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록으로 용왕님, 배달 왔습니다

5화

조합 본청 로비는 유리 바닥에 조명이 반사돼 눈이 부실 정도로 화려했다. 에어컨 바람은 시원했고, 바닥에서는 새 건물 특유의 페인트 냄새가 은은하게 올라왔다. 천장에는 거대한 크리스탈 샹들리에가 매달려 있었는데, 저것도 어차피 배달자 후원금으로 산 거겠지 싶었다. 접수대 옆 대형 스크린에는 인기 배달자 순위표가 실시간으로 갱신되고 있었다. 1위는 당연히 한아리, 89%. 2위와의 격차가 20퍼센트 포인트 넘게 벌어져 있는 걸 보니, 저 여자 진짜 인기는 인기구나 싶었다. 순위표 맨 아래엔 새로 생긴 항목이 있었다. "이상 사례 조사 대상: 강대길" 내 이름이 순위표에 오른 건 처음이었다. 근데 하필 이런 방식으로. 옆을 지나가던 다른 배달자들이 스크린을 보고는 나를 슬쩍 쳐다봤다. 그중 한 명은 대놓고 휴대폰을 꺼내 내 얼굴을 찍었다. 아니, 최소한 허락은 받고 찍어야 하는 거 아닌가. "강대길 씨 되시죠?" 조사관이 다가와 인사도 없이 명찰을 확인했다. 목에 걸린 사원증에는 '이상 존재 감시국 3팀'이라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 감시국. 이름부터 벌써 무섭다. "이쪽으로 오세요." 회의실로 들어가는 동안 발밑에서는 카펫이 푹신하게 눌렸고, 벽에는 지금까지 배달 등급을 통과한 사람들의 사진이 액자로 걸려 있었다. 액자마다 밑에 숫자가 적혀 있었는데, 그게 통과율인지 후원금인지는 잘 모르겠다. "강대길 씨, 앉으세요." 회의실엔 조사관 외에도 정장 입은 사람이 세 명 더 있었다. 다들 표정이 비슷했다. 웃지도 않고 찡그리지도 않는, 그냥 공무원 특유의 무표정. "저희는 헌터청 이상 존재 감시국 소속입니다. 오늘 면담은 강대길 씨의 배달 자격 유지 여부를 결정하기 위한 자리입니다." 자격 유지 여부. 그 말이 목에 걸린 가시처럼 아팠다. "제가 뭘 잘못했나요?" 목소리가 나도 모르게 살짝 떨렸다. "잘못은 아닙니다. 다만 시스템 밖에 존재하는 배달원이 활동하는 건 전례가 없어서요. 안전성 검증이 필요합니다." 전례가 없다는 말, 저번에도 듣지 않았나. 이 사람들 대체 대본이 몇 개나 있는 거야. 첫째, 신원 확인. 둘째, 능력 재현 시험. 셋째, 위험도 재평가. 조사관이 손가락을 하나씩 접으며 항목을 읊었다. 그 사이사이 나는 속으로 딱딱한 댓글을 붙였다. 첫째는 이미 어제 다 했잖아요, 지문까지 찍었는데 또 뭘 확인해요. 둘째는 대체 뭘 재현하라는 거고요, 제가 뭘 했는지 저도 모르는데. 셋째는 이미 아무도 못 죽인다고 결론 났잖아요, 사람 위험도를 몇 번이나 재평가하는 거예요. "시험은 다음 주로 예정되어 있습니다. 던전 3등급 구역에서 실전 평가를 받게 될 겁니다." "저 그냥 배달만 하면 안 될까요?" 정말 진심을 담아 물었다. 나는 그냥 조용히 배달하고 짜장면 먹고 자고 싶을 뿐이었다. "안 됩니다. 시스템 밖 존재는 잠재적 위험군으로 분류되어, 재평가를 통과해야 정식 자격이 유지됩니다." 【규정입니다.】 시스템 알림까지 뜨는 걸 보니 진짜 빼도 박도 못하는 규정인 모양이다. ···그럴 줄 알았다. "좋습니다, 그렇게 하죠." 겉으로는 순순히 대답했지만 속으로는 이미 후회하고 있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최심부 그냥 통과하지 말고 적당히 상처 하나 입고 나왔어야 했나. 아니, 그럼 그건 또 다른 문제로 걸렸겠지. 조사관 중 한 명이 서류를 내밀며 서명을 요구했다. 서류에는 작은 글씨로 뭔가 잔뜩 적혀 있었는데, 읽어봐야 어차피 이해도 못 할 것 같아서 그냥 이름만 적었다. 면담이 끝나고 나오는데, 로비 한쪽에서 낯익은 얼굴을 봤다. 화면으로만 봤던 얼굴이었다. 한아리. 실제로 보니 화면보다 더 화려했다. 은색 머리카락은 조명 아래에서 반짝였고, 완벽한 메이크업 위로는 잡티 하나 보이지 않았다. 등에는 팬들이 후원한 명품 브랜드 로고가 새겨진 갑옷이 걸려 있었는데, 저거 방어력보다는 광고 효과가 더 좋을 것 같은 디자인이었다. 그녀가 나를 발견하고는 걸어왔다. 하이힐 소리가 유리 바닥에 또각또각 울렸다. 그 소리마저도 무슨 리듬을 타는 것처럼 정확하고 화려했다. "강대길 씨?" 목소리는 부드러웠지만 눈은 웃지 않았다. "네, 맞는데요." "최심부 무손상 통과, 그거 진짜예요?" "진짜예요." "어떻게요? 스킬도 없고 장비도 없다던데." "저도 잘 몰라요. 그냥 안 맞더라고요." 한아리의 눈빛이 순간 날카로워졌다가, 곧 다시 부드러운 웃음으로 돌아왔다. 그 전환이 너무 빨라서 마치 스위치를 켜고 끄는 것 같았다. "재밌네요. 다음에 방송 콜라보라도 해볼까요?" 말은 상냥한데 왜 등에 소름이 돋는지 모르겠다. "저는 방송은 안 해서요." "그래요? 근데 요즘 실시간 게시판에서는 강대길 씨가 완전 화제인데." 그녀가 스마트폰을 내밀었다. 화면 밝기가 너무 밝아서 순간 눈이 부셨다. [속보] 최심부 무손상 배달원, 헌터청 감시 대상 등록. 댓글창엔 이미 수천 개의 반응이 달려 있었다. 그중 일부는 나를 응원했고, 일부는 조작이라 의심했고, 일부는 한아리와 비교하며 그녀를 깎아내렸다. 스크롤을 내리는 그녀의 손가락이 유난히 빨랐다. "어제부로 제 방송 동시 시청자가 3천 명 빠졌어요." 한아리의 목소리가 살짝 떨렸다. "그거 저 때문은 아닌 것 같은데요." 솔직히 나는 방송도 안 하는데 어떻게 시청자를 빼가겠어. "그러세요? 사람들이 다 강대길 씨 영상만 찾고 있는데." 【동시 시청자 이탈 3,127명, 실시간 순위 2위로 하락.】 앱 알림이 그녀의 화면에 뜨는 게 내 눈에도 보였다. 숫자가 실시간으로 바뀌는 게 마치 주식창 보는 것 같았다. 그녀는 그 알림을 보고 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아주 짧은 순간이었지만, 방금까지의 웃음이 완전히 사라진 얼굴이었다. 그 표정이 오히려 화면 속 완벽한 미소보다 훨씬 사람다워 보였다. "강대길 씨." 목소리가 낮아졌다. "저는 3년 동안 하루도 안 쉬고 이 자리에 올라왔어요. 갑자기 나타난 무등급 배달원한테 자리를 뺏길 순 없어요." "저는 뺏은 적 없는데요." 정말 억울했다. 순위 같은 거 신경도 안 쓰는데. "두고 보세요." 그녀는 그 말만 남기고 하이힐 소리를 울리며 사라졌다. 소리가 멀어질수록 로비 안의 공기가 조금씩 원래대로 돌아오는 느낌이었다. 로비 유리창에 비친 내 표정이 어정쩡했다. 뭔가 크게 잘못 걸린 느낌이었다. 집으로 돌아가는 지하철 안에서 유설아의 새 영상을 확인했다. [오늘은 3등급 구역 도전! 무섭지만 파이팅!] 동시 시청자 15명. 조금 늘었다. 나는 그 화면을 보며 픽 웃다가, 문득 다음 주 시험이 떠올랐다. 3등급 구역 실전 평가. 하필 유설아가 도전하는 곳이랑 같은 등급이었다. ···설마 거기서 만나는 건 아니겠지. 휴대폰이 진동했다. 조사관에게서 온 문자였다. [강대길 씨, 시험 세부 사항을 알려드립니다. 평가 위원 중 한 명은 한아리 배달자입니다.] 문자를 다시 읽었다. 오독인가 싶어서 한 번 더 읽었다. 세 번째 읽었을 때도 글자는 똑같았다. 나는 화면을 들고 그 자리에 멈춰 섰다. 지하철이 다음 역으로 들어서며 삐이익, 브레이크 소리를 냈다. 옆에 서 있던 사람이 나를 힐끔 쳐다봤다. 아마 표정이 완전히 굳어 있었겠지. ···이거 완전 망한 거 아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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