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록으로 실력 좀 숨겼을 뿐인데

4화

"서은하라고요? 그 방송하는 서은하?" 도착한 팀장이 다급히 되물었다. 통신기에서는 여전히 갈라진 숨소리가 이어지고 있었다. "위치, 위치 좀···" 목소리가 자꾸 끊겼다. 숨이 넘어갈 듯한 그 소리에 등줄기가 서늘해졌다. 나는 지도와 마력 흐름을 다시 계산했다. 공동 안쪽, 진동이 시작된 지점. 붉은 선 하나가 정확히 그곳을 가리키고 있었다. '저기다.' 마력 잔여치가 비정상적으로 높았다. 보통 던전 중층에서 측정되는 수치의 세 배는 넘었다. '이 정도면···' 머릿속으로 예상 등급을 가늠하는 동안에도 통신기의 숨소리는 점점 가늘어지고 있었다. "이쪽입니다." "잠깐, 정식 인가 없이는 진입 못 해. 상부 승인 먼저 받아야···" 팀장이 통신기를 붙잡고 본부와 연락을 시도했다. 지지직거리는 잡음만 흘러나왔다. 안테나 신호가 약한 건지, 아니면 애초에 이 구역이 통신 사각지대인 건지 알 수 없었다. "본부, 본부 응답하라. 여기 3팀, 민간인 구조 요청 발생···" 팀장의 목소리에는 다급함과 형식 사이에서 갈피를 못 잡는 어정쩡함이 섞여 있었다. 규정대로라면 저게 맞았다. 승인, 절차, 보고. 전부 사람을 지키기 위해 만든 것들일 텐데, 지금 이 순간엔 오히려 사람 목숨을 갉아먹고 있었다. '지금 이 상황에 승인이 뭐가 중요해.' 나는 이미 통로를 향해 걷고 있었다. 던전 벽면이 좁아지며 마력 특유의 비린내가 코를 찔렀다. 비유하자면 낡은 수산시장 좌판에서 나는 냄새와 비슷했는데, 그보다 훨씬 무겁고 끈적했다. "어이, 강태호 씨! 어디 가는 거야!" "들었잖아요, 살려달라고." "단독 행동 금지야, 규정 위반이라고!" 뒤에서 팀장이 소리쳤지만 나는 멈추지 않았다. 다른 대원들은 서로 눈치만 보며 아무도 따라오지 않았다. 누군가 먼저 나서면 뒤따를 것 같았는데, 아무도 먼저 나서지 않았다. '뭐가 그렇게 중요한데. 규정, 절차, 승인. 사람이 죽어가는데.' 공동에 가까워질수록 마력 농도가 급격히 진해졌다. 숨이 턱턱 막혔다. 발밑의 흙이 미세하게 진동했고, 그 진동은 걸음을 옮길 때마다 더 선명해졌다. 벽면에 붉은 균열이 번져 있었고, 그 균열 사이로 뼈로 이루어진 형체가 스멀스멀 움직이고 있었다. 적골 해골 변이종. 일반 해골 몬스터와는 다르게 뼈 자체가 붉은 기운을 뿜어내는 변이체였다. 중층에서는 좀처럼 보기 힘든 개체였다. 협회 등급으로 치면 최소 하층 상급, 어쩌면 그 이상. '등급 표기가 잘못됐거나, 아니면 이 던전 자체가 오염된 거겠지.' 어느 쪽이든 지금 당장 확인할 방법은 없었다. 공동 중앙, 무너진 바위 더미 사이에 한 여자가 쓰러져 있었다. 화려한 방송용 조끼, 카메라 드론이 근처에서 위태롭게 떠 있었다. 서은하였다. 던전 방송으로 이름을 알린 여자헌터. 구독자 수십만을 등에 업고 매번 위험천만한 던전을 생중계로 도는 것으로 유명했다. 채널에서 본 것보다 실제로 보니 훨씬 작고, 훨씬 무력해 보였다. 다리가 바위에 짓눌려 있었고, 얼굴은 피와 먼지로 범벅이었다. 그 앞을 적골 해골 변이종 세 마리가 서서히 좁혀오고 있었다. "오지 마···! 카메라, 카메라라도 켜져 있으면···!" 서은하는 이 순간에도 드론을 신경 쓰고 있었다. 귀환권을 다 써버렸는지, 다른 동료들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혼자 남았구나.' 파티원들이 먼저 빠져나갔다는 뜻이었다. 그 상황을 짐작하는 것만으로도 속이 뒤틀렸다. 나는 반사적으로 권총을 뽑아 들었다. 칠흑빛 총구가 어두운 공동 안에서도 유난히 선명하게 빛을 반사했다. 적골 해골 하나가 나를 발견하고 고개를 돌렸다. 텅 빈 눈구멍에서 붉은 기운이 흘러나왔다. 그 시선이 마치 먹잇감을 저울질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제발, 조금만 버텨줘.' 나는 조준선을 맞췄다. 그런데 손이 떨렸다. 미세하게, 그러나 분명하게. 오랜만이었다, 이런 긴장은. 마지막으로 이런 떨림을 느낀 게 언제였는지 기억나지 않을 정도로. '이 감각을 잊고 살았구나.' 뒤늦게 팀장과 대원들이 공동 입구에 도착했다. "저, 저게 뭐야! 적골 해골이잖아! 중층에 저게 왜 있어!" 대원 중 하나가 겁에 질려 뒤로 물러섰다. "이거 하층 몬스터 아니에요? 저희 등급으로 상대 못 해요!" 팀장도 무기를 든 채 얼어붙어 있었다. 아무도 앞으로 나서지 못했다. "강태호 씨, 일단 나와! 지원 요청부터···"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팀장의 발은 한 걸음도 앞으로 나오지 않았다. 지원이 도착할 때까지 서은하가 버틸 수 있을지, 그건 아무도 확신하지 못했다. 서은하의 비명이 다시 공동을 울렸다. "으아악!" 해골 하나가 손을 뻗어 그녀의 어깨를 붉은 뼈손으로 움켜쥐었다. 피부가 찢기는 소리가 들렸다. '안 돼.' 그 순간, 머릿속에서 오래된 기억이 번쩍 스쳤다. 동료가 눈앞에서 몬스터에게 당하던 그날. 같은 자세, 같은 비명, 같은 거리감. 그때도 나는 딱 이 정도의 거리에서 서 있었다. 카메라를 든 채,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손끝 하나 움직이지 못하고 그저 그 광경을 눈에 담고만 있었다. '또 이럴 거야?' 그 물음이 머릿속을 세게 후려쳤다. 다리가 저절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강태호 씨! 위험해, 혼자서는!" 팀장의 목소리가 멀어졌다. 나는 이미 공동 안으로 뛰어들고 있었다. 발밑으로 부서진 뼛조각들이 밟히며 서걱거리는 소리를 냈다. 그 소리마저도 신경을 긁는 것 같았다. 적골 해골이 나를 향해 붉은 뼈손을 휘둘렀다. 공기를 가르는 소리가 귓가를 스쳤다. 나는 몸을 옆으로 굴려 피했고, 그 반동으로 권총의 총구를 놈의 목뼈 관절에 겨눴다. '여기다.' 관절 부위, 뼈와 뼈가 맞물리는 그 틈. 움직임을 만드는 핵심이자 가장 약한 지점이었다. 탕-! 총성이 공동 전체를 울렸다. 뼈 조각이 사방으로 튀었다. 목뼈가 완전히 부서지며 해골 하나가 힘없이 무너져 내렸다. '하나.' 그러나 나머지 두 마리가 곧바로 나를 향해 달려들었다. 숨이 가빠졌다. 손바닥은 이미 땀으로 축축했다. 총을 쥔 손가락이 미끄러질까 봐 손잡이를 다시 고쳐 잡았다. '하나는 어떻게든 됐는데, 둘은···' 머릿속으로 다음 조준점을 계산했다. 그러나 계산할 시간조차 충분치 않았다. 두 마리의 움직임이 예상보다 훨씬 빨랐다. 뒤에서 서은하의 목소리가 다시 들렸다. "저기요! 뒤에···!" 경고였다. 그 목소리에는 카메라도, 방송도 없었다. 그저 순수한 다급함뿐이었다. 돌아보기도 전에, 세 번째 해골이 이미 등 뒤에 있었다. 붉은 눈구멍이 시야 가장자리에서 번뜩였고, 뼈로 된 손톱이 목덜미를 향해 뻗어오는 것이 느껴졌다. '젠장.' 반응할 시간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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