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록으로 카드 뽑았더니 인생역전이라니

1화

교실 뒷문으로 들어서는 순간, 나는 이미 알고 있었다. 오늘도 창가 쪽 자리는 시끄러울 것이다. 문을 열자마자 익숙한 소음이 귀를 때렸다. 왁자지껄한 웃음소리, 의자 끄는 소리, 누군가의 자랑 섞인 목소리. 매일 반복되는 풍경인데도, 매일 새삼스럽게 마음이 조금 무거워졌다. 남상현. 녀석은 책상 위에 다리를 올리고 앉아서 친구들에게 뭔가를 자랑하고 있었다. "이번에 D랭크 슬라임 세 마리 잡았거든? 근데 그중에 하나가 변이종이었어." 자랑스럽게 스마트폰 화면을 들이밀며 말을 이었다. "봐봐, 이거 영상. 던전 코어 나오는 순간 대박이었다니까." 주변에 앉은 애들이 오오, 하고 감탄사를 뱉었다. 누군가는 화면을 향해 손가락을 대며 "이거 시세 얼마야?" 하고 물었고, 남상현은 어깨를 으쓱하며 "몰라, 팔 생각 없어. 이건 소장용이야"라고 답했다. 신유나가 팔짱을 끼고 웃으며 말했다. "역시 상현이는 다르다니까." 목소리에 부러움과 애교가 섞여 있었다. 우다혜도 옆에서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언젠가 카드 하나 뽑아보고 싶다." 그러자 신유나가 우다혜의 팔을 툭 치며 웃었다. "너도 팩 값 모으고 있잖아. 조금만 더 모으면 되겠네." 고태양은 야구 배트를 어깨에 걸친 채 지나가다가 한마디 던졌다. "부럽네, 나도 카드 하나 뽑아볼까." 말투는 가벼웠지만, 눈빛에는 진심이 살짝 묻어 있었다. 남상현이 그를 향해 손가락을 튕기며 웃었다. "야, 너도 슬슬 해야지. 언제까지 야구부만 할 거냐." "돈이 있어야 하지." 고태양이 씁쓸하게 웃으며 자리로 향했다. 나는 그 무리를 스쳐 지나가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저 무리에 낄 자격이 나한테는 없었기 때문이다. 내 자리는 창가와는 정반대, 복도 쪽 맨 뒷자리였다. 가방을 내려놓고 의자에 앉으며, 나는 습관처럼 창밖을 흘겨봤다. 남상현의 목소리가 계속 귓가에 맴돌았다. 변이종, 던전 코어, 소장용. 나에게는 낯선 단어들이었다. 모험가. 요즘 세상에서 그 단어가 가지는 무게는 예전과 완전히 달랐다. 등급이 있는 카드를 뽑고, 그 카드 속 존재를 소환해서 던전을 클리어하고, 방송에 나오고. 그게 곧 그 사람의 신분이 되는 세상이었다. 1성부터 시작해서, 등급이 올라갈수록 사람들이 보는 눈빛이 달라졌다. 3성쯤 되면 TV에도 나온다. 5성이면 나라에서 관리한다는 소문도 있었다. 심지어 학교 내 등급표라는 것까지 은근히 돌아다녔다. 누가 몇 성인지, 누가 어떤 카드를 뽑았는지, 그런 정보가 SNS를 타고 퍼졌다. 그리고 학교는, 그 축소판이었다. "태호야, 밥 먹으러 가자." 이동하가 내 어깨를 툭 치며 말했다. 키는 작고 몸은 마른데, 머리는 유난히 길게 기른 녀석이었다. "그래." 나는 짧게 답하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서준영이 뒤에서 헐레벌떡 따라왔다. 가방을 한쪽 어깨에만 걸친 채 뛰어오느라 안경이 자꾸 내려가는지, 손으로 연신 밀어 올렸다. "야, 나 오늘 매점에서 삼각김밥 못 샀어. 좀 나눠줘라." 안경 너머로 눈을 반짝이며 부탁하는 모습이 꼭 강아지 같았다. "싫어." 이동하가 단칼에 거절했다. "에이, 인정머리 없게." 서준영이 뒤통수를 긁으며 억울한 표정을 지었다. "태호야, 너는 나눠줄 거지?" "나도 오늘 안 가져왔어." "으아, 왜 다들 이래." 우리 셋은 학교 카스트에서 딱 중하층, 아니 그보다 조금 더 아래쪽에 위치한 모브들이었다. 존재감 없이 흘러가는 것. 그게 우리의 위치였다. 복도를 걸을 때도 누구 하나 우리를 눈여겨보지 않았다. 급식실로 향하는 계단을 내려가면서도, 나는 그 사실을 새삼 곱씹었다. "근데 남상현 쟤 진짜 웃기다." 서준영이 급식실로 걸어가며 말했다. "불과 반년 전만 해도 우리랑 똑같이 삼각김밥 나눠 먹던 놈인데." "부모가 돈 대줬잖아." 이동하가 시큰둥하게 말했다. "모험가 등록비만 몇백은 들었을 텐데. 우리가 무슨 수로." 맞는 말이었다. 등록비도 등록비지만, 카드팩 하나 뽑는 데 드는 돈이 만만치 않았다. 싸구려 팩은 F랭크나 E랭크 카드밖에 나오지 않았고, 그런 카드로는 등록조차 힘들었다. 제대로 된 팩을 사려면 최소 수십만 원. 운이 좋아야 하는 팩은 백만 원을 훌쩍 넘겼다. 가끔 편의점 앞에 붙은 광고판에서도 그런 팩 이름이 번쩍거렸다. '프리미엄 소환팩, 단 한 장으로 인생이 바뀐다.' 그 문구를 볼 때마다 나는 속으로 코웃음을 쳤다. 바뀌긴 하겠지, 돈만 있으면. 식판을 들고 자리에 앉자, 서준영이 국을 한 술 뜨며 말을 이었다. "그래도 신기하긴 하다." 서준영이 젓가락으로 밥을 뒤적이며 말했다. "카드 하나로 인생이 바뀌는 거잖아. 우리도 하나 뽑으면 어때?" "돈이 어디서 나서." 이동하가 코웃음을 쳤다. "편의점 알바 한 달 해서 나오는 돈이 얼만데. 팩 하나도 못 사." "그럼 계속 이렇게 살아야 되냐." 서준영이 한숨을 푹 내쉬었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국물을 떠먹었다. 숟가락 끝에 닿는 국물의 온기만이 오늘 하루 유일하게 위로가 되는 것 같았다. 그때. 급식실 저쪽에서 웃음소리가 터졌다. 오태식이었다. 녀석은 늘 그렇듯 주변을 웃기고 있었다. "야, 저기 모브 삼인방 봐라. 오늘 급식 반찬이 뭐냐고 물어보니까 셋이 동시에 대답하더라. 콩나물무침이요, 라고." 주변에서 와하하 웃음이 터졌다. 누군가는 손가락으로 우리 쪽을 가리키며 킥킥댔고, 오태식은 아예 흉내까지 냈다. "콩나물무침이요! 콩나물무침이요! 완전 삼중창이야." 나는 얼굴이 화끈거렸지만 아무렇지 않은 척 국물만 계속 떠먹었다. 이동하는 젓가락을 쥔 손에 살짝 힘이 들어가는 걸 나는 곁눈으로 봤다. 서준영은 애써 못 들은 척, 밥알을 세듯 천천히 씹었다. 오태식은 유머감각으로 학교에서 이름을 날리는 인싸였다. 남상현과는 선후배 관계로 얽혀 있었고, 최근에는 자기도 모험가가 되겠다는 말을 흘리고 다녔다. 그런 녀석의 눈에 든 게 나였다는 게, 그날은 조금 서글펐다. 웃음이 잦아들고 다시 급식실이 평소의 소음으로 돌아왔을 때, 나는 조용히 식판을 정리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나는 편의점 앞에서 발걸음을 멈췄다. 유리창 너머로 알바생이 계산대에서 손님을 상대하고 있었다. 그 자리가, 몇 달 전까지의 내 자리였다. 바코드 찍는 소리, 봉투 넣는 소리, 손님이 카드를 건네는 손짓까지, 하나하나가 낯설지 않았다. '다시 시작해야 할까.' 나는 문득 그런 생각을 했다. 돈을 모아서. 뭔가를 바꿔야 한다는 생각. 하지만 구체적인 계획 같은 건 아직 없었다. 그냥, 오늘 같은 하루를 계속 반복하고 싶지 않다는 마음뿐이었다. 편의점 유리에 비친 내 얼굴을 잠시 들여다봤다. 피곤해 보이는 얼굴, 초점 없는 눈. 저 안에서 일하던 예전의 나와 지금의 나 사이에 무슨 차이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스쳤다. 집에 들어서자 여동생 강아름이 거실에서 TV를 보고 있었다. "오빠, 왔어?" "응." "TV에서 3성 모험가 나온다. 완전 멋있어." 아름이는 화면을 가리키며 눈을 반짝였다. 화면 속에는 화려한 의상을 입은 모험가가 인터뷰를 하고 있었다. 방청객들의 환호성이 스피커를 타고 흘러나왔다. 사회자가 흥분한 목소리로 물었다. "이번에 3성으로 승급하시면서 어떤 기분이셨나요?" 모험가는 여유로운 웃음을 지으며 답했다. "그냥, 제가 그동안 흘린 땀이 헛되지 않았다는 걸 느꼈죠." 방청석에서 또 한 번 함성이 터졌다. 아름이는 화면에 완전히 몰입해서, 리모컨을 쥔 손을 흔들며 말했다. "오빠, 나도 커서 저런 사람 만나고 싶다." "만나는 거 말고 되고 싶은 건 없어?" "에이, 그건 너무 어렵잖아. 나는 그냥 옆에서 응원할래." 아름이는 그렇게 말하며 다시 화면으로 눈을 돌렸다. 나는 그 화면을 잠시 바라봤다. '저게 되면, 아름이도 저렇게 좋아할까.' 아직 확신은 없었다. 하지만 그 순간, 뭔가가 마음속에서 조용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남상현처럼, 나도 저 무대 위에 서고 싶다는 생각이. 방 안으로 들어가 가방을 내려놓으면서도, 그 생각은 쉽게 지워지지 않았다. 그날 밤, 나는 방에 누워서 천장을 오래도록 바라봤다. 형광등 불빛이 꺼진 방 안, 어둠 속에서도 눈은 좀처럼 감기지 않았다. 낮에 들었던 남상현의 자랑, 오태식의 웃음, 아름이의 반짝이던 눈빛이 차례로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돈을 모아야 한다. 그리고 카드를 뽑아야 한다. 그게 내가 세운, 아직은 형체 없는 계획의 시작이었다. 구체적으로 얼마가 필요한지, 어떤 팩을 사야 하는지, 아무것도 정해진 게 없었다. 그저 지금 이대로는 안 된다는 마음만이, 밤이 깊어질수록 점점 또렷해졌다. 다음 날 아침, 나는 등교 전에 근처 편의점에 들러 아르바이트 지원서를 냈다. 카운터에 서서 펜을 쥔 손이 살짝 떨렸다. 사장님은 나를 보며 살짝 웃었다. "학생, 시급은 알지?" "네." "오늘부터 바로 시작할 수 있어?"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편의점 형광등 불빛 아래, 사장님이 건네는 이름표를 받아 쥐며 나는 짧게 숨을 골랐다. 그렇게, 내 계획의 첫걸음이 시작됐다. 아직은 아무도 모르는, 아주 작은 걸음이었다.
첫 화입니다 목록 다음화 ›
♡ 좋아요 0 · 로그인 후 좋아요/별점/댓글 참여 가능

댓글 0

  • 첫 댓글을 남겨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