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록으로 덫에 걸린 것은 세상이다

2화

각성검사 이틀 전, 학교는 유독 어수선했다. 복도를 걷는 동안에도 다들 표정이 하나같이 굳어 있었다. 누구는 벌써부터 손톱을 물어뜯고 있었고, 누구는 애써 태연한 척 웃고 있었지만 눈동자는 불안하게 흔들렸다. 탐색자 양성반 전체가 강당에 모여 마지막 예비 훈련을 받는 날이었다. 체력 측정, 정신력 테스트, 그리고 던전 시뮬레이션까지 하루 종일 빡빡한 일정이 이어졌다. 체력 측정은 예상보다 힘들었다. 턱걸이, 오래달리기, 근력 측정기까지 순서대로 돌아가며 진행됐는데, 끝나고 나니 다리가 후들거렸다. 숨을 몰아쉬며 벤치에 앉아 있는데, 옆에서 누군가 헐떡이는 소리가 들렸다. "헉... 헉... 이거 진짜 사람 잡는 거 아니냐." 같은 반 아이가 물병을 벌컥벌컥 들이켜며 투덜거렸다. 나도 피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체력 측정이 끝나자 곧바로 던전 시뮬레이션이 이어졌다. 가상의 던전 환경 속에서 간단한 몬스터를 상대로 반응 속도를 확인하는 훈련이었다. 화면 속 슬라임이 튀어 오르자 나는 반사적으로 몸을 틀었다. "헛-" 간발의 차이로 피했지만, 심장은 벌써 쿵쾅거리고 있었다. 실전에서는 저 슬라임이 진짜 몸을 녹이는 산성 점액을 뿜는다는 걸 알고 있었기에, 등줄기에 식은땀이 흘렀다. 그리고 마지막 순서. "자, 다음은 정신력 집중 테스트다. 한 명씩 나와서 이 구슬에 마력을 흘려보내." 박태호 선생님이 반짝이는 구슬 하나를 들고 말했다. 구슬은 각성 전 학생들의 잠재적인 마력 친화도를 측정하는 도구였다. 등급이 높게 나올수록 좋은 스킬을 받을 확률이 올라간다고 했다. 물론 확실한 근거는 없었지만, 다들 그 말을 믿고 싶어했다. 줄이 길게 늘어섰다. 나는 맨 뒤쪽에 서서 순서를 기다렸다. 앞에 선 아이들의 반응은 제각각이었다. 누군가는 구슬이 밝게 빛나자 환호성을 질렀고, 누군가는 아무 반응이 없어 어깨를 축 늘어뜨린 채 자리로 돌아갔다. 그 모습들을 지켜보고 있자니, 내 순서가 다가올수록 손끝이 살짝 저려오는 기분이었다. 그때, 앞줄에서 작은 소란이 일었다. "야, 너 왜 이렇게 느려? 다른 사람들 기다리는 거 안 보여?" 누군가의 짜증 섞인 목소리였다. 나는 고개를 돌려 소리가 난 쪽을 봤다. 한 남학생이 구슬 앞에서 손을 벌벌 떨고 있었다. 이름은 정확히 몰랐지만, 같은 반은 아니고 다른 학급 학생인 것 같았다. 체격이 왜소하고 안색이 창백했다. 이마에는 식은땀이 송골송골 맺혀 있었다. "저, 저는..." 그 학생이 말을 잇지 못하고 손을 더 떨었다. 구슬에 손을 얹었다가 다시 떼는 동작을 몇 번이나 반복했다. 주변 아이들이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저 자식 몸이 약해서 마력도 제대로 못 흘린대." "쟤 아빠가 빚 때문에 저번에 던전에서 죽었다더라." "그러니까 쟤도 재능이 없는 거 아니야? 저러다 각성 못 하면 어쩌려고." 그 말에 나는 순간 몸이 굳었다. 왠지 모르게 그 학생의 상황이 낯설지 않았다. 아버지를 잃은 아이. 그 무게가 어떤 건지, 나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줄 앞쪽에서 몇몇은 팔짱을 끼고 한숨을 내쉬었고, 누군가는 아예 대놓고 시계를 확인하며 짜증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 시선들 속에서 그 학생은 점점 더 작아지고 있었다. 나는 줄에서 빠져나와 그쪽으로 걸어갔다. "저벅저벅." "괜찮아? 손이 많이 떨리네." 내가 말을 걸자 그 학생은 놀란 눈으로 나를 쳐다봤다. 마치 누군가 자신에게 다정하게 말을 걸어온 게 오랜만이라는 표정이었다. "아... 죄송해요. 저 때문에 다들 기다리게 해서..." 목소리가 기어들어갔다. 어깨는 잔뜩 움츠려 있었고, 시선은 바닥을 향해 있었다. "괜찮아, 천천히 해도 돼. 심호흡부터 해봐." 나는 그 학생의 어깨에 손을 얹고 나직이 말했다. 주변에서는 여전히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렸지만, 나는 신경 쓰지 않았다. "긴장하면 마력이 오히려 더 안 흐르더라. 나도 그래." 거짓말은 아니었다. 실제로 나 역시 처음 마력을 다뤘을 때 몸이 뻣뻣하게 굳어서 아무것도 못 했던 기억이 있었다. "후... 후..." 그 학생이 몇 번 심호흡을 하더니, 다시 구슬에 손을 얹었다. 이번에는 손이 조금 덜 떨렸다. 구슬이 옅은 빛을 내며 반응했다. "됐다! 반응했어요!" 그 학생이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작은 성공이었지만, 그 표정에는 진심 어린 기쁨이 담겨 있었다. 방금까지 그렇게 눈치를 보던 아이의 얼굴에서, 그런 표정이 나올 수 있다는 게 신기할 정도였다. "거봐, 잘하잖아." 나도 따라 웃었다. 주변에서 수군거리던 아이들도 그제야 조용해졌다. 누군가는 살짝 민망한 듯 시선을 돌렸다. 그러고는 줄로 돌아갔다. 박태호 선생님이 그 모습을 멀리서 지켜보고 있었다는 걸, 나는 그때는 알지 못했다. 선생님은 기록지를 든 채, 나와 그 학생을 번갈아 보며 뭔가를 메모하고 있었다. 내 순서가 되어 구슬에 손을 얹었다. 차가운 감촉이 손끝을 타고 올라왔다. 숨을 한번 고르고, 마력을 흘려보내듯 집중했다. "윙-" 구슬이 미세하게 진동했지만, 빛은 그리 강하지 않았다. 기대했던 만큼의 반응은 아니었다. "음, 평균 수준이네." 선생님이 기록지에 뭔가를 적으며 말했다. 그 말이 왠지 서운했지만, 특별히 티를 내지는 않았다. '평균이면 됐지. 나쁘지 않아.' 속으로 되뇌며 자리로 돌아갔다. 훈련이 끝나고 집으로 가는 길, 재휘가 나를 따라잡으며 말을 걸었다. "아까 그 애 도와준 거, 나 봤어." "별거 아니었어." "넌 참 이상해. 누가 도와달라고 한 것도 아닌데 굳이 나서고." 재휘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했다. 비꼬는 것 같지는 않았지만,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표정이었다. "그냥, 힘들어하는 걸 보고 지나치기가 좀 그랬어." "흠... 뭐, 좋은 게 좋은 거니까." 재휘는 그렇게 말하고는 어깨를 두드리며 앞서 걸어갔다. 몇 걸음 걷다가 다시 뒤돌아보며 씩 웃었다. "그래도 너 그런 거 하나는 인정. 사람 보는 눈 있잖아. 나였으면 그냥 지나쳤을 텐데." "넌 원래 좀 무심하잖아." "헐, 이 자식이." 재휘가 장난스럽게 내 옆구리를 쿡 찔렀다. 그렇게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나누며 걷다 보니, 어느새 갈라지는 길목에 도착했다. "내일 보자. 검사 전날인데 너무 긴장하지 말고." "너도." 재휘와 헤어지고 혼자 걷는 길, 하늘은 이미 붉게 물들어 있었다. 집으로 가는 골목길이 유난히 길게 느껴졌다. 집에 도착하자 서연이 현관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오빠, 내일이면 검사 하루 전날이잖아. 긴장돼?" "조금." 나는 짧게 대답하고 방으로 들어갔다. 서연은 뭔가 더 물어보고 싶은 표정이었지만, 그냥 고개를 끄덕이고 자기 방으로 들어갔다. 방문을 닫고 침대에 걸터앉았다. 가방을 내려놓고, 오늘 하루 있었던 일들을 하나씩 되짚어봤다. 그날 밤, 나는 침대에 누워 오늘 도와준 그 학생을 다시 떠올렸다. 이름도 모르고, 다시 만날 일도 없을 것 같았다. 하지만 그 짧은 순간 느꼈던 감정만은 선명했다. 누군가를 도왔을 때, 마음속에서 작은 온기가 피어난다는 걸 다시 확인한 기분이었다. 창밖으로 가로등 불빛이 방 안까지 스며들었다. 나는 눈을 감았다. 내일도, 모레도, 앞으로도 이런 온기를 잃지 않을 수 있을까. 그런 생각을 하다가 잠이 들었다. 그리고 다음 날, 나는 그 학생을 다시 마주쳤다. 등교 시간, 교문 앞에서 그 학생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멀리서부터 나를 발견하고는 종종걸음으로 다가왔다. "저, 어제 도와주셔서 감사했어요. 저는 한이현이라고 해요." "강도윤이야. 별거 아니었는데, 뭘." 이현이 두 손을 꼭 쥐고 있었다. 뭔가 하고 싶은 말이 있는데 망설이는 듯한 표정이었다. "그... 저희 아버지가 예전에 탐색자였는데, 은퇴하고 지금은 던전 관리 기관 쪽에서 일하세요. 나중에 혹시 도움이 필요하면 말해주세요." 이현이 쭈뼛거리며 말했다. 뜬금없는 말이었지만, 나는 그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고마워, 근데 그럴 일이 있으려나 모르겠네." "그래도... 정말 고마웠어요. 어제." 이현이 꾸벅 고개를 숙이고는 자기 반 쪽으로 걸어갔다. 등교하는 다른 학생들 사이로 그 작은 뒷모습이 금세 섞여 들어갔다. 그 순간에는 그 말이 그냥 지나가는 인사말이라고 생각했다. 그게 나중에 어떤 의미로 돌아올지는, 나조차도 짐작하지 못했다. 하루가 지났다. 드디어 각성검사 당일이었다. 나는 교복 대신 검사용 회색 트레이닝복을 입고 학교 강당으로 향했다. 강당 앞에는 이미 긴 줄이 늘어서 있었고, 각자의 표정에는 기대와 불안이 뒤섞여 있었다. 누군가는 부모님과 함께 온 듯, 손을 꼭 붙잡고 있었다. 누군가는 혼자 벽에 기대어 눈을 감고 뭔가를 중얼거리고 있었다. 그 모든 풍경들이 마치 다른 세상의 일처럼 낯설게 느껴졌다. 강당 안쪽에서는 이미 관계자들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큼지막한 각성 장치가 강당 중앙에 설치되어 있었고, 그 주위로 하얀 가림막이 둘러쳐져 있었다. 내 심장도 미친 듯이 뛰기 시작했다. 오늘, 내 인생을 결정할 순간이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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