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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화

새벽 1시 47분. 방송 시작 후 두 시간째였다. 후원 알람이 뜬 지도 벌써 삼십 분이 지났다. [탐색병장님이 별풍선 10개를 선물하셨습니다] 화면 구석에 뜬 알림을 보며 나는 마이크 볼륨을 살짝 올렸다. 헤드셋 안쪽에서 팬 소음이 은은하게 돌았다. 책상 위 낡은 모니터 받침대는 인터넷에서 오천 원 주고 산 나무 블록이었다. 그 위에 얹힌 웹캠 렌즈에는 며칠 전 묻은 얼룩이 아직도 남아 있었다. [탐색병장] 다은님 [탐색병장] 아 야차희님이라고 해야 하나 [탐색병장] 근데 진짜 이름이 뭐예요? 질문을 받은 순간 손가락이 키보드 위에서 굳었다. 지금까지 방송에서 실명을 밝힌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심장이 갑자기 빨리 뛰기 시작했다. '왜 갑자기 이름을 물어.' '그냥 캐릭터로 계속 가면 안 되나.' 나는 몇 초간 화면만 바라봤다. 채팅창 위로 다른 시청자들의 잡담이 스쳐 지나갔다. [탐색병장]이라는 닉네임만 눈에 박혀서 다른 글자는 읽히지 않았다. "그건... 왜 물어봐요." 캐릭터 톤이 아닌, 조심스러운 내 말투가 그대로 튀어나왔다. [탐색병장] 그냥 알고 싶어서요 [탐색병장] 저는 이제 아저씨한테 안 맞을 것 같거든요, 집 나오려구요 [탐색병장] 그럼 이제 진짜 얘기해도 되지 않나 집을 나온다는 말에 먼저 안심이 되었다. 그 안심 다음에 두려움이 따라왔다. 실명을 말한다는 건, 캐릭터 뒤에 숨어있던 나 자신을 꺼내는 일이었다. '만약 얘가 진짜 나쁜 사람이면.' '만약 이름 알아내서 이상한 짓 하면.' '근데... 지금까지 계속 얘기 들어준 사람인데.' 머릿속으로 온갖 계산이 오갔다. 채팅창은 그 사이에도 계속 올라오고 있었다. [탐색병장]의 이름만 다시 눈에 들어왔다. 한참을 침묵하다가, 나는 결심했다. "...정다은." 짧게 적었다. 엔터를 누르는 손끝이 미세하게 떨렸다. 화면에 뜬 글자를 지우고 싶은 충동이 잠깐 스쳤다. 하지만 이미 늦었다. [탐색병장] 정다은... 예쁜 이름이네요 그 말에 얼굴이 붉어졌다. 웹캠은 꺼둔 상태였지만, 혹시 목소리에서 붉어진 게 티가 날까 봐 헛기침을 한 번 했다. 그리고 그 순간, 나는 왜 이렇게까지 야차희라는 캐릭터에 매달렸는지 그에게 말하고 싶어졌다. "나... 원래 집에서 별로 말을 못 했어." 천천히 타이핑했다. "엄마는 내가 어릴 때 나갔고, 아빠는 매일 늦게 들어왔어. 집에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았고, 말을 안 해도 아무도 신경 안 썼어." 키보드를 두드리는 동안 방 안이 유난히 조용하게 느껴졌다. 벽시계 초침 소리가 평소보다 크게 들렸다. 아빠 방 쪽에서는 아무 소리도 나지 않았다. 이 시간이면 아빠는 늘 술에 취해 자고 있었다. [탐색병장] ... "방송을 시작한 건, 누군가 내 목소리를 들어줬으면 해서였어. 야차희라는 캐릭터는 강하고 위압적이지만, 사실 그 뒤에 있는 나는 누구한테도 별로 중요하지 않은 사람이었거든." 한 문장씩 끊어서 적을 때마다 손끝이 떨렸다. 한 번도 누구에게도 하지 않았던 말이었다. 심지어 학교 상담 선생님한테도 이렇게까지 말한 적은 없었다. '왜 이렇게까지 말하고 있지.' '얘가 뭐라고 이런 얘기를 다 하고 있어.' 그런 생각이 들면서도 손은 멈추지 않았다. 누군가에게 이 말을 하고 싶어서 얼마나 오래 참았는지, 그제야 실감이 났다. [탐색병장] ... 채팅창이 그대로 멈춰 있었다. 숫자로 표시된 시청자 수는 여전히 12명이었다. 다른 사람들은 아무 반응이 없었다. 오직 [탐색병장]의 채팅만 뚝 끊긴 채였다. "괜찮아, 안 웃어도 돼." 농담처럼 덧붙였지만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다. 마우스 커서를 채팅창 위에서 의미 없이 움직였다. 새로 고침이라도 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답이 없었다. 몇 분이 지나도 그의 채팅은 올라오지 않았다. '뭐라고 쓰고 있나.' '아니면 그냥 나가버렸나.' '아니, 설마.' 나는 초조하게 화면 아래쪽 대기 목록을 살폈다. [탐색병장]의 아이콘은 여전히 목록에 남아 있었다. 그 사실만으로 조금은 안심이 됐다. 몇 초가 더 흘렀다. 아이콘이 사라졌다. [탐색병장 님이 퇴장하셨습니다] 화면 아래 뜬 알림을 나는 몇 번이나 다시 읽었다. 퇴장. 방송을 나갔다는 뜻이었다. 마이크를 붙잡은 손이 그대로 굳었다. 어떤 이유에서인지, 그가 왜 나갔는지 나는 짐작할 수 없었다. 어쩌면 너무 무거운 이야기였을까. 어쩌면 그저 볼일이 있어서였을까. '아니면 내가 이상하다고 생각했나.' '집 나온다는 것도 다 거짓말이었을까.' '이름 알아내고 나서 그냥 사라진 건 아니겠지.' 생각이 자꾸 나쁜 쪽으로 흘러갔다. 나는 애써 고개를 흔들며 그런 생각을 지우려 했다. 남은 시청자들이 채팅으로 뭐라고 떠들었지만 하나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나는 형식적으로 몇 마디 대답을 하고 방송을 정리했다. 평소보다 십 분이나 일찍 끝냈다. 그날 밤, 나는 방송을 끄고 나서 한참을 화면 앞에 앉아 있었다. 꺼진 모니터에 내 얼굴이 어렴풋이 비쳤다. 헤드셋을 벗어 책상 위에 올려두었다. 손바닥에는 아직도 땀이 남아 있었다. '정다은.' '내가 그 이름을 말했어.' '처음으로.' 혼자 중얼거리듯 그 이름을 몇 번이나 되뇌었다. 그가 다시 돌아올 거라고 믿었다. 돌아오지 않을 수도 있다는 생각은, 애써 하지 않으려고 했다. 핸드폰을 들어 시간을 확인했다. 새벽 2시 19분. 아빠가 깨기 전까지 자야 했지만, 잠은 오지 않았다. 나는 그대로 앉아 채팅창을 다시 켰다. [탐색병장]의 이름을 검색해 봤지만 아무것도 나오지 않았다. 그가 남긴 마지막 말, "정다은... 예쁜 이름이네요"라는 글자만 캡처해두고 화면을 바라봤다. 그 짧은 문장 하나가 그날 밤 내가 가진 유일한 위로였다. 동시에, 그 침묵이 왜 이렇게 무겁게 느껴지는지 나는 알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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