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록으로 덫에 걸린 것은 세상이다

4화

각성검사 결과를 어머니에게 말하던 날, 어머니는 아무 말 없이 나를 안아주셨다. "괜찮아, 도윤아. 어떤 스킬이든 네가 노력하면 되는 거야." 어머니의 목소리는 담담했지만, 그 안에 담긴 걱정만은 숨길 수 없었다. 어머니의 팔이 나를 감싸 안는 그 순간에도, 등을 쓰다듬는 손끝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나는 그 떨림을 느끼면서도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서연은 오빠가 특별한 스킬을 얻었다고 좋아하다가, 함정이 뭔지 설명을 듣고는 살짝 시무룩해졌다. "함정이라니... 그게 뭐야, 몬스터가 걸려야 되는 거야?" 서연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응, 그런 식이야." "그래도 오빠는 오빠야. 나는 여전히 오빠 믿어." 서연의 그 말이 그날 밤 유일한 위로였다. 작은 손으로 내 손을 꼭 붙잡던 서연의 온기가, 오랫동안 가슴에 남았다. 그리고 며칠이 흘렀다. 나는 매일 방과 후, 낡은 공책을 들고 학교 뒤편 공터로 향했다. 함정 스킬을 연구하기 위해서였다. 공터는 늘 조용했다. 잡초가 무성하게 자란 공터 한쪽에는 버려진 나무 상자들이 쌓여 있었고, 그 뒤편으로는 아무도 오지 않는 그늘진 공간이 있었다. 나에게는 딱 맞는 실험실이었다. 스킬창을 열어 세부 정보를 확인해봤다. [함정 Lv.1] [설명 : 지정된 위치에 함정을 설치할 수 있다. 함정의 종류와 효과는 마력 소모량에 비례해 다양화된다.] 설명은 짧고 모호했다. 종류가 다양화된다는 게 정확히 무슨 뜻인지, 실제로 어떤 함정을 만들 수 있는지 아무것도 알려주지 않았다. 공책을 펼쳐 첫 페이지에 '함정 실험 기록'이라고 적었다. 막막했지만, 뭐라도 남겨야 할 것 같았다. 나는 직접 실험해보는 수밖에 없었다. "함정 설치." 손끝에 마력을 모아 바닥을 향해 내밀자, 눈앞에 작은 원형 문양이 나타났다. "뿌지직-" 문양이 바닥에 새겨지며 눈에 잘 보이지 않는 얇은 실선이 펼쳐졌다. [함정 : 올가미 트랩 설치 완료] 올가미 트랩. 간단한 인계철선처럼, 밟으면 발목을 붙잡는 함정이었다. 나는 직접 그 위를 걸어보다가, 발목이 순식간에 뭔가에 묶이는 느낌에 넘어졌다. "쿠웅-" 바닥에 엉덩이를 부딪히며 넘어졌다. "아야···." 하지만 아픔보다 놀라움이 먼저였다. 실제로 트랩이 작동했다. 발목을 감고 있는 실선을 손으로 만져보니, 눈에는 거의 보이지 않는데도 힘을 주면 팽팽하게 당겨지는 게 느껴졌다. '이게 진짜 몬스터 발목도 붙잡을 수 있을까?' 확신은 없었지만, 가능성은 분명히 있었다. 마력을 더 많이 소모하니, 조금 더 강한 형태의 함정도 만들 수 있다는 걸 확인했다. 마력 소모량이 두 배로 늘어나자, 올가미의 강도가 확연히 달라졌다. 발목을 붙잡는 힘이 세져서, 웬만한 성인도 쉽게 빠져나오지 못할 정도였다. 나는 매일 공터에서 실험을 반복했다. 올가미 트랩, 낙석 트랩, 진창 트랩 같은 다양한 종류가 하나씩 열렸다. 마력이 늘어날수록 함정의 종류와 위력이 늘어나는 구조였다. 낙석 트랩을 처음 시전했을 때는, 머리 위에서 갑자기 돌덩이가 떨어져 깜짝 놀라 옆으로 몸을 던졌다. "콰당-!" 돌덩이가 바닥에 부딪히며 요란한 소리를 냈다. 가슴이 벌렁거렸지만, 위력만큼은 확실했다. 진창 트랩은 조금 달랐다. 바닥이 갑자기 질척한 늪처럼 변하면서, 발을 디딘 순간 푹 하고 빠져드는 느낌이었다. 직접 밟아보고 나서야 그 위력을 실감할 수 있었다. "으어, 이거 빠지는 데 시간 좀 걸리겠는데." 혼자 중얼거리며 발을 빼내려 애썼다. 신발이 진흙투성이가 되어 버렸지만,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하지만 문제는 명확했다. 이 함정들은 결국 몬스터가 그 위를 밟거나 근처를 지나가야만 작동했다. 직접 공격 능력이 전혀 없었기에, 함정만으로는 던전에서 살아남기 어려울 게 뻔했다. 공책에 적어놓은 실험 결과를 다시 훑어봤다. 올가미, 낙석, 진창. 모두 훌륭한 함정이었지만, 몬스터가 스스로 그 자리에 오지 않으면 무용지물이었다. '유인하는 방법이 필요해.' 그런 생각이 머릿속에 떠올랐지만, 구체적인 방법은 아직 떠오르지 않았다. 그래도 나는 포기하지 않았다. 조합을 생각해봤다. 낙석 트랩과 진창 트랩을 동시에 설치하면 어떨까. 몬스터가 진창에 발이 묶인 순간, 위에서 낙석이 떨어진다면 상당한 충격을 줄 수 있을 것 같았다. 실제로 실험해보니, 효과는 기대 이상이었다. "콰앙-!" 허수아비를 대신 세워놓고 실험했는데, 낙석 트랩이 정확히 진창에 갇힌 허수아비 위로 떨어지며 완전히 부서뜨렸다. 부서진 허수아비의 지푸라기가 사방으로 흩어졌다. 나는 그 광경을 멍하니 바라보다가, 저도 모르게 웃음이 났다. '이거, 생각보다 쓸모가 있을지도 몰라.' 나는 그날 처음으로 확신에 가까운 감정을 느꼈다. 함정 스킬은 단순한 보조 스킬이 아니었다. 조합과 배치, 타이밍만 잘 맞추면 충분히 강력한 무기가 될 수 있었다. 나는 공책에 그날의 조합 결과를 큼지막하게 적어 넣었다. '낙석+진창 = 강력한 대미지' 글자를 적는 손끝이 살짝 떨렸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성취감이었다. 이후로도 나는 다른 조합을 계속 시도했다. 올가미로 발을 묶은 뒤 낙석을 떨어뜨리는 조합, 진창 두 개를 겹쳐서 더 깊게 빠지게 만드는 조합. 실험할수록 함정 스킬의 가능성이 조금씩 넓어지는 게 느껴졌다. 물론 마력이 금방 바닥나서, 하루에 실험할 수 있는 횟수는 많지 않았다. 그래도 상관없었다. 매일 조금씩 쌓이는 데이터가 나에게는 소중했다. 그런데 그 확신이 오래가지 못했다. 어느 날, 방과 후 공터에서 실험하던 중이었다. "저벅저벅." 발소리가 들려서 고개를 돌리자, 재휘가 서 있었다. "뭐야, 여기서 뭐 해?" 재휘가 흥미로운 눈으로 다가왔다. "아, 그냥... 스킬 연습." 나는 서둘러 숨기려 했지만, 이미 바닥에 남은 함정 문양이 눈에 들어간 뒤였다. 당황한 나머지 발로 문양을 슥슥 문질러 지우려 했지만, 이미 늦은 뒤였다. "이거 뭐야? 함정?" 재휘가 눈을 크게 뜨며 물었다. 순간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숨길 새도 없이 정체가 드러나고 말았다. 재휘의 시선이 바닥에 남은 흔적과 부서진 허수아비 조각들을 번갈아 훑었다. "너 그때 보조 계열이라고 했잖아. 이게 함정이야?" 재휘가 되물었다. 표정이 서서히 바뀌고 있었다. 처음의 흥미로움에서, 뭔가 다른 감정으로. "어, 맞아. 함정이야." 나는 사실대로 인정했다. 숨긴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었다. 목소리가 살짝 흔들렸지만, 그래도 끝까지 말을 마쳤다. 순간 재휘의 얼굴에 웃음이 번졌다. 하지만 그 웃음은 결코 유쾌한 종류가 아니었다. "함정이라니, 하하. 야, 그거 진짜 최약체 스킬 아니냐?" 재휘가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 웃음소리가 조용한 공터에 크게 울려 퍼졌다. "직접 공격도 못하는 거잖아. 몬스터가 알아서 걸려주기만 기다려야 되는 거고." "그렇긴 하지만, 조합해서 쓰면 충분히···." 나는 방금 실험했던 낙석 트랩과 진창 트랩의 조합을 설명하려 했다. 허수아비가 완전히 부서졌던 걸 보여주고 싶었다. "됐어, 됐어. 넌 그냥 던전 못 가는 거야. 솔직히 인정해." 재휘가 손을 휘저으며 말을 끊었다. 그 말투에는 무시가 짙게 배어 있었다. 설명할 기회조차 주지 않는 그 태도에, 가슴 한구석이 답답해졌다. 재휘는 그렇게 몇 마디를 더 던지고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공터를 떠났다. 나는 한동안 그 자리에 서서, 부서진 허수아비 조각들을 내려다봤다. 방금까지 느꼈던 성취감이 순식간에 바람에 날려가는 것 같았다. 다음 날, 학교에는 이미 소문이 퍼져 있었다. "강도윤 함정 스킬이래." "그거 완전 잉여 스킬 아니야?" "쟤랑 던전 파티 안 하는 게 낫겠다." 교실로 들어서자마다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몇몇은 노골적으로 나를 쳐다보며 웃었고, 몇몇은 안타깝다는 표정을 지었다. 둘 다 나를 힘들게 하는 시선이었다. 누군가는 대놓고 손가락으로 나를 가리키며 웃었고, 또 누군가는 그런 나를 안타깝게 바라보며 고개를 저었다. 어느 쪽이든 시선을 마주치기 힘들었다. 나는 자리에 앉아서 책상만 내려다봤다. "신경 쓰지 마." 한이현이었다. 각성검사 준비 때 도와줬던 그 학생이 조용히 다가와 말을 걸었다. 이현은 내 옆자리에 슬쩍 앉으며,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필기구를 꺼냈다. "고마워, 이현아." "저는 도윤 형이 잘 될 거라고 믿어요." 이현의 진심 어린 말에 조금 위로가 됐지만, 교실 전체의 시선을 바꾸기엔 부족했다. 등 뒤에서 여전히 낮게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애써 못 들은 척했다. 박태호 선생님도 그 소문을 들은 모양이었다. 수업이 끝나고, 선생님이 나를 교무실로 조용히 불렀다. 교무실로 들어서자, 선생님은 서류를 정리하던 손을 멈추고 나를 바라봤다. 그 눈빛에서 평소와는 다른 무게감이 느껴졌다. "도윤아, 함정 스킬로 던전에 도전한다는 게 사실이냐?" "네, 그럴 생각입니다." 선생님이 잠시 침묵했다. 그 침묵 속에는 복잡한 감정이 뒤섞여 있는 것 같았다. 책상 위에 놓인 펜을 만지작거리던 손이 잠시 멈췄다. "···내가 도와줄 방법이 있을지 한번 생각해보마." 선생님의 그 말이, 예상 밖의 반응이었다. 포기를 권유할 줄 알았는데, 오히려 뭔가를 고민하는 표정이었다. 나는 순간 잘못 들은 게 아닌가 싶어 선생님의 얼굴을 다시 살폈다. "정말이세요?" "그래, 대신 조건이 있다. 무리한 도전은 절대 하지 마. 알겠지?" 선생님이 단호하게 못을 박았다. 그 말투에는 걱정과 진심이 함께 담겨 있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마음속에서 작은 희망이 다시 피어올랐다. 교무실을 나서는 발걸음이 아까보다는 조금 가벼워진 느낌이었다. 하지만 그 희망이 얼마나 위태로운 줄타기가 될지, 나는 아직 알지 못했다. 그날 밤, 공책에 적어놓은 함정 조합들을 다시 펼쳐보며, 선생님이 말한 '도와줄 방법'이 무엇일지 골똘히 생각에 잠겼다. 그 생각이 나를 어디로 이끌지는, 그때는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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