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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화

박현수라는 이름이 저택에 알려지자 하인들의 낯빛이 눈에 띄게 굳어졌다. 부엌에서 접시를 나르던 시녀 하나는 그 이름을 듣자마자 접시를 놓칠 뻔했고, 정원을 손질하던 늙은 정원사는 가위를 든 채로 한참을 멈춰 서 있었다. 그가 왕실에서도 정신질환과 광기를 전담해 온 의관으로 이름이 높다는 사실을, 아영은 다혜를 통해 조각조각 전해 들었다. "그분이 진맥하시고 나면, 다들 그 진단대로 결정이 난다고 해요." 다혜가 낮은 목소리로 귀띔했다. 그녀는 방문을 살짝 닫고 아영의 곁으로 다가와 속삭이듯 말을 이었다. "몇 년 전에 어느 후작가 도련님도 그분 진단 한마디로 후계에서 밀려났대요. 밖으로 나온 이유가 뭔지는 아무도 정확히 몰라요. 그냥 '기질에 문제가 있다'는 말 한마디였다던데." 다혜의 목소리에는 두려움과 은근한 호기심이 뒤섞여 있었다. 그 말이 지닌 무게를 아영은 조용히 삼켰다. 한마디로 사람의 운명을 결정지을 수 있는 자가 지금 이 저택으로 오고 있다는 것, 그것도 다름 아닌 자신을 진찰하기 위해서라는 것. 박현수는 다음 날 정오가 채 되기 전에 도착했다. 그는 은테 안경을 쓴 중년의 남자로, 표정에 자애로운 미소를 걸치고 있었지만 그 미소는 지나치게 균일해서 오히려 사람의 마음을 편하게 하기보다 관찰당한다는 감각을 자극했다. 그가 방에 들어서던 순간, 아영은 자신도 모르게 등줄기가 서늘해지는 것을 느꼈다. 마치 저 안경 너머의 눈이 겉껍질을 벗기고 그 안의 무언가를 들여다보려는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그가 아영의 손목을 짚어 맥을 살피고, 눈동자에 촛불을 가까이 대어 반응을 확인하는 동안, 방 안에는 한도영과 임소라도 함께 자리해 있었다. 한도영은 팔짱을 낀 채 창가에 서서 침묵을 지켰고, 임소라는 여전히 딸의 손을 놓지 못한 채 불안한 눈빛을 감추지 못했다. 촛불이 흔들릴 때마다 아영의 눈동자 속에서 작은 불꽃이 반사되었다가 사라졌는데, 그 광경을 지켜보는 박현수의 얼굴에는 아무런 표정 변화도 없었다. 박현수에게는 사실 이 진료가 처음이 아니었다. 오 년 전, 다섯 살의 아영이 시녀의 손등을 촛대로 내리찍었던 그날에도 백작가는 그를 조용히 불러 딸을 진단하게 했었다. 그때 그는 유난히 격정적이고 타인의 고통에 무감한 아이의 상태를 두고 단순한 성격의 편중이라 진단하며 별다른 처방을 내리지 않았다. 아이는 자라면서 저절로 나아질 것이라는 그의 말에, 백작가는 안심한 얼굴로 그를 배웅했었다. 그 결정이 훗날 얼마나 많은 하인들을 다치게 만들었는지 그는 알지 못했으며, 그 무지가 지금 그의 마음 한구석에 옅은 죄책감으로 남아 있었다. 이번에는 다르게 판단해야 한다는 조급함이, 그의 신중한 태도 이면에 은근히 배어 있었다. 다섯 살 아이의 광기를 놓친 대가로 몇 명의 손이 부러지고 몇 명의 뼈가 어긋났는지, 그는 마음속으로 헤아려 본 적이 있었다. 헤아릴수록 숫자는 늘어났고, 그 숫자는 이번 진단에 실리는 무게가 되었다. "영애님, 몇 가지만 여쭤봐도 될까요." 박현수가 부드러운 존댓말로 물었다. "올해가 청연 왕국 건국 몇 주년인지 아십니까." 그의 질문은 겉보기에는 평범한 지식 확인처럼 들렸지만, 실은 인지 능력과 기억의 손상 여부를 가늠하는 첫 관문이었다. 아영은 담담히 정확한 답을 내놓았고, 이어지는 몇 가지 질문—왕가의 계보, 저택이 위치한 영지의 이름, 오늘의 날짜—에도 흔들림 없이 응했다. 대답이 하나씩 쌓일수록 임소라의 얼굴에는 안도의 빛이 스쳤지만, 그럴수록 박현수의 눈빛은 오히려 더 깊어졌다. 광기는 대체로 지식의 손실이 아니라 감정과 인격의 뒤틀림에서 드러나는 법이었으니까. 그는 안경 너머로 아영의 표정을 하나하나 살피며, 대답의 정확함이 아니라 대답을 내놓는 태도 그 자체를 저울질하고 있었다. "물에 빠지셨을 때의 기억을, 다시 한번 자세히 말씀해 주실 수 있으실까요." 박현수가 몸을 살짝 앞으로 기울이며 물었다. 그 질문에 아영은 잠시 뜸을 들였다. 방 안의 시선이 일제히 자신에게 쏠리는 것을 느끼며, 그녀는 손끝이 조금씩 차가워지는 것을 애써 감추었다. 전생의 기억을 있는 그대로 말할 수는 없었는데, 그것이야말로 지금 이 방 안의 모든 사람들에게 자신이 완전히 다른 존재로 뒤바뀌었다는 확신을 심어주는 최악의 자백이 될 것이었다. 진실을 말하는 순간, 자신은 광기의 진단이 아니라 아예 다른 무언가로 분류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스쳤다. 그것이 나을지 나쁠지조차 가늠할 수 없었다. "숨이 막히는 순간, 지금까지 제가 얼마나 못되게 굴었는지 갑자기 전부 떠올랐어요." 아영이 낮게 말했다. 목소리는 흔들리지 않았지만, 그 안에는 계산된 슬픔이 은근히 배어 있었다. "죽기 전에 마지막으로 보는 게 자기가 저지른 잘못들이라니, 참 서글픈 일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녀는 진실의 절반만을 골라 내어놓았다. 물에 잠기던 순간의 진짜 기억, 낯선 도시의 소음과 자동차의 불빛과 전혀 다른 삶의 마지막 장면들은 깊숙이 묻어둔 채였다. 박현수는 그 대답을 한동안 곱씹으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안경 너머의 눈동자가 몇 번 아영의 얼굴을 오갔고, 손가락으로 턱을 짚은 채 무언가를 헤아리는 듯한 침묵이 이어졌다. 그 정적이 방 안의 모든 이들에게 견딜 수 없이 길게 느껴졌다. 임소라는 숨소리조차 죽인 채 남편의 손을 찾아 쥐었고, 한도영은 창밖으로 시선을 돌린 채 미간을 좁혔다. 마침내 박현수가 안경을 고쳐 쓰며 입을 열었다. "신체적인 외상은 전혀 없고, 의식과 언어, 기억 모두 명확하십니다." 그가 담담히 말했다. "다만..." 그가 말끝을 흐리자 임소라의 손이 떨리기 시작했다. 그 짧은 침묵 사이, 방 안의 공기가 한층 무거워지는 것이 느껴졌다. "다만, 극심한 정신적 충격이 인격 형성에 어떤 식으로든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을, 저는 배제할 수 없습니다. 지금 당장 광기라 단언할 근거는 없으나, 그렇다고 완전히 이전과 같다고도 말씀드리기는 어렵습니다." 그의 말은 어느 쪽으로도 확정되지 않은 채 허공에 매달려 있었고, 그 애매함이 오히려 방 안 사람들의 불안을 더 부풀렸다. 그 순간 방문 밖에서 갑작스러운 소란이 일었다. 다급한 발소리와 함께 하녀 하나가 문을 두드리며 들어와, 저택 정문 앞에 마을 사람 몇이 모여들어 웅성거리고 있다는 보고를 전했다. 물에 빠진 백작가 영애가 정령의 벌을 받아 넋이 나갔다는 소문이 이미 마을 전체로 퍼져, 구경 삼아 몰려든 이들이 저택 담장 밖에 진을 치기 시작했다는 것이었다. 몇몇은 담장 너머로 목을 빼고 저택 창문을 살펴본다고 했고, 또 몇몇은 벌써 저택 안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린다는 근거 없는 이야기를 지어내고 있다고 했다. 한도영의 얼굴이 순식간에 굳어졌다.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창가로 다가가더니, 커튼 사이로 정문 쪽을 내려다보며 낮게 욕설 비슷한 말을 삼켰다. 박현수의 진단이 채 끝나지도 않은 방 안에는 새로운 위기의 그림자가 조용히 스며들고 있었다. 정령의 벌이라는 말이 저택 안에서도 아직 완전히 해소되지 않은 이 순간, 밖으로부터 밀려드는 소문의 무게가 앞으로 아영이 감당해야 할 시선이 얼마나 무거워질지를 예고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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