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록으로 낯선 몸에 갇힌 목소리

2화

학교 정문 앞에서 나는 잠깐 멈춰 섰다. 건물은 3층이었고, 낡았지만 관리는 되어 있었다. 벽돌색 페인트가 군데군데 벗겨져 있었지만, 창틀은 새로 갈아 낀 듯 반짝거렸다. 학생들이 무리를 지어 들어가고 있었다. 삼삼오오, 어깨를 부딪치며, 휴대폰을 들여다보며. 그 무리 속에서 몇몇이 나를 흘긋 보고는 서로 귓속말을 했다. 소리는 들리지 않았지만 방향은 알 수 있었다. 나였다. 됐다. 예상은 했다. 정문을 지나며 신발장을 찾는 데 시간이 좀 걸렸다. 이노아의 신발장 번호를 몰랐으니까. 다행히 이름표가 붙어 있어서 헤매지는 않았다. 실내화로 갈아 신는 동안, 옆 신발장에서 두 여학생이 나를 관찰하듯 쳐다보다가 눈이 마주치자 급히 시선을 돌렸다. 그 반응이 오히려 더 웃겼다. 숨길 거면 처음부터 보지를 말아야지. 교실 문을 열었다. 삼십 명 남짓한 아이들이 각자의 자리에서 떠들고 있었다. 내가 들어서자 소음이 잠깐 낮아졌다가, 다시 원래대로 돌아갔다. 그 짧은 틈에 나를 향한 시선들이 한꺼번에 쏟아졌다가 흩어졌다. "이노아 왔다." 누군가 작게 말했다. 조롱하는 말투는 아니었다. 그보다는 관찰 보고 같은 말투였다. 마치 동물원에서 특정 동물이 우리 밖으로 나온 걸 확인하는 것처럼. 사육사가 아니라 관람객의 목소리였다. 자리에 앉았다. 창가 쪽 두 번째 줄이었다. 책상 위에는 낡은 스티커 자국이 남아 있었고, 서랍 속에는 누군가의 필기 흔적이 담긴 노트 조각이 굴러다니고 있었다. 이노아의 흔적인지, 그 전 주인의 흔적인지는 알 수 없었다. 뒤에서 누군가 소곤거렸다. "쟤가 그때 그 애 맞지? 지난 학기에 애들 여럿 다치게 한." "몰라, 소문이 하도 많아서." "근데 왜 갑자기 다시 나온 거야? 자퇴한다는 말도 있었는데." "몰라, 부모가 억지로 보냈다는 얘기도 있고." 사고. 아버지가 말한 사고가 이거였구나. 나는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돌아보는 순간 저 대화의 대상이 됐다는 걸 인정하는 셈이니까. 대신 창밖을 봤다. 운동장에 아이들 몇이 축구공을 차고 있었다. 평범한 풍경이었다. 나만 평범하지 않을 뿐. 담임이 들어오고, 조회가 시작됐다. 뻔한 공지였다. 시험 일정, 준비물, 다음 주 체험학습 신청서, 그런 것들. 담임의 목소리는 사무적이었다. 아침마다 같은 대본을 읊는 사람처럼. 그 사이에 담임이 나를 한 번 쳐다봤다. 눈빛이 묘했다. 걱정과 경계가 반씩 섞인 눈이었다. 마치 다시 불이 붙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지켜보는 소방관의 눈 같았다. "이노아. 오늘부터 다시 학교 나오는 거지?" "네." "이번엔 문제없이 지내자." 짧은 말이었지만, 그 안에 이미 결론이 들어 있었다. 문제를 일으킬 가능성이 있는 아이. 그 전제가 이미 이 교실 전체에 깔려 있었다. 나는 대답 대신 고개만 끄덕였다. 담임은 그걸로 만족한 듯 다음 공지로 넘어갔다. 만족이 아니라 안심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최소한 오늘 아침에 사고는 안 났으니까. 쉬는 시간이 되자 한 남학생이 다가왔다. 반듯한 자세, 깔끔하게 정리된 앞머리, 그리고 팔에 찬 학급위원 배지. 걸음걸이마저 정갈했다. 마치 매일 아침 거울 앞에서 각도를 재고 나오는 사람 같았다. "이노아, 오랜만이다." 목소리는 부드러웠다. "이번엔 잘 지내보자. 무슨 일 있으면 나한테 먼저 말해." "고맙다." 짧게 답했다. 그가 잠깐 나를 훑어봤다. 위에서 아래로. 마치 상태를 점검하는 것 같은 시선이었다. 병원 회진 도는 의사 같기도 했다. 다만 이쪽은 청진기 대신 눈빛만 썼다. "혹시 어제 이상한 일 없었어?" "없었는데." "그래, 다행이다." 다행이라는 말과 그의 표정이 어울리지 않았다. 안심한 표정이 아니라, 예상이 맞아떨어진 걸 확인하는 표정이었다. 이 아이가 강민재라는 이름이라는 걸 나중에 알았다. 학급위원. 표면적으로는 친절했다. 그런데 그 친절 아래에 뭔가 다른 게 있었다. 감시, 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감시라기엔 너무 매끄러웠고, 친절이라기엔 너무 정확했다. 그가 자리로 돌아가고 나서, 나는 그 뒷모습을 잠깐 눈으로 좇았다. 걸음걸이가 흐트러지지 않았다. 마치 이 반 전체가 자기 관할 구역인 것처럼 움직였다. 담임보다 이 아이가 더 이 교실을 잘 파악하고 있을 것 같았다. 점심시간, 급식실 가는 길에 한 여자아이가 옆으로 붙었다. 단발머리, 밝은 색 카디건. 걸음이 가볍고 빨랐다. "너 진짜 그때 일 기억 안 나?" 밝은 목소리였다. 지나치게 밝았다. "애들이 다 이상하다고 하던데. 갑자기 성격이 바뀌었다고." "뭘 기억하냐는 거야." "몰라, 나도 소문으로만 들어서. 근데 신기하다. 눈빛도 다르고, 말투도 다르고. 완전 다른 사람 같아." 윤하은. 나중에 그 이름을 알았다. 악의는 없어 보였다. 그저 재밋거리를 찾은 눈이었다. 그런데 그 눈이 오히려 더 무서웠다. 악의가 없다는 이유로 걸러지지 않은 채 말이 퍼지니까. 악의를 가진 사람은 조심하지만, 악의 없는 사람은 아무 데서나 말을 흘린다. "눈빛이 다르면 안 되나." 짧게 되받았다. 그녀는 뭐라고 더 말하려다가 웃으며 다른 아이들 쪽으로 가버렸다. 그 웃음이 등 뒤에서 계속 신경 쓰였다. 급식실 앞 줄이 길었다. 식판을 받아 자리에 앉는 동안에도 몇몇 시선이 따라붙었다. 밥을 먹는 동안만큼은 아무 말도 듣지 않아서 오히려 편했다. 국은 미역국이었고, 간이 심심했다. 이런 걸 다행이라고 느끼는 내가 조금 우스웠다. 오후 수업 중, 창밖을 보다가 문득 뒤통수에서 그 목소리가 다시 들렸다. 여기 다 무서워. 형이 웃을 때 특히. 형. 이루하를 말하는 것 같았다. 나는 펜을 쥔 손에 잠깐 힘을 줬다. 몸의 원래 주인이, 자기 동생을 무서워하고 있었다. 목소리는 딱 한 번 울리고 사라졌다. 마치 벽 너머에서 새어 나온 라디오 소리 같았다. 다시 들으려 했지만, 그 뒤로는 조용했다. 수업 진도는 계속 앞으로 가고 있었다. 나만 잠깐 멈춰 있었다. 수업이 끝나고 나서도 그 문장이 머릿속에 남았다. 무섭다는 감정이 어디에서 오는지, 몸의 원래 주인이 정확히 뭘 봤는지. 답은 없었다. 지금 있는 건 조각뿐이었다. 그날 오후, 체육 시간에 강민재가 다시 다가왔다. "이노아, 팀 짤 때 너랑 같은 팀 하고 싶은 애가 없어서. 미안한데 그냥 벤치에 있어줄래?" 미안하다는 말과 표정이 또 어울리지 않았다. 그는 조금도 미안해 보이지 않았다. 그저 관리하고 있었다. 나를, 이 상황을, 이 반의 균형을. 마치 회사에서 인력 배치를 조율하는 팀장처럼. 다만 이쪽은 배치가 아니라 배제였다. "알았어." 대답은 짧게 끝냈다. 항의할 이유가 없었다. 애초에 이 몸으로 축구를 하고 싶은 마음도 없었고, 굳이 이 반 아이들과 부딪혀서 좋을 일도 없었다. 벤치에 앉아 경기를 지켜보는데, 저 멀리서 이루하가 지나갔다. 다른 반 학생들과 웃으며 이야기하고 있었다. 나를 발견하자 그는 손을 흔들었다. 밝게. 아주 밝게. 그 웃음이 사진처럼 완벽했다. 어색한 데가 하나도 없었다. "형, 힘들지? 조금만 참아." 주변 아이들이 그 말을 듣고 나를 흘긋 봤다. 위로처럼 들리는 말이었다. 그런데 그 말 한 마디로, 나는 방금 '참아야 하는 상황에 처한 형'이 되었다. 동생이 형을 걱정하는 그림이 완성됐다. 아이들 몇몇이 고개를 끄덕이며 자기들끼리 뭔가 말을 주고받았다. 아마 저런 좋은 동생이 있는데 형이 왜 저럴까, 하는 얘기일 거다. 누가 만든 그림인지는 뻔했다. 괜찮다. 아직은 시작일 뿐이다. 체육 시간이 끝나고 교실로 돌아가는 길, 강민재가 슬쩍 다시 나를 보며 웃었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그 웃음에는 확인의 의미가 담겨 있었다. 오늘 하루도 무사히 관리했다는 확인. 나는 그 웃음을 못 본 척 지나쳤다. 못 본 척하는 게 이쪽에서 할 수 있는 유일한 반격이었다. 남은 오후 수업은 별일 없이 지나갔다. 별일 없다는 게 오히려 이상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종이 치고, 가방을 싸고, 복도를 걸어 나가는 동안에도 몇몇 시선이 따라붙었지만 이제는 익숙했다. 익숙해진다는 게 좋은 신호는 아니었다. 집에 돌아온 뒤, 방문을 닫고 침대에 누웠다. 천장을 보며 하루를 정리했다. 강민재의 감시, 윤하은의 소문, 이루하의 웃음. 그리고 아버지의 명령, 어머니의 무관심, 누나의 침묵. 이 패턴, 어디서 본 것 같았다. 전생의 궁정. 나를 영웅으로 세웠던 사람들이, 동시에 나를 처형대로 보낸 사람들이었다. 겉으로는 존경, 안으로는 이용. 그 구조가 지금 이 작은 방 하나, 이 작은 교실 하나에도 그대로 깔려 있었다. 규모가 작아졌을 뿐, 형태는 똑같았다. 왕좌가 책상으로, 신하가 반 아이들로, 처형대가 벤치로 바뀐 것뿐이었다. 우습다. 궁정에서 도망쳐 나왔더니 교실 안에 똑같은 판이 깔려 있었다. 이번엔 창칼 대신 귓속말이었다. 무기가 작아졌다고 덜 아픈 건 아니었다. 형, 도와줘. 목소리가 다시 들렸다. 이번엔 확실히 애원에 가까웠다. 낮고, 떨렸고, 끊어질 듯 이어졌다. 마치 물속에서 숨을 참다가 겨우 뱉어내는 말 같았다. 나는 눈을 감았다. 대답하지 않았다. 아직은. 대답할 수 없었다. 저 목소리의 주인이 정확히 누구인지, 뭘 원하는지, 심지어 살아있는 건지 아닌지도 몰랐다. 함부로 대답했다가 뭐가 딸려 올지 모르는 상황에서, 대답은 언제나 신중해야 했다. 전생에서 배운 것 중 몇 개는 여기서도 그대로 쓸모가 있었다. 그때, 창밖에서 이상한 소리가 났다. 스ㅡ륵. 뭔가 긁히는 소리였다. 창문 쪽이 아니라, 방 안쪽 벽에서 나는 소리 같았다. 나는 눈을 떴다. 방 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천장의 형광등 불빛이 미세하게 흔들렸다. 벽지의 무늬가 평소보다 조금 더 뚜렷하게 보였다. 착각일 수도 있었다. 아니, 착각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분명히, 뭔가가 나를 보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숨을 죽이고 벽 쪽을 바라봤다. 아무 것도 없었다. 그런데도 시선은 사라지지 않았다. 등 뒤가 아니라 앞에서, 정면에서 느껴지는 시선이었다. 나는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스ㅡ륵. 또 한 번. 이번엔 더 가까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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