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록으로 마법소녀님, 존엄만 돌려주세요

3화

장갑차가 방어선 후방에 멈춰 섰을 때, 나는 처음으로 마재 현장이라는 걸 실감했다. 책으로 배운 것과 실제로 보는 건 완전히 다른 얘기였다. 훈련소 교관님이 아무리 "현장은 다르다"고 말해줘도, 그게 뭔 소린지 몰랐다. 지금 알겠다. 진짜 다르구나. 강남 3-7 지구는 이미 절반이 파괴된 상태였다. 도로가 갈라지고, 건물 외벽이 통째로 뜯겨 나가 있었다. 어떤 건물은 5층부터 위쪽이 그냥 사라져 있었는데, 그 잘린 단면이 마치 칼로 두부를 자른 것처럼 매끈했다. 저게 사람 손으로 가능한 건가. 검은 연기 사이로 형체를 알 수 없는 요괴들이 이리저리 뛰어다녔고, 그 사이로 특수기동지원대 조끼를 입은 대원들이 방어선을 치고 있었다. 다들 얼굴에 표정이 없었다. 아니, 표정이 있을 여유가 없어 보였다. "강도현, 여기 차 세워. 물자 하차한다." 반장님이 지시를 내렸다. "네!" 강도현 형이 장갑차를 능숙하게 세우며 시동을 켜둔 채로 뛰어내렸다. 형은 원래 운전 담당이지만, 이런 상황에선 물자 운반부터 응급 처치까지 다 해야 한다. 특수장갑차량 운전대원은 전장에서 유일한 이동 거점이니까. 그러니까 결국 형은 이 전장에서 제일 많이 뛰어다니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운전이 담당인데 제일 안 앉아있는 사람. 윤하늘 누나는 이미 헤드셋을 끼고 오퍼레이터 채널을 잡고 있었다. 손가락이 무전기 버튼 위에서 쉬지 않고 움직였다. "본부, 여기 10반 도착했습니다. 현재 상황 보고 부탁드립니다." [10반, 현재 최전선 붕괴 15퍼센트. 마재 원인체 미식별. 코드네임 흑아로 임시 지정. 인간형 상위 개체로 추정. 접근 극히 위험함.] 흑아. 그 이름을 듣는 순간, 등줄기가 다시 서늘해졌다. 어제부터 느껴진 그 이물감이, 이 흑아라는 존재에게서 나오는 게 아니었다. 흑아는 오히려 그 이물감의 근처에서 활개 치고 있는 것 같았다. 뭔가 더 근본적인 것이 저 안쪽에 있었다. ..이거 나만 느끼는 건가. 주변을 둘러봤다. 다들 각자 할 일을 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누구도 나처럼 등골이 서늘하다는 표정을 짓고 있지 않았다. 그럼 진짜 나만 느끼는 거네. "서준이는 후방 대기, 부상자 응급 처치 지원." 반장님이 다시 한 번 강조했다. "절대 방어선 넘어가지 마라." "네." 대답은 순순히 했다. ..근데 이게 지켜질까 모르겠네요. 어쩐지 그런 예감이 들었다. 이런 예감은 왜 한 번도 틀린 적이 없는 걸까. 그냥 내가 재수가 없는 건지, 아니면 이 마력 감응력이라는 게 원래 이런 식으로 쓸모없이 정확한 건지. 반장님이 앞으로 나서고, 윤하늘 누나가 통신을 담당하고, 강도현 형이 물자와 부상자를 운반하는 사이, 나는 응급처치 텐트 근처에서 대기하며 상황을 지켜봤다. 마력 감응력으로 주변을 살피는 게 내 몫이었다. 후방에서라도 뭔가 이상한 조짐을 먼저 잡아내는 게 내 역할이었다. 말은 그렇게 하지만, 사실 이게 얼마나 도움이 되는 역할인지는 잘 모르겠다. 감응력이 좋으면 뭐 하나. 결국 몸으로 뛰는 건 다른 사람들이니까. 그런데 그 서늘한 이물감은 점점 강해지고 있었다. 마치 큰 파도가 밀려오기 전의 정적처럼. 손끝이 저릴 정도였다. 텐트 천막 자락이 바람에 흔들리는 소리마저 크게 들렸다. "방어선 3구간 붕괴!" 누군가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먼지가 확 피어올랐다. 콘크리트 조각들이 튕겨 나가면서 텐트 쪽까지 파편이 날아왔다. 검은 형체 하나가 방어선을 뚫고 들어왔다. 사람 형상을 하고 있었지만 팔다리가 비정상적으로 길었고, 온몸이 검은 깃털 같은 것으로 덮여 있었다. 눈은 아예 없이 그 자리에 새까만 구멍만 있었다. 그 구멍이 어딜 보고 있는지도 알 수 없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마치 사방을 동시에 보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흑아였다. ..저게 인간형 상위 개체라고요. 인간형이라는 말이 무색했다. 저건 인간이었던 적이 있었다는 흔적조차 안 보였다. "전원 전개!" 반장님이 소리치며 앞으로 뛰어나갔다. 전직 마법집행관 출신답게, 몸에서 마력이 확 피어오르는 게 눈으로도 보일 정도였다. 곰 같은 덩치가 순식간에 전투 자세로 바뀌었다. 뜨어어어억-! 반장님의 결계 방패가 흑아의 첫 공격을 막아냈다. 그런데 흑아의 힘이 예상보다 훨씬 강했다. 반장님이 몸을 뒤로 몇 걸음 밀려났다. 발밑의 아스팔트가 갈라지는 소리까지 들렸다. 반장님이 그 정도로 밀린다는 게 믿기지가 않았다. 저 덩치, 저 마력으로도 저렇게 밀리는구나. "윤하늘! 지원 병력 요청해!" 반장님이 외쳤다. "이미 요청했습니다! 근처 대응반 전부 이쪽으로 오는 중인데 시간이 걸려요!" 시간이 걸린다는 말이 이렇게 무겁게 들릴 줄 몰랐다. 시간, 시간. 그 흔한 말이 지금은 목숨값이었다. 강도현 형이 부상자 하나를 어깨에 메고 후방으로 달려왔다. 이마에서 피가 흐르고 있었지만 형은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 움직였다. 발걸음이 무거워 보였는데도 속도를 줄이지 않았다. "서준아, 이쪽 좀 도와줘!" "네!" 나는 급히 뛰어가서 부상자를 눕히고 응급 처치를 도왔다. 손이 떨렸다. 이런 규모의 상처를 실제로 본 건 처음이었다. 훈련소에서 배운 매뉴얼이 머릿속에서 뒤죽박죽 섞였다. 지혈부터, 아니 기도 확보부터, 아니 그게 아니라. "압박, 압박부터 해!" 강도현 형이 소리쳤다. "네, 네!" 손바닥으로 상처를 누르는데 피가 손가락 사이로 계속 새어 나왔다. 뜨겁고 미끌거리는 느낌이 손끝에 그대로 남았다. 이런 감각은 훈련소에서 배울 수 없는 거였다. 그러는 사이, 흑아의 공격이 점점 방어선 안쪽까지 파고들었다. 서늘한 이물감이 이제는 거의 압박감으로 바뀌었다. 나만 느끼는 건지, 다른 사람들은 그냥 흑아의 요기만 느끼는 건지 알 수 없었다. 그런데 나는 분명히 느꼈다. 흑아 뒤편, 아니 그보다 더 안쪽 어딘가에서, 뭔가가 이 상황을 가만히 관찰하고 있었다. ..저건 뭐지. 흑아 자체보다도 그 시선이 더 무서웠다. 흑아는 그냥 날뛰는 짐승 같은데, 그 뒤에서 느껴지는 건 짐승이 아니었다. 뭔가 판단하고, 계산하고, 지켜보는 존재였다. "강도현, 다시 나가서 다음 부상자 데려와!" 반장님이 소리쳤다. 몸에 상처가 늘어나고 있었지만 반장님의 자세는 여전히 흔들리지 않았다. "네!" 강도현 형이 다시 방어선 쪽으로 달려나갔다. 그 순간, 흑아가 몸을 낮추고 형을 향해 달려들었다. 숨이 턱 막혔다. "형, 조심해요!" 내가 소리쳤지만 이미 늦었다. 퍼어억-! 강도현 형이 옆으로 튕겨 나가 바닥을 굴렀다. 한 바퀴, 두 바퀴. 몸이 인형처럼 튕겨 나가는 걸 보면서도 눈을 못 뗐다. "강도현!" 반장님이 흑아를 밀어내며 형에게 달려갔다. 나도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그쪽으로 뛰었다. 방어선을 넘어가지 말라는 지시 같은 건 이미 머릿속에서 지워진 상태였다. 발이 땅에 닿는 느낌도 안 났다. 그냥 뛰었다. 무슨 생각을 하고 뛴 게 아니라 몸이 먼저 움직였다. 형은 의식을 잃고 쓰러져 있었다. 이마에서 새로운 피가 흘렀고, 팔 한쪽이 이상한 방향으로 꺾여 있었다. 저건 정상적인 관절의 방향이 아니었다. "도현아, 정신 차려!" 반장님이 흔들어도 반응이 없었다. ..이게 진짜 일어나는 일이라고? 텐트 뒤에서 안전하게 응급 처치를 돕는 것과, 눈앞에서 동료가 쓰러지는 걸 지켜보는 건 완전히 다른 차원의 일이었다. 다리가 후들거렸다. 무릎이 꺾일 것 같았다. 그런데 그 다리를 억지로 붙잡고, 형에게 다가가려는 순간이었다. 흑아가 몸을 다시 일으켰다. 그 새까만 눈구멍이, 정확히 반장님 쪽을 향하고 있었다. ..저거 이번엔 진짜로 노리는데요. 방금 형을 쳐낸 게 시작이었다는 걸 그때 알았다. 흑아는 사냥을 즐기는 것처럼, 다음 목표를 벌써 정해놓은 것처럼 천천히 몸을 세웠다. 깃털 같은 것들이 스르르 부풀어 올랐다. 저게 공격 전 신호라는 걸, 몸으로 알 수 있었다. 반장님은 형을 안은 채 등을 보이고 있었다. 내 목소리가 목구멍에서 걸려 나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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