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
‹ ›그날 이후, 나는 매일 밤 혼자 로그를 파고들었다.
방 안의 불은 꺼두고, 모니터 불빛만 켠 채로 앉아 있었다. 눈이 시릴 때까지 화면을 들여다봤다. 커서를 움직이는 손끝이 저릿했다. 커피는 이미 식어서 쓴맛만 남았지만, 그것마저 마시지 않으면 잠이 쏟아질 것 같았다.
관리센터는 이미 초상집 분위기였다. 백하은의 실종—아니, 공식적으로는 사망—소식이 전국을 휩쓸고 있었다. 협회는 애도 성명을 냈고, 방송사는 추모 영상을 틀었다. 뉴스 자막에는 그녀의 얼굴이 몇 초씩 스쳐 지나갔다. 헌터 등급, 소속 팀, 마지막 공략 기록까지 낱낱이 정리된 그래픽이 화면을 채웠다.
하지만 나는 그 애도 속에서 뭔가 잘못됐다는 걸 알고 있었다.
생체신호는 사라지지 않았다.
그녀가 미등록 좌표로 전송된 직후, 신호는 몇 초간 흔들렸지만 그 후로는 다시 안정된 파형을 그렸다. 죽은 사람의 신호가 아니었다. 나는 그 파형을 몇 번이나 다시 재생해봤다. 심박수, 호흡, 뇌파 대체 지표까지—모든 항목이 살아 있는 사람의 것이었다.
나는 그 그래프를 몇 번이나 캡처해서 개인 서버에 저장했다.
파일명을 어떻게 지어야 할지 고민하다가, 결국 날짜와 시간만 적었다. 누군가 이 파일을 발견했을 때, 조작이라고 우기지 못하도록.
그날 밤, 나는 하늘에게 연락했다.
신호가 두 번 울리고서야 하늘이 전화를 받았다. 숨소리가 평소보다 거칠었다.
"하늘 님, 그때 말씀하신 거요. 좌표 재설정 명령이 팀장님 계정으로 찍혀 있었다는 거."
하늘의 목소리가 전화기 너머로 떨렸다.
"저... 그거 다시 확인해봤는데요."
"네."
"로그가 지워졌어요."
나는 숨을 멈췄다.
"지워졌다고요?"
"제가 분명히 봤는데... 오늘 다시 보니까 그 기록이 없어요. 마치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요."
나는 이마를 짚었다. 손가락 끝이 얼음처럼 차가웠다.
'조작이다.'
머릿속에서 그 단어가 계속 맴돌았다. 누가, 어떻게, 왜.
"하늘 님, 그때 본 걸 다시 증언해주실 수 있으세요?"
하늘이 한참 침묵했다. 전화기 너머로 종이 넘기는 소리가 들렸다. 뭔가를 찾는 듯한, 아니면 뭔가를 숨기려는 듯한.
"저... 그게, 오늘 팀장님이 저 따로 부르셨어요."
"뭐라고 하셨는데요?"
"이 사건에 대해서 외부에 말하지 말라고... 계약서에 있는 비밀유지 조항 얘기하시면서요."
나는 이를 악물었다.
"위협하신 거예요?"
"위협까지는... 근데 무섭긴 했어요."
나는 하늘의 목소리에서 두려움을 느꼈다. 말끝이 자꾸 흐려지고, 문장 사이사이에 숨을 참는 듯한 정지가 있었다.
하늘은 정규직이었다. 나와 처지가 달랐다. 잃을 게 더 많은 사람이었다. 결혼도 앞두고 있다고 들었다. 전세 대출도 얼마 전에 받았다고, 언젠가 술자리에서 지나가듯 말한 적이 있었다.
"괜찮아요, 하늘 님. 무리하지 마세요."
전화를 끊고 나는 다시 로그 화면을 열었다.
원본 데이터는 이미 삭제됐다.
접속 기록조차 남아 있지 않았다. 마치 누군가 정교하게 파낸 것처럼, 그 구간만 텅 비어 있었다.
하지만 나는 알고 있었다.
센터 시스템은 백업을 별도 서버에 이십사 시간 보관한다.
나 같은 말단 계약직은 접근 권한이 없었다. 그 서버는 오직 정규직 팀장급 이상만 열람할 수 있었다. 나는 그 문 앞에서 몇 번이나 로그인을 시도했다가 튕겨나갔는지 셀 수도 없었다.
하지만 딱 한 가지,
내가 개인적으로 저장해 둔 캡처와 로그 사본만으로는 맞설 수 있는 상대가 아니었다.
그날 밤, 이상 신호를 발견하고 다급하게 화면을 몇 번이나 눌러 저장했던 그 순간들이.
그리고 그 캡처 안에는, 좌표 재설정 명령의 승인자 필드가 찍혀 있었다.
[승인자: 서준혁]
나는 그 캡처를 몇 번이나 다시 봤다.
손이 떨렸다.
화면을 확대해서 글자 하나하나를 다시 확인했다. 오타도, 흐릿함도 없었다. 선명하게, 그 이름이 박혀 있었다.
이건 증거였다.
하지만 동시에, 이걸 어떻게 써야 할지 몰랐다.
협회에 제출한다 해도, 내부 감사가 서준혁의 편에서 움직인다면 오히려 나만 위험해질 수 있었다. 언론에 흘린다 해도, 익명 제보자 수준으로는 금방 묻힐 게 뻔했다.
나 혼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
다음 날 아침, 센터에 도착하자 분위기가 이상했다.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느꼈다. 평소보다 사람이 많았다. 정문 앞에 낯선 승합차들이 줄지어 서 있었고, 커다란 로고가 붙은 방송사 차량도 보였다.
로비에 기자들이 몰려 있었다.
카메라 플래시가 터졌다.
"강도현 씨! 여기 좀 봐주시겠습니까!"
나는 순간 얼어붙었다.
'왜 나를...'
내 이름을 어떻게 알고 있는 건지, 그것부터 이해가 되지 않았다. 나는 그냥 말단 계약직이었다. 이름이 알려질 이유가 없는 사람이었다.
경비원이 나를 급히 옆문으로 안내했다.
옆문으로 빠져나가는 동안에도 몇몇 카메라가 나를 향해 셔터를 눌렀다. 플래시가 눈을 찔렀다.
"무슨 일이에요?"
경비원이 곤란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어젯밤에 회사에서 기자회견 예고를 냈어요. 오늘 오전에 뭔가 발표한다던데."
나는 심장이 쿵, 하고 떨어지는 걸 느꼈다.
부스에 도착하자마자 하늘이 달려왔다.
얼굴이 하얗게 질려 있었다. 평소 단정하게 정리하던 머리도 헝클어져 있었다.
"도현 씨, 큰일 났어요."
"뭔데요?"
하늘이 태블릿을 내밀었다. 손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화면에는 이미 뜬 기사가 있었다.
[속보: 백하은 사망, 안전관리자 과실 정황 포착]
나는 기사를 읽어 내려가다가, 내 이름을 발견했다.
[사건 당시 담당 안전관리자였던 강도현(가명 아님) 씨가 게이트 이상 신호를 감지했음에도 적절한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는 내부 증언이 나왔다.]
나는 그대로 서서 화면을 다시 읽었다.
한 번, 두 번, 세 번.
글자가 눈에 익숙해질 때까지 읽었지만, 내용은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다.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나는 이상 신호를 감지했고, 즉시 보고했고, 공략 중지를 신청했다. 그 순간의 기억은 지금도 선명했다. 손끝이 떨리면서 버튼을 누르던 감각, 마이크에 대고 다급하게 보고하던 목소리까지.
그걸 묵살한 건 서준혁이었다.
"이게 뭐예요, 이거 완전 거짓말이잖아요."
목소리가 나도 모르게 커졌다. 주변 몇몇 직원들이 나를 힐끔거렸다.
하늘도 고개를 저었다.
"저도 이해가 안 돼요. 어제까지 이런 얘기 없었는데."
"내부 증언이라는 게 누구예요? 저 말고 그 게이트에 있던 사람이 몇 명 안 되잖아요."
하늘이 입술을 깨물었다.
"모르겠어요. 근데... 팀장님 쪽에서 나온 얘기 같아요."
그때, 회의실 쪽에서 사람들이 모여드는 게 보였다.
대형 스크린이 켜졌다.
기자회견이 시작되려 하고 있었다.
나는 그 화면 쪽으로 걸어갔다. 발걸음이 무거웠다. 다리가 내 것이 아닌 것처럼 느껴졌다.
서준혁이 단상 위에 서 있었다.
검은 정장을 입고, 침착한 표정으로. 조명이 그의 얼굴을 정면으로 비추고 있었고, 그 표정에는 어떤 죄책감의 흔적도 없었다.
"오늘 저는 무거운 마음으로 이 자리에 섰습니다."
그의 목소리가 스피커를 통해 울렸다.
"백하은 탐색자의 사망은, 저희 회사 전체에 큰 충격이었습니다. 그리고 저희는 진실을 은폐할 생각이 없습니다."
나는 그 말을 듣고 있는 것만으로도 손이 떨렸다.
'진실을 은폐할 생각이 없다니.'
이보다 뻔뻔한 말이 있을 수 있을까.
"조사 결과, 당시 담당 안전관리자였던 강도현 씨가 게이트 이상 신호를 인지했음에도, 개인적인 판단으로 보고를 지연하고, 결과적으로 좌표 오류를 방치한 정황이 확인되었습니다."
"거짓말."
나는 나도 모르게 소리를 내뱉었다.
주변에 있던 몇몇 직원들이 나를 쳐다봤다. 누군가는 안타깝다는 표정을, 누군가는 의심스럽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 시선들이 화살처럼 나에게 꽂혔다.
서준혁은 화면 속에서 담담하게 말을 이었다.
"저희 회사는 강도현 씨의 계약을 즉시 해지하고, 관련 법적 조치를 검토하고 있습니다."
카메라 셔터 소리가 화면 너머로도 들리는 것 같았다.
"질문 받겠습니다."
기자들의 손이 일제히 올라갔다.
"강도현 씨가 실제로 신호를 무시했다는 증거가 있습니까?"
서준혁이 고개를 끄덕였다.
"로그 기록이 있습니다. 필요하다면 공개하겠습니다."
나는 그 말을 듣는 순간 온몸이 얼어붙었다.
로그.
내가 개인적으로 백업해 둔 로그 사본과는 다른 내용이었다.
그 조작된 기록이 이제 나를 죽이는 증거로 쓰이려 하고 있었다.
머릿속이 하얗게 비어버렸다. 저들이 만든 로그라면, 이미 승인자 필드부터 다시 조작되어 있을 게 분명했다. 내 이름이 그 자리에 박혀 있는 광경이 눈앞에 그려졌다.
하늘이 내 팔을 붙잡았다.
손이 차가웠다. 아니, 내 팔이 차가운 건지도 몰랐다.
"도현 씨, 지금 나가야 해요. 여기 있으면 위험해요."
"..."
나는 화면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서준혁의 침착한 얼굴이, 화면 가득 확대되어 있었다.
죄책감도, 흔들림도 없는 얼굴이었다. 마치 오래전부터 이 순간을 연습해온 사람처럼, 목소리에는 흔들림이 없었다. 대답도 물음이 나오기 전에 준비되어 있었다는 듯 매끄러웠다.
마치 이 모든 게 예정된 각본처럼.
기자들 사이에서 누군가 나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게 보였다. 낮은 웅성거림이 부스 전체를 채웠다.
"저 사람이 강도현이래."
"진짜? 생각보다 젊네."
"사람 하나 죽여놓고 뭘 저렇게 멀뚱히 서있어."
그 말이 귀에 박혔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반박할 틈도, 반박할 자리도 없었다.
나는 그제야 깨달았다.
이건 사고가 아니었다.
계획된 일이었다.
내가 캡처해둔 파일 몇 장으로 맞설 수 있는 상대가 아니었다. 저들은 이미 언론과 여론, 그리고 회사 시스템까지 손에 쥐고 있었다. 나는 그 거대한 각본 속에서 이미 배역이 정해진 조연이었다.
그리고 그 배역의 이름은, 살인 방조자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