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새벽 다섯 시, 알람이 울리기도 전에 눈이 떠졌다.
창밖은 아직 컴컴했고, 옆방에서는 재봉틀 돌아가는 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왔다.
어머니였다.
강지숙, 내 어머니는 몸이 약했지만 밤새 부업을 손에서 놓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나는 이불을 걷고 일어나 조용히 방문을 열었다.
방문 틈으로 스탠드 불빛이 새어 나왔다.
어머니는 등을 굽힌 채 재봉틀 페달을 밟고 있었다.
페달 소리가 탁탁탁, 규칙적으로 방 안을 울렸다.
"엄마, 또 밤새운 거예요?"
재봉틀 앞에 앉아 있던 어머니가 놀란 얼굴로 나를 돌아봤다.
"어, 도윤이 벌써 일어났어? 조금만 더 자."
"곧 각성검사인데, 저도 신경 쓰여서 못 자겠어요."
어머니는 손에 쥐고 있던 천 조각을 내려놓았다.
그러고는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그 한숨에는 걱정과 미안함이 반쯤 섞여 있었다.
나는 방으로 들어가 어머니 옆에 앉았다.
쌓여 있는 천 조각들 위로 손을 얹었다.
바느질감이 산더미였다.
"이거 다 언제 끝내려고 그래요."
"이거 넘겨야 다음 주 생활비 나와."
어머니가 웃으며 말했다.
그 웃음이 오히려 마음을 무겁게 했다.
10년 전, 내가 여덟 살이었을 때 한반도 전체가 흔들렸다.
전 세계가 동시에 흔들렸다고 뉴스에서 말했다.
그날 이후로 땅속 어딘가에 던전이라는 게 생겨났고, 사람들은 그 던전에서 나오는 몬스터를 사냥하며 스킬이라는 초월적인 힘을 각성하기 시작했다.
국가는 만 열여덟 살이 되는 모든 국민에게 각성검사를 의무화했다.
어떤 스킬을 얻느냐에 따라 인생이 완전히 달라진다는 걸, 나는 어릴 때부터 눈으로 직접 봐 왔다.
동네에는 화려한 스킬을 얻어 대형 길드에 들어간 형이 있었다.
그 형은 몇 년 만에 반지하에서 아파트로 이사를 갔다.
반면 옆집 아저씨는 하위 등급 스킬을 얻고, 여전히 하위 던전을 전전하며 근근이 살고 있었다.
같은 동네에서 이렇게 다른 삶을 보는 게, 나는 늘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아버지가 그랬다.
각성검사에서 별 볼 일 없는 스킬을 얻고, 몇 년 동안 하위 던전을 전전하며 빚만 늘리다가, 결국 우리를 떠났다.
남은 건 빚과 병든 어머니, 그리고 나와 여동생 서연이었다.
아버지가 떠나던 날, 현관문이 닫히는 소리가 아직도 귓가에 선명했다.
쿠웅ㅡ
그 소리 하나로 우리 가족의 형태가 바뀌었다.
"도윤아, 엄마는 사실 네가 탐색자 안 해도 괜찮다고 생각해."
어머니가 나지막이 말했다.
"그냥 평범하게 회사 다니면서 사는 것도 나쁘지 않잖아."
"평범하게 살 수 있으면 저도 좋죠."
나는 대답 대신 그냥 웃었다.
어머니는 늘 이런 식으로 걱정을 표현했다.
말은 회사 다니라면서도 눈은 다른 말을 하고 있었다.
빚을 갚아야 한다는 말, 병원비가 밀려 있다는 말, 그런 걸 자식 입으로 듣고 싶지 않다는 눈빛이었다.
하지만 내 마음은 이미 정해져 있었다.
"엄마, 저 이제 씻고 나갈게요. 조금만 눈이라도 붙여요."
"그래, 조심히 가."
방문을 닫고 나오면서도 재봉틀 소리는 멈추지 않았다.
탁탁탁ㅡ
그 소리를 뒤로하고 부엌으로 걸어갔다.
부엌으로 나가자 서연이 식탁에 앉아 있었다.
"오빠, 오늘 각성검사 준비 마지막 날이라며?"
서연은 열세 살이었다.
또래보다 작고 마른 체구였지만, 눈빛만큼은 누구보다 또렷했다.
식탁 위에는 서연이 직접 그려놓은 것 같은 낙서 종이가 놓여 있었다.
자세히 보니 검을 든 사람 그림이었고, 옆에 '오빠 짱'이라고 삐뚤빼뚤하게 적혀 있었다.
"이게 뭐야?"
"어제 심심해서 그려봤어. 오빠 각성하면 이렇게 될 것 같아서."
서연이 낄낄거리며 웃었다.
"오빠 잘할 거야. 나는 믿어."
"어, 내일 학교에서 예비 훈련 마무리하고, 모레가 진짜 검사야."
서연이 씨익 웃으며 말했다.
그 웃음에 나는 잠깐 목이 메었다.
동생 앞에서는 절대 흔들리는 모습을 보이지 않으려 했지만, 이럴 때마다 마음이 복잡해졌다.
서연은 아직 아버지가 왜 떠났는지 정확히 모른다.
그냥 아빠가 멀리 일하러 갔다고만 알고 있었다.
나는 그 애의 순진한 웃음을 지켜주고 싶었다.
"밥은 먹었어?"
"오빠 기다렸지. 같이 먹자."
우리는 식탁에 앉아 계란말이와 김치로 아침을 먹었다.
반찬이라고는 그게 전부였지만, 서연은 맛있다며 밥그릇을 싹싹 비웠다.
그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놓였다.
학교로 가는 버스 안에서 나는 창밖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탐색자 양성반.
우리 학교에는 각성검사를 앞둔 3학년 학생들을 위한 특별 프로그램이 있었다.
말이 프로그램이지, 사실은 부유한 집 자식들이 좋은 스킬을 얻을 확률을 조금이라도 높이려고 만든 사교의 장이었다.
체력 훈련, 정신력 훈련, 던전 이론 수업까지 받았지만, 정작 어떤 스킬을 얻을지는 아무도 알 수 없었다.
순전히 운이었다.
그래도 나는 이 프로그램에 남기로 했다.
등록금은 학교 지원금으로 겨우 충당했고, 나머지는 방과 후 편의점 알바로 벌어서 메웠다.
가족을 위해서였다.
좋은 스킬을 얻으면 탐색자가 되어 던전에서 돈을 벌 수 있고, 그 돈으로 어머니 병원비와 빚을 갚을 수 있으리라 믿었다.
버스 창문에 이마를 대고 있으니 유리가 차가웠다.
그 차가움이 오히려 머릿속을 맑게 해줬다.
교실에 들어서자 이미 왁자지껄한 분위기였다.
다들 각성검사 이야기뿐이었다.
누구는 벌써 검술 도장에 등록했다고 자랑했고, 누구는 마법 이론서를 밤새 외웠다고 했다.
"강도윤! 여기!"
손을 흔드는 사람은 송재휘였다.
재휘는 나와 어릴 때부터 알던 사이는 아니었지만, 양성반에 들어오면서 급속도로 친해진 친구였다.
집안이 부유해서 개인 검술 강사까지 붙였다는 소문이 있었고, 실제로 검술 수련만 3년째 하고 있다고 했다.
"어제 예비 측정 결과 나왔지?"
재휘가 눈을 반짝이며 물었다.
"어, 신체 능력은 평범한 수준이래. 너는?"
"나야 뭐, 다 상위권이지."
재휘가 어깨를 으쓱했다.
그 표정에는 자신감이 넘쳤다.
실제로 재휘는 신체 능력 측정에서 전교 1위를 기록했다고 들었다.
검술 스킬을 얻을 확률이 높은 신체 조건이라고, 담당 교사가 직접 언급했을 정도였다.
"그래도 결국 뽑기는 뽑기잖아. 신체 좋다고 좋은 스킬 나오는 거 아니라며."
내가 말하자 재휘가 손사래를 쳤다.
"에이, 확률이라는 게 있잖아. 통계적으로 신체 능력 좋은 애들이 전투형 스킬 받는 비율이 높대. 우리 아버지가 그러시더라."
"그건 또 어디서 들은 정보야?"
"협회 쪽 아는 사람이 있거든."
재휘가 씩 웃으며 대답했다.
그런 정보력마저도 집안 배경 덕분이라는 걸, 나는 굳이 입 밖으로 꺼내지 않았다.
"넌 어떤 스킬을 얻고 싶어?"
재휘가 물었다.
"글쎄, 나는... 그냥 뭐가 됐든 성실하게 키우는 게 목표야."
나는 애매하게 대답했다.
사실 마음속으로는 화려한 전투형 스킬을 바라고 있었다.
검술이든, 마법이든, 남들 눈에 부러워 보이는 그런 스킬 말이다.
하지만 그런 마음을 입 밖으로 꺼내기엔 왠지 부끄러웠다.
가난한 집 자식이 화려한 걸 바라는 게 스스로도 어색했다.
1교시는 던전 이론 수업이었다.
박태호 선생님이 교실 앞에 서서 칠판에 던전 등급표를 그리기 시작했다.
E급부터 S급까지, 등급별 몬스터 종류와 위험도가 표로 정리되어 있었다.
"자, 다들 알겠지만 모레가 각성검사다. 검사 결과는 곧 너희 인생의 방향을 결정할 거야."
박 선생님의 말에 교실이 순간 조용해졌다.
"좋은 스킬을 얻으면 탐색자 협회 소속 길드에서 스카우트 제의가 올 거고, 그렇지 못하면..."
선생님이 잠깐 말을 멈췄다.
"그렇지 못하면 다른 길을 찾아야 한다는 뜻이야."
그 말에 몇몇 아이들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물론 등급이 낮게 나와도 노력으로 극복하는 경우가 있긴 하다. 하지만 그건 극히 드문 케이스야. 대부분은 처음 각성한 등급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해."
선생님의 말이 마치 나를 향한 경고처럼 들렸다.
옆자리에 앉은 재휘는 자신 있다는 듯 팔짱을 끼고 있었다.
나는 노트 귀퉁이에 의미 없는 선을 몇 개 그었다.
수업이 끝나고 쉬는 시간, 나는 창가에 서서 운동장을 내려다봤다.
모레.
이틀 뒤면 내 인생이 어떤 방향으로 흘러갈지 결정된다.
좋은 스킬이 나오길 바라는 마음과, 만약 그렇지 않으면 어떻게 될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동시에 가슴을 눌렀다.
운동장에서는 하위 학년 아이들이 뛰어놀고 있었다.
저 애들도 언젠가 이 순간을 마주하겠지.
나는 그 생각을 하며 창틀에 손을 얹었다.
차가운 감촉이 손끝에 닿았다.
"강도윤, 무슨 생각 해?"
재휘가 옆으로 다가와 물었다.
"그냥, 모레 생각."
"긴장돼?"
"당연하지. 너는 안 긴장돼?"
"나야 뭐, 결과 상관없이 우리 집안 라인 타고 들어갈 데는 있으니까."
재휘가 장난스럽게 말했지만, 그 말이 오히려 내 속을 뒤틀리게 했다.
누군가에게는 보험이 있고, 나에게는 없다는 사실이 갑자기 선명하게 느껴졌다.
"부럽다, 그런 거."
"에이, 그래도 넌 실력으로 올라갈 거잖아. 요즘 성실하다고 소문났던데."
재휘가 어깨를 툭 치며 말했다.
그 말이 진심인지 그냥 하는 위로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조금은 힘이 됐다.
그날 밤, 집으로 돌아온 나는 좀처럼 잠이 오지 않았다.
어머니의 재봉틀 소리가 계속 이어졌고, 서연은 벌써 잠들어 있었다.
나는 이불 속에서 눈을 감고 두 손을 꽉 쥐었다.
천장을 바라보며 오늘 하루를 되짚었다.
어머니의 한숨, 서연의 낙서, 재휘의 자신감 넘치는 표정.
그 모든 게 뒤섞여 머릿속을 어지럽혔다.
'제발, 뭐라도 좋은 게 나왔으면 좋겠다.'
그렇게 마음속으로 몇 번이나 되뇌었다.
어머니 병원비, 서연 학비, 아버지가 남긴 빚.
그 모든 무게가 이틀 뒤의 결과에 달려 있었다.
하지만 그 바람이 이루어질지는, 아무도 알 수 없었다.
각성검사는 순전히 운에 맡겨진 도박이었으니까.
옆방에서는 여전히 재봉틀 소리가 들려왔다.
탁탁탁ㅡ
그 소리를 자장가처럼 들으며, 나는 겨우 눈을 감았다.
그리고 그날 밤 꿈속에서, 나는 처음으로 거대한 문 앞에 서 있는 나 자신을 보았다.
그 문 너머에 무엇이 있을지, 꿈속의 나조차 알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