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
‹ ›화면에 뜬 목적지 좌표를 다시 봤다.
칠흑던전, 최심부.
혹시 내가 앱을 잘못 눌렀나 싶어서 손가락으로 화면을 두 번, 세 번 문질렀다. 좌표는 그대로였다. 칠흑던전이 뭔지는 나도 안다. 서울에서 가장 크고 가장 위험한 던전, 헌터 협회 순위표 1위, 국가에서 봉인급으로 관리하는 곳. 뉴스에 하도 나와서 초등학생도 안다. 작년 재난 특보에서 앵커가 심각한 표정으로 "칠흑던전 근처 반경 5킬로미터는 즉시 대피하시기 바랍니다"라고 말하던 게 아직도 기억난다.
그런데 그 던전에, 최심부에, 짬뽕 한 그릇을 배달하라고?
"이거 오류죠?"
앱 고객센터에 전화를 걸었다. 신호음이 세 번 울리고 끊겼다. 다시 걸었다. 또 끊겼다. 세 번째로 걸었을 때는 신호음도 없이 바로 끊겼다. 마치 저쪽에서 내 번호를 보고 일부러 피하는 것 같았다.
[던배] 고객님, 배정된 콜은 취소 시 벌금 5만원이 부과됩니다.
5만원이라니. 등록금도 없는데 벌금이라니. 지난달 통장 잔고가 정확히 4만 7천 원이었던 게 떠올랐다. 벌금 물면 나는 이번 달 라면도 못 먹는다.
나는 한숨을 삼켰다.
"...가야겠네."
본가 분식집에서 아버지가 오토바이 헬멧을 던져줬다. 헬멧에는 아직 어묵 국물 자국이 말라붙어 있었다.
"막내야, 배달 하나 갔다 와라."
"저 지금 던전 콜이 잡혔어요."
"어디로?"
"칠흑던전이요."
아버지는 잠깐 나를 보더니 튀김 젓가락을 놓쳤다. 젓가락이 바닥에 떨어지며 요란한 소리를 냈지만, 아버지는 그걸 주울 생각도 못 하는 것 같았다.
"거기가 어디 초등학생 소풍 가는 데냐?"
"저도 몰라요! 시스템이 그렇게 배정했다니까요!"
"그거 취소 못 해?"
"벌금 5만원이라잖아요."
아버지는 잠깐 고민하는 눈치였다. 아마 5만원과 아들의 목숨을 저울질하는 눈치였는데, 다행히 5만원이 밀렸다.
"...조심히 가."
결국 아버지도 별수 없이 헬멧을 다시 씌워줬다. 손이 살짝 떨리는 게 느껴졌다.
"조심해서 갔다 와. 짜장면은 국물 새면 안 된다."
국물이 문제가 아닌 것 같은데.
* * *
칠흑던전 입구는 지하철역 3번 출구 옆, 편의점 뒷골목에 있었다. 삼각김밥과 컵라면이 진열된 편의점 유리창 너머로, 검은 게이트가 소리 없이 일렁였다. 세상에서 제일 위험한 관광지 앞에 삼각김밥이 있다니, 이 도시는 정말 아무 데나 던전을 박아놓는구나.
입구 경비병이 내 배달 앱 화면을 보고는 눈을 크게 떴다. 방독면 같은 헬멧을 쓰고 있었는데도 표정이 그대로 느껴졌다.
"이거··· 진짜 최심부 콜이네요?"
"네. 왜요, 이상해요?"
"최심부 콜은 3년 만이에요. 마지막 배달자는··· 안 돌아왔거든요."
돌아왔다. 심장이 쿵 내려앉는 소리가.
"저 안 가면 안 될까요?"
"벌금 5만원인데요."
경비병은 마치 세상에서 가장 당연한 사실을 말하듯 태연하게 대답했다. 이 나라 시스템은 사람 목숨보다 5만원을 더 무겁게 취급하는 게 확실하다.
···갈게요.
게이트에 발을 들이는 순간 세상이 뒤집혔다.
철퍽.
발밑이 늪처럼 물컹했다. 사방이 온통 검은 안개였고, 숨을 쉴 때마다 쇠 냄새가 코를 찔렀다. 헬멧 사이로 스며드는 공기가 습하고 무거웠다. 편의점 삼각김밥 냄새가 그리워질 정도였다.
[던배] 경로 안내: 직진 800미터 후 우측.
앱은 태연하게 내비게이션을 켰다. 도로 배달이랑 던전 배달이랑 뭐가 다른가 싶었는데, 다른 게 하나 있었다.
골목 끝에서 그림자가 튀어나왔다.
콰앙!
2미터짜리 검은 늑대였다. 눈이 붉었고 이빨이 내 팔뚝만 했다. 침이 뚝뚝 떨어지는데 그게 땅에 닿을 때마다 지지직 소리를 내며 연기가 났다.
"으악!"
[던배] 3등급 몬스터 감지. 배달 지연 시 별점이 하락합니다.
"이 상황에 별점이 문제야?!"
늑대가 내 목을 향해 그대로 도약했다.
나는 눈을 질끈 감았다. 이렇게 죽는구나, 유설아한테 후원 한 번 못 해보고. 아니 이왕 죽는 거 최소한 슈퍼챗 한 번은 쐈어야 했는데. 인생 마지막 순간에 이런 후회를 하는 내가 참 한심했다.
···그런데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눈을 떴다. 늑대의 이빨이 내 목 바로 앞에서 그냥 멈춰 있었다. 아니, 통과하고 있었다. 마치 내가 유령이라도 된 것처럼. 이빨이 목을 통과하는 감각조차 없었다. 그냥 서늘한 바람이 살짝 스치는 정도였다.
【적성률 -1000% 감지. 모든 물리·마법 대미지 판정 무효.】
"뭐?"
무슨 소리인지 하나도 이해가 안 갔지만, 일단 안 죽었다는 사실만은 확실했다.
늑대는 몇 번 더 이빨을 부딪치더니, 어이없다는 듯 뒤로 물러났다. 짐승도 표정이 있다면 저건 분명 '이게 뭐야' 하는 얼굴이었다. 늑대와 눈이 마주쳤다. 늑대가 먼저 시선을 피했다.
[던배] 배달원의 생존이 확인되었습니다. 경로를 계속 안내합니다.
앱은 여전히 태연했다.
나는 손발이 후들거리면서도 다시 걷기 시작했다. 늑대가 다시 달려들었다. 이번에도 그대로 통과. 세 번, 네 번. 다섯 번째부터는 늑대가 알아서 길을 비켜줬다. 나중에는 아예 하품을 하면서 옆으로 드러누웠다. 마치 "귀찮으니 그냥 지나가라"는 태도였다.
···이게 뭐야, 나 죽지도 않고 안 다치는 거야?
최심부로 가는 길목에는 몬스터가 넘쳐났다. 뿔 달린 오크, 날개 달린 박쥐 떼, 벽을 타는 거미까지. 다들 나를 한 번씩 물어보고는 흥미를 잃고 사라졌다. 마치 놀이터에서 벌레 잡던 애가 벌레가 반응을 안 하니까 관심 끄는 것처럼. 거미 한 마리는 심지어 내 어깨에 올라탔다가, 아무 맛도 안 나니까 실망한 듯 스르륵 내려가 버렸다.
이쯤 되니 슬슬 무서움보다는 허탈함이 더 커졌다. 세상에서 제일 위험한 던전이라는데, 나한테는 놀이공원 유령의 집만도 못했다.
한 시간을 걸어 도착한 곳은 거대한 흑수정 동굴이었다. 천장까지 닿는 검은 기둥들 사이로 낮게 울리는 숨소리가 들렸다. 그 숨소리 하나만으로도 동굴 전체가 미세하게 흔들리는 게 느껴졌다.
스으으윽.
동굴 안쪽에서 거대한 형체가 몸을 일으켰다. 비늘은 밤보다 짙었고, 눈은 용암처럼 붉었다. 날개를 접었는데도 크기가 버스 두 대는 됐다. 몸을 일으키는 것만으로도 바닥에 깔린 흑수정 파편들이 쨍그랑거리며 흩어졌다.
【칠흑던전 최심부 지배자: 칠흑용왕】
나는 그 자리에 그대로 얼어붙었다.
내 뇌가 상황을 받아들이길 거부하는 것 같았다. 짬뽕 배달원이 국가 봉인급 몬스터 앞에 서 있다니, 이거 나중에 누구한테 얘기해도 안 믿어줄 거다.
용왕이 나를 내려다보며 콧김을 뿜었다.
후우웅.
뜨거운 바람이 얼굴을 덮쳤다. 라이터를 백 개쯤 켠 냄새가 났다. 헬멧 안쪽이 순식간에 뜨거워지면서 땀이 목덜미를 타고 흘렀다.
"...짬뽕 배달, 강대길입니다."
목소리가 심하게 떨렸다. 이 상황에서도 배달원 인사말이 저절로 튀어나오는 내가 신기했다.
용왕은 잠시 나를 물끄러미 보다가, 뜻밖에도 사람 말을 했다.
"···왔구나, 배달자여."
중저음의 위엄 있는 목소리였다. 동굴 전체가 그 목소리에 맞춰 울리는 것 같았다.
"제법 오래 걸렸구나. 배달 예상 시간이 47분이라 했거늘, 무려 51분이 걸렸다."
"죄송합니다, 몬스터들이 자꾸 시식을 하려고 해서요."
용왕은 거대한 앞발로 스마트폰을 하나 꺼냈다. 앞발 크기에 비하면 스마트폰이 손톱만 했는데, 그걸 정확하게 조작하는 게 더 신기했다. 액정이 온통 시커먼데도 앱 화면은 선명했다.
[던배] 앱 별점 창이 떠 있었다. 별 다섯 개 중 세 개가 노란색.
"별점을 3개밖에 못 주겠구나. 배달이 늦었으니."
"...예?"
라스보스한테 별점 테러를 당했다.
머릿속이 새하얘졌다. 늑대 이빨도 통과하고, 오크 주먹도 통과하고, 거미 독니도 통과했는데, 별점 3개는 그냥 그대로 가슴에 콱 박혔다. 이상하게 이게 제일 아팠다.
나는 그 순간 인생의 방향이 완전히 바뀌었다는 걸 아직 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