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
‹ ›던전에서 돌아온 지 사흘이 지났다.
어깨의 상처는 서하은의 응급처치 덕분에 빠르게 아물었다.
새살이 돋아나는 자리를 손끝으로 눌러보면 아직도 미묘한 통증이 남아 있었다.
하지만 그날 이후로, 내 안에 뭔가 다른 게 자리 잡은 느낌이었다.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감각이었다.
몸속 깊은 곳에서 낯선 무게가 웅웅거리는 것 같았다.
가만히 누워 천장을 바라보고 있으면, 그 무게가 조금씩 꿈틀거리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이게 뭘까.)
그럴 때마다 나는 상태창을 열어 확인했지만, 스킬창 어디에도 이상 징후는 없었다.
∞웨폰 EX라는 이름만이 목록 맨 아래, 회색으로 흐릿하게 표시되어 있을 뿐이었다.
[강도윤 씨, 그날 정말 고마웠어요! 다음 주에 시간 괜찮으세요?]
서하은에게서 온 메시지였다.
뒤에 웃는 이모티콘이 여러 개 붙어 있었다.
나는 화면을 몇 번이나 다시 읽었다.
글자 하나하나를 눈으로 훑으며, 그 안에 담긴 의도를 가늠해보려 애썼다.
"음... 이거 어쩌지."
혼잣말이 절로 나왔다.
책상 위에 놓인 휴대폰 화면이 은은하게 빛나고 있었다.
[답장하시는 데 3분 47초가 걸렸습니다.]
단말기가 조용히 알렸다.
"…신경 좀 꺼줄래."
[신경을 끄는 기능은 탑재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래, 알았다."
나는 짧게 답장을 보냈다.
[네, 괜찮아요.]
곧바로 답이 왔다.
[좋아요! 사실 파티 제안하고 싶어서요. 저희 팀에 자리 하나 비었는데, 강도윤 씨 실력이면 딱일 것 같아서.]
심장이 살짝 빨라졌다.
(파티 제안...?)
생각지도 못한 제안이었다.
던전에서 함께한 시간은 짧았지만, 그 며칠이 내 머릿속에서는 꽤 오래 머물러 있었다.
*
협회 카페 안, 창가 자리에 서하은이 먼저 와 앉아 있었다.
햇빛이 유리창을 통해 그녀의 어깨 위로 부드럽게 내려앉아 있었다.
맞은편에는 장신의 남자가 팔짱을 낀 채 앉아 있었다.
나를 발견한 서하은이 손을 흔들었다.
"이쪽은 이준서. 저희 파티 딜러예요."
"이준서입니다."
그가 짧게 인사했다.
목소리에는 미묘한 경계심이 섞여 있었다.
시선이 나를 위에서 아래로 훑고 지나가는 게 느껴졌다.
나는 그 시선을 애써 무시하며 자리에 앉았다.
의자를 당겨 앉는 순간, 다리 사이로 낯선 긴장감이 스쳤다.
(이 남자, 뭔가 마음에 안 드나 보네.)
"실력이면 딱이라니, 그건 좀 과한 말씀 같은데요."
"에이, 그날 봤잖아요. 그 정도 상대를 몸으로 버텨낸 거 자체가 대단한 거예요."
서하은이 손을 저으며 웃었다.
그녀의 웃음에는 꾸밈이 없었다.
이준서는 그 모습을 보며 미간을 살짝 좁혔다.
찻잔을 든 손가락에 힘이 들어가는 게 보였다.
"하은아, 아직 등급도 안 맞는데."
"등급은 나중에 조율하면 되지."
서하은이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이준서는 더 말을 잇지 않았지만, 표정에는 여전히 불편함이 남아 있었다.
턱을 살짝 당긴 채 창밖을 바라보는 그의 옆얼굴이, 마치 이 상황 전체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말하는 것 같았다.
테이블 위에는 세 개의 커피잔이 놓여 있었다.
김이 아직 옅게 피어오르고 있었다.
"저 그런데... 그때 물어보셨던 거요."
나는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웨폰 EX에 대해서."
서하은의 표정이 순간 굳었다.
입가에 걸려 있던 미소가 스르르 사라졌다.
"…아, 그거요."
짧은 정적이 흘렀다.
카페 안의 잔잔한 음악 소리만이 그 틈을 메웠다.
"솔직히 말하면, 저도 정확히는 몰라요."
그녀가 목소리를 낮췄다.
몸을 살짝 앞으로 기울이며, 마치 주변에 누가 들을세라 조심하는 듯한 몸짓이었다.
"다만... 협회 고문서에 딱 한 번 등장한 이름이에요. 아주 오래전에."
"고문서요?"
"등록된 게 아니라, 전해지는 이야기 같은 거예요. 위험한 힘이라고. 사용자가 특정 조건에서만 각성한다고 들었어요."
나는 순간 숨이 막혔다.
(특정 조건...)
가슴 안쪽에서 뭔가 쿵, 하고 내려앉는 느낌이 들었다.
뇌리에 그날의 기억이 스쳤다.
블랙기업에서 도망치던 날, 무너지는 건물 안, 누군가를 구하려다 압사당할 뻔했던 순간.
콘크리트 파편이 쏟아지는 소리, 먼지 냄새, 귓속을 파고드는 비명 소리까지 생생하게 되살아났다.
숨이 끊어지기 직전, 눈앞이 새하얗게 변하며 시스템 창이 떠올랐던 그 순간.
[스킬 '∞웨폰 EX'가 각성했습니다.]
죽음의 문턱에서 각성한 힘이었다.
그 이후로 나는 다시는 그 조건을 재현하지 못했다.
실전에서 몇 번이나 시도했지만, 목숨이 위태로울 정도의 절박함이 아니면 발현되지 않았다.
몸이 절박함을 흉내 내는 건 소용이 없었다.
정신이 진짜 죽음을 감지해야만, 그 힘이 반응했다.
"강도윤 씨?"
서하은의 목소리에 나는 정신을 차렸다.
"괜찮아요?"
그녀의 눈이 걱정스럽게 나를 살피고 있었다.
"...네, 괜찮아요. 그냥 좀 놀라서."
이준서가 나를 유심히 바라봤다.
시선이 얼굴에서 눈으로, 다시 손끝으로 옮겨가는 게 느껴졌다.
"뭔가 짐작 가는 게 있는 표정인데."
"아니에요."
나는 애써 말을 돌렸다.
손에 쥐고 있던 컵을 괜히 한 번 돌려 놓았다.
(이건... 아직 아무에게도 말할 수 없어.)
서하은은 잠시 나를 바라보다가, 이내 화제를 돌렸다.
"어쨌든, 파티 제안은 진심이에요. 천천히 생각해봐요."
"...고민해볼게요."
*
카페를 나서며, 나는 서하은의 뒷모습을 다시 한번 바라봤다.
그녀는 이준서와 나란히 걸어가며 뭔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두 사람의 그림자가 보도블록 위에 길게 늘어져 있었다.
이준서가 이따금 나를 돌아보는 시선이 느껴졌다.
그 시선에는 여전히 경계심이 짙게 배어 있었다.
(저 사람, 나를 경계하는 건가.)
단순히 파티 자리 때문일까,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는 걸까.
나는 그 답을 알 수 없었다.
두 사람의 모습이 골목 끝으로 사라질 때까지, 나는 그 자리에 잠시 서 있었다.
바람이 불어와 옷깃을 스치고 지나갔다.
*
집으로 돌아오는 길, 휴대폰이 진동했다.
오세연이었다.
[오늘 저녁에 시간 돼? 얘기 좀 하고 싶어서.]
짧은 메시지였다.
평소와 다른, 어딘가 조심스러운 어투였다.
문장 뒤에 붙어 있어야 할 특유의 가벼운 말투가 사라져 있었다.
(무슨 얘기를... 하려는 거지.)
나는 잠시 화면을 바라보다가 답장을 보냈다.
[그래, 어디서 볼까.]
답이 곧바로 오지 않았다.
몇 분이 지난 뒤에야, 짧은 메시지가 도착했다.
[그때 그 카페에서 보자.]
나는 그 메시지를 몇 번이고 다시 읽었다.
가슴 한쪽이 답답하게 조여왔다.
발걸음을 옮기던 중, 나도 모르게 걷는 속도가 느려졌다.
거리의 소음이 갑자기 멀게 느껴졌다.
(뭔가... 좋은 이야기는 아닐 것 같은데.)
휴대폰 화면이 어두워질 때까지, 나는 그 자리에 서서 액정을 내려다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