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록으로 던전 너머의 눈

3화

이틀 뒤. 통장을 확인했다. 23,600원. 재입장료가 5만 원이었으니, 이 돈으로는 입장은커녕 편의점 삼각김밥 하나도 사치였다. 나는 냉장고를 뒤졌다. 신용카드 한도, 마이너스 통장, 심지어 예전에 잊고 있던 적금까지 다 긁어모았다. 해지 수수료를 물어가면서 겨우 재입장료를 마련했을 때, 나는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이 돈으로 또 죽으면 어떻게 되는 거지? 생각이 거기까지 미치자 등줄기가 서늘해졌다. 하지만 다른 선택지가 없었다. 통장 잔고는 이미 마이너스였고, 이번 달 카드값은 다음 달 카드값으로 미뤄지는 악순환이 시작된 상태였으니까. [작은 균열] 재입장. 시청자 수: 1명. 닉네임도 없는, 봇인지 사람인지 구분조차 안 되는 그 숫자 하나가 내 유일한 관객이었다. 광고는커녕 후원 한 푼 들어올 리 없는, 존재감 제로의 방송. 상관없었다. 지금 나에게 시청자 수 따위는 사치스러운 고민이었다. 계획은 단순했다. 첫째, 슬라임과 마주치지 않는다. 둘째, 고블린과 마주치지 않는다. 셋째, 몬스터라는 이름이 붙은 모든 존재와 마주치지 않는다. 넷째, 던전 지도에 표시된 아이템 하나만 주워서 즉시 탈출한다. 싸우지 않고 살아남는 것. 그것이 공격력 1을 가진 내가 세울 수 있는 유일한 전략이었다. 던전은 이번에도 낡은 폐건물 구조였다. 회색 콘크리트 벽, 깨진 타일, 곳곳에 널브러진 파편들. 좁은 복도가 미로처럼 얽혀 있었고, 나는 지도 앱을 켜서 아이템 표시가 뜬 지점을 확인했다. 거리로 대략 200미터. 그리 멀지 않았다. 나는 벽에 몸을 바짝 붙이고 걸음을 옮겼다. 발소리를 최소화하려고 반쪽 걸음으로, 마치 도둑고양이처럼 조심스레. 심장이 미친 듯이 뛰었다. 손끝이 미세하게 떨리는 게 느껴졌다. 이런 게 생존 게임이구나. 예능 프로그램에서나 보던 서바이벌을, 목숨을 걸고 하고 있다는 사실이 좀처럼 실감이 나지 않았다. 첫 번째 모퉁이는 무사히 통과했다. 두 번째 모퉁이도 무사히 통과했다. 세 번째 모퉁이. 거기서 고블린 한 마리와 정면으로 마주쳤다. 등줄기에 식은땀이 순식간에 흘렀다. 초록빛 피부, 뾰족한 귀, 손에 든 낡은 몽둥이. 게임에서 흔히 보던 최약체 몬스터의 모습 그대로였지만, 지금 이 순간만큼은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존재였다. 고블린의 HP는 60. 내 공격력은 1. 육십 번을 때려야 죽는데, 놈은 이미 나를 향해 몽둥이를 치켜들고 있었다. 수학 계산은 순식간에 끝났다. 육십 번 때리는 동안 나는 백 번은 죽는다. 나는 반사적으로 뒤돌아 도망쳤다. 뒤에서 "그르릉" 하는 소리가 울렸다. 고블린이 쫓아오고 있었다. 발소리가 점점 가까워졌다. 영화에서처럼 "거기 서!" 하는 대사 따위는 없었다. 그저 짐승 같은 숨소리와, 발바닥이 콘크리트 바닥을 두드리는 둔중한 소리만이 등 뒤에서 커져왔다. 나는 숨을 죽인 채 무작정 옆 통로로 몸을 밀어 넣었다. 거기가 하필, 막다른 벽이었다. 조졌다. 머릿속에 그 두 글자만이 선명하게 떠올랐다. 조졌다. 완벽하게 조졌다. 등 뒤로 고블린의 발소리가 가까워졌다. 심장이 목구멍까지 튀어 올라올 것 같았다. 나는 벽에 몸을 딱 붙인 채 눈을 질끈 감았다. 이대로 죽는 건가. 5만 원이 아니라 목숨까지 걸린 거였나. 이게 정말 게임이 맞나. 재입장료를 마련하려고 적금까지 해지했는데, 여기서 죽으면 그 돈은 다 어떻게 되는 거지. 아니, 그보다 죽으면 진짜로 죽는 건가, 아니면 이 방송판 시스템 안에서만 죽는 건가. 수천 가지 생각이 0.1초 사이에 뇌를 스쳐 지나갔다. 온몸의 근육이 굳어버린 채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다. 그런데 그 순간. 눈을 감고 있던 시야 속에서 이상한 감각이 스쳤다. 벽 너머가, 보였다. 정확히는, 보였다는 표현이 정확한 건지도 모르겠다. 그냥 어떤 형태가 머릿속에 그려졌다. 회색빛 윤곽선. 벽 반대편 공간의 구조. 좁은 통로 하나가 더 있고, 그 통로 끝에는 출구로 이어지는 계단이 있다는 사실이 마치 실제로 눈으로 확인한 것처럼 선명하게 각인됐다. 이게 뭐지? 나는 눈을 번쩍 떴다. 벽은 여전히 벽이었다. 회색 콘크리트, 깨진 틈 하나 없이 완벽하게 막힌 벽. 시야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방금 느꼈던 그 감각은 너무나도 생생했다. 헛것을 본 게 아니었다. 고블린이 코앞까지 다가왔다. 몽둥이가 허공을 가르는 소리가 귓가에 스쳤다. 나는 생각할 겨를도 없이 반사적으로 몸을 옆으로 굴렸다. 그리고 그 위치는, 방금 머릿속에 그려졌던 그 이상한 이미지와 정확히 일치하는 자리였다. 거기에, 좁은 틈이 있었다. 나는 그 틈으로 몸을 던졌다. 어깨가 벽에 긁혀 살갗이 벗겨지는 느낌이 났지만 아플 겨를도 없었다. 고블린의 몽둥이가 내 등 뒤 벽을 세게 후려쳤다. 둔탁한 충격음이 울렸다. 만약 조금만 늦었다면, 그 몽둥이는 벽이 아니라 내 뒤통수를 후려쳤을 거였다. 나는 좁은 틈을 통해 필사적으로 굴러갔다. 팔꿈치와 무릎이 바닥에 쓸려 아팠지만 멈출 수 없었다. 그리고 정말로, 그 끝에는 계단이 있었다. 내가 머릿속으로 봤던 그 계단, 정확히 그 위치에. 나는 계단을 두 칸씩 뛰어올랐다. 숨이 턱까지 차올랐지만 멈추지 않았다. 등 뒤에서 고블린의 으르렁거리는 소리가 점점 멀어졌다. 그리고 마침내, 던전 출구가 눈앞에 나타났다. 나는 그대로 출구로 튀어나왔다. 밖으로 나온 뒤, 나는 바닥에 그대로 주저앉아 숨을 몰아쉬었다. 손이 떨렸다. 다리에 힘이 풀려 일어설 수조차 없었다. 방금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벽 너머가 보였다고? 그게 가능한 일인가? 나는 몇 번이나 방금 있었던 일을 되짚어봤다. 착각이었을까. 극도의 공포 속에서 뇌가 만들어낸 환각이었을까. 아니면 그냥 운이 좋아서, 우연히 그 위치에 틈이 있었던 걸까. 핸드폰을 꺼내 채팅창을 확인했다. [시청자1] 저거 뭐임 방금 벽 뚫고 감? 그 한 줄이 채팅창에 덩그러니 남아 있었다. 나는 그 문장을 몇 번이나 다시 읽었다. 벽 뚫고 감? 시청자 눈에도 이상하게 보였다는 소리였다. 나만 그렇게 느낀 게 아니었다. 방금 그건 우연이었을까. 단순히 운이 좋아서 틈을 발견한 걸까. 아니면... 심장이 다시 빠르게 뛰기 시작했는데, 이번엔 공포 때문이 아니었다. 나는 떨리는 손으로 앱을 열어 스킬 목록을 확인했다. 원래 나는 아무 스킬도 없는, 스킬 슬롯이 텅 빈 최악의 탐험자였다. 지난번에도 확인했을 때 그 칸은 회색 공백뿐이었다. 그런데 화면 하단에, 처음 보는 아이콘 하나가 깜빡이고 있었다. [스킬 획득: 투시 (유니크)] 유니크. 그 단어를 보는 순간 나도 모르게 숨이 멈췄다. 손가락이 화면 위에서 그대로 굳어버렸다. 공격력 1, 스킬 0개, 아이템 0개였던 최약체 탐험자에게, 방금 유니크 등급 스킬이 생겼다. 이게 말이 되나? 나는 몇 번이나 화면을 새로고침 했다. 아이콘은 사라지지 않았다. 여전히 그 자리에서, [투시 (유니크)]라는 글자가 깜빡이고 있었다. 나는 아직 몰랐다. 이 작은 아이콘 하나가, 내 인생 전체를 뒤흔들 사건의 시작이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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