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록으로 주인님, 재앙이 될게요

1화

지하철 냄새가 났다. 쇠 비린내와 사람 냄새, 그리고 어디선가 새어 나오는 붕어빵 냄새가 뒤섞여 있었다. 강남역 2호선 플랫폼은 늘 그랬다. 퇴근 시간도 아닌데 사람이 이렇게 많나, 생각하면서 스마트폰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과제 제출 마감이 세 시간 남아 있었다. 망했다는 걸 알면서도 손가락은 습관처럼 SNS 새로고침을 눌렀다. 옆에 서 있던 정장 차림 남자가 어깨로 나를 밀쳤다. 죄송하다는 말도 없이 스마트폰만 보고 있었다. 그 뒤로 여학생이 이어폰을 낀 채 발끝으로 박자를 맞추고 있었고, 조금 떨어진 곳에서는 누군가 통화 중이었다. "어, 나 지금 강남인데. 도착하면 전화할게." 평범한 오후였다. 정말로, 지긋지긋하게 평범한 오후였다. 그때 조명이 깜빡였다. 파직. 형광등이 한 번, 두 번 점멸했다. 누군가 "어어" 하고 짧게 소리쳤다. 나는 별일 아니라고 생각했다. 지하철에서 조명이 깜빡이는 거야 흔한 일이니까. 서울교통공사도 예산이 부족하겠지, 라는 생각까지 했다. 그런 한심한 생각을 할 정도로 여유가 있었다. 하지만 두 번째 점멸이 끝난 순간, 소리가 사라졌다. 안내방송도, 열차 진입음도, 사람들의 말소리도. 전부 한꺼번에 꺼진 것처럼 조용했다. 귀가 먹먹했다. 비행기 이착륙할 때처럼. 손가락 끝에 저릿한 감각이 돌았다. 스마트폰을 쥔 손에 힘이 들어갔다. 그리고 발밑이 흔들렸다. 쿠구구. 플랫폼 바닥이 물결처럼 일어났다. 타일이 갈라지고 그 틈으로 시커먼 안개 같은 것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안개는 차갑지도 뜨겁지도 않았다. 그냥 존재감만 있었다. 숨을 들이쉬면 폐 속까지 스며들 것 같은, 그런 밀도였다. "뭐야 이거." 혼잣말이 튀어나왔다. 주변 사람들도 같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다들 스마트폰을 들고 있다가 그대로 얼어붙은 얼굴. 통화하던 사람은 입을 벌린 채 아무 말도 못 하고 있었다. 이어폰을 낀 여학생은 이어폰을 빼려다 손을 멈췄다. 나는 뒷걸음질을 쳤다. 등이 스크린도어에 닿았다. 차가웠다. 너무 차가워서 오히려 그게 현실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이게 꿈이면 좋겠다는 생각과, 꿈이라면 이렇게 디테일할 리가 없다는 생각이 동시에 들었다. 꿈에서는 스크린도어의 냉기까지 느껴지지 않는다. 적어도 내가 아는 꿈은 그랬다. 안개가 걷히자 눈앞의 풍경이 바뀌어 있었다. 형광등과 광고판이 있던 자리에 이끼로 덮인 석벽이 서 있었다. 분명히 강남역이었는데, 강남역이 아니었다. 천장은 지하철역보다 세 배는 높았고 어디선가 물 흐르는 소리가 들렸다. 쫄쫄. 지하수 흐르는 소리 같기도 했고, 뭔가 살아 있는 것의 숨소리 같기도 했다. 벽을 타고 흐르는 물기가 이끼 사이로 배어 나와 바닥에 웅덩이를 이루고 있었다. 그 웅덩이에 비친 내 얼굴이 낯설었다. 여기가 어디지. 지하철 노선도를 다시 떠올려봤다. 2호선, 강남역, 그 다음은 역삼역. 아무리 생각해도 여기는 노선도에 없는 곳이었다. 그리고 그 순간, 눈앞에 사각형의 빛이 떠올랐다. 허공에 붙은 스티커처럼, 아니 스마트폰 알림창처럼 딱 그런 모양으로. [강남역 던전이 생성되었습니다.] [관리자 권한을 보유한 존재가 감지되었습니다.] [당신은 '던전마스터'로 선택되었습니다.] 나는 창을 손으로 만져봤다. 닿지 않았다. 손가락이 그냥 빛을 통과했다. "이거 완전 홀로그램인데." 웃음이 나왔다. 웃을 상황이 아닌데 웃음이 나왔다. 사람이 진짜 당황하면 이렇게 되는구나, 라는 걸 그때 처음 알았다. 한 번 더 창을 향해 손을 뻗었다. 역시 통과했다. 세 번째로 뻗었을 때는 스스로가 좀 우스웠다. 안 만져진다는 걸 알면서도 계속 확인하는 꼴이라니. 영화에서 보면 다들 이런 창을 한 번 보고 바로 받아들이던데, 나는 세 번이나 손을 넣었다 뺐다.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됐을까, 고개를 돌렸다. 아무도 없었다. 방금까지 나와 함께 등을 맞대고 있던 사람들이, 나를 밀치던 회사원이, 스마트폰을 보던 여학생이, 전부 사라져 있었다. 비명도, 발소리도,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심지어 그 통화하던 사람의 목소리 끝, "도착하면 전화할게"라는 말의 여운조차 남아 있지 않았다. 공기가 그 소리를 삼켜버린 것처럼. 이름을 불러볼까 했다. 그런데 누구의 이름도 몰랐다. 나는 그들과 그냥 같은 플랫폼에 서 있던 타인이었을 뿐이다. 그 사실이 갑자기 서글퍼졌다. 왜 하필 지금 그런 게 서글픈지 스스로도 이해가 안 됐다. 등줄기가 서늘해졌다. 혼자였다. 완전히, 혼자였다. [던전마스터 권한이 활성화됩니다.] [현재 던전 내 생존자: 1명] [생존자 감시 모드가 시작됩니다.] 감시 모드라는 단어가 눈에 밟혔다. 감시라니. 누가 나를 보고 있다는 뜻인가. 주위를 둘러봤다. 돌기둥 사이사이, 이끼가 낀 벽 틈새에서 뭔가 반짝였다. 작은 렌즈처럼 생긴 것들이 나를 향해 있었다. 개수를 세보려 했지만 세다가 그만뒀다. 너무 많았다. "CCTV냐." 혼잣말이 갈라져 나왔다. 목소리에 웃음기는 이제 없었다. 렌즈 하나에 눈을 가까이 대볼까 하다가 그만뒀다. 그 안에서 뭔가 나를 마주 본다면, 그 순간 정말로 무너질 것 같았다. 지금은 그럴 여유가 없었다. 아니, 애초에 여유라는 게 있었던 적이 있나 싶었다. 다시 창을 확인했다. [던전마스터는 던전 내 모든 정보를 실시간으로 열람할 수 있습니다.] [단, 던전 밖으로의 이탈은 조건 충족 전까지 불가능합니다.] 밖으로 나갈 수 없다는 문장을 세 번 읽었다. 네 번째 읽었을 때야 그 말이 진짜라는 게 실감났다. 다리에서 힘이 빠졌다. 무릎을 꿇듯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차가운 돌바닥이 무릎을 눌렀다. 그 냉기가 아프도록 선명했다. 이게 아프다는 건, 이게 진짜라는 뜻이었다. 스마트폰을 꺼내 봤다. 신호가 없었다. 당연했다. 여기가 어디인지도 모르는데 신호가 있을 리가. 화면에는 06:47이라는 시각만 태연하게 떠 있었다. 방금까지 지하철 안이었던 시각. 시간마저 멈춘 것 같았다. 배터리는 78퍼센트. 이 상황에서도 배터리 퍼센트를 확인하고 있는 내가 한심했다. 습관이라는 게 이렇게 무섭다. 전화를 걸어봤다. 당연히 연결되지 않았다. 그래도 걸어봤다. 누구에게라도. 신호조차 잡히지 않아서 통화 목록조차 뜨지 않았다. 액정 위에 뜬 "서비스를 이용할 수 없습니다"라는 문구를 몇 번이나 눌러 지웠다. "침착하자." 스스로에게 말했다. 효과는 없었다. 하지만 뭐라도 말하지 않으면 미쳐버릴 것 같아서 계속 중얼거렸다. "침착하자, 강도윤. 이거 게임이라고 치면 튜토리얼이야. 튜토리얼에서 안 죽여." 말을 뱉고 나니 조금은 진짜 위로가 되는 것도 같았다. 어릴 때부터 이런 상황을 게임처럼 받아들이는 버릇이 있었다. 현실도피라고 누가 지적하면 딱히 반박할 말은 없었지만, 지금은 이 버릇이 유일한 지지대였다. 튜토리얼, 튜토리얼이면 괜찮아. 튜토리얼에서 캐릭터를 죽이는 게임은 없으니까. 적어도 내가 아는 게임은 그랬다. 말이 끝나기도 전에 어디선가 낮은 울음소리가 울렸다. 크르르릉. 짐승의 소리였다. 크고, 낮고, 아주 가까이에서. 숨을 죽였다. 심장 소리가 귓속에서 울렸다. 쿵, 쿵, 쿵. 그 박자가 너무 크게 느껴져서 저 짐승도 이 소리를 듣지 않을까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돌아보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목이 저절로 돌아갔다. 어둠 속에서 두 개의 금빛 눈이 나를 보고 있었다. 사슴이라고 생각했다. 착각이었다. 사슴의 눈이 저렇게 형광으로 빛날 리는 없었다. 눈 사이의 거리도, 눈높이도, 사슴이라 하기엔 너무 컸다. 튜토리얼에서 안 죽인다는 말은, 취소해야 할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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