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
‹ ›은빛 섬광이 존재의 몸을 그대로 갈랐다.
서걱.
짧고 깨끗한 소리였다.
검은 형체가 반으로 쪼개지며 그대로 무너져 내렸다.
검은 안개가 흩어지며 순식간에 사라졌다.
숲이 다시 고요해졌다.
나는 무릎을 꿇은 채 그 자리를 멍하니 바라봤다.
방금까지 내 눈앞을 가득 채웠던 검은 형체가, 이제는 흔적조차 남지 않고 사라져 있었다.
(...끝났어?)
숨이 거칠게 새어 나왔다.
가슴이 오르내리는 게 느껴질 정도로 크게 헐떡였다.
손끝이 아직도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괜찮아요?"
낮고 또렷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고개를 들었다.
갈색 세미롱 머리를 하나로 묶은 여자가 서 있었다.
손에는 은빛으로 빛나는 검이 들려 있었다.
협회 표준 헌터복 위에 걸친 코트가 바람에 살짝 흔들렸다.
그녀가 서 있는 자리로 오후 햇빛이 비스듬히 스며들고 있었다.
그 빛 때문인지, 검을 쥔 손이 유독 눈에 들어왔다.
"저... 감사합니다."
나는 겨우 목소리를 냈다.
온몸이 통증으로 저려왔다.
어깨의 상처에서 뜨거운 것이 흘러내리는 게 느껴졌다.
"3등급 던전에서 이런 개체가 나오는 게 말이 안 되는데."
그녀는 쓰러진 몬스터의 흔적을 내려다보며 미간을 좁혔다.
발끝으로 바닥에 남은 검은 얼룩을 살짝 건드려 보기도 했다.
무언가를 가늠하는 듯한 손짓이었다.
그러다 나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눈빛이 순간 반짝였다.
[감정(鑑定) 스킬 발동 - 대상 분석 중.]
그녀의 눈동자가 잠시 옅은 금빛으로 빛났다.
나는 그 시선을 느끼며 저도 모르게 몸이 긴장됐다.
등줄기를 타고 낯선 파문이 지나갔다.
(뭐지, 지금 나를... 보고 있는 거야?)
짧은 정적이 흘렀다.
바람이 잠시 멈춘 것처럼 느껴질 정도로 조용한 순간이었다.
그녀는 눈을 살짝 크게 떴다가, 곧 아무 일도 아니었다는 듯 표정을 풀었다.
"...아니, 신경 쓰지 마세요. 다친 데부터 봐야겠네요."
그녀는 성큼 다가와 내 어깨의 상처를 살폈다.
손끝에서 옅은 초록빛이 흘러나왔다.
따뜻한 온기가 상처 부위로 스며들었다.
통증이 서서히 잦아들었다.
살갗을 타고 번지던 화끈한 느낌이 조금씩 무뎌졌다.
"회복계 스킬도 있으세요?"
"기본적인 응급처치 정도예요. 협회 헌터라면 다들 배우는 거죠."
그녀가 웃으며 대답했다.
웃을 때 눈매가 살짝 휘어지는 게, 이상하게 눈에 오래 남았다.
가까이서 보니 코트 안쪽에 협회 마크가 작게 새겨져 있었다.
"저, 저희도 괜찮아요?"
오세연이 조심스럽게 다가와 물었다.
목소리가 아직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차현우도 뒤따라오며 여전히 떨리는 손으로 검을 쥐고 있었다.
그는 검을 어떻게 다시 넣어야 할지 몰라 어색하게 손에 들고만 있었다.
"두 분은 다행히 크게 다치지 않으셨네요."
그녀는 두 사람을 훑어보며 말했다.
그러고는 다시 나를 바라봤다.
"이분이 몸으로 막아준 덕분인 것 같은데요."
오세연이 나를 바라보는 눈빛이 순간 흔들렸다.
하지만 그 눈빛의 의미를 정확히 읽어낼 수는 없었다.
차현우는 아무 말 없이 시선을 바닥으로 떨어뜨렸다.
"저는 서하은이에요. 신입 헌터고, 근처에서 마나 이상 반응 신고를 받고 왔어요."
그녀가 손을 내밀었다.
나는 얼떨결에 그 손을 잡았다.
손이 생각보다 단단했다.
검을 오래 쥔 사람의 손이라는 게, 손바닥의 굳은살로 짐작이 갔다.
"강도윤입니다."
"강도윤 씨."
그녀는 내 이름을 한 번 되뇌었다.
그러고는 다시 쓰러진 몬스터의 흔적으로 눈길을 돌렸다.
그 눈빛에 다시 진지함이 어렸다.
"이거, 협회에 보고해야 할 일이에요. 등록되지 않은 개체가 3등급 필드에서 튀어나온 거니까요."
그녀의 목소리에 순간 진지함이 배어들었다.
그녀는 허리춤에서 작은 단말기를 꺼내 몇 마디 짧게 보고를 남겼다.
말투가 사무적으로 바뀌는 게, 방금 전 나를 살펴주던 목소리와는 다른 사람처럼 느껴졌다.
(뭔가... 이 사람은 이 일을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어.)
나는 그녀를 바라보며 알 수 없는 감정을 느꼈다.
방금 전까지 죽음의 문턱까지 몰렸던 나와 비교해, 그녀는 압도적인 실력으로 상황을 단숨에 정리해버렸다.
검 한 번, 그걸로 끝이었다.
휘두르는 동작조차 제대로 보지 못했는데, 결과만 남아 있었다.
(나는... 지금 뭘 하고 있었던 거지.)
가슴 한쪽이 묵직하게 가라앉았다.
부끄러움과 동경이 뒤섞인, 정체를 알 수 없는 감정이었다.
나는 이렇게 되기까지 얼마나 걸릴지 상상조차 되지 않았다.
손에 쥔 내 검이 갑자기 낯설게 느껴졌다.
서하은은 협회에 보고를 마친 뒤, 다시 나를 향해 몸을 돌렸다.
단말기를 코트 안주머니에 집어넣는 손짓이 자연스러웠다.
"강도윤 씨, 몸은 좀 어때요?"
"...괜찮아요. 서 헌터님 덕분에."
"하은이라고 불러도 돼요."
그녀가 짧게 웃었다.
그 웃음 뒤로, 나는 그녀의 눈빛이 다시 한번 나를 스치는 걸 느꼈다.
무언가를 확인하려는 듯한, 조심스러운 시선.
아까 감정 스킬을 쓸 때와 비슷한 눈빛이었다.
"저, 실례지만... 스킬이 뭐예요?"
뜬금없는 질문이었다.
나는 잠시 머뭇거렸다.
대답을 해야 하나 잠깐 고민이 됐지만, 딱히 숨길 이유도 없었다.
"...∞웨폰 EX요. 근데 아직 제대로 못 써요."
"∞웨폰..."
그녀의 눈이 아주 살짝 커졌다.
그러다 이내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돌아왔다.
찰나였지만, 나는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지켜봤다.
"그렇구나. 처음 듣는 이름이네요."
그녀의 대답은 자연스러웠지만, 나는 그 짧은 순간의 표정 변화를 놓치지 않았다.
(방금 그거... 뭔가 알고 있는 표정이었어.)
의심은 확신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 미묘한 어긋남이 자꾸 마음에 걸렸다.
왜 처음 듣는 이름이라면서, 눈은 그렇게 반응한 걸까.
숲에는 다시 새소리가 돌아오고 있었다.
바람이 나뭇잎을 흔들며 지나갔다.
평화로워 보이는 풍경이었지만, 나는 왠지 그 평화가 좀 전과는 다르게 느껴졌다.
나뭇잎 사이로 비쳐드는 빛도, 조금 전과 같은 빛인데 어딘가 삐걱거리는 듯한 인상을 남겼다.
"일단 여기서 나가는 게 우선이겠네요. 협회에서 조사대가 오기 전에요."
서하은이 앞장서며 말했다.
목소리는 다시 평소처럼 부드러워져 있었다.
방금 전의 미묘한 긴장은 사라지고 없었다.
"저희... 이제 어떻게 되는 거예요?"
오세연이 걸음을 옮기며 물었다.
"등록되지 않은 개체가 나왔으니, 조사에 협조하셔야 할 거예요. 크게 걱정하실 건 없어요. 다들 무사하니까요."
서하은이 돌아보며 짧게 웃었다.
그 웃음에 오세연이 조금 안심한 듯 어깨를 늦췄다.
차현우는 여전히 말없이 걷기만 했다.
서하은은 우리를 안전한 곳까지 안내해주겠다고 했다.
걸어가는 그녀의 뒷모습을 나는 오래도록 바라봤다.
코트 자락이 걸음에 맞춰 흔들리는 모습이 눈에 박혔다.
(저 사람처럼... 되고 싶다.)
그 생각이 마음속에 깊게 박혔다.
오세연과 차현우가 나란히 뒤따라 걸어가는 모습이 시야 한쪽에 들어왔지만, 나는 애써 신경 쓰지 않으려 했다.
숲의 끝이 보이기 시작했다.
빛이 점점 넓게 퍼지는 쪽으로, 우리는 조용히 걸어 나갔다.
그때, 서하은의 걸음이 아주 잠깐 멈췄다.
그녀는 아무 말 없이 뒤를 돌아, 다시 한번 나를 바라봤다.
그 시선에는 아까와는 조금 다른 무언가가 담겨 있었다.
나는 그 눈빛의 의미를 알 수 없었다.
다만 그녀가 무언가를 결심한 듯한 얼굴이었다는 것만은, 분명하게 느낄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