낄 수 있었다. 버스 정류장에는 사람들이 평소처럼 서 있었다. 다들 휴대폰을 들여다보고 있었고, 딱히 이상한 낌새는 없었다. 누군가는 이어폰을 낀 채 고개를 까딱이고 있었고, 누군가는 커피를 마시며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평범하고, 평온한 아침 풍경이었다. (다들 모르는 거야, 아니면 나만 이상한 걸 본 건가.) 나는 정류장 옆 편의점 유리창에 비친 내 얼굴을 봤다. 평소보다 표정이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입술은 살짝 하얗게 질려 있었고, 눈빛에는 아직 남은 긴장이 서려 있었다. 나는 손으로 뺨을 두어 번 두드리며 애써 표정을 풀어보려 했다. 하지만 마음속 서늘함은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버스가 도착했다. 나는 사람들 사이에 섞여 버스에 올라 자리에 앉았다. 창밖으로 골목을 다시 돌아봤지만, 그곳엔 아무것도 없었다. 가로등, 담벼락, 그리고 아무도 없는 조용한 골목길뿐이었다. 다만 그 자리의 공기만이 여전히 미묘하게 무겁게 느껴졌다. 착각일지도 몰랐다. 하지만 그 무게감은 실제로 존재하는 것처럼 선명했다. 휴대폰을 다시 꺼내 뉴스를 확인했다. 손가락으로 화면을 몇 번 넘기자, 눈에 들어오는 기사 제목들이 있었다. [남미발 이상 현상, 유럽 일부 지역서도 유사 보고] [전문가들 “원인 규명까지 시간 필요”] 기사 본문을 읽어봤지만, 구체적인 내용은 여전히 모호했다. 목격담과 추측성 보도만 뒤섞여 있었고, 명확한 설명은 어디에도 없었다. 댓글 창에는 온갖 추측들이 달려 있었다. 누군가는 대규모 착시 현상이라 했고, 누군가는 정부의 은폐라고 했다. 나는 화면을 끄고 창밖을 바라봤다. 버스가 도심 쪽으로 접어들자, 저 멀리 하늘 한쪽이 미묘하게 뒤틀린 것처럼 보였다. 마치 열기에 의해 왜곡된 신기루처럼, 건물의 윤곽선이 흐릿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나는 눈을 몇 번 깜빡였다. (저건 또 뭐야…) 착시인가 싶어 고개를 옆으로 살짝 기울여봤지만, 그 뒤틀림은 사라지지 않고 그대로 남아 있었다. 버스 안의 다른 승객들은 그 광경을 전혀 신경 쓰지 않는 듯했다. 누군가는 졸고 있었고, 누군가는 여전히 휴대폰 화면에 시선을 고정한 채였다. 나만이 창밖의 그 뒤틀림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버스가 신호에 걸려 잠시 멈췄다. 그 순간, 뒤틀린 하늘의 한 지점이 아주 잠깐 검게 일그러졌다가 다시 원래대로 돌아온 것처럼 보였다. 나는 숨을 멈춘 채 그 지점을 응시했다. (방금 그거… 본 거 맞나.) 버스가 다시 출발했다. 창밖 풍경이 서서히 뒤로 밀려나기 시작했고, 그 뒤틀린 하늘의 지점도 시야에서 점점 멀어졌다. 하지만 마음속에서는 그 잔상이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아침에 본 검은 형체와, 저 멀리 뒤틀린 하늘. 이 둘이 서로 무관하지 않을 거라는 예감이 가슴 한구석에서 스멀스멀 피어올랐다. 나는 휴대폰을 다시 손에 쥔 채, 화면을 켜지도 못하고 그대로 창밖만 바라봤다. 버스는 계속해서 도심 속으로 나를 실어 나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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