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록으로 아버지, 또 죽이실 건가요?

4화

그 도현이라는 아이가 검을 다루는 방식이 달라졌다는 걸 처음 알아챈 건 도훈과의 대결이 있던 날 저녁이었다. 나는 그날도 평소와 다름없이 서재에서 밀린 문서를 정리하고 있었는데, 하인 하나가 숨을 헐떡이며 뛰어들어와 그 소식을 전했다. 나는 붓을 멈추고 그의 말을 몇 번이나 되짚어 물었다. 도현이 이겼다는 사실 자체는 그리 놀랍지 않았다. 그 아이는 원래도 재능이 남달랐고, 도훈과의 실력 차이가 그리 크지 않다는 것도 알고 있었으니까. 그러나 문제는 승패가 아니었다. 아이의 검술이 갑작스레 성장했다는 사실보다도, 그 성장의 결이 이상하리만치 노련하다는 점이 마음에 걸렸다. 마치 이미 수십 번 겪어본 싸움을 다시 한 번 되짚어보듯 움직였다는 게, 목격한 사람들의 한결같은 증언이었다. 한 하인은 도현이 검을 들기 전, 마치 상대의 다음 동작을 미리 알고 있는 듯 몸을 돌렸다고 했다. 다른 하나는 그 아이의 눈빛이 평소와 달리 지쳐 보였다고, 마치 오랜 시간 싸움을 치른 사람의 눈이었다고 했다. 나는 그 증언들을 하나씩 곱씹으며, 이것이 단순한 재능의 개화가 아니라는 걸 직감했다. 재능은 갑자기 피어날 수 있어도, 노련함은 그렇게 하루아침에 생겨나는 게 아니다. 노련함이란 시간과 실패가 쌓여야 만들어지는 것인데, 도현에게는 그럴 시간이 없었다. 그렇다면 남은 가능성은 하나뿐이었다. 어딘가에서 그 시간을 이미 겪고 왔다는 것. 나는 그 밤 서재 문을 걸어 잠그고 태을선사께 물려받은 《현록서(玄鹿書)》를 다시 펼쳤다. 이 서책은 대대로 관문제자에게만 전해지는 것으로, 세상의 큰 흐름과 인과의 매듭이 새겨져 있다고 알려져 있었으나, 그 문구가 지나치게 은유적이어서 해독이 쉽지 않았다. 스승께서 살아계실 때조차 이 서책의 절반도 풀어내지 못하셨다고 하셨으니, 내가 이 나이에 이걸 붙들고 있는 게 얼마나 무모한 짓인지는 나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알면서도 손을 놓을 수가 없었다. 이 서책 안에 무언가가 있다는 확신이, 이미 오래전부터 내 안에 자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이미 동해 출항 이전부터 이 서책의 한 구절에 매달려 있었는데, 그것은 채영이 세상을 떠난 그날 이후로 뜻이 조금씩 풀리기 시작한 참언이었다. 처음 이 구절을 읽었을 때는 그저 흘려 넘겼다. 세상에는 이런 식의 모호한 예언이 수백 개는 있을 것이고, 그중 대부분은 아무런 의미도 갖지 못한 채 그저 옛사람의 수사에 불과했으니까. 그러나 채영의 죽음 이후, 나는 이 구절을 다시 꺼내 들 수밖에 없었다. [동해의 조(鳥)가 붉은 검을 삼키는 날, 인연으로 얽힌 자 중 하나가 명(命)을 다하리라.] 이 구절 다음에 이어지는 문장이 문제였다. 나는 그 문장을 몇 달째 붙들고 있었으나, 글자 하나하나는 눈에 익어도 그 뜻이 도무지 하나로 꿰어지지 않았다. 어떤 날은 이것이 단순한 경고에 불과하다고 생각했고, 또 어떤 날은 이것이 이미 지나간 일을 사후적으로 설명하는 것뿐이라고 스스로를 다독이기도 했다. 그러나 그날 밤에야 비로소 그 뜻이 온전히 드러났다. [다한 명이 다시 이어지려면, 인연의 근원 — 도현을 죽여야 한다.] 나는 그 글자를 읽은 순간 붓을 떨어뜨렸다. 먹이 서책 위로 번져나가는 것을 보면서도 손을 움직이지 못했는데, 그것이 단순한 놀람 때문이었는지, 아니면 이미 어느 정도 예감하고 있던 것이 확인되었다는 데서 오는 씁쓸함 때문이었는지는 나조차 정확히 알 수 없었다. 방 안의 촛불이 흔들리는 것을 멍하니 바라보며, 나는 이 글자들이 사라져주기를 바랐다. 그러나 글자는 그대로 서책 위에 남아 있었고, 나는 그것을 몇 번이나 다시 읽었다. 읽을수록 뜻은 더 명확해졌다. 요컨대, 나는 도현을 거둘 때부터 이 아이가 예사롭지 않은 인연으로 이 가문에 들어왔다는 걸 짐작하고 있었으나, 그것이 이런 식으로 대가를 요구하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처음 그 아이를 거두었을 때, 나는 그저 버려진 아이 하나를 데려온다는 마음이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나는 그 아이의 존재가 이 가문의 인과와 깊이 얽혀 있다는 걸 느꼈고, 그 느낌은 늘 불길함보다는 애틋함으로 자리했다. 그런데 이제 와서 그 인연이 이런 식으로 청산을 요구한다는 걸 알게 되니, 나는 그동안의 애틋함이 전부 헛것이었나 하는 자조적인 생각마저 들었다. 채영의 죽음. 그것이 이 참언의 첫 매듭이었다는 걸 나는 이미 알고 있었다. 그녀의 죽음이 붉은 검과 관련이 있다는 정황을 접했을 때, 나는 그것을 그저 불행한 사고로 덮으려 했다. 나는 그때 사람들에게 채영이 검술 수련 중 실수로 목숨을 잃었다고 알렸고, 그 말을 스스로도 믿으려 애썼다. 그러나 이제 이 참언을 다시 읽어보니, 채영의 죽음은 사고가 아니라 인과의 흐름 속에서 예정된 첫 번째 매듭이었을 뿐이고, 다음 매듭이 도현이라는 사실이 명백해졌다. 그것을 깨닫는 순간, 나는 지금껏 내가 스스로를 얼마나 잘 속여왔는지를 새삼 느꼈다. 사고라고 믿었던 것이 실은 예정된 결과였다면, 그렇다면 나는 이미 한 번 이 참언의 흐름을 목격했으면서도 그것을 외면했던 셈이었다. 나는 그날 밤 오래도록 서재에 앉아 있었다. 결단을 내려야 했다. 이 참언대로 도현을 희생시켜 흐름을 완성할 것인가, 아니면 아이를 지키기 위해 이 인과 자체를 거스를 것인가. 신선술사로서 나는 인과를 거스르는 일이 얼마나 큰 대가를 요구하는지 잘 알고 있었다. 인과란 물길과 같아서, 억지로 막으면 반드시 다른 곳에서 터져 나온다는 것을, 스승께서 수도 없이 일러주셨다. 그러나 아비로서, 나는 그 아이가 첫걸음을 걷던 날부터, 그가 넘어질 때마다 손을 내밀어준 세월을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그 조그맣던 손이 처음 내 소매를 붙잡았던 감촉이며, 밤마다 무서운 꿈을 꾸었다고 내 방문을 두드리던 발소리며, 그런 것들이 하나씩 떠오를 때마다 나는 서책의 글자를 다시 지워버리고 싶어졌다. "아직 정하지 못하셨습니까" 하고 문밖에서 아내 왕냉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녀는 언제나 내가 밤늦도록 서재에 있으면 알아차리고 찾아오는 사람이었다. 몇 십 년을 함께한 부부라 그런 것인지, 아니면 그녀 역시 신선술을 다루는 사람이라 이런 기운의 흐름을 감지하는 것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그녀는 늘 내가 가장 무거운 결정을 앞두고 있을 때 정확히 그 순간에 나를 찾아왔다. 나는 서책을 덮으며 그녀를 들라 했다. 왕냉은 방으로 들어와 촛불 곁에 앉으며 서책 위에 아직 마르지 않은 먹 자국을 흘깃 바라보았다. 그녀는 그것이 무엇인지 묻지 않았다. 다만 조용히 내 얼굴을 살피며 기다렸다. "현록서에 적힌 대로라면" 하고 나는 말을 꺼냈으나, 왕냉은 이미 내 표정에서 무언가를 읽어낸 듯 조용히 자리에 앉았다. "참언이라는 것은" 하고 그녀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것을 읽는 사람의 마음이 반영되는 것이라 배웠습니다. 당신이 그 글자를 어떻게 읽으셨는지가, 결국 그 참언이 어떤 결말로 향할지를 정하는 것이 아닐까요." 나는 그 말에 쉽게 대답하지 못했다. 왕냉은 태을선사의 제자로서 나와 같은 스승 아래서 수련한 사람이었기에, 이런 문제에 있어서는 나보다 훨씬 담담했다. 그녀는 늘 인과라는 것을 물처럼 다루었다. 흘러가는 방향을 억지로 거스르지 않되, 그 흐름 안에서 자신의 자리를 정확히 찾아내는 사람이었다. 나는 그런 그녀의 담담함이 부러웠으나, 동시에 그것이 나로서는 도달할 수 없는 경지라는 것도 잘 알고 있었다. 나는 이미 도현이 이 저택으로 처음 들어온 날부터, 이 아이가 특별한 운명을 지녔다는 걸 느껴왔고, 그 특별함이 결국 이런 식으로 대가를 요구하리라는 예감을 완전히 지워내지는 못했다. "만약" 하고 나는 겨우 입을 열었다. "그 참언을 거스른다면, 그 대가는 누가 치르는 것이오." 왕냉은 잠시 말이 없었다. 그녀의 눈빛이 촛불 아래에서 흔들렸는데, 나는 그것이 그녀도 답을 모른다는 뜻인지, 아니면 알면서도 말하지 않으려는 것인지 구별할 수 없었다. "그것은" 하고 그녀가 겨우 말을 이었다. "아마 당신이 될 것입니다. 인과를 거스르는 자가 그 흐름의 무게를 대신 짊어지는 법이니까요." 나는 그 대답에 오히려 마음이 놓였다. 이상한 일이었다. 그 대가가 나에게 돌아온다는 사실이, 어째서 안도감을 주는지 스스로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러나 곧 깨달았다. 나는 이미 오래전부터, 그 아이를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짊어질 각오가 되어 있었던 것이다. "내일 아침, 도현에게 검술 지도를 다시 시작하겠소" 하고 나는 겨우 결정을 미룬 채 말을 돌렸다. 왕냉은 더 묻지 않고 자리에서 일어났으나, 문을 나서기 전에 잠시 멈춰 서서 나를 돌아보았다. "그 아이가 당신을 얼마나 믿고 따르는지, 당신도 잘 아시지 않습니까" 하는 그 한 마디가, 그날 밤 내내 내 귓가를 떠나지 않았다. 나는 그녀가 나가고도 한참을 그 자리에 앉아 있었다. 촛불이 다 타들어가는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고, 창밖으로는 언제부턴가 바람이 거세지고 있었다. 나는 그 바람 소리를 들으며, 이 저택 어딘가에서 아무것도 모른 채 잠들어 있을 도현을 떠올렸다. 그 아이는 내일 아침이면 다시 검을 들고 나를 찾아올 것이고, 나는 그 아이에게 여느 때와 같은 얼굴로 검술을 가르칠 것이다. 그러나 그 평온함 뒤에 이런 참언이 도사리고 있다는 걸, 그 아이는 짐작조차 하지 못할 터였다. 나는 그 밤, 서책의 마지막 장 한 귀퉁이에 적혀 있던 작은 글자 하나를 아직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그것은 참언의 결말이 아니라, 그 결말을 피할 수 있는 유일한 조건에 관한 것이었는데, 그 조건이 지나치게 잔혹해서 나는 차마 입 밖에 낼 수 없었다. 왕냉에게도, 도현에게도, 그 누구에게도. 나는 그 글자를 다시 한 번 손끝으로 짚어보며, 이것을 세상에 꺼내는 순간 이 가문 전체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게 될 것이라는 예감에 손끝이 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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