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
‹ ›5화. 청련(靑蓮)
손끝이 뜨거웠다.
처음 느끼는 감각이었다.
타는 듯한 열기가 손바닥을 타고 팔뚝까지 번졌다.
나는 그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했다.
살갗 아래로 무언가가 흐르는 느낌이었다.
마치 핏줄 속에 다른 것이 섞여 흘러가는 듯한 이질감이었다.
다만 몸이 저절로 움직이고 있었다.
머리로 생각하기도 전에, 팔이 먼저 반응했다.
여인의 손톱이 내 얼굴을 향해 뻗어왔다.
새하얀 손톱이었다.
달빛을 받아 서릿발처럼 빛나고 있었다.
나는 목검으로 그것을 쳐냈다.
손끝에서 흐르던 열기가 목검을 타고 퍼졌다.
부딪히는 순간, 파란 빛이 번쩍였다.
눈이 부실 정도의 빛이었다.
여인이 흠칫 뒤로 물러났다.
"이건…"
그녀의 목소리에 처음으로 당혹감이 서렸다.
나는 내 손을 내려다보았다.
손바닥에서 옅은 청색 기운이 아지랑이처럼 피어오르고 있었다.
숨이 턱 막혔다.
[청련심법(靑蓮心法)의 잔재 기운이 반응합니다.]
[숙주의 몸에 각인된 심법이 발현됩니다.]
판이 다급하게 글자를 띄웠다.
나는 이해할 겨를이 없었다.
청련심법이라는 이름도 처음 들었다.
사부는 내게 그런 이름을 가르쳐준 적이 없었다.
그렇다면 이것은 언제, 누가 내 몸에 새겨 넣은 것인가.
의문을 품을 시간조차 주어지지 않았다.
여인이 다시 달려들었다.
이번엔 더 빨랐다.
바람을 가르는 소리가 귓가에 스쳤다.
나는 몸을 낮췄다.
손톱이 머리 위를 스쳐 지나갔다.
머리카락 몇 올이 잘려 나가는 것이 느껴졌다.
헛간 기둥이 그대로 베어져 나갔다.
굵은 목재가 두부처럼 갈라졌다.
나무 조각이 사방으로 튀었다.
파편 하나가 뺨을 스치며 붉은 실선을 그었다.
나는 이를 악물고 목검을 휘둘렀다.
의식하지 않았는데도, 몸이 사부가 가르쳐준 초식을 그대로 따라 하고 있었다.
발의 위치, 허리의 회전, 손목의 각도까지.
마치 오래전부터 수천 번 해온 동작처럼 자연스러웠다.
*전생에서 나는 몸을 어떻게 쓰는지도 몰랐다. 겁이 많고, 싸움을 피하기만 했다.*
*싸움이 벌어질 것 같으면 늘 도망쳤다. 맞서본 적이 없었다.*
이번에는 두려움 속에서도 몸이 움직이고 있었다.
두려움이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다만 그 두려움 위에, 몸이 스스로 답을 찾아가고 있었다.
목검이 여인의 손목을 스쳤다.
청색 빛이 스파크처럼 튀었다.
"끄악!"
여인이 비명을 질렀다.
처음 듣는 사람다운 소리였다.
지금까지 그녀에게서 들었던 목소리는 낮고 서늘한 것뿐이었는데, 이번 비명에는 진짜 고통이 담겨 있었다.
그녀의 손끝, 손톱 하나가 검게 타들어가고 있었다.
연기가 피어올랐다.
살이 타는 냄새는 아니었다.
무언가 다른, 이질적인 냄새였다.
나는 숨을 몰아쉬었다.
온몸이 땀으로 젖어 있었다.
목검을 쥔 손이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다.
여인이 자신의 손을 붙잡고 뒤로 물러났다.
핏빛 눈동자가 나를 노려보았다.
분노와 놀람이 뒤섞인 눈빛이었다.
"청련진기…"
그녀가 낮게 중얼거렸다.
"어떻게 이런 어린 것이."
그녀의 시선이 내 손끝에서 떠나지 않았다.
믹으려는 듯, 헤아려보려는 듯, 눈빛이 빠르게 움직였다.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답할 힘도 남아 있지 않았다.
숨을 쉬는 것조차 힘겨웠다.
손끝의 열기는 이미 사그라들고 있었다.
일시적인 것이었다.
다시 발동시킬 방법을 나는 알지 못했다.
머릿속으로 아무리 열기를 되짚어봐도, 그것을 어떻게 불러왔는지조차 기억나지 않았다.
여인이 그것을 눈치챈 듯했다.
그녀의 입가에 다시 미소가 걸렸다.
이번엔 여유가 담긴 미소였다.
"그 힘, 아직 온전치 않구나."
그녀가 천천히 다가왔다.
한 걸음, 두 걸음.
발소리조차 나지 않았다.
나는 뒷걸음질 쳤다.
등이 다시 벽에 닿았다.
차가운 나무판자의 감촉이 등을 파고들었다.
더 이상 물러날 곳이 없었다.
숨이 가빠졌다.
손끝에 다시 열기를 모으려 했지만,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았다.
손바닥은 그저 평범한 손바닥이었다.
식은땀이 흘렀다.
이마에서 흘러내린 땀이 눈가를 적셨다.
여인의 손톱이 다시 자라나기 시작했다.
하얗게, 길게, 서서히.
마치 죽음이 손끝에서부터 자라나는 것 같았다.
나는 눈을 감지 않았다.
눈을 감으면 그대로 끝일 것 같았다.
그 순간, 마당 쪽에서 개 짖는 소리가 요란하게 울렸다.
이어 서연의 목소리가 들렸다.
"거기 누구 있어요?"
인기척이었다.
발소리가 헛간 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여인의 표정이 순간 굳었다.
그녀가 나를 다시 바라보았다.
"오늘은 여기까지."
낮은 목소리였다.
"하지만 다음번엔 다를 것이다."
그녀가 몸을 돌렸다.
그리고 무언가 생각난 듯, 다시 나를 돌아보았다.
"고은설."
그녀가 문득 자신의 이름을 흘렸다.
왜 그랬는지, 나는 알 수 없었다.
마치 다음을 기약하듯이.
이름을 알려준다는 것은, 다시 만날 것을 확신하는 자의 여유였다.
"주상께서 너를 지목하신 이유, 곧 알게 될 것이다."
그 말을 남기고, 그녀의 형체가 안개처럼 흩어졌다.
순식간이었다.
방금까지 그 자리에 있던 것이, 마치 처음부터 없었던 것처럼 사라졌다.
헛간 안에는 다시 정적이 내려앉았다.
서리 내린 벽만이 방금 전의 일이 꿈이 아니었음을 증명했다.
벽을 타고 하얗게 얼어붙은 서리는, 손을 대면 그대로 녹아 없어질 것 같았다.
나는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다리에 힘이 풀렸다.
목검이 손에서 떨어져 바닥을 굴렀다.
숨을 몰아쉬며, 나는 내 손을 내려다보았다.
청색 기운은 완전히 사라져 있었다.
평범한 손이었다.
굳은살도 없는, 아이의 손이었다.
방금까지 사람을 다치게 했던 손이라고는 믿기지 않았다.
[성망 : 15/100]
[남은 시간 : 49시간 58분]
[청련심법 발현 이력이 기록되었습니다.]
판이 담담하게 글자를 띄웠다.
담담한 글자와는 달리, 내 심장은 여전히 미친 듯이 뛰고 있었다.
방금 죽을 뻔했다는 사실이 실감 나지 않았다.
머릿속이 하얗게 비어 있었다.
무엇을 생각해야 할지조차 알 수 없었다.
헛간 문이 열리며 서연이 얼굴을 내밀었다.
작은 등불을 든 채였다.
"오라버니, 괜찮아요? 무슨 소리가 들렸는데."
그녀의 눈에 걱정이 가득했다.
등불에 비친 그녀의 얼굴이 창백해 보였다.
나는 애써 웃어 보였다.
입가에 힘을 주어 웃음을 만들어냈다.
"괜찮습니다. 아무 일도 아니에요."
거짓말이었다.
목소리가 떨리지 않도록 신경을 써야 했다.
서연은 헛간 벽의 서리를 보고도 별다른 의문을 품지 않았다.
그저 밤이 추워서 그런 것이라 생각하는 듯했다.
그녀는 등불을 들어 헛간 안을 한 번 훑어보았다.
부서진 기둥 조각들이 바닥에 흩어져 있었지만, 어둠 속에서는 잘 보이지 않았다.
"기둥이 왜 이렇게…"
"쥐가 갉아먹었나 봅니다."
말이 되지 않는 소리였다.
하지만 서연은 더 캐묻지 않았다.
나는 그녀를 안심시키고 다시 안으로 들여보냈다.
"먼저 들어가 계세요. 저는 정리를 좀 하고 가겠습니다."
"정말 괜찮은 거죠?"
"네."
서연이 몇 번이나 뒤를 돌아보며 안채로 사라졌다.
그녀의 발소리가 완전히 멀어질 때까지, 나는 미소를 유지했다.
혼자 남은 헛간에서, 나는 벽에 등을 기대고 앉았다.
그제야 참았던 숨을 길게 내뱉었다.
*주상께서 너를 지목하신 이유.*
그 말이 계속 머릿속을 맴돌았다.
주상이라는 존재는 누구인가.
왜 나를 지목했다는 것인가.
고은설이라는 여인은 대체 무엇이었나.
인간이 아닌 것은 분명했다.
손톱에서 자라나던 그 하얀 것들, 안개처럼 흩어지던 형체.
모든 것이 상식 밖의 일이었다.
사부는 늘 말했었다.
"청화산 밖은 위험한 곳이다."
그때는 그 말이 단순히 산적이나 도적을 조심하라는 뜻이라 여겼다.
나는 이제 그 말의 진짜 의미를 알 것 같았다.
이 세계는 단순히 무공을 겨루는 무림이 아니었다.
귀신이, 요괴가, 인간의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이 도사리는 세상이었다.
그리고 그 어딘가에서, '주상'이라는 존재가 나를 지켜보고 있었다.
내가 누구인지, 무엇을 가졌는지 알고 있는 자였다.
몸속에 새겨진 청련심법이라는 것도, 그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었다.
나는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달이 유난히 붉게 보였다.
피처럼 붉은 달이었다.
구름이 그 앞을 천천히 지나가고 있었다.
마치 달마저 무언가를 숨기려는 것처럼.
등줄기의 한기는, 아직 완전히 가시지 않고 있었다.
손끝에는 방금까지 느꼈던 뜨거움의 흔적이 남아 있었다.
이제는 완전히 식어버린, 그저 서늘한 감각뿐이었다.
나는 그 손을 오래도록 내려다보았다.
이 손안에 무엇이 잠들어 있는지, 나조차 알지 못했다.
그리고 그것을 알아야 할 시간이, 그리 많이 남지 않았다는 것만은 분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