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
‹ ›마라탕 곱빼기를 배달하러 가는 길엔 그래도 여유가 좀 있었다.
두 번째니까.
늑대들도 이제 나를 보면 그냥 지나갔다. 처음 왔을 때는 이빨을 드러내고 으르렁거리던 놈들이, 이제는 내가 지나갈 때 하품을 하거나 옆으로 슬쩍 몸을 비켜줬다. 마치 마을 어귀 개들이 우체부한테는 안 짖는 것처럼. 심지어 한 놈은 배 깔고 누워서 꼬리를 살짝 흔들기까지 했다. 저기, 나 몬스터거든? 그렇게 친해질 필요는 없거든?
동굴 안쪽으로 들어갈수록 공기가 눅눅해졌다. 벽을 타고 흐르는 물소리, 저 멀리서 울리는 알 수 없는 짐승의 신음, 발밑에서 뽀글거리는 이끼의 냄새까지. 예전엔 이 모든 게 공포였는데 지금은 그냥 배경음악처럼 느껴진다는 게 좀 무섭기도 했다.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라더니, 나는 적응이 아니라 그냥 무뎌진 건가.
최심부에 도착하니 용왕이 이미 자리를 잡고 기다리고 있었다.
거대한 몸을 동굴 안쪽에 둥글게 말고, 앞발 두 개를 턱 밑에 괴고 있는 자세가 딱 사람 기다리는 강아지 같았다. 물론 그 강아지가 산맥만 하다는 게 문제지만.
"왔구나. 이번엔 47분에 도착했느냐?"
"46분이요. 별점 좀 후하게 주세요."
"별점이라 함은 그 조합 앱의 그것 말이더냐? 지난번에 5점을 주었는데, 부족하더냐?"
"5점 맞고요, 그냥 리뷰도 좀 남겨주시면 좋다는 얘기예요. '친절하고 신속해요' 같은 거."
용왕이 마라탕 봉투를 열자 매운 향이 동굴 전체에 퍼졌다. 습기 가득한 공간에 고추기름 냄새가 확 번지니까 뭔가 어울리지 않는 조합인데도 묘하게 침이 고였다. 나도 아까 배달 오기 전에 저거 하나 시켜 먹을 걸 그랬나.
계란찜 뚜껑을 열더니, 아이처럼 눈이 밝아졌다.
"오오, 이건 처음 보는 음식이구나."
"계란찜이에요. 부드러워요. 숟가락으로 떠서 드시면 돼요."
용왕이 숟가락 대신 손톱 끝으로 살짝 찍어 맛을 보더니 눈을 크게 떴다.
"...맛있구나."
"손톱으로 드시지 말고 숟가락 쓰시라니까요."
"이게 더 편하다."
300년 묵은 라스보스가 계란찜에 감동받아 손톱으로 퍼먹는 모습이란, 상당히 낯설었다. 아니 이게 뭔 그림이야. 인터넷에 올리면 조작 의심받기 딱 좋은 장면인데.
용왕이 그릇을 비운 후 문득 물었다.
"궁금한 게 있는데, 너는 어찌 대미지를 전혀 입지 않는 것이냐? 지난번엔 3등급 몬스터의 발톱에 정면으로 맞고도 옷조차 안 찢어지더구나."
"저도 몰라요. 그냥 조합에서 적성률이 마이너스라고 하더라고요."
"흠, 그것뿐이더냐? 원리는 모르고?"
"용왕님은 아세요?"
용왕이 거대한 눈을 가늘게 좁혔다. 뭔가 강의 모드로 들어가는 표정이었다. 저 표정 나온 뒤로는 최소 5분은 얘기 듣게 되는 거 이제는 안다.
"세상의 모든 던전은 '적합도 판정'으로 대미지를 계산한다. 첫째, 침입자의 능력치를 측정하고. 둘째, 그 능력치를 던전 위협도와 비교하여. 셋째, 그 비율만큼 피해를 가한다."
"오, 뭔가 학교 수업 같네요. 판정식이면 시험도 나와요?"
"조용히 듣거라. 보통 인간은 능력치가 0에서 100 사이다. 100을 초과하면 던전 위협도보다 강하다는 뜻이니 대미지가 안 통하고, 0에 가까우면 약하다는 뜻이니 대미지가 그대로 통한다."
"저는 -1000이잖아요."
"그것이 문제다. 시스템은 음수를 계산할 방법이 없다. 판정식이 나누기를 하다가 값이 무한대나 오류로 튀어버리지. 결과적으로 시스템은 너를 '판정 불가'로 분류하고, 판정 불가 대상에게는 아예 대미지 계산 자체를 하지 않는다."
"그러니까··· 저는 있는데 없는 사람인 거예요?"
"정확히는, 던전 시스템 눈에는 존재하지 않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몬스터들도 본능적으로 너를 무해한 존재, 혹은 배경으로 인식한다."
"그래서 아까 늑대가 저한테 꼬리 흔든 거예요? 배경 취급이라?"
"그것은 그냥 그 늑대가 너를 좋아하는 것일 수도 있다."
용왕님, 지금 그거 위로하려고 하신 거예요? 별로 위로가 안 되는데요.
【적성률 음수 존재는 시스템 미인식 상태로 판정됩니다.】
나는 이 사실을 소화하는데 몇 초가 걸렸다. 눈앞에 뜬 알림창은 여전히 딱딱하고 사무적이었다. 판정 불가, 미인식. 무슨 은행 앱에서 계좌 조회했는데 '해당 정보 없음' 뜨는 기분이랄까.
"그럼 이 세상에서 저만큼 안전한 사람은 없는 거네요?"
"안전이란 말은 안 맞다. 오히려 위험한 것이지. 시스템 밖에 있는 존재는 시스템도 예측하지 못한다. 언젠가 시스템이 너를 '오류'로 판단하고 강제로 삭제하려 들 수도 있다."
삭제라니. 배터리 부족 알림처럼 갑자기 존재가 꺼진다는 건가. 뭔가 등에 서늘한 게 지나갔다. 방금까지 계란찜 얘기하던 분위기에서 갑자기 삭제, 소거 얘기로 넘어가는 이 낙차는 진짜 심장에 안 좋다.
"그러면 저 어떻게 해야 되는 거예요?"
"그건 나도 아직 모른다. 다만 확실한 건, 네가 계속 시스템의 눈을 피해 다니는 한 당장은 큰 위험이 없다는 것이다."
"그거 완전 시한부 인생 느낌이잖아요."
"그리고 하나 더."
용왕의 눈빛이 순간 무거워졌다. 방금까지 계란찜에 감동하던 표정과는 전혀 다른, 300년 묵은 존재만이 낼 수 있는 무게였다.
"이 세상 자체가 그리 오래 남지 않았다는 사실은 아느냐?"
"네?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던전은 원래 균형을 유지하는 장치다. 그런데 근래 던전들의 확장 속도가 이상하리만치 빠르다. 12년 전 첫 게이트가 열렸을 때보다 지금 던전 밀도는 40배가 늘었다."
"40배요? 그거 거의 뭐, 편의점 늘어나는 속도랑 맞먹네요."
"비유가 이상하다만, 크게 다르지 않다. 이대로 가면 3년 안에 던전이 지상을 완전히 뒤덮는다. 인간들이 그리 부르더구나, '침식 한계선'이라고."
갑자기 세상이 멸망한다는 얘기가 나오니 마음이 붕 떴다. 머릿속에서 뭔가 거대한 종이 울리는 느낌. 그런데 이상하게도 제일 먼저 떠오른 생각은.
짜장면 배달은 그때도 가능한가.
아니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잖아, 강대길. 세상이 뒤덮인다잖아. 근데 진짜로 그 생각이 제일 먼저 들었다니까. 나도 내가 왜 이러는지 모르겠다.
"용왕님, 근데 저 다음 학기 등록금은 내야 하는데요."
용왕이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용도 저런 표정이 가능한 줄은 몰랐다. 거대한 눈두덩이 살짝 찌푸려지고, 콧구멍에서 픽 하고 뜨거운 공기가 새어 나왔다.
"세상이 멸망한다는데 등록금 걱정이냐."
"세상은 3년 남았고 등록금은 다음 달까지거든요. 순서가 있잖아요."
용왕이 낮게 웃었다. 동굴이 울릴 정도로. 벽에 붙은 이끼가 진동으로 떨어질 정도의 웃음이었다.
"재밌는 인간이구나. 좋다, 그 침식에 대해서는 다음에 더 알려주마. 오늘은 이 정도로 하지."
"네, 그럼 다음에 또 뭐 시켜 드실 거 있으면 미리 앱으로 예약 걸어주세요. 배달 시간 단축돼요."
"앱을 어찌 쓰는지 모른다."
"그거 다음에 알려드릴게요."
돌아가는 길, 늑대 한 마리가 또 배를 깔고 누워 있었다. 나는 이제 그 옆을 그냥 지나쳤다. 얘도 참, 취향이 독특하다.
휴대폰에 메시지가 쌓여 있었다.
조합 조사관에게서 온 문자였다.
[강대길 씨, 최심부 배달 2회 확인. 상부에서 면담 요청이 왔습니다. 내일 오후 2시, 조합 본청으로 오세요.]
면담이라니. 나 뭐 잘못한 거 있나. 배달 시간 어긴 것도 아니고, 오히려 신기록만 세우고 있는데.
또 하나, 던배 앱 알림.
[던배] 강대길 배달원님, 시청자 게시판에서 언급이 급증하고 있습니다.
뭔 소리인가 싶어 들어갔다.
실시간 게시판 인기글 1위.
제목: "칠흑던전에서 상처 하나도 안 입은 배달원 목격담".
조회수 87,000.
댓글 3,400개.
숫자가 뜨는 순간 위장이 살짝 조여드는 느낌이 들었다. 이거 뭐지, 나 유명해진 거야? 좋은 건가 안 좋은 건가.
그중 상단에 고정된 댓글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작성자: 한아리(★인증 배달자★)
내용: "이거 조작 아님? 나도 최심부 두 번 가봤는데 3등급한테도 스크래치 났음. 이 사람 뭔데 무손상. 관계자 확인 좀요."
좋아요 12,000개.
나는 그 댓글을 세 번쯤 다시 읽었다. 밑에 딸린 대댓글들도 죽 훑었다. "저도 궁금", "이거 조합에서 확인 안 하나요", "혹시 스폰서 붙은 인플루언서 배달원 아님?" 같은 말들이 줄줄이 붙어 있었다. 좋아요 숫자는 새로고침할 때마다 조금씩 올라갔다.
한아리라는 이름은 처음 들었다. 인증 배달자 마크가 붙어 있는 걸 보면 나름 유명한 사람인 모양이었다. 근데 왜 나한테 이러는 건지. 나 저 사람한테 뭐 잘못한 거 있나.
···이거 왜 이렇게 살벌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