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
‹ ›백하은을 처음 본 건 육 개월 전이었다.
당시 나는 신입 안전관리 보조였고, 그녀는 이미 국내 랭킹 3위 안에 드는 S급 탐색자였다. 첫 출근날, 나는 명찰도 제대로 달지 못한 채 관리 부스에 앉아 있었다.
손이 떨렸다.
모니터에 뜬 생체신호 그래프가 무슨 의미인지도 제대로 몰랐던 시기였다.
그때 부스 창문 밖으로 누군가 성큼성큼 걸어왔다.
백하은이었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인사를 하려다 그대로 굳어버렸다. 그녀는 나를 아래위로 훑어보더니 웃었다.
"신입이네요?"
"네, 잘 부탁드립니다."
목소리가 떨렸던 걸 기억한다.
"긴장하지 말아요. 나 안 잡아먹어요."
그러면서 그녀는 손을 내밀었다. 나는 얼떨결에 그 손을 잡았다. 마디가 굵고 굳은살이 박인 손이었다. S급 탐색자의 손이라는 게 실감났다.
그 말 한마디에 나는 며칠 동안 안절부절못했던 마음이 조금 풀렸던 걸 기억한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백하은은 공략에 들어가기 전 항상 나를 찾아왔다.
정확히는, 내가 있는 관리 부스 창문을 두드리는 게 그녀의 습관이었다.
탁, 탁.
두 번.
처음엔 그 소리가 무슨 신호인지도 몰랐다. 몇 번 반복되고 나서야, 나는 그게 나를 찾는 소리라는 걸 알아챘다.
그러면 나는 부스 밖으로 나가 그녀와 눈을 맞췄다.
"오늘도 잘 부탁해요, 강도현 씨."
"네. 안전하게 귀환하세요."
짧은 대화였다. 하지만 육 개월 동안 한 번도 빠지지 않은 의식이었다.
비가 오는 날에도, 방송 스케줄이 밀려 정신없던 날에도, 그녀는 꼭 그 두 번의 노크를 하고 나서야 게이트로 들어갔다.
나는 언젠가 그녀에게 왜 매번 이러시냐고 물어본 적이 있었다.
"루틴이에요. 사람은 루틴이 있어야 안 죽어요."
그녀는 그렇게 웃으며 답했었다.
다른 스텝들은 그녀가 왜 나 같은 말단에게 저러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서준혁조차 처음엔 이상하게 여겼던 것 같다.
어느 날 회식 자리에서, 서준혁이 술기운에 물었다.
"백하은 씨가 왜 강도현 씨한테만 저렇게 깍듯해요? 다른 관리자들한테는 그런 거 없잖아요."
백하은이 웃으며 대답했다.
"강도현 씨가 제 생체신호를 제일 정확하게 봐주니까요. 다른 관리자들은 숫자만 보는데, 강도현 씨는 그 숫자 뒤에 있는 저를 봐요."
주변에서 몇몇이 오, 하는 소리를 냈다.
누군가는 술잔을 든 채 낮게 중얼거렸다.
"저러다 사귀는 거 아니야?"
나는 그 말을 듣고 얼굴이 붉어졌던 기억이 난다.
사실이었다.
나는 그녀의 그래프를 보면서, 단순히 정상인지 아닌지만 판단하지 않았다. 심박수가 조금 빨라지면, 그게 전투 흥분 때문인지, 두려움 때문인지, 아니면 마나 과부하 때문인지 구분하려고 했다.
호흡 패턴, 체온 변화, 근육 긴장도. 숫자 하나하나가 그녀의 몸 상태를 말해주고 있었다.
다른 관리자들은 그저 정상 범위 안에 있는지만 확인했다. 나는 그 범위 안에서도 미세한 흔들림을 놓치지 않으려 했다.
그건 내가 가진 유일한 재능이었다.
대단한 능력은 아니었지만, 적어도 이 일에서만큼은 누구보다 예민했다.
그래서였을 것이다.
오늘, 그 예민함이 나에게 이상 신호를 알려준 것도.
***
서준혁의 사무실은 관리센터 3층 끝, 유리벽으로 된 방이었다.
나는 인쇄한 로그 자료를 손에 쥔 채 복도를 걸었다.
발걸음이 평소보다 빨랐다.
문 앞에 서서, 잠시 숨을 골랐다.
심장이 이미 빠르게 뛰고 있었다.
똑똑.
"들어와."
문을 열자 서준혁은 모니터 세 개를 앞에 두고 앉아 있었다. 화면 중 하나에는 방송 시청자 수가 실시간으로 갱신되고 있었다.
91만 3천.
숫자는 계속 올라가고 있었다.
"팀장님, 백하은 탐색자 귀환 게이트 관련해서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서준혁이 모니터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대답했다.
"뭔데."
"2차 승인이 아직 안 됐고, 예비 인증 회선이 이유 없이 활성화돼 있습니다. 그리고 전송 목표지 재설정 대기라는 문구가 떴습니다."
그제야 서준혁이 나를 쳐다봤다.
의자를 돌리는 소리가 삐걱, 하고 났다.
"그게 뭔데. 오류겠지."
"오류일 수도 있지만, 확인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공략 중지를 신청하고 싶습니다."
서준혁이 코웃음을 쳤다.
"공략 중지? 시청자 91만 명 붙어 있는데?"
"안전이 우선이라고 생각합니다."
"안전은 이미 확보돼 있어. 백하은이 누군데. S급이야. 이 정도 던전에서 위험할 일 없어."
나는 준비해온 로그 자료를 그의 책상에 내려놓았다.
"하지만 로그상 이상 신호가..."
서준혁이 손을 들어 내 말을 잘랐다.
"강도현 씨. 지금 우리가 하는 방송이 뭔지 알아? 상품이야. 백하은은 우리 회사가 가진 최고의 상품이고, 오늘 방송에 걸린 광고비가 얼만지 알면 이런 소리 못 할 텐데."
그는 자료를 슬쩍 훑어보고는 다시 밀어냈다.
종이가 책상 위에서 미끄러졌다.
나는 입을 다물었다.
"오류 몇 개 뜬 걸로 공략을 중지하면, 그 손해는 누가 책임져? 강도현 씨가?"
"..."
나는 그 순간 뭔가 더 말하고 싶었다. 좌표가 흔들리고 있다고, 확실하지 않지만 방향성이 있다고. 하지만 말이 목에서 막혔다.
증거가 부족했다.
숫자 몇 개, 문구 하나. 그게 전부였다.
"됐어, 알겠으니까 나가봐. 승인은 내가 처리할게."
나는 그대로 사무실에서 나왔다.
등 뒤로 문이 닫히는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다.
쿵-
복도를 걸으면서, 나는 손에 쥔 종이를 다시 확인했다.
숫자는 그대로였다. 바뀐 게 없었다.
'내가 잘못 본 걸까.'
아니, 분명히 봤다.
부스로 돌아오자 하늘이 걱정스러운 얼굴로 물었다.
"어떻게 됐어요?"
"묵살당했어요."
그녀는 아무 말 없이 내 얼굴을 살폈다. 나는 애써 표정을 정리하고 자리에 앉아 다시 모니터를 켰다.
귀환 예정 시각까지 이제 십칠 분.
2차 승인 칸은 여전히 공란이었다.
그런데 화면 한쪽 구석, 좌표란에서 숫자가 미세하게 바뀌고 있었다.
0.0001, 0.0002 단위로 소수점이 흔들리는 것 정도로 보였다.
처음엔 그냥 표시 오류인가 싶었다.
나는 화면을 더 가까이 당겨봤다.
하지만 나는 그 흔들림의 방향을 알아챘다.
좌표가, 원래 설정된 지상 센터 방향에서 조금씩 벗어나고 있었다.
일정한 방향이었다.
무작위로 튀는 오류가 아니라, 누군가 의도적으로 조정하고 있는 것처럼.
나는 마우스를 잡은 손에 힘을 줬다.
'이거 진짜로 바뀌고 있는 거야.'
심장이 쿵, 하고 크게 뛰었다.
하늘이 내 옆으로 다가와 화면을 들여다봤다.
"이거... 좌표 왜 이래요?"
"모르겠어요. 근데 이거 오류가 아니에요."
내 목소리가 낮게 떨렸다.
지금 이 순간에도, 방송 화면 속 백하은은 웃으며 마지막 몬스터를 상대하고 있었다.
칼날이 몬스터의 목을 가르는 장면이 클로즈업으로 잡혔고, 채팅창은 하은 님 최고라는 말로 가득했다.
아무도 몰랐다.
그녀가 돌아올 곳이, 이미 다른 곳으로 바뀌고 있다는 걸.
나는 다시 서준혁의 사무실로 뛰어가야 하는지, 아니면 이대로 좌표를 지켜보며 뭔가를 해야 하는지 판단이 서지 않았다.
십칠 분.
이제 십육 분으로 줄어 있었다.
시간은 나를 기다려주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