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
‹ ›빛은 순식간에 사라졌다.
나는 코어를 든 채 숨을 멈췄다.
착각이었나.
다시 살펴봐도 코어는 그저 낡은 쇳덩이였다.
표면에 새겨진 문양도 그대로였다.
녹슨 자국도 그대로였다.
방금 본 빛은 어디에도 남아 있지 않았다.
두 달째였다.
두 달 동안 나는 매일 이 자리에 앉아 톱니를 맞췄다.
매일 실패했다.
어제도 실패했고, 그 전날도 실패했다.
작업대 위에 올려놓고 다시 톱니를 집었다.
그런데 손끝이 이상했다.
평소보다 감각이 뚜렷했다.
마치 손끝에 눈이 달린 것 같았다.
톱니를 홈에 맞췄다.
딱 맞았다.
숨이 턱 막혔다.
두 달 동안 한 번도 없던 일이었다.
나는 내 손을 내려다봤다.
방금 그게 정말 내 손이 한 일인가.
다시 손을 움직였다.
다음 톱니도 맞았다.
세 번째 톱니.
이번에도 맞았다.
세 번.
연속으로 세 번.
지난 두 달 동안 합쳐서 세 번도 맞춘 적이 없었는데.
손이 떨렸다.
기쁨인지 두려움인지 구분이 안 됐다.
심장이 뛰는 속도만 빨라지고 있었다.
그때 목소리가 들렸다.
"제법이네."
작업장에는 나뿐이었다.
나는 고개를 돌렸다.
아무도 없었다.
작업대 위 공구들, 구석에 쌓인 폐품 더미, 깨진 창문으로 들어오는 달빛.
그게 전부였다.
"거기, 코어 쳐다보고 있잖아."
목소리가 다시 들렸다.
코어에서였다.
손에서 코어를 놓치고 말았다.
바닥에 떨어지는 소리가 작업장을 울렸다.
쇳덩이가 바닥에 부딪히는 그 소리가 유난히 크게 느껴졌다.
"떨어뜨리지 마. 아파."
나는 뒷걸음질쳤다.
등이 벽에 닿았다.
심장이 미친 듯이 뛰었다.
손바닥에 땀이 났다.
코어가 바닥에서 천천히 떠올랐다.
둥근 표면의 문양이 회전하며 빛을 냈다.
그 빛 속에서 형체 없는 무언가가 응축되었다.
인간의 형상 같기도 하고, 기계 부품이 뒤엉킨 덩어리 같기도 했다.
윤곽이 흐릿했다가 뚜렷해졌다가, 다시 흐릿해졌다.
"뭐, 뭐야."
목이 말랐다.
말이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입안이 바짝 마른 느낌이었다.
"정령이야. 이름은 아직 없어."
"정령……"
그 단어를 입 밖으로 내뱉는 순간 다리에 힘이 빠졌다.
정령이라니.
그런 건 기계사 시험 준비 교본에나 나오는 전설 속 존재였다.
실재한다는 얘기는 들어본 적도 없었다.
"두 달 동안 실패한 놈이 갑자기 궁금해할 여유는 있네."
비웃음 섞인 말투였다.
존댓말도, 그렇다고 다정한 반말도 아니었다.
감정이라곤 하나도 섞이지 않은, 데이터를 읽는 듯한 어조였다.
"너, 열흘 남았지."
"어떻게 알았어."
"네 몸에 붙은 흑우 인장. 신분 만료일이 다 적혀 있거든."
그 말에 등줄기가 서늘해졌다.
왼쪽 팔목을 반사적으로 감쌌다.
그 안에 새겨진 인장이 갑자기 무겁게 느껴졌다.
"기계사 시험. 붙고 싶지."
질문이 아니라 확인이었다.
"당연하지."
"그럼 나랑 계약해."
너무 빠른 제안이었다.
나는 침을 삼켰다.
목구멍이 따가웠다.
"계약이 뭔데."
"내가 힘을 주고, 넌 대가를 치르는 거야. 투자라고 생각해. 지금 네 상황은 부도난 회사야. 자산도 없고, 시간도 없어. 그런데 나는 지금 투자할 이유가 있어."
"대가가 뭔데."
"그건 나중에 알게 돼."
"그게 무슨 대답이야."
나는 목소리를 높였다.
"계약서 세부 조항을 미리 다 읽고 서명하는 사람이 어디 있어. 다들 필요할 때 서명해."
"싫어."
나는 고개를 저었다.
"알겠어. 그럼 열흘 뒤에 다시 얘기하자."
말투에 조급함이 없었다.
그게 더 이상했다.
보통이라면 여기서 더 매달려야 할 텐데, 저 목소리는 시간이 자기편이라는 걸 아는 것처럼 태연했다.
코어가 다시 잠잠해지려는 순간, 뚱보의 목소리가 밖에서 들렸다.
"도현아, 뭐 해?"
나는 재빨리 코어를 폐품 더미 아래로 밀어 넣었다.
손이 너무 빨리 움직여서 관절이 아팠다.
"아무것도 아니야."
뚱보가 문을 열고 들어왔다.
얼굴에 웃음이 가득했다.
작업장 문틀에 몸을 부딪히면서도 웃고 있었다.
"오늘 폐품값 좀 잘 받았어. 이거 먹어."
식은 만두 몇 개를 내밀었다.
포장지도 없이, 손바닥 위에 그냥 올려서.
나는 그것을 받았다.
손끝이 아직도 떨리고 있었다.
만두의 온기가 손바닥에 닿았지만 손끝은 여전히 차가웠다.
"고마워."
"별거 아니야."
뚱보는 아무렇지 않게 웃었다.
그 웃음이 오늘은 유독 아팠다.
"많이 못 받았지."
"괜찮아, 그럭저럭 받았어."
거짓말이라는 걸 알았다.
뚱보는 항상 그렇게 말했다.
그럭저럭이라는 말 뒤에 얼마나 헐값에 넘겼는지는 절대 말하지 않았다.
뚱보가 자리에 앉아 만두를 씹으며 오늘 하루 있었던 일을 늘어놓았다.
어느 고물상 아저씨가 시비를 걸었고, 어느 골목에서 쓸 만한 나사를 주웠고.
나는 듣는 척하며 고개를 끄덕였지만 머릿속은 온통 폐품 더미 아래 숨긴 코어에 가 있었다.
밤이 깊었다.
뚱보가 잠든 뒤, 나는 다시 폐품 더미를 뒤져 코어를 꺼냈다.
뚱보의 숨소리가 규칙적으로 들려오는 걸 확인하고서야 코어를 손에 쥐었다.
"다시 왔네."
목소리가 기다렸다는 듯 말했다.
"대가가 뭔지 말 안 하면 계약 안 해."
"좋아, 그럼 이렇게 말해줄게. 대가는 네가 감당할 수 있는 만큼이야."
"그게 무슨 뜻이야."
"시장은 항상 그렇게 움직여. 네가 지불할 수 있는 만큼만 청구서가 날아와. 감당 못 할 청구서는 처음부터 안 보내."
말이 그럴듯했다.
하지만 뭔가 미끄러운 느낌이 들었다.
비누처럼 손에서 자꾸 빠져나가는 논리였다.
"그 감당할 수 있는 만큼을 누가 정해."
"내가."
너무 담백한 대답이라 오히려 말이 막혔다.
"그게 공정한 거야?"
"공정이라는 말은 시장에 없어. 있는 건 가격뿐이야."
"거절하면 어떻게 되는데."
"넌 열흘 뒤에도 A급 엔진을 못 만들 거야. 흑우로 남아서 톱니골에서 평생 폐품이나 줍겠지. 아니면 뚱보처럼 몸 갈아서 돈 벌든가."
뚱보 이름이 나오자 가슴이 철렁했다.
"뚱보 얘기는 왜 꺼내."
"현실을 말하는 거야. 네가 실패하면 그 덩치 큰 애가 계속 너를 먹여야 해. 걘 언제까지 그렇게 살아야 할까."
말이 옳았다.
틀린 데가 없었다.
그래서 더 화가 났다.
뚱보가 오늘 얼마를 받았는지 나는 몰랐다.
하지만 저 만두 몇 개가 뚱보의 하루치 밥값이었을 거라는 건 알았다.
그리고 그 만두를 나에게 먹였다는 것도.
"닥쳐."
"닥치라고 해서 상황이 바뀌진 않아."
나는 코어를 움켜쥐었다.
손바닥이 뜨거워졌다.
"만약에."
목이 잠겼다.
"계약하면, 뚱보한테 피해가 가는 거야?"
잠깐, 정령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 침묵이 대답보다 더 무서웠다.
1초, 2초, 3초.
정령이 침묵하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심장 뛰는 소리만 커졌다.
"그건 계약서에 없는 조항이야."
대답을 피하는 말투였다.
나는 그 말을 곱씹었다.
뭔가 있다는 뜻이었다.
계약서에 없다는 건, 물어보지 않으면 절대 말해주지 않겠다는 뜻이기도 했다.
"조항에 없으면 없는 거 아니야?"
"조항에 없는 것도 벌어질 수 있어. 세상에 완벽한 계약서는 없거든."
"그건 대답이 아니잖아."
"맞아, 대답이 아니야."
너무 솔직해서 오히려 더 불안했다.
거짓말을 했다면 차라리 안심했을 텐데.
하지만 열흘이라는 숫자가 눈앞에서 깜빡였다.
10.
9가 되고 8이 될 숫자.
그 숫자가 줄어들 때마다 뚱보의 저축도 줄어들고 있었다.
뚱보의 손등에 박인 굳은살이 떠올랐다.
그 손으로 매일 폐품을 뒤지고, 그 손으로 매일 나에게 밥을 사줬다.
그 손이 앞으로 얼마나 더 그래야 할까.
시험까지 열흘.
톱니 하나 제대로 못 맞추던 손.
그리고 방금 세 번 연속으로 맞춘 손.
이 세 가지가 머릿속에서 동시에 돌아갔다.
"계약할게."
입이 먼저 움직였다.
"잘 생각했어."
정령의 목소리에 처음으로 만족스러운 기운이 섞였다.
그 기운이 유독 서늘하게 느껴졌다.
코어의 문양이 다시 빛나기 시작했다.
아까보다 더 밝았다.
그리고 그 빛이, 이번에는 사라지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