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물속이었다.
숨을 쉬지 않아도 괜찮았다.
폐 대신 마나가 돌았다.
이상한 감각이었다. 숨을 참는 느낌도 아니고, 아예 숨쉴 필요가 없다는 느낌. 몸이 물을 받아들이는 게 아니라 물을 무시하고 있었다.
눈앞에는 거대한 촉수 괴물이 있었다.
심해왕, 이라고 시스템이 불렀다.
이름값을 하려는지 크기가 아파트 한 채만 했다. 몸통은 검푸른 비늘로 덮여 있고, 그 사이사이에서 인광 같은 초록빛이 새어 나왔다. 촉수는 셀 수도 없었다. 적어도 열두 개, 어쩌면 열여섯 개.
촉수 하나가 날아왔다.
속도가 상상 이상이었다. 물속인데도 채찍처럼 휘어져 들어왔다.
나는, 아니, 그녀는 몸을 틀었다.
금빛 머리카락이 물속에서 불꽃처럼 흔들렸다.
[스킬 발동: 깃털 보법]
발끝이 물을 밀어내지 않고 그냥 미끄러졌다. 저항이 없었다. 관성이 없었다. 마치 몸이 물의 법칙에서 예외 처리된 것 같았다.
이상한 감각이었다, 몸이 내 것 같지 않았다.
아니, 애초에 내 몸이 아니었다.
이 유연함, 이 반사 신경, 이 팔다리의 길이감. 28년 동안 이런 몸을 가져본 적이 없었다. 헬스장도 한 달 다니다 그만뒀던 내가.
촉수가 다시 왔다.
이번엔 세 갈래로.
동시에 세 방향에서. 피할 곳이 없어 보였다. 그런데 몸이 먼저 반응했다. 머리로 계산한 게 아니라 근육이 먼저 알고 있었다.
손을 뻗었다.
[스킬 발동: 화염구]
물속에서 불이 붙었다.
말이 되냐, 라고 생각했지만 이미 되고 있었다.
주황빛 구체가 물살을 가르며 촉수를 지져버렸다. 물이 부글부글 끓어올랐다. 수증기 기포가 폭발처럼 터졌다.
비명 같은 진동이 물을 흔들었다.
괴물이 몸통을 들이받았다.
어깨가 밀렸다. 등이 통째로 떠밀려 나가는 느낌이었다.
뼈가 삐걱거리는 소리를 들었다, 내 몸이 아닌데도 아팠다.
[HP 82% → 61%]
숫자가 눈앞에 떴다가 사라졌다.
젠장, 아프긴 진짜 아프네.
이게 게임이 아니라는 걸 그 순간 확실히 알았다. 숫자만 봤을 때는 그냥 게임인 줄 알았는데, 통증은 진짜였다. 뼈가 삐걱거리는 소리도, 근육이 찢어지는 느낌도, 전부 진짜였다.
정신을 차릴 시간이 없었다.
또 다른 촉수가 시야 옆에서 들어왔다. 반사적으로 몸을 숙였다. 머리카락 몇 가닥이 잘려 나가는 게 느껴졌다.
손끝에 마나를 모았다.
[스킬 발동: 사이코키네시스]
괴물 주변의 바위가 붕 떠올랐다. 바닥에서 뿌리째 뽑혀 나온 커다란 암석이었다.
그대로 던졌다.
둔탁한 소리, 그리고 잠깐의 정지.
괴물의 움직임이 반박자 느려졌다. 아주 짧은 틈이었다.
그 틈을 놓치지 않았다.
불꽃이 손바닥을 휘감았다. 이번엔 아까보다 훨씬 컸다. 손바닥 전체가 태양처럼 밝아졌다.
"끝내자."
말이 절로 나왔다.
목소리는 내 것이 아니었다, 낮고 부드러운 여자 목소리였다.
내가 알던 목소리가 아닌데, 내가 낸 말이었다. 이 괴리감이 제일 이상했다. 입은 이 몸의 것이고, 생각은 여전히 내 것이고.
괴물의 심장부로 화염구를 밀어넣었다.
폭발이 물속에서 터졌다, 소리 대신 압력으로.
세상이 밀려나는 느낌. 귀가 아니라 온몸으로 폭발을 들었다.
[던전 최심층 몬스터 '심해왕' 처치]
[보상 정산 중...]
그리고 정신이 아득해졌다.
———
원래 나는 이런 걸 할 사람이 아니었다.
김태현, 28세, 무직.
튜브넷 채널 구독자 열두 명.
그중 여덟은 내가 만든 부계정이었다.
그게 내 인생의 전부였다.
채널 이름은 '태현의 이상한 실험실'이었다. 콘텐츠는 딱히 없었다. 라면에 다른 재료 넣어보기, 편의점 신상 리뷰, 그런 거. 조회수는 대부분 세 자리를 넘지 못했다. 댓글창은 늘 조용했다. 가끔 스팸봇이 다녀갔다.
두 달 전 일이었다.
집에 커다란 어항이 있었다.
원래 관상어를 키우려고 산 거였는데, 물고기는 다 죽고 어항만 남았다. 네온테트라 다섯 마리를 샀는데 일주일 만에 전부 죽었다. 수질 관리를 몰랐던 거다. 그 뒤로 어항은 그냥 거실 구석의 장식품으로 방치되어 있었다.
그 바닥에 이상한 물체가 있었다.
동그랗고 검은, 맨홀 뚜껑 같은 것.
처음 봤을 때는 물고기 배설물 덩어리인가 싶었다. 그런데 손으로 만져보니 딱딱했다. 표면이 미끌미끌하면서도 차가웠다. 만질 때마다 손끝이 저릿했다.
인터넷에서는 그런 걸 '던전의 문'이라고 부른다는 걸 그때는 몰랐다.
알았다면 좀 달랐을까. 아마 안 달랐을 거다. 나는 그때 조회수에 미쳐 있었으니까.
촬영 소재가 필요했다.
구독자를 늘리려면 뭐라도 특이한 게 필요했다.
"어항 바닥에서 정체불명의 물체를 발견했습니다"라는 자막까지 미리 생각해뒀다. 섬네일 문구도 정해놨다. '이거 뭔지 아시는 분?'
그래서 어항에 팔을 넣었다.
뚜껑은 생각보다 무거웠다.
당겨도 안 움직였다. 밀어도 안 움직였다. 손가락으로 가장자리를 긁어봤다. 틈이 없었다.
팔이 짧았다.
더 깊이 넣어야 했다. 어깨까지 담갔다. 물이 옷을 다 적셨다. 그래도 안 됐다.
결국 머리까지 넣었다.
지금 생각하면 그 순간 카메라가 꺼져 있었다는 게 유일한 다행이었다. 그 장면이 찍혔으면 진짜 레전드 밈이 됐을 거다.
그리고 낑겼다.
어항 입구가 그렇게 좁을 줄은 몰랐다.
목이 걸렸다. 빼려고 했는데 안 빠졌다. 유리 벽이 어깨를 조여왔다.
숨이 안 쉬어졌다.
물이 코로 들어왔다.
버둥거렸다.
발이 바닥을 헛디디면서 어항이 기울었다. 물이 쏟아지는 소리, 내가 컥컥거리는 소리, 그리고 정적.
아무도 없었다, 도와줄 사람이.
부모님은 지방에 계셨고, 친구는 애초에 별로 없었고, 여자친구는 3년 전에 헤어졌다.
마지막으로 본 건 어항 유리에 비친 내 얼굴이었다.
한심했다.
죽는 순간까지 한심했다.
그것뿐이었다.
———
눈을 떴다.
천장이 낯설었다.
아니, 낯선 게 아니라 눈높이가 낯설었다.
누워 있는데도 시야가 이상하게 높았다. 원래 내 방보다 천장이 훨씬 높아 보였다.
손을 들어보니 손이 아니었다.
가늘고, 하얗고, 손톱이 예뻤다.
손톱 끝이 반달 모양으로 다듬어져 있었다. 나는 평생 손톱을 이렇게 관리해본 적이 없었다.
[아바타 정보]
이름: 설아린
레벨: 1
직업: 화염술사(귀족 출신)
잠재능력: SSS
보유 스킬: 화염술, 깃털 보법, 에너지 흡수, 사이코키네시스
뭐라고?
나는 벌떡 일어나려다가 그대로 넘어졌다.
가슴이 너무 무거웠다.
무게중심이 완전히 달랐다.
허리가 앞으로 확 쏠렸다. 균형을 잡으려고 팔을 짚었는데 그 팔조차 낯설어서 제대로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거울을 봤다.
금발, 벽안, 이국적인 얼굴.
내가 소설에 써놨던 그 캐릭터였다.
설아린, 던전 난민 출신 귀족, 최종보스급 화염 마녀.
연재는 3화에서 접었다.
조회수가 47이었다.
47이라는 숫자를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는 게 더 웃겼다. 그중 30 정도는 내가 새로고침해서 만든 숫자였다.
그런데 내가 지금 그 캐릭터의 몸에 들어와 있었다.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
가슴이 진짜 무거웠다, 자꾸 그 생각만 났다.
지금 이럴 때가 아닌데.
머릿속이 뒤죽박죽이었다. 방금까지 촉수 괴물이랑 싸우다가, 어항에 낑겨 죽었던 기억이 있고, 지금은 내가 만든 소설 속 캐릭터의 몸에 들어와 있고. 이게 다 말이 되나?
말이 안 됐다. 그런데 지금 몸이 그 증거였다.
밖에서 초인종이 울렸다.
심장이, 아니 이 몸의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누구지.
이 집이 어디인지도 모른다. 이 몸의 신상 정보도 모른다. 방금 눈을 떴는데 벌써 누군가가 문 앞에 서 있다.
나는, 이 몸으로, 문을 열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했다.
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