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록으로 실력 좀 숨겼을 뿐인데

1화

인천항 던전 입구에는 늘 비린내가 났다. 바다와 가까워서인지, 아니면 이 아래 무언가가 썩어가고 있어서인지는 알 수 없었다. 나는 그 냄새를 맡으며 하루를 시작했다. 매일 아침 같은 냄새, 같은 공기, 같은 소음. 갈매기 울음소리와 화물선 뱃고동, 그리고 던전 입구에서 뿜어져 나오는 축축한 마력의 습기가 뒤섞여 코끝을 찔렀다. 이 냄새에 익숙해지는 데 삼 년쯤 걸렸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익숙해진 게 아니라 무뎌진 거였다. 회수인. 국가와 계약을 맺고 던전 안에서 실종자나 부상자를 구조해 나오는 프리랜서 탐색자를 부르는 말이다. 정식 명칭은 '민간 계약 구조요원'이지만 아무도 그렇게 부르지 않았다. 그냥 회수인, 혹은 좀 더 비꼬는 투로 '뒤치우는 사람'. '뒤치우는 사람.' 처음 이 말을 들었을 때는 자존심이 상했다. 지금은 그냥 웃는다. 틀린 말도 아니었으니까. 오늘도 나는 던전 관리소 뒤편 컨테이너에 앉아 장비를 점검하고 있었다. 칠흑빛 대형 권총, 마력탄 여섯 발, 산소 마스크, 로프 삼십 미터. 권총의 탄창을 빼서 마력탄이 제대로 들어가 있는지 하나하나 눈으로 확인했다. 탄피에 새겨진 미세한 마력 문양이 컨테이너 불빛에 반짝였다. 이 정도면 중층까지는 문제없다. 하층은 다른 얘기지만. 로프의 매듭 상태를 점검하다가, 끝단이 살짝 풀려 있는 걸 발견했다. '이거 또 언제 이렇게 됐냐.' 새로 사야 하나 고민하다가 그냥 다시 묶었다. 돈이 남아도는 것도 아니고. "태호야, 이번 건 또 늦었어." 오태식이 컨테이너 문을 벌컥 열고 들어오며 말했다. 전 국가던전관리청 공무원 출신답게 서류 뭉치를 옆구리에 끼고, 입에는 전자담배를 물고 있었다. 문이 열리는 순간 밀려든 바깥 냄새가 컨테이너 안 공기와 섞였다. "뭐가요." "세무 신고. 이번 달도 네가 벌어들인 수당 계산이 엉망이라 내가 밤새 다시 짰다." 오태식은 마흔여덟쯤 되는 나이에 수염이 거뭇거뭇하게 났고, 늘 피곤한 얼굴로 나를 챙겼다. 세무사 겸 조수라지만 실은 후원자에 가까웠다. 사실 그가 없었다면 나는 지금쯤 어디서 뭘 하고 있을지 상상하기도 싫었다. "고생하셨네요." "고생은 무슨. 네가 돈을 좀 더 잘 벌어야지." 그는 서류 뭉치를 컨테이너 구석 책상 위에 툭 던지듯 내려놓았다. 종이 넘어가는 소리가 유독 크게 들렸다. "이번 달 수당이 저번 달보다 적더라. 콜을 좀 더 받아야 하지 않겠어?" "위험한 건 안 들어오던데요." "위험한 건 다 국가던전관리청이 먼저 채간다니까. 그 안에서 콩고물이라도 떨어져야 우리한테 오지." 그는 전자담배 연기를 길게 내뿜으며 창밖을 바라봤다. 연기가 컨테이너 형광등 불빛 사이로 흩어졌다가 사라졌다. "오늘 콜 하나 들어왔어. 중층 아니고 상층. 미아 신고." "단순 미아면 왜 저한테까지 와요." "국가던전관리청 애들이 다 나가 있어서. 요즘 유명 스트리머가 던전 안에서 생방송 한다고 사람이 몰리잖냐." 스트리머라는 말에 가슴 어딘가가 뜨끔했다. 이유는 나도 잘 몰랐다. 오태식은 내 표정을 눈치채지 못한 듯, 서류 사이에서 콜 정보가 적힌 종이 한 장을 뽑아 내밀었다. "실종자 인적 정보 여기 있고, 보호자 연락처도 적어놨어. 늦으면 또 컴플레인 들어오니까 서둘러라." "···알겠습니다. 가죠." 나는 장비를 챙기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권총을 허리 홀스터에 꽂고, 로프를 어깨에 둘렀다. 산소 마스크는 배낭 옆주머니에 대충 밀어 넣었다. 오태식이 문득 나를 위아래로 훑어봤다. "넌 참 이상해." "뭐가요." "위험한 일 하면서 표정 하나 안 변해. 겁도 없고." 나는 배낭 끈을 조이며 잠깐 그의 얼굴을 봤다. 그 말에 나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겁이 없는 게 아니라, 겁을 느낄 여유가 없었을 뿐이다. 컨테이너 문을 나서기 전, 오태식이 등 뒤에서 한마디 덧붙였다. "밥은 먹었냐." "아침에 먹었어요." "뭐 먹었는데." "···물." 오태식이 헛웃음을 흘리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대답 없이 문을 닫고 나왔다. * 상층 던전은 관광지처럼 붐볐다. 인천항 던전은 국내에서 가장 접근성이 좋은 곳 중 하나였고, 상층은 사실상 초보자 훈련장이나 다름없었다. 마력 농도가 낮고 몬스터도 슬라임이나 저급 고블린 정도가 전부였다. 가족 단위 체험객들이 안전 요원의 안내를 받으며 줄지어 입구를 통과하고 있었다. 아이들 웃음소리와 부모들의 사진 찍는 소리가 뒤섞여 던전 입구는 소풍 나온 분위기였다. ···물론 그렇다고 사람이 안 죽는 건 아니었다. 실종된 미아는 초등학생 남자아이였다. 부모가 체험 프로그램에 데려왔다가 무리에서 이탈했다는 신고였다. 관리소 직원에게 아이의 사진과 마지막 목격 위치를 전달받았다. 빨간 티셔츠, 검은 운동화, 키는 대략 130센티미터쯤. 나는 던전 지도를 펼쳐 아이가 갈 만한 경로를 계산했다. 지도 위 통로들이 미세하게 발광하는 마력선으로 그려져 있었다. '통로 폭이 좁아지는 지점에서 갈라졌을 거다.' 감이 아니었다. 계산이었다. 마력 흐름의 방향, 몬스터 서식 밀도, 아이의 걸음 속도까지 종합한 결과였다. 지도 위 세 갈래 분기점 중, 폭이 가장 좁고 마력 밀도가 낮은 통로. 아이 정도 체구라면 무의식적으로 그쪽으로 몸을 밀어넣었을 확률이 높았다. 하지만 나조차도 이 계산이 어디서 나오는지 정확히 설명할 수 없었다. 마치 오래전부터 알고 있던 것처럼, 손이 먼저 지도를 짚었다. 던전 통로를 걸으며 벽을 훑었다. 축축한 이끼 냄새와 은은한 마력의 진동이 발밑에서부터 올라왔다. 슬라임 한 마리가 통로 구석에서 꿈틀거리다가 내 발소리에 놀라 벽 틈으로 숨었다. '너까지 신경 쓸 여유는 없다.' 나는 그대로 지나쳤다. 나는 통로 세 번째 분기점에서 아이를 발견했다. 울고 있던 아이는 나를 보자마자 달려와 안겼다. 작은 몸이 떨렸다. 아이의 옷은 흙먼지로 얼룩져 있었고, 무릎 한쪽에는 작은 상처가 나 있었다. "아저씨, 저 죽는 거예요?" "아니." 짧게 대답하고 등을 두드려줬다. 손바닥에 닿는 아이의 등이 작고 뜨거웠다. 심장이 빠르게 뛰는 게 느껴졌다. "엄마, 엄마 어디 있어요..." "밖에서 기다리고 있어. 조금만 있으면 만날 수 있어." 아이는 그 말을 듣고서야 울음소리가 조금 잦아들었다. 나는 아이의 손을 잡고 통로를 되짚어 나왔다. 구조는 삼십 분도 걸리지 않았다. 아이를 부모에게 인계하고 돌아서는 길, 관리소 직원이 나를 붙잡았다. "이야, 진짜 빠르네요. 어떻게 그 위치를 바로 알았어요?" "그냥... 감으로요." 감이 아니었다. 그런데 나는 왜 진짜 이유를 말하지 않았을까. 직원은 내 대답에 별 의심 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서류를 내밀었다. 확인서에 서명을 하고 지문을 찍는 동안, 나는 계속 그 질문을 곱씹었다. '감이라니.' '감이라는 말로 넘기기엔 너무 정확했는데.' 돌아오는 길에 관리소 로비 티브이에서 던전 방송이 흘러나왔다. 로비 안 몇몇 사람들이 걸음을 멈추고 화면을 올려다봤다. 화면 속에서 한 여자가 밝은 목소리로 시청자와 소통하고 있었다. "여러분, 오늘은 인천항 던전 중층까지 가볼 예정이에요!" 카메라가 그녀의 얼굴을 클로즈업했다. 화려한 조명 아래 웃는 얼굴이 유독 선명했다. 서은하. 국내에서 가장 유명한 던전 스트리머였다. 실력도 뛰어나고 외모도 화려해서, 던전에 관심 없는 사람들도 그 이름은 알았다. 채팅창이 실시간으로 폭주하듯 올라가는 게 화면 한쪽에 보였다. 누군가는 응원의 말을, 누군가는 그녀의 실력을 칭찬하는 말을 쏟아냈다. 나는 화면을 잠깐 바라보다 이내 시선을 돌렸다. '저런 삶은 나랑 다른 세계 얘기지.' 그렇게 생각하며 발걸음을 옮겼는데, 가슴 한구석이 이상하게 저릿했다. 오래 묻어둔 무언가가 슬쩍 고개를 든 느낌이었다. 설명할 수 없는 감정이었다. 반가움도 아니고, 부러움도 아니고, 그 둘을 합쳐놓은 것보다 훨씬 복잡한. 나는 그 느낌을 무시하고 컨테이너로 돌아갔다. 걸음을 옮기는 내내 화면 속 그녀의 웃는 얼굴이 자꾸 눈앞에 어른거렸다. '왜 이러는 거야.' 스스로에게 물어봐도 답은 나오지 않았다. 컨테이너 문을 열자 오태식이 서류를 정리하다 나를 힐끔 보며 말했다. "표정이 왜 그래." "아무것도 아니에요." 나는 배낭을 내려놓고 의자에 앉았다. 오태식은 뭔가 더 물어보려다가, 이내 서류로 시선을 돌렸다. 컨테이너 안에는 다시 침묵이 내려앉았다. 바깥에서 갈매기 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왔다. 아무것도 아니라고 말했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았다. 오래전, 나도 저런 방송을 꿈꾼 적이 있었으니까. 그 기억은 늘 그렇듯 아주 짧게 스쳐 지나갔다. 카메라 앞에서 웃던 누군가의 얼굴, 그리고 그 옆에 서 있던 나. 지금은 흐릿해져서 형체조차 제대로 떠오르지 않는 장면. 나는 눈을 감았다가 다시 떴다. '생각할 필요 없어.' 컨테이너 창밖으로 노을이 붉게 번지고 있었다. 오태식이 서류를 뒤적이며 무심하게 중얼거렸다. "아, 맞다. 내일 콜 하나 더 잡혔어." "어디요." "중층. ···서은하 씨 팀이랑 겹치는 구역이더라." 그 이름을 듣는 순간, 손끝이 아주 잠깐 멈췄다. 오태식은 그런 내 반응을 눈치채지 못한 듯 서류를 계속 넘겼다. 나는 애써 아무렇지 않은 척 고개를 끄덕였다. '하필.' 컨테이너 밖에서 바람이 불어와 문틈으로 비린내가 다시 스며들었다. 그 냄새는 여전히 익숙하면서도, 오늘따라 유독 코를 찔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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