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
‹ ›다음 날부터, 나는 이루하를 좀 더 자세히 관찰하기로 했다.
관찰이라고 해봤자 특별한 게 없었다. 등교 시간, 급식 줄에 서는 순서, 쉬는 시간에 누구와 이야기하는지. 그 정도였다. 탐정 흉내를 내는 것도 아니고, 그냥 눈으로 좀 더 오래 쫓아다니는 것뿐이었다. 그런데 그 며칠 사이 알게 된 사실이 몇 개 있었다.
이루하는 나와 같은 학교, 다른 반이었다. 형이라고 불리는 것과 상관없이, 상급반에 있었다. 나이 차이가 그렇게 나는데 같은 학교에 다니고, 나를 형이라고 부르고, 나는 그를 형이라고 부르는 이 상황이 좀 웃겼다. 웃길 상황이 아닌데도 웃겼다.
그리고 그 반에, 박도현이라는 아이가 있었다.
박도현을 처음 마주친 건 급식실 앞이었다. 몸집이 크고 목소리가 큰 아이였다.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는데, 그가 옆에서 걸어오다가 어깨로 내 어깨를 밀었다. 세게. 일부러였다.
"어이, 비켜."
나는 비켰다. 굳이 부딪힐 필요가 없었다. 몸싸움을 할 나이도 아니고, 할 이유도 없었다. 대신 트레이를 든 채 그가 지나가는 걸 지켜봤다.
그런데 그가 지나간 뒤, 복도 끝에서 이루하가 그를 향해 손을 흔드는 걸 봤다. 도현이 씩 웃으며 손을 흔들어 답했다. 친한 사이에서만 나오는, 격식 없는 손짓이었다.
둘이 아는 사이였다. 그것도 꽤 가까운.
머릿속에 메모를 하나 남겼다. 박도현, 이루하와 친함. 나를 밀치고 지나감. 우연일 수도 있었다. 그런데 세상에 그런 우연이 몇 번이나 반복되는지, 나는 그날 이후로 알게 됐다.
다음 날, 내 책상 서랍에서 교과서가 사라졌다. 아침 자습 시간에 서랍을 열었는데, 어제 넣어둔 국어책이 없었다. 짝꿍한테 물어봐도 못 봤다는 대답만 돌아왔다. 결국 담임 선생님한테 사정을 설명하고, 옆 반에서 빌린 책으로 하루를 버텼다.
그다음 날엔 실내화 한쪽이 없어졌다. 체육 시간이 끝나고 신발장에 갔더니, 오른쪽 실내화만 사라져 있었다. 왼쪽은 그대로 있었다. 누가 한쪽만 가져갈 이유가 뭐가 있나, 생각해봤지만 답은 나오지 않았다. 대신 나는 그날 하루를 슬리퍼를 신은 채, 반쪽짜리 신발로 복도를 걸어 다녔다. 지나가는 애들이 이상하다는 눈으로 쳐다봤다. 설명할 방법이 없었다.
매번 도현이 지나간 자리 근처에서 일이 벌어졌다. 물증은 없었다. 카메라도 없고, 목격자도 없고, 심지어 나조차도 확신이 없었다. 그냥 우연이라고 하면 우연이었다. 세상에는 그런 우연이 쌓이고 쌓여서 결국 확신이 되는 순간이 있다는 것도, 나는 그때 알아가고 있었다.
"형, 물건 자꾸 잃어버리네." 이루하가 저녁 식탁에서 말했다. 걱정스러운 목소리였다. 젓가락으로 반찬을 집으면서, 눈은 살짝 나를 향해 있었다. "조심해야지, 안 그러면 또 이상한 소문 날 텐데."
또, 라는 말이 걸렸다. 마치 소문이 나는 게 내 부주의 탓인 것처럼 들렸다. 그 단어 하나에 담긴 뉘앙스가 너무 자연스러워서, 오히려 더 신경이 쓰였다.
"소문이라니."
"몰라, 애들이 형 물건 잘 잃어버린다고 뭐라 하더라고. 정신 좀 챙기라고."
그가 웃으며 덧붙였다. 밥그릇에 밥을 더 얹어주는 손짓까지 자연스러웠다. 나는 그 말을 곱씹었다. 물건을 없앤 건 도현이었다. 아니, 정확히는 도현이 없앴다는 증거도 없었다. 그런데도 그 결과로 만들어진 이야기는, 내가 정신 못 챙기는 문제아라는 쪽으로 흘렀다. 정교했다. 지나치게 정교했다.
누가 짜놓은 각본처럼, 사건은 항상 나에게 불리한 방향으로 정리됐다. 물건이 없어지면 내 부주의고, 소문이 나면 내가 이상해서 나는 소문이었다. 원인과 결과 사이에 누군가 손을 대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지만, 그걸 증명할 방법이 없었다.
그날 밤, 방 안에서 다시 그 목소리가 들렸다.
형, 애들이 내 물건 계속 가져가.
알아. 봤어.
왜 아무도 안 도와줘.
대답할 말이 없었다. 이 상황에서 내가 뭘 할 수 있나, 생각해봐도 답이 안 나왔다. 담임한테 말한다고 뭐가 바뀔까. 도현을 붙잡고 따진다고 증거가 나올까. 나는 대신 그 목소리를 향해 물었다.
너 원래도 이런 일 겪었어. 나 오기 전에.
짧은 침묵. 방 안 공기가 살짝 무거워지는 게 느껴졌다.
응. 계속.
계속, 이라는 단어가 이상하게 무겁게 다가왔다. 한 번이 아니라, 계속. 하루 이틀이 아니라, 아마도 몇 달, 어쩌면 그보다 더 오래.
나는 눈을 감았다. 이 아이는, 이 몸의 원래 주인은, 나보다 오래 이 상황을 견뎌왔다. 그리고 아무도 도와주지 않았다. 담임도, 부모도, 이루하도. 나는 그 위에 얹혀 살고 있는 셈이었다. 남의 인생, 남의 몸, 남의 고통 위에.
괜찮다는 말을 하고 싶었는데, 그게 얼마나 무책임한 말인지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 순간, 몸속에서 아까와 같은 팽창감이 느껴졌다. 실이 당겨지는 느낌. 그런데 이번엔 강도가 달랐다. 아까보다 훨씬 세게, 훨씬 급하게. 마치 누군가 반대편에서 힘껏 잡아당기고 있는 것처럼.
나는 즉시 의식을 그쪽으로 뻗었다.
무슨 일이야.
주인님. 저 지금 가까워요. 조금만 더요.
목소리가 다급했다. 숨이 가쁜 듯한 어조였다. 사람이 아닌 존재가 숨을 헐떡인다는 게 이상하게 들렸지만, 그 순간엔 그런 걸 따질 여유가 없었다.
위험한 거 아니야?
괜찮아요. 조금만 더 당기면 닿을 것 같아요.
안 괜찮은 것 같은데.
말은 그렇게 했지만, 실제로 뭘 어떻게 해야 할지는 몰랐다. 끊으라고 명령해야 하는 건지, 그냥 지켜봐야 하는 건지. 이 관계에서 나는 여전히 초보였다.
실이 갑자기 더 세게 당겨졌다. 마치 팽팽한 고무줄이 끊어지기 직전처럼, 몸 안 깊은 곳에서 뭔가 뜨거운 감각이 치솟았다. 배 속에서부터 시작된 열기가 가슴을 타고 올라오는 느낌이었다. 손끝이 저릿했다.
멈춰. 위험해 보여.
주인님 냄새가 나요. 진짜 가까워요.
목소리는 내 경고를 듣지 않았다. 오히려 더 세게 당겼다. 나는 그 감각을 막아야 한다는 걸 알면서도, 어떻게 막아야 하는지 몰랐다. 아니, 정확히는 막고 싶지 않은 마음도 있었다. 이 세계에서 처음으로 나를 향해 절박하게 다가오는 존재였다. 사람도 아니고, 원귀도 아닌, 뭔지 정확히 모르는 존재가.
방 안 온도가 급격히 떨어졌다. 이불 밖으로 나온 팔에 소름이 돋았다. 창문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덜그럭. 덜그럭덜그럭.
책상 위에 놓아둔 펜이 굴러 바닥에 떨어졌다. 나는 그걸 주울 생각도 하지 못했다.
나는 손으로 가슴을 꽉 눌렀다. 심장이 아니라 그 밑, 뭔가 다른 것이 요동치고 있었다. 심장 박동과는 다른 리듬으로, 더 깊은 곳에서 울리는 진동이었다.
형, 무서워. 뭐야 이거.
이노아의 목소리가 처음으로 완전한 애원으로 바뀌었다. 겁에 질린, 어린아이의 목소리였다. 평소의 능글맞음도, 투정도 없이, 그냥 순수하게 겁을 먹은 목소리.
괜찮아. 괜찮을 거야.
나는 그 애원을 향해 처음으로 대답했다. 대답이라고 해봤자 짧은 위로였지만, 그 순간만큼은 진심이었다. 이노아를 향해 이런 말을 한 게 처음이라는 걸, 말을 뱉고 나서야 깨달았다.
창문이 한 번 크게 흔들리더니, 유리에 아주 얇은 금이 갔다.
쩌적.
그 소리가 방 안을 가득 채웠다. 나는 숨을 죽였다. 도현이 어쩌고, 소문이 어쩌고 하던 낮의 고민이 순식간에 아무것도 아닌 게 됐다.
그리고 그 금 사이로, 아주 잠깐, 뭔가 반짝이는 것이 스쳐 지나갔다. 비늘 같은 것. 은빛에 가까운. 물고기의 몸통 같기도 했고, 뱀의 등 같기도 했다. 형체를 정확히 규정할 수 없는, 그러나 분명히 존재하는 무언가였다.
주인님, 닿았어요! 진짜 닿았어요!
목소리가 기뻐하는 순간, 갑자기 온 방이 진동했다. 마치 누군가 반대편에서 세게 잡아당긴 것처럼, 그 은빛 형체가 순식간에 멀어지는 느낌이 들었다. 몸 안에서 실이 홱 당겨지는 감각이 척추를 타고 올라왔다. 숨이 턱 막혔다.
안 돼, 잠깐, 아직—
목소리가 끊겼다. 완전히. 창문의 금도, 방 안의 냉기도 순식간에 사라졌다. 방은 다시 평범한 밤으로 돌아왔다. 마치 텔레비전을 끈 것처럼, 아무 예고도 없이 모든 게 멈췄다.
나는 한참을 그대로 앉아 있었다. 심장이 미친 듯이 뛰고 있었다. 이 몸의 심장인지, 다른 무언가의 반응인지 구분이 안 됐다. 손바닥에는 식은땀이 배어 있었다.
뭐였을까. 방금 그건 분명히 실재했다. 창문의 금이 그 증거였다. 유리는 다시 멀쩡해졌지만, 방금 전 그 소리와 감촉은 환청도 환각도 아니었다. 그리고 그 존재는, 위험을 무릅쓰고 나에게 닿으려 했다. 나는 그걸 막지 않았다. 막을 수 없었기도 했지만, 막고 싶지 않았던 것도 사실이었다.
솔직히 무서웠다. 그런데 동시에, 궁금했다. 그 은빛 형체가 뭐였는지. 왜 그렇게까지 절박하게 나에게 오려고 했는지. 누가 반대편에서 그걸 잡아채 갔는지.
형, 방금 뭐였어.
이노아의 목소리가 다시 돌아왔다. 여전히 떨리고 있었다. 방금까지의 절박함은 사라지고, 대신 순수한 두려움만 남아 있었다.
나는 대답 대신, 창문을 봤다. 금이 갔던 자리에는 이제 아무 흔적도 없었다.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유리는 매끈했고, 방 안 온도도 원래대로 돌아와 있었다.
하지만 나는 알고 있었다. 뭔가가 확실히 여기까지 왔다가, 강제로 밀려났다는 걸. 그리고 그걸 밀어낸 존재가, 이 상황을 지켜보고 있다는 것도.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창문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 손으로 유리를 쓸어봤다. 차가웠다. 그냥 평범한 유리였다. 이상한 점은 하나도 없었다. 그런데도 손끝에 남은 감각은 쉽게 지워지지 않았다.
이노아, 너 그거 뭐였는지 알아?
몰라요. 처음 느낀 냄새였어요. 되게 익숙하면서도 낯선.
익숙하면서도 낯설다는 표현이 이상하게 마음에 걸렸다. 나는 더 묻고 싶었지만, 이노아의 목소리는 이미 지쳐 있었다. 오늘은 여기까지, 라는 느낌으로 조용해졌다.
나는 침대에 누웠다. 천장을 한참 쳐다봤다. 도현, 이루하, 사라진 교과서, 없어진 실내화. 그리고 방금 전의 그 은빛 형체까지. 하루 사이에 처리해야 할 문제가 너무 많았다.
이러다 정말 머리가 터지겠다는 생각을 하며, 나는 억지로 눈을 감았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 식탁에서 이루하가 나를 보며 웃었다. 숟가락으로 국을 뜨면서,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으로.
"형, 어제 밤에 시끄러웠던 것 같은데. 방에서 무슨 소리 났어?"
그 질문이, 그 어느 때보다도 차갑게 들렸다. 밤새 창문이 흔들리고, 유리에 금이 가고, 방 안 온도가 떨어졌던 그 모든 순간을, 이루하가 어디까지 알고 있는 건지 알 수 없었다.
나는 숟가락을 든 채, 아무 대답도 하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